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말하다 - 폴오스터와의 대화
폴 오스터 지음,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심혜경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폴 오스터와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의 주요 작품들을 거의 다 소개하는 인터뷰 모음집이다. 그런데 왜 <글쓰기를 말하다>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이유는 이 책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질문이 폴 오스터의 작업 방식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고, 시작하고, 글을 쓰고, 수정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 지에 대해서 읽다 보면 '인터뷰'라는 형식 자체보다는 글쓰기, 작법에 관한 여타의 실용서보다도 훨씬 더 내용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새 책 집필에 들어가면 매일 아침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에 일어나 오렌지 주스 한 잔, 홍차 한 잔을 마시며 45분가량 뉴욕 타임스를 읽고는 집을 나선다. 도보로 몇 분 뒤에 마련한 작업실인 조그만 아파트로 가서 매일매일 작업을 대 여섯 시까지 계속 한다. 항상 초고는 모눈 종이 공책에 손으로 글을 써서 작성하는데, 더는 손 볼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여러 번 수정 작업을 거친 후에 최종 원고에 이르러서야 타이핑 작업을 한다. 그의 작품 중에 <빵 굽는 타자기>를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초보 작가 시절의 그에게 글쓰기는 '생존의 문제'였다. 번역과 서평 쓰는 일을 하고, 뉴욕 타임스 파리 지국에서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전화 교환대 자리를 지키는 일로 근근히 살아갈 때조차도 그는 글쓰기에 전념하고자 했었다. 당시에 한 인터뷰에서 느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야 하는데, 생각이 손보다 빨라 답답했었다는 얘기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글쓰기는 나에게 육체적인 일입니다. 내게는 단어들이 늘 정신이 아니라 육체에서 나온다고 느껴지거든요. 나는 손으로 씁니다. 그리고 펜은 종이 위에 글자들을 새겨 넣습니다. 나는 글씨들이 써지는 소리마저도 들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산문을 쓸 때 기울이는 노력은 머릿속에 떠도는 음악을 잡아 문장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음악을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글로 옮기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쓰고, 또 쓰고, 그리고 고쳐 써야죠. 음악은 물리적인 힘을 필요로 합니다. 책을 쓰고 읽는 것은 몸으로 하는 일이지요.

 

그의 작업 습관이 보여주듯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며, 규칙적이고 고집스레 지켜나가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글쓰기란 시간과 체력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 이다. 일단 엉덩이를 붙이고, 정해놓은 시간에 적합한 장소에 앉아서, 정해진 분량을 써야 하는 인내가 기본이니까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외로운 일이다. 폴 오스터 또한 누구에게도 글쓰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엄청난 고독의 경지를 사랑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으며, 금전적인 문제는 물론 유명세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평생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하게 될 수도 있다고. 글을 쓰는 일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모든 것을 다 소진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비로소 작가가 되는 게 아닐까.

 

25년 동안 오스터가 여러 잡지와 한 인터뷰를 모은 이 책에서 그는 왜 글을 쓰는지 자신의 문학관과 창작 과정, 작업 방식 등을 들려준다. 그는 데뷔 전에 프리랜서 서평가, 번역가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한 이력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가 번역을 시작한 계기이다. 대학에 다닐 때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보들레르, 랭보 등의 다양한 시를 읽었는데 외국어로 된 작품이라 그런지 제대로 이해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로 옮겨 보려고 애를 쓰다 보니 작품의 의미가 파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번역 작업을 해보겠다.고 시작했던 게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시를 좀더 잘 이해시키려는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번역이 매우 유용한 훈련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번역은 글쓰기의 기본을 익히게 해줍니다. 단어들과 친숙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죠.> 그러면서 자신보다 확실히 기량이 뛰어난 사람들의 작품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고, 전보다 더 진지한 태도로 집중해서 읽게 된다는 것이다. <젋은 시인들은 릴케가 소네트를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 더 많이 알려면 릴케의 소네트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보다 그것을 번역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 이 정도면 이 책이 단순한 인터뷰 모음집이 아니라 글쓰기에 얼마나 유용한 팁들을 소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생각에는 어떤 사람들이 위대한 스토리텔러들인가요?

폴 오스터  우리가 아직도 읽고 있는 동화들을 지은 무명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라비안나이트, 유럽전래동화 저자들 말입니다. 인간이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구전동화들이죠. 이 작품들 모두가 나에게는 끊이지 않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폴 오스터는 스스로를 소설가보다는 스토리텔러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고 밝힌다. <나는 이야기가 영혼의 일용할 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없으면 못 삽니다. 두 살부터 죽을 때까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가죠.> 라고 말이다. 그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 또한 아내가 여덟 살이 되는 딸아이를 위해 사준 책 두 권이라고 한다. 바로 이디시어로 된 전래동화와 프랑스 전래동화인데, 딸아이가 읽기 전에 그가 먼저 읽고 있는 중이라고. 글쓰기 외에 다른 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습관, 생활 태도, 영화 작업 뒷 얘기까지 모든 것이 작가의 삶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은 이들이라도 오로지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폴 오스터의 작품을 거의 대부분 읽었거나, 한 권이라도 읽었던 이들이라면 작품 분석까지 해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책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글을 써보기 전에 뭔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종 글쓰기, 작법에 관한 실용서들, 유명 소설가의 작법서는 항상 스테디셀러가 된다. 하지만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 머리로만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몸이 움직이면 머리는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 우선 하루에 단 몇 자라도,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 당신이 작가가 되고 싶든, 혹은 그저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든 간에 반드시 글을 쓰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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