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변호사 파란 이야기 21
허교범 지음, 현단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착한 사람은 언제나 피해를 당한다. 세상에는 아주 착한 사람이 약간, 아주 나쁜 사람도 약간, 양쪽 다 아닌 사람이 잔뜩 있다. 나쁜 사람은 언제나 착한 사람을 찾아다니는데 그건 늑대가 양을 찾는 것과 이유가 같다. 이것이 변호사의 생각이었다. 변호사는 세상을 믿지 않았다. 이번에도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다... 사실이 아니지만 어쨌든 반 아이들 전부가 그렇게 믿을 테고 그러면 사실이 되는 세상이었다.                p.43


그 일은 체육 시간을 전후로 일어났다. 그날 체육 시간에는 편을 나눠 피구 대결을 했는데, 성희가 발목을 삐어 혼자 보건실에 가게 된다. 간단한 치료를 받은 뒤 교실에 왔는데, 한 사람의 책상이 넘어지고 내팽개쳐진 가방 속 물건이 모두 바닥에 쏟아져 있었다. 사람의 악한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 장면에 놀란 성희는 물건을 하나씩 주워 담았고, 마침 체육 시간이 끝나고 온 아이들은 모두 성희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범인이 되어 버린 성희에게 선생님은 학급 재판을 제시한다. 그렇게 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반장이 검사가 되었고, 변호사를 맡겠다고 나선 아이는 반에서 가장 영향력이 미미한 사람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조용히 책만 읽는 아이가 변호사가 된 것이다. 피고인 성희를 비롯해서 반장과 아이들 모두 결과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재판장인 선생님의 생각만은 달랐다. 


너희들이 상상도 못 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재판까지 이레, 일곱 날이 남았다.


사실 아이들은 다 반장 편이었고, 반장은 피고인인 성희를 미워했다. 선생님은 반장에서 판사 자리를 권유했지만, 반장이 검사 역할을 맡겠다고 나선 거였다. 피고인을 파멸시키려는 목적이 너무 뚜렷해서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누가 변호를 맡든 이길 확률이 없는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변호사 역할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아이도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변호사가 혼자 교실에 남아서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도 파악했다. 하지만 재판을 다루는 법정 스릴러를 많이 읽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아이들보다는 재판에 대해 많이 알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래서 변호사 역할을 맡아 보라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쉽지 않겠지만, 네가 새로운 변호사가 되어 이 사건을 뒤집는 건 어떠냐고 말이다. 




둘이 동시에 대답했지만 변호사의 표정은 정말 조금도 죄송해 보이지 않았다. 검사는 이 순간 변호사가 얼마나 무서운 적인지 드디어 마침내 결국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기가 겨우 검사 흉내를 내고 있다면 이 아이는 나이만 어린 변호사에 가까웠다. 이대로는 승산이 전혀 없었다.

절망 어린 시선으로 본 방청석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바람 앞의 어린 가지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p.134


변호사는 세상을 믿지 않았고, 이번 사건도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다고 생각했다. 변호사의 기준으로는 확실히 나쁜 사람인 반장이 자기 인기를 이용해 검사가 되어 착한 사람을 마구 공격했고, 이대로라면 착한 사람은 모두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힐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는 화가 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판에서 이길 수 있을까. 판정은 선생님이 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이 정하는 거였다. 하지만 아무도 성희를 믿지 않았다. 모두들 결과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사건에서 변호사는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진짜 범인은 누구이며, 과연 진실이 밝혀지게 될까.


이 작품은 추리 동화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와 판타지 동화 <이리의 형제>를 쓴 허교범 작가의 어린이 법정 스릴러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인 추리 소설들이 대부분 어린이 탐정이 등장해서 범인을 찾는 전형적인 이야기들이었기에, 어린이 법정 스릴러를 한번 써보기로 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에도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추리 과정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사건이 종결지점에 이르렀을 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논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들이 벌인 재판이 어린이들의 귀여운 놀이나 어른 흉내가 아니라 진지한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내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오해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들을 현실적으로 다루면서도 그에 대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증거를 수집하고, 단서를 찾아내며 차근차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어린이 문학에서 흔치 않은 장르이기에 더욱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는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