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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인
카라 헌터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닉 빈센트: 지금이 2023년이니까 사건으로부터 거의 20년이 되었군요. 왜 지금 다시 그 사건을 들추려는 거죠?
가이 하워드: 진실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게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 사건은 거의 20년간 우리 가족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누군가 나서서 범인을 밝히고 그를 감옥에 가두기 전까지 우리는 평화를 되찾을 수 없을 겁니다. p.34~35
2003년 10월 3일 금요일 밤, 런던 서부의 부유한 동네에 있는 한 집 정원에서 무자비하게 구타당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당시 피해자의 부인은 파티에 참석 중이었고, 집에 있던 사람은 2층에서 자고 있던 열 살배기 아들뿐이었다. 밤늦게 극장에서 돌아온 부인의 10대 딸들에 의해 참혹한 현장이 발견되었고, 신고도 그들이 처음 했다. 사고였을까? 가정폭력? 아니면 강도의 소행이었을까. 정원으로 이어지는 계단 끝에 있던 시신은 얼굴과 머리를 심하게 두들겨 맞은 상태였다. 집은 텅 비어 있었고, 누군가 침입한 흔적도, 도둑맞은 물건도 없었으며, 그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지를 만한 뚜렷한 동기도 없는 것 같았다.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이 사건은 20년간 해결되지 않은 미제로 남게 된다.
2023년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가이 하워드는 20년 전 자신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리얼크라임 쇼 <인퍼머스>의 감독을 맡는다. 전 세계에 스트리밍되는 이 프로그램은 리얼크라임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호평을 받아왔다. 그렇게 당시 사건에 연루되었던 주요 인물들을 비롯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법정 심리학자, 런던 경찰청의 퇴직 형사, NYPD 출신의 사설탐정, 현직 법의학자, 왕실 변호사, 프리랜서 기자로 이루어진 출연진들은 프로그램이 촬영되는 동안 사건에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들은 최신 법의학 기술을 동해서 당시의 증거들을 재검토하면서 증언을 재조사하고, 목격자들을 다시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은 8화로 제작되어 매 회차가 한 편씩 공개된다. 회차를 거듭하며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게 되는데, 엇갈리는 증언과 끊임없이 속고 속이는 두뇌 싸움 속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년 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사건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지난 20년 동안 루크 라이더의 죽음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진실은 런던 경찰청의 수사망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장악한 수천 명의 아마추어 탐정의 조사도 피해 교묘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누군가 그를 죽이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를 죽인 살인자는 과연 누구인지. 하지만 신실이 곧 밝혀지게 될까요? p.462~463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말한 톨스토이는 틀렸다. 불행한 가족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하게 와해된다는 사실이 <인퍼머스> 시리즈를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오 혜택받은 집안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이는 프로그램 3화가 공개된 뒤, 언론에 보도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 내용 중 일부이다. 기자는 가족 간의 이야기야말로 <인퍼머스>에서 얻는 알짜배기 통찰이라며, 가정불화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퍼머스>라는 프로그램은 이번에 일곱 번째 시즌인데, 그 동안 리얼크라임 장르를 다루며 악명 높은 미제사건들을 다루어왔다. 이 시리즈는 예리한 보도와 깊이 있는 분석, 사건과 가장 밀접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특종들로 정평이 나 있고, 몇 차례 수상 이력도 있을 만큼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같은 프로그램을 즐겨 보아온 독자라면, <인퍼머스>라는 프로그램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도 들 것 같다.
"놀라지 마십시오. 단언컨대 지금부터 아주 아찔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작품은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실제 리얼크라임 쇼를 보며 시청자가 되어 추리에 참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방송 각본, 미디어 리뷰 기사, 인터넷 게시판 등 미디어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이 나누는 '대화'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반적인 소설에서 등장하는 서술자의 시선이 없기 때문에 초반에는 다소 낯설고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끊임없는 반전과 충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방송 회차가 거듭되고, 그에 대한 언론의 시선과 실시간 인터넷 반응, 그리고 등장인문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들이 더해지면서 점점 사건에 몰입하게 된다. 카라 헌터는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영국 내에서만 1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지금까지 27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대표작이 애덤 폴리 형사 시리즈라고 하는데, 평범한 구성의 추리소설 시리즈도 매우 기대가 된다. <가족 살인>은 영국의 영화 제작사 닐 스트리트 프로덕션에서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워낙 눈앞에 영상이 보이는 듯한 생생한 작품이었던터라 스크린에서 보여질 버전도 궁금해진다. 자, 기발한 설정과 독창적인 구성, 곳곳에 배치된 단서와 반전이 백미인 리얼크라임 쇼에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