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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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에 충격적인 뉴스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병마와 싸우는 아픈 아들을 돌보는 절절한 사연을 일상으로 블로그에 연재해서 전세계 네티즌들의 응원을 받았던 미국의 한 엄마가, 사실은 치사량에 달하는 소금을 지속적으로 먹여 아들을 병들게 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미국 뉴욕 외곽에 사는 20대 여성 레이시 스피어스는 인터넷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연재해 '파워 블로거'로 큰 주목을 받았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수시로 호흡 곤란 증세를 겪는 아들 가넷의 세세한 일상을 올려, 전세계 네티즌들이 응원을 보냈지만, 다섯 살이 된 올해 초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착한 엄마의 표상으로 여겨져 온 레이시가 사실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부검 결과 밝혀졌다는 것이다. 엄마인 레이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병을 일부러 만드는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란 주로 신체적인 징후나 증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서 자신에게 관심과 동정을 이끌어내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주로 병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자해를 하거나, 혹은 자신의 자녀나 애완동물을 대리환자로 상처를 입히는 등의 학대를 일삼는 것이다. 사랑 받기 위해 일부러 아파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니,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에서도 사랑 받지 못해 사랑할 줄 모르고,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잊기 위해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겉으로는 너무도 평화로운 작은 시골 마을 윈드 갭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목이 졸려 죽은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1년 후 또 다른 소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생긴다. 주인공 카밀의 상사인 커리 국장은 아무래도 연쇄범의 소행인 것 같으니 내려가서 기사를 좀 건져 오라고 그녀를 마을로 내려 보낸다. 취재차 카밀이 가게 된 윈드 갭은 그녀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이기도 했다. 그녀는 12년 만에 고향에 내려가지만, 경찰서에서도 피해자의 가족에서도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다. 그리고 곧 이어 실종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다. 1년 전 살인 사건에서처럼 이가 모두 뽑힌 상태로 말이다. 카밀은 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하는 목적이 있기에, 마을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사체가 발견된 장소를 돌아보는 등 취재를 하지만 그다지 수확이 없다. 살인 사건을 취재하러 과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기자..에서 이야기가 시작 될 때는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처럼 전개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이 작품의 진행은 독특한 카밀의 가족 관계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의 드라마로 펼쳐진다. 대체 사건 취재는 언제쯤 수확이 있는 건지, 범인이 밝혀질 수는 있는 건지 의문이 갈 정도로 담백하게 펼쳐지는 이 조용한 마을에서의 스토리는 후반부에 가서야 빵하고 터져버린다. 물론 그 엄청난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녀가 이끌고 가는 대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 그럼 카밀의 가족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카밀의 여동생 메리언은 그녀가 어릴 적에 병마와 싸우다 죽었다. 그녀의 엄마는 결혼 전에 카밀을 임신했었고, 이후 다른 남자와 결혼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카밀이 "어머니는 어린 소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래서 아끼느라 갖고 놀지 않는 인형처럼 보였다" 내지는 "<피터팬>의 웬디 달링이 다 자란 모습이라고나 할까" 라는 등으로 아도라를 묘사하는 대목을 보면 그녀가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아도라의 남편 앨런은 엄마보다 더 말라서 링거라도 한 병 맞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체격의, 집에서도 항상 지나치게 차려 입는 남자이다. 그리고 메리언과는 전혀 닮지 않은 자신의 이복동생 엠마는 인형처럼 예쁘지만 친구들과 몰려 다니면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닌다. 그리고 이 와중에 멀쩡한 것처럼 보였던 주인공 카밀에겐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몸을 칼같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긋고 베고 찌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다리, 손목 등 거의 온 몸의 살갗에 이런 저런 글자를 새겨놓았다. 동생인 메리언이 죽던 열세 살 때부터 시작된 그것은 몸을 베는 행동을 통해서만 그녀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국 12주 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고, 그곳을 나온 지 이제 고작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엄마에게 단 한번도 따뜻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카밀은 자신의 몸에 칼로 글자를 새겨야만 만족감을 느끼며, 예쁜 외모를 가졌지만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한다. 외모와 말솜씨로 인기를 독차지하는 엠마는 엄마를 비롯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못생기고 존재감 없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다닌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만 만족을 느끼기에, 자신도 살해당한다면 완벽하게 사랑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윈드 갭에서 가장 부유한 아도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걸맞게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 자애로운 엄마로 봐주기를 기대하며 늘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

  

 

이 작품은 <나를 찾아줘>, <다크 플레이스>로 화제였던 길리언 플린의 데뷔작이다. <몸을 긋는 소녀>는 기존에 <그 여자의 살인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고, 이번에 나온 것은 그 개정판이다. 표지와 제목을 바꾸어 입었지만, 번역자는 기존과 같아 내용 상 크게 차이는 없다. 길리언 플린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개되는 내용은 완전 '막장 드라마' 스러운데 비해 우아하게 흐르는 전개와 예리한 심리 묘사는 매우 섬세하다. 출간된 세 권의 작품이 모두 영화 판권이 팔린 걸 보면 대중성은 확실히 보장받은 게 분명한데, 대체 이 자극적인 스토리를 작품성으로도 인정해야 하나 싶은 고민을 늘 하게 만들곤 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막장 가족이 등장하는데, 정작 진행되는 문장과 스토리는 날카롭게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묘사해서 독특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을 만큼 작은 마을 윈드 갭은 또한 모든 사람들이 그 비밀을 이용해먹을 정도로 실상은 겉보기와 다르다. 누군가의 미담보다는 실수와 악행이 세상을 더 떠들석하게 만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치부를 까발려 유린하고, 가십거리가 넘쳐나는 우리의 현재 또한 다를 바가 없다. 숨겨진 비밀이란, 그게 내 것만 아니라면 남이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없이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재미있는 법이니 말이다. <마지막 30페이지를 남기고 몹시 두려웠지만,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평가한 스티븐 킹의 말처럼 이 작품의 후반부에 펑하고 터지는 결말은 매우 위험하고, 아찔하다. 설마 아니겠지... 싶었던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날 때의 무시무시함이랄까. 길리언 플린은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만드니 이중 결말이 준비되어 있으니, 이 작품을 만나실 예정이신 분들은 부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으시길.. 출판사의 책 소개 페이지에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아무렇지 않게 설명되어 있으니 가급적 책에 대한 설명 없이 만나보시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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