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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말하다 - 폴오스터와의 대화
폴 오스터 지음,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심혜경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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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폴 오스터와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의 주요 작품들을 거의 다 소개하는 인터뷰 모음집이다. 그런데 왜 <글쓰기를 말하다>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이유는 이 책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질문이 폴 오스터의 작업 방식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고, 시작하고, 글을 쓰고, 수정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 지에 대해서 읽다 보면 '인터뷰'라는 형식 자체보다는 글쓰기, 작법에 관한 여타의 실용서보다도 훨씬 더 내용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새 책 집필에 들어가면 매일 아침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에 일어나 오렌지 주스 한 잔, 홍차 한 잔을 마시며 45분가량 뉴욕 타임스를 읽고는 집을 나선다. 도보로 몇 분 뒤에 마련한 작업실인 조그만 아파트로 가서 매일매일 작업을 대 여섯 시까지 계속 한다. 항상 초고는 모눈 종이 공책에 손으로 글을 써서 작성하는데, 더는 손 볼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여러 번 수정 작업을 거친 후에 최종 원고에 이르러서야 타이핑 작업을 한다. 그의 작품 중에 <빵 굽는 타자기>를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초보 작가 시절의 그에게 글쓰기는 '생존의 문제'였다. 번역과 서평 쓰는 일을 하고, 뉴욕 타임스 파리 지국에서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전화 교환대 자리를 지키는 일로 근근히 살아갈 때조차도 그는 글쓰기에 전념하고자 했었다. 당시에 한 인터뷰에서 느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야 하는데, 생각이 손보다 빨라 답답했었다는 얘기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글쓰기는 나에게 육체적인 일입니다. 내게는 단어들이 늘 정신이 아니라 육체에서 나온다고 느껴지거든요. 나는 손으로 씁니다. 그리고 펜은 종이 위에 글자들을 새겨 넣습니다. 나는 글씨들이 써지는 소리마저도 들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산문을 쓸 때 기울이는 노력은 머릿속에 떠도는 음악을 잡아 문장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음악을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글로 옮기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쓰고, 또 쓰고, 그리고 고쳐 써야죠. 음악은 물리적인 힘을 필요로 합니다. 책을 쓰고 읽는 것은 몸으로 하는 일이지요.

 

그의 작업 습관이 보여주듯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며, 규칙적이고 고집스레 지켜나가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글쓰기란 시간과 체력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 이다. 일단 엉덩이를 붙이고, 정해놓은 시간에 적합한 장소에 앉아서, 정해진 분량을 써야 하는 인내가 기본이니까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외로운 일이다. 폴 오스터 또한 누구에게도 글쓰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엄청난 고독의 경지를 사랑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으며, 금전적인 문제는 물론 유명세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평생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하게 될 수도 있다고. 글을 쓰는 일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모든 것을 다 소진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비로소 작가가 되는 게 아닐까.

 

25년 동안 오스터가 여러 잡지와 한 인터뷰를 모은 이 책에서 그는 왜 글을 쓰는지 자신의 문학관과 창작 과정, 작업 방식 등을 들려준다. 그는 데뷔 전에 프리랜서 서평가, 번역가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한 이력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가 번역을 시작한 계기이다. 대학에 다닐 때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보들레르, 랭보 등의 다양한 시를 읽었는데 외국어로 된 작품이라 그런지 제대로 이해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로 옮겨 보려고 애를 쓰다 보니 작품의 의미가 파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번역 작업을 해보겠다.고 시작했던 게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시를 좀더 잘 이해시키려는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번역이 매우 유용한 훈련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번역은 글쓰기의 기본을 익히게 해줍니다. 단어들과 친숙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죠.> 그러면서 자신보다 확실히 기량이 뛰어난 사람들의 작품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고, 전보다 더 진지한 태도로 집중해서 읽게 된다는 것이다. <젋은 시인들은 릴케가 소네트를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 더 많이 알려면 릴케의 소네트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보다 그것을 번역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 이 정도면 이 책이 단순한 인터뷰 모음집이 아니라 글쓰기에 얼마나 유용한 팁들을 소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생각에는 어떤 사람들이 위대한 스토리텔러들인가요?

폴 오스터  우리가 아직도 읽고 있는 동화들을 지은 무명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라비안나이트, 유럽전래동화 저자들 말입니다. 인간이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구전동화들이죠. 이 작품들 모두가 나에게는 끊이지 않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폴 오스터는 스스로를 소설가보다는 스토리텔러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고 밝힌다. <나는 이야기가 영혼의 일용할 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없으면 못 삽니다. 두 살부터 죽을 때까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가죠.> 라고 말이다. 그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 또한 아내가 여덟 살이 되는 딸아이를 위해 사준 책 두 권이라고 한다. 바로 이디시어로 된 전래동화와 프랑스 전래동화인데, 딸아이가 읽기 전에 그가 먼저 읽고 있는 중이라고. 글쓰기 외에 다른 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습관, 생활 태도, 영화 작업 뒷 얘기까지 모든 것이 작가의 삶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은 이들이라도 오로지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폴 오스터의 작품을 거의 대부분 읽었거나, 한 권이라도 읽었던 이들이라면 작품 분석까지 해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책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글을 써보기 전에 뭔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종 글쓰기, 작법에 관한 실용서들, 유명 소설가의 작법서는 항상 스테디셀러가 된다. 하지만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 머리로만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몸이 움직이면 머리는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 우선 하루에 단 몇 자라도,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 당신이 작가가 되고 싶든, 혹은 그저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든 간에 반드시 글을 쓰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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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어떻게 말하는가 -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애견 언어 교과서 Pet's Better Life 시리즈
스탠리 코렌 지음, 박영철 옮김 / 보누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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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평생을 강아지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릴 적부터 강아지와 친숙하게 지냈다. 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을 거쳐간 강아지가 총 다섯 마리인데, 기간에 비해 강아지 수가 많지 않은 이유는 다들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우선 제일 처음 키웠던 일명 '똥개' 두 마리는 황갈색 수컷 '뽀뽀'와 하얀색 암컷 '뽀미' 두 마리였는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나를 반겨주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 이후에는 하얀 털과 브라운 털이 멋들어지게 섞여 있었던 '복돌이' 였는데, 이 아이는 애교가 넘쳐나던 아이라 너무 이뻐했었던지.. 나중에는 주인의 사랑을 지나치게 받아 비만이 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좋아했던 강아지였다. 이어 장난감 인형처럼 생겼던 토이 푸들 '쪼꼬'는 너무도 똑똑해서 가끔은 얌체처럼 느껴질 정도였던 아이인데,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그 미모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꼭 한마디씩 했던 귀여운 강아지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같이 살고 있는 코카스패니얼 '토토'는 현재 13살이라 사실 할아버지 급 나이인데도 여전히 천방지축 활발하고 정신 없는 아이이다. 친구네 집에서 키우던 요크셔테리어는 12살만 되어도 느릿느릿 힘없이 정말 노인처럼 다녀서 마음이 아팠는데, 이놈은 아직도 너무 철없이 뛰어다니곤 해서 우리 가족의 활력소가 되어주곤 한다. 특히나 '토토'는 어릴 때 폐렴에 심하게 걸려서 병원에서도 거의 포기하고 안락사를 권유시켰을 정도로 많이 아팠던 아이인데, 차마 그 조그만 것을 버릴 수가 없었던 터라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해서 결국 건강을 되찼았던 슬픈 과거가 있다. 그 민간요법이란 것도 사실 지금 돌이켜 보면 말도 안 되는 건데, 예를 들자면 북어국 끓여주기, 닭발 삶아주기 등등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무더운 한 여름에 에어컨 한번 못 켜고 습도 조절을 위해 욕실에 뜨거운 물 잔뜩 받아놓고 습기 맞춰주고, 병원에서 포기한 터라 약을 못 주니 사람이 먹는 감기약을 가루로 부셔서 먹여주는 등등... 인터넷을 검색해서 어디에 도움이 된다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물론 너무 어릴 때부터 아팠던 지라 체력이 약해서 자라오면서 잦은 잔병치레를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13살이 되도록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볼 때마다 대견한 놈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개를 보살피고, 개와 함께 생활을 했기에 그들의 언어에도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순간의 표정, 하나의 몸짓으로도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살펴본 경험이 있으므로 대체 개들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그들이 보내는 언어 신호에 대해 항상 궁금했었다. 이 책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애견 언어 교과서>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개의 행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개 심리 전문가가 그들의 언어에 대해 알려주는 작품이다.

 

개들이 어떤 식으로 대화하고, 인간이 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개들이 말하는 내용을 인간의 언어로는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면, 개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 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개가 온화한 표정일 때, 혹은 뭔가에 흥미가 끌릴 때, 공격의 표정이나 긴장과 불안, 공포와 복종을 나타내는 표정을 지을 때는 자세, 꼬리, 몸의 위치, , 발바닥, 꼬리를 흔드는 방식, 눈 위의 작은 움직임 등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실제로 개는 사람의 많은 언어를 배워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개가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 쉬운 것도 바로 그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개는 사람의 지시에 따르거나 혹은 사람의 단어에 반응하여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저자는 "개가 듣고 이해하는 필수 단어 리스트"라고 간단히 정리를 해놨는데, 아마 개를 한번이라도 키워 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내용 들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저리 가:개는 뭔가를 휘젓거나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가도 그곳으로부터 떨어진다.

손 줘: 이 말을 들으면 개는 한쪽 앞발을 올린다. 발톱을 자르거나 마른 타월로 씻거나 할 때 유용하다.

쫓아가: 놀 때 사용하는 단어로, 개는 내가 던진 것을 자유롭게 쫓아 간다.

안 돼: 이 말을 들으면 개는 항상 크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다. 목적은 개에게 모든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명령은 개에게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기다려:"멈춰"보다 훨씬 느슨한 명령이다. 이 말을 들으면 개는 지금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 자리에서 나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이것들은 우리가 평소에 흔히 쓰는 단어들이고, 어릴 적부터 어떻게 훈련을 시키느냐에 따라서 주인과 개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꺼리 들이 더 많아진다. 특히나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훈련시킨 단어에 따른 행동 말고, 개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개가 자신의 이름을 인식한다는 것만 봐도 그들이 언어에 반응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개 언어를 이해하려면 우선 그들이 말하는 방식부터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세히 들어보면 개들마다 짖는 소리도 미묘하게 다르다. 저자는 개가 말하는 방식을 얼굴 표정, , , 꼬리, , 성적인 행동, 냄새 등으로 구분해서 그들이 말하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개 언어는 동작이나 몸의 자세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조합될 수 없는 소리와 자세가 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예를 들어, 사지를 뻣뻣하게 경직시킨 자세로, 콧소리나 높은 톤으로 칭얼거리는 개는 없다. 이 자세를 취할 때는 대개 으르렁거림을 동반하고, 때로는 경고의 짖는 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꼬리의 움직임과 소리의 조합에도 규칙적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저 여기 있어요" 하고 개의 잠자는 소리는 말한다. "함께 이 세상을 헤쳐나가요. 짐승이나 침입자가 당신을 덮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여기서 당신의 눈이 되고 귀가 될게요. 염려 마세요. 제가 곁에 있으면서 당신을 따뜻하게 하고, 필요하면 당신을 지킬게요...우리는 이제 모두 아이는 아니지만 함께 놀아요. 운이 나빠서 당신이 탄식할 때는 제가 위로해 드릴게요.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에요. 약속할게요. 당신의 개로서 제가 그렇게 약속할게요. 매일 밤, 이 숨소리로 그 약속을 당신에게 전합니다."

나는 잠든 우리 집 개들의 편안한 숨소리에서 그런 말들을 읽는다. 그리고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그 말을 이해하고 위로 받는다. 비록 개들이 한정된 단어로 그것밖에 전2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개의 언어 능력은 두 살짜리 아이와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의 언어로 개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건네야'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말을 걸 때와 마찬가지로 개에게 말을 거는 것은 대부분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독백형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개 언어 소사전"이라고 해서 개가 의사 전달에 사용하는 주된 신호들을 모아 정리해놓은 부분이 있다. 소리에 의한 신호, 시각적인 신호로 구분되어 개가 사람에게 전하려고 하는 바를 알아듣기 쉽게 표핸해두었다. 이 책이 당신과 당신의 개 사이에 더욱 깊은 이해와 소통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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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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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에 충격적인 뉴스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병마와 싸우는 아픈 아들을 돌보는 절절한 사연을 일상으로 블로그에 연재해서 전세계 네티즌들의 응원을 받았던 미국의 한 엄마가, 사실은 치사량에 달하는 소금을 지속적으로 먹여 아들을 병들게 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미국 뉴욕 외곽에 사는 20대 여성 레이시 스피어스는 인터넷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연재해 '파워 블로거'로 큰 주목을 받았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수시로 호흡 곤란 증세를 겪는 아들 가넷의 세세한 일상을 올려, 전세계 네티즌들이 응원을 보냈지만, 다섯 살이 된 올해 초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착한 엄마의 표상으로 여겨져 온 레이시가 사실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부검 결과 밝혀졌다는 것이다. 엄마인 레이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병을 일부러 만드는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란 주로 신체적인 징후나 증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서 자신에게 관심과 동정을 이끌어내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주로 병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자해를 하거나, 혹은 자신의 자녀나 애완동물을 대리환자로 상처를 입히는 등의 학대를 일삼는 것이다. 사랑 받기 위해 일부러 아파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니,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에서도 사랑 받지 못해 사랑할 줄 모르고,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잊기 위해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겉으로는 너무도 평화로운 작은 시골 마을 윈드 갭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목이 졸려 죽은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1년 후 또 다른 소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생긴다. 주인공 카밀의 상사인 커리 국장은 아무래도 연쇄범의 소행인 것 같으니 내려가서 기사를 좀 건져 오라고 그녀를 마을로 내려 보낸다. 취재차 카밀이 가게 된 윈드 갭은 그녀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이기도 했다. 그녀는 12년 만에 고향에 내려가지만, 경찰서에서도 피해자의 가족에서도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다. 그리고 곧 이어 실종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다. 1년 전 살인 사건에서처럼 이가 모두 뽑힌 상태로 말이다. 카밀은 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하는 목적이 있기에, 마을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사체가 발견된 장소를 돌아보는 등 취재를 하지만 그다지 수확이 없다. 살인 사건을 취재하러 과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기자..에서 이야기가 시작 될 때는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처럼 전개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이 작품의 진행은 독특한 카밀의 가족 관계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의 드라마로 펼쳐진다. 대체 사건 취재는 언제쯤 수확이 있는 건지, 범인이 밝혀질 수는 있는 건지 의문이 갈 정도로 담백하게 펼쳐지는 이 조용한 마을에서의 스토리는 후반부에 가서야 빵하고 터져버린다. 물론 그 엄청난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녀가 이끌고 가는 대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 그럼 카밀의 가족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카밀의 여동생 메리언은 그녀가 어릴 적에 병마와 싸우다 죽었다. 그녀의 엄마는 결혼 전에 카밀을 임신했었고, 이후 다른 남자와 결혼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카밀이 "어머니는 어린 소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래서 아끼느라 갖고 놀지 않는 인형처럼 보였다" 내지는 "<피터팬>의 웬디 달링이 다 자란 모습이라고나 할까" 라는 등으로 아도라를 묘사하는 대목을 보면 그녀가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아도라의 남편 앨런은 엄마보다 더 말라서 링거라도 한 병 맞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체격의, 집에서도 항상 지나치게 차려 입는 남자이다. 그리고 메리언과는 전혀 닮지 않은 자신의 이복동생 엠마는 인형처럼 예쁘지만 친구들과 몰려 다니면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닌다. 그리고 이 와중에 멀쩡한 것처럼 보였던 주인공 카밀에겐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몸을 칼같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긋고 베고 찌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다리, 손목 등 거의 온 몸의 살갗에 이런 저런 글자를 새겨놓았다. 동생인 메리언이 죽던 열세 살 때부터 시작된 그것은 몸을 베는 행동을 통해서만 그녀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국 12주 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고, 그곳을 나온 지 이제 고작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엄마에게 단 한번도 따뜻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카밀은 자신의 몸에 칼로 글자를 새겨야만 만족감을 느끼며, 예쁜 외모를 가졌지만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한다. 외모와 말솜씨로 인기를 독차지하는 엠마는 엄마를 비롯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못생기고 존재감 없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다닌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만 만족을 느끼기에, 자신도 살해당한다면 완벽하게 사랑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윈드 갭에서 가장 부유한 아도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걸맞게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 자애로운 엄마로 봐주기를 기대하며 늘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

  

 

이 작품은 <나를 찾아줘>, <다크 플레이스>로 화제였던 길리언 플린의 데뷔작이다. <몸을 긋는 소녀>는 기존에 <그 여자의 살인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고, 이번에 나온 것은 그 개정판이다. 표지와 제목을 바꾸어 입었지만, 번역자는 기존과 같아 내용 상 크게 차이는 없다. 길리언 플린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개되는 내용은 완전 '막장 드라마' 스러운데 비해 우아하게 흐르는 전개와 예리한 심리 묘사는 매우 섬세하다. 출간된 세 권의 작품이 모두 영화 판권이 팔린 걸 보면 대중성은 확실히 보장받은 게 분명한데, 대체 이 자극적인 스토리를 작품성으로도 인정해야 하나 싶은 고민을 늘 하게 만들곤 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막장 가족이 등장하는데, 정작 진행되는 문장과 스토리는 날카롭게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묘사해서 독특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을 만큼 작은 마을 윈드 갭은 또한 모든 사람들이 그 비밀을 이용해먹을 정도로 실상은 겉보기와 다르다. 누군가의 미담보다는 실수와 악행이 세상을 더 떠들석하게 만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치부를 까발려 유린하고, 가십거리가 넘쳐나는 우리의 현재 또한 다를 바가 없다. 숨겨진 비밀이란, 그게 내 것만 아니라면 남이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없이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재미있는 법이니 말이다. <마지막 30페이지를 남기고 몹시 두려웠지만,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평가한 스티븐 킹의 말처럼 이 작품의 후반부에 펑하고 터지는 결말은 매우 위험하고, 아찔하다. 설마 아니겠지... 싶었던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날 때의 무시무시함이랄까. 길리언 플린은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만드니 이중 결말이 준비되어 있으니, 이 작품을 만나실 예정이신 분들은 부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으시길.. 출판사의 책 소개 페이지에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아무렇지 않게 설명되어 있으니 가급적 책에 대한 설명 없이 만나보시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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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산다 2 용이 산다 2
초(정솔)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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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네이버에서 시즌 2가 막 연재가 시작된 <용이 산다> 웹툰이 단행본 2권으로 출간되었다. 시즌 1이 단행본 1, 2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고, 지금 연재되고 있는 시즌 2는 마무리가 되면 단행본 3권으로 출간 될 것 같다. 처음에 이 웹툰을 접할 때는 제목이 뭐 이런가 싶었는데, 말 그대로 옆집에 ''이 살고 있다는 의미라 제목 한번 심플하고 단순하네 싶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흔히들 '' 하면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는 이 웹툰을 보는 동안 산산 조각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왜냐, 신성한 동물로 다소 무섭게 생각했던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보다 더 인간스러운, 컴퓨터와 게임에 열광하는 오타쿠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혹시 1권을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잠깐 정리하자면, 최우혁이 새 집에 이사 오고 인사겸 떡을 돌리려고 옆집에 갔을 때 부딪히는 상황은 이렇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 무슨 당황스런 시추에이션? 싶었던 기억이 난다.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용이라니 우혁도 당황스러워 하지만, 그러나 그는 일주일 만에 김용에게 적응된다. 가만 보면 최우혁도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이긴 하다. , 그렇다면 용이 왜 인간들이 사는 곳에 버젓이 살고 있는 걸까? 김용의 설명에 따르자면, 2~3천년 전만 해도 용들은 본 모습을 숨기지 않고 인간들과 섞여서 지내고 있었는데, 용이 가지고 있는 신통력을 통해 인간들의 도움을 얻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욕심 많은 인간들은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해왔고, 도를 넘어선 그들의 태도에 결국 용들은 공존을 포기하고 깊숙한 자연으로 숨어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인간들의 탐욕은 멈출 줄 몰랐고 무분별한 개발과 파괴로 그들이 숨어있던 자연마저 사라져갔고, 결국 용들은 얼마 안 남은 자연에서 사는 무리와 인간들 사이에 숨어 사는 무리로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김용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 세상에 숨어 사는 무리 중의 하나인 것이고. 그런데 가끔 최우혁처럼 편한 인간 앞에서나, 혼자 있을 때나, 화가 날 때는 다시 용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사실 그 용의 모습도 무섭기는커녕 너무 귀엽다는.

 

손가락만 까딱하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컴퓨터는 신의 물건이고, 게임은 천사의 선물이라 하는 김용. 어떻게 게임 폐인, 오타쿠 용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의 누나인 김옥분. 분명 이들은 용인데, 가끔 하는 짓을 보면 인간보다 더 인간스럽게 보인다. 특히나 2권에서 흥미로운 전개는 용 남매의 엄마가 소싯적에 한 혼인 약속 때문에 만나게 된 옥분의 상대 이영수와 용 남매의 조카 마리이다.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수줍은 이 남자, 이영수와 왈가닥 옥분의 연애 스토리도 매우 흥미진진하고, 용 남매의 조카 마리는 진짜 완전 귀여워서 용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 판타지 소설가인 김용과 그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투덜대는 최우혁 콤비의 종횡무진 활약도 너무 재미있다.  용이란 정체를 숨기고 판타지 소설 작가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가는 게임 폐인 용과 이제 막 독립해서 자취를 시작한 사회 초년생의 만남은 좌충우돌 유쾌하다. 인기 웹툰들이 책으로 출간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만화는 웹 화면보다는 종이 책으로 보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책으로 출간되는 웹툰에는 미공개 컷도 숨겨져 있어 소장가치도 충분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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