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현석 셰프가 꼭 만화 캐릭터 같다고 생각했었다. 셰프를 주인공으로 한 순정 만화가 있다면 그가 주인공으로 너무도 잘 어울릴 만한 조건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우선 우월한 키와 탄탄한 몸매, 유학파가 많은 요리 계에서 고졸 셰프라는 출신, 호텔 주방장이셨던 아버지를 비롯해서 어머니와 형까지 모두 요리사인 집안, 하지만 넉넉하진 못했던 형편, 천 가지가 넘는 새 메뉴를 개발한 크레이지 셰프라는 별명, 입만 열면 자기 자랑인 허세 캐릭터, 그러나 그 뒤에 숨어 있는 수줍은 미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연약한 내면까지. 이건 그냥 만화 캐릭터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그가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허세 캐릭터로 사랑을 받기 전부터 여타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그를 보아 왔는데, 항상 느꼈던 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크리에이티브한 그의 음식들이 놀랍다는 거였다. 그렇게 특별한 그의 요리처럼, 이번에 그가 낸 책도 보통 다른 셰프들이 내곤 하는 레시피 북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진과 요리의 만남이라니! 그것도 조선희 작가가 찍는 그의 요리라니, 책을 읽기도 전에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쓰디쓴 절망의 순간, 음식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 너무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요리하고 싶지도, 무언가 입에 대고 싶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음식은 맛보다도 그 정성 때문에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몇 해전 드라마 <파스타>에서 등장했던 매력적인 셰프. 주방에서는 까칠하지만 여자친구에게는 너그러운 멋진 남자 이선균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때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사람들에게 생기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연예인을 능가하는 외모와 입담의 셰프들이 방송을 통해서 캐릭터화되면서부터 그것은 구체화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그들이 일하는 주방이 전쟁터라는 것은 우리 일반인들이 실감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어떤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최현석 셰프가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정말 단어 그대로 그들이 주방에서 '매일같이 전투를 치르고 있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무시무시한 전쟁터였는데, 그 선봉에 선 최현석 셰프야 말로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던 그 까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버럭 셰프가 아닌가. 아무래도 실제 드라마의 모델이었던 샘킴 셰프의 성격보다는 최현석 셰프가 더 드라마 속 매력만점의 셰프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요리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꽤 많은 요리 레시피북과 요리 에세이 등을 읽었지만, 전문 사진 작가가 촬영한 음식 사진은 본 적이 없기에, 이 책의 비주얼은 그야말로 눈이 호강하는 수준이었다. 17가지의 레시피가 실려 있는데, 각 장마다 요리하기 전 원 재료의 사진과 완성된 음식의 사진이 있다. 아, 그런데 조선희 작가의 사진은 그야말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마치 그림 같은 비주얼이다.
대체 누가 갈치를 이렇게 멋지게 찍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처음 이미지를 보고는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이 아름다운 피조물은 뭐지? 아, 갈치도 이렇게 감각적으로 화보를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이렇게 멋진 재료로 완성된 음식은 바로 이것이다.

이 음식은 작년에 올리브쇼를 통해서 보았을 때부터 정말 먹어보고 싶은 요리였다. 최현석 셰프의 오리는 이렇게 눈으로 먼저 먹는 음식이다. 플레이팅도 예쁘거니와 갈치 순살과 베이컨의 조합이 생소하면서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시 방송에서는 샤프론이 아니라 좀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치자로 색을 냈었는데, 한번쯤은 따라 해보고 싶은 요리였다. 물론 생선 뼈 옆을 오려내듯 갈치를 살만 발라낼 자신이 없어서 아직도 도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나는 자주 패한다. 특히 홍석천 씨와의 대결에서는 늘 고배를 맛본다. 석천이 형은 타고난 사업가여서인지 게스트의 취향과 입맛에 맞춰 요리할 줄 안다. 반면 나는 요리사라는 자존심에 퀄리티와 요리 기술 등을 게스트에게 강요한다. 그렇게 몇 번의 패배를 겪으며 좋은 요리의 요건이 무조건 비싼 식 재료나 요리 기술 등이 다가 아님을 깨달았다. 음식의 내공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요리란 내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취향이며 감성적인 부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현석 셰프와 조선희 작가는 전혀 친분이 없는 상태로, 이 책을 위해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넉 달 동안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냈고, 맛에 대한 주제를 통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최현석 셰프가 그 추억을 연상시키는 요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완성된 음식을 조선희 작가가 카메라로 담아내고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각자의 경험 속에 녹아난 요리와 맛의 추억에 대한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게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이들은 친구 같은 사이가 되어 갔다고 하는데, 성격도, 취향도, 일하는 분야도 너무 다른 그들이었기에 그 시간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 일을 이십 년 넘게 해 왔고, 오로지 그것밖에 없던 이십 대를 보낸 열정을 품고 살아 왔다는 것 밖에 없었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완전히 다른 전부를 다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한 교집합이 아닌가.

이 책에 실린 레시피들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조선희 작가의 배추떡볶이와 최현석 셰프의 두부김치를 가장한 토마토카프레제 샐러드이다. 우선 조선희 작가의 배추떡볶이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레시피라 생소하면서도 궁금한 맛이 아닐 수 없다. 배추를 큼직하게 잘라 볶다가 고추장 한 숟가락, 간장, 물 조금 넣고 끓이면 배추에서 나온 달달한 물과 함께 최고의 양념이 된다고 한다. 어느 정도 숨이 죽으면 거기에 떡과 오뎅, 따로 구워 놓은 만두를 넣어서 조금만 더 끓이면 된다는, 완전 초간단 레시피의 떡볶이이다. 지친 영혼을 위로하며 먹는 최고의 음식이라고 하는데, 그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배추떡볶이는 내게 친구다, 아니 추억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그 행위가 내게는 친구가 된다'라고. 이건 정말 누구라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라 부담 없이 만들어 먹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최현석 세프는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보는 것과 맛은 다르다'는 것을 요리로 직접 보여준다. 일명 '페이크 요리'라는 것인데 비주얼과는 전혀 다른 맛과 질감을 주는 요리를 말한다고 한다. 첫눈에 보기엔 영락없는 한식인데 먹어보니 이탈리안 요리라든가 하는 식이다. 선입견이 깨질 때의 충격과 즐거움을 요리에 접목한 것인데, 그가 팔 년 전 개발한 토마토카프레제 샐러드는 토마토 모짜렐라 샐러드의 일종인데, 정말 모양이 영락없는 두부김치이다. 이런 요리를 먹으면 맛은 기본이고 재미와 유쾌함까지 더해줄 것 같다. 엔다이브를 소금에 절여 말린 토마토와 배, 바질을 섞어 소스를 만들고 배추김치 모양으로 플레이팅 한 후, 모짜렐라 덩어리를 두부처럼 잘라 곁들이는 이 요리는 남편에게 만들어주고 싶다. 아마도 너무도 당연하게 두부 김치라 생각하고는 한입 먹을 텐데, 깜짝 놀랄 모습이 눈에 그려져 요리를 만들면서도, 먹는 걸 보면서도 즐거울 것 같다.
그 외에도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추억을 하며 먹는 차가운 명란크림파스타, 아주 특별한 날을 위한 초콜릿을 올린 푸아그라 요리, 속이 갑갑할 때 먹고 싶은 녹차굴비소면, 내 안의 집착과 후회를 버리고 싶을 때 먹는 문어파스타 등 흔하게 요리 책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하고, 개성 강한 요리 레시피들이 가득 실려 있다. 특이한 건 요리 전 재료와 완성 사진만 있고, 요리 과정에 대한 사진이 없어 마치 이 요리들이 마법같이 느껴진 다는 것. 거기다 최현석 셰프와 조선희 작가의 추억까지 더하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울 푸드가 아닌가 싶게 느껴진다.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진짜 소울 푸드가 궁금하다면, 지금 이들의 함께한 시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