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선술집에서 탱고벨트에 있는 나이트클럽, 평범하고 조용한 가정집, 카페에 이르기까지 수천 곡의 재즈 음악이 흘러 넘쳤다.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도구란 도구는 모두 동원되어 온 도시가 재즈로 뒤덮인 것이다. 밴드가 없는 곳에는 빅터 축음기, 전축, 그리고 노래를 자동으로 연주하는 피아노가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취미로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 오랫동안 쓰지 않은 악기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술김에 몇 음이라도 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함께 어울려 연주했다. 마치 한 영혼이 도시에 있는 모든 악기를 사로잡아 마법을 걸어서 노래로 퍼져 나오게 한 듯. 사람들은 술에 취해 있었고, 음악에 홀려 비틀거리며 돌아 다녔지만, 전혀 축제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체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19년 미국 뉴올리언스, 일명 도끼 살인마라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온다. 누구도 날 본 적 없으니, 자신은 앞으로도 결코 잡히지 않을 거라고,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지옥불에서 온 귀신이자 악마라고. 그러면서 일종의 경고를 한다. 다음 주 화요일 밤에 다시 한 번 살육의 밤이 펼쳐 질거라고. 단, 자신은 재즈 음악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이 말한 시간에 재즈 밴드가 연주 중이면 그들은 모두 무사할 것이고, 연주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끼 세례를 받을 거라고 말이다. 이 사건은 실제로 벌어졌던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실제로 도끼 살인마는 검거되지 않았지만, 마치 이 소설 속 범인이 진범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리얼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물론 너희 뉴올리언스 사람들은 나를 아주 끔찍한 살인마라고 생각하지. 사실이 그래.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난 더 극악해질 수도 있어. 매일 밤 뉴올리언스를 찾아갈 수도 있단 말이지. 유망한 사람들을 수천 명도 맘껏 죽일 수 있어! 난 죽음의 사자와 막역한 사이니까!
이제 지상의 시간으로 다음 주 화요일 밤, 정확히 12시 15분에 뉴올리언스를 지나갈 거야. 내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 너희에게 자그마한 제안을 하지. 잘 봐.
특히나 이 작품이 압도적인 점은, 바로 범인 추적의 플롯이 여타의 범죄 소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도끼 살인마를 쫓는 세 명의 각기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플롯이 전개되는데, 각자 전혀 다른 용의자를 추적하고, 그에 따라 다른 방향의 실마리를 찾아, 완전히 판이한 그림을 완성하는데, 결국은 그것이 교묘하게 겹치면서 클라이맥스에 만나게 된다. 이들 세 명이 도끼 살인마를 쫓게 되는 이유도 다르거니와, 각각 캐릭터의 성격도, 배경도 다른 것은 그럴 수 있지만, 이렇게나 사건 수사의 내용이 다를 수 있을 까 싶을 정도로 개별적인 에피소드로 흘러가는 작품은 처음이라 굉장히 흥미로웠다. 덕분에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툼한 분량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가버린다.
"이봐, 마이클. 도끼 살인마를 절대 찾을 수 없을 거야. 자넨 유령을 쫓고 있거든."
자, 그럼 도끼 살인마를 쫓는 세 명의 인물들을 살펴보자. 우선 도끼 살인마 사건의 공식적인 담당인 마이클 탤벗 형사. 그는 경찰서 내에서 비호감, 공공의 적이자 일종의 왕따이다. 이유는 5년전 자신의 사수였던 루카를 밀고 했기 때문이다. 부패 혐의 재판에서 그에게 반대 증언을 한 뒤로, 경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증오하고 불신했다. 하지만 사실 그 사건은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부의 계획이기도 했다. 그가 초짜 형사였던,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루카와 그 일당들을 잡기 위해, 그의 신임을 얻어서 그 단체의 일원이 되고, 행적을 기록하라는 지시를 받은 거였다. 이미 지방 검사 사무실에서 심의관 일당이 그를 루카가 속한 범죄 조직에 침투시킬 준비가 치밀하게 되어 있었던 터라, 그에겐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거다. 게다가 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흑인 아내였다. 당시는 흑인과 백인의 결혼이 불법이었고 유죄였기에, 대외적으로는 그의 가정부로 살고 있는 그의 아내에 대해서는 공공연히 동료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바늘 방석 같은 경찰서 내에서 동료들의 외면에도 꿋꿋하게 수사를 이끌고 있지만, 사건에 대한 단서는 희박하다. 그 와중에 그의 밀고로 수감되었던 루카가 모범수로 가석방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다시 웃었다. 마이클은 루카에게 전에 그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말할 수 없었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루카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루카 단드레아는 자신의 후배였던 마이클의 밀고로 감방에서 6년이나 썩었지만, 사실 그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열네 살에 뉴올리언스에 왔고, 부모님이 두 분 다 유행성 콜레라로 돌아가시자, 빈털터리로 혼자가 된 그는 마트랑가 일가의 심부름꾼 일을 하게 된다. 열여덟 이 되던 해에 경찰이 되라는 권유를 받았고, 합법적으로 범죄를 해결하는 동시에 카를로와 마트랑가 집안 사람들을 도왔다. 정보를 유출하고 증거를 인멸해서. 결국 그는 부패 경찰로 낙인 찍히고 감옥으로 갔고, 수감되어 있는 동안 자신의 전 재산을 맡겼던 은행이 경찰의 단속에 걸리는 바람에 빈털터리인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스 카를로를 찾아가고, 카를로는 그에게 도끼 살인마를 잡으라고 한다. 살인마가 자신들의 조직을 사람들에게 나약하게 보이게 하고 있으니, 잡아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거다.
아이다는 전차에 오르며 이것이 더 이상 단순히 수사하고 싶은 사건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 그녀는 수사에 몰두해서 모발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끼 살인마를 쫓는 이는 바로 핑커턴 탐정 사무소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는 아이다 데이비스이다. 그녀는 신문에서 도끼 살인마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사건 조사에 뛰어 들게 된다. 몇 년 전에한 간호사가 이번에 살해된 부분에 대한 정보를 팔려고 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신문에서 무고한 희생자라고 말하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애초에 그녀는 허구한 날 편지에 답장하고 서류 정리를 하거나 심부름만 하는데, 현장 근무를 하고 싶어하는 열혈 탐정 지망생이기도 했다. 평소에 코난 도일이 쓴 책을 읽거나 책에 쓰인 말을 인용했고, 사실 경찰이 되고 싶었으나 그녀는 여자였고, 거기다 흑인 혼혈이었기에 그나마 탐정 사무소에 일을 얻은 거였다. 똑같이 단조로운 일만 하느라 갇혀 지내는 지루하기 짝이 없고, 질식할 것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그녀는 독자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자신의 소꿉 친구이자 조력자인 재즈 음악가 루이스와 함께.
두 사람은 하염없이 황량한 풍경을 바라봤다. 곧 무너질 듯한 판잣집들, 흔들리는 나무와 호수, 우둔하게 땅에 내리꽂는 비. 질식할 것처럼 암울한 풍경에 루카가 움츠러들 법도 했다. 벼랑 끝에 서 본 사람만이 혼돈 그 너머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루카는 그 안에서 어떤 아름다움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고 강어귀의 황량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 암흑의 세계가 삶이 시작되는 곳임을 감지했다.
순간 한 이웃이 만돌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이중주가 되어 빗속에서 경쾌한 스타카토처럼 들렸다. 루카는 도끼 살인마의 편지 때문에 연주를 해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시작한 건지 궁금했다. 음악은 루카가 전에 이웃이 연주하는 것을 들었을 때보다 슬프지는 않았다. 마치 만돌린 연주자가 파트너를 찾아서 곡도 덜 외로운 것처럼 들렸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악명을 떨쳤던 연쇄 살인범 '도끼 살인마'는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여섯 명을 도끼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전후 불안정한 시기와 연쇄 살인으로 공포에 사로잡혔고, 거기다 범인이 살인을 예고하는 편지를 신문사에 보내면서 그 혼란은 더해갔다. 아직까지도 범인이 잡히지 않아 세계적인 미제 살인 사건 중 하나로 남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만은 완벽하게 완결된 서사와 탄탄한 플롯으로 마무리된다. 특히나 이 작품이 매혹적인 것은 20세기 초 뉴올리언스의 시대상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감나게 묘사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분명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인데도, 잔인하고 끔찍한 미스터리의 느낌보다는 일종의 대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묵직하고 진중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만든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떠올랐다고 하면 오버일까. 단순히 뉴올리언스가 이탈리아 갱단들이 초기에 악명을 떨치던 지역의 한 곳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금주법 시행을 앞둔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혼혈과 흑인의 비율이 많았던 뉴올리언스 특유의 지역적 특성이 너무도 드라마틱하게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성 강한 세 명의 캐릭터 외에도, 아이다의 친구인 루이스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거쳐 음악을 하게 된 재즈 음악가 루이 암스트롱이 모델이라 더욱 흥미롭고, 마이클과 함께 수사에 참여하게 된 10대 후반의 경찰 후보생 케리의 역할 또한 루카와 마이클 관계의 축소판 같아 가슴을 울리는 지점들이 종종 등장한다. 과거와 현재가 상징적으로 연결되고, 실재와 허구와 교묘하게 녹아 들면서 구축된 서사는 어마어마한 무게 감을 만들어낸다.
아, 난 이렇게 뭉클하고,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범죄 소설로 2016년을 시작하는구나 싶어, 올 한 해가 어쩐지 매우 기대가 된다. 게다가 이 작품은 레이 셀레스틴의 '무려' 데뷔작이다. 현재 이 작품의 후속 작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작품의 마지막에 경찰을 그만두고 시카고에서 탐정 일을 시작한 마이클과 뉴올리언스를 떠나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다의 만남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너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