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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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일년과 같다면 어떻게 될까. 불과 닷새를 살았을 뿐인데, 실제 시간은 5년이 흘렀다면? 게다가 이 주인공이 겪는 시간 여행은 한 번 시작하게 되면, 선택의 여지 없이 24번의 시간 여행을 해야만 하는 강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고작 24일을 살았는데, 세상의 시간은 무려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추억을 공유했던지 간에 24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다는 듯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만다. 24년 동안 만난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했던 모든 일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다는 뜻이다. 이 무슨 황당하고 허무한 시간 여행이란 말인가.

시간 여행은 꽤 오랫 동안, 여러 작가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의 아이템이지만, 이 작품의 설정은 꽤나 무시무시하다. 24년이란 젊은이가 중년이 되고, 중년이 노인이 되기에 무리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긴 시간이니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한번 발을 들여놓는다면, 이 시간 여행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돌이킬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이건 뭐 말 그대로 '저주'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암튼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이상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 우리의 주인공은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겪어야 하는 24년이라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난 뒤 그에게 남은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과연 시간 여행의 저주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제 네가 알고 싶어 하던 진실을 다 말했단다. 금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넌 지옥 같은 미로 속에 빠져든 거야. 24일 동안 네 인생의 24년을 살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내가 사는 하루가 1년이라는 말씀이세요?"

" 24년을 시간의 미로 속에서 보내게 된 거야."

나는 머릿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의 격랑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벌써 국내에서 출간되는 기욤 뮈소의 작품이 열두 번째인데, 어쩌다 보니 그 동안 그의 작품들을 모두 읽었다. 재미있는 건 항상 전작과 비슷비슷한 느낌인데, 매번 페이지에서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되고, 꼭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선 매번 소설 속 인물이 페이지 바깥으로 걸어 나오거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열 개의 알약이 존재한다거나, 현실에서 만난 두 남녀가 실제로는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살고 있었다거나, 타인의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거나 판타지적인 요소와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호기심을 자아내곤 했다. 하지만 그 어처구니 없게 비현실적인 소재를 너무도 현실적인 인물들의 일상과 엮어 놓는 실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있을 법하다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막판의 반전 또한 기욤 뮈소 작품의 백미인데,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한 설정과 상황들을 결국은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고, 인물들을 현실의 땅에 발 붙이도록 해주는 것 또한 바로 이 반전의 역할이다. 반전의 역할이 사실은 이런 거였어. 몰랐지? 라는 식의 깜짝 쇼가 아니라, , 이래서 그랬던 거였구나. 식의 납득과 안도를 주는 장치인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새벽에 도망치듯 사라진 다음 내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이유가 일 년에 딱 하루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리자가 전혀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다니까. 난 당신을 어제 봤는데 일 년이 지나 있는 식이지."

"그럼 당신은 연중 24시간 이외에는 어디에 머물고 있지?"

"연중 24시간을 빼면 나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아서는 아버지로부터 등대를 유산으로 받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는 조건으로 지하실 벽면 안쪽에 벽돌로 막혀 있는 철제 문을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24방위 바람의 등대와 오래 전 실종된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잔뜩 그의 호기심을 부추긴다. 지난 30년간 자신은 풀지 못했던 등대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과제를 아서에게 남겨준 것이다. 아서는 아버지가 금단의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자 자신에게 그 일을 떠맡긴 거라고 생각한 그는, 오래 전 아버지가 벽돌로 막아둔 철제 문을 열어 보기로 한다. 그곳은 너비가 10평방미터쯤 되고 벽면이 다듬어지지 않은 석재로 이루어진 방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빈 공간이었지만, 잠시 후 갑자기 강력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다 그의 등 뒤로 문이 저절로 닫히고 만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깨어난 곳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성당 안, 그는 팬티 차림에 진흙투성이 샌들을 신고 있는 상태로 경찰에게 잡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다. 보스턴에 있던 그가 도대체 어떻게 갑자기, 뉴욕에 있는 성당으로 오게 된 걸까. 거기다 신문 기사에 표기된 날짜는 무려 1년이 지난 시점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에게 벌어진 일을 알게 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사실 돌아가시지 않았으며, 현재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날 때마다, 무려 일년씩 지난 시간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그는 이런 일을 먼저 겪었던 할아버지를 통해서 등대의 저주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지만, 시간 여행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그리고 시간 여행을 통해서 만나게 된 여인 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가 강제로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리자에게 그는 오직 1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남자일 뿐이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1년에 단 하루만 함께 할 수 있는 상대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아서는 그녀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루가 지나면 그녀의 곁에서 사라져야 하는 남자, 그러니 미래가 없는 남자, 매일매일 하루를 살 때마다 그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남자.. 아서의 시간 여행은 그렇게 24번을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현재가 더 중요한 사람도 있고, 미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명백하게 전자인데,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재미있게도 내 남편은 완벽하게 후자인데, 그는 행복해질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고생쯤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가치관이지만, 기욤 뮈소의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언컨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내자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느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내팽개치지 말자는 것.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모든 걱정과 우려는 시간 낭비라는 것. 매 순간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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