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 모든 판단의 순간에 가장 나답게 기준을 세우는 철학
히라오 마사히로 지음, 최지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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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말하자면 도덕과 윤리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눈에도 안 보이고, 있는 것이 당연하며, 딱히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린 바로 죽을 것입니다. 도덕이 없으면 바로 죽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반대로 지금 내가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면 이미 우리 주변에는 도덕, 윤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p.31~32


'이 버튼을 누르면 1억 엔을 드립니다. 버튼을 누르면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죽습니다.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치자. 버튼을 누르고 싶은 마음도 들긴 하는데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1억 엔이나 준다니 고민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윤리학이 문제로 삼는 것은 누르냐 안 누르냐가 아니라 '인간이 그런 짓을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이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완전히 다르다. '누르고 싶은지'는 마음, 감정, 욕구와 같은 심리적인 원인의 문제지만, '눌러도 되는지'는 도덕, 윤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윤리 철학의 핵심 원리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독자들이 직접 생각하고 선택해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윤리와 도덕이 나와 아주 먼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책이라 물 흐르듯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저자는 윤리의 영역을 사회의 정의, 개인의 자유, 타인과의 사랑이라는 세 가지로 나눠서 살펴본다.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사회의 작동 원리로서의 정의, 의무와 자율을 통해 완성되는 궁극적 해방인 개인의 자유, 나의 자유를 완성하는 타인과의 독특한 관계를 의미하는 사랑, 이렇게 세 가지 기둥이 세상 모든 사람을 철학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성실하고 고지식한 사람일수록 정의는 없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말했습니다. <데스노트>의 주인공 야가미도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가 되었거나 범인이 도망쳐버린 경우 등이죠... 우리는 최대한 정확하게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을 모두 처벌하는 건 불가능한 이상에 가깝고, 우리도 어쩌다 우연히 죄를 범하거나 연루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실 크고 작은 것을 모두 포함해 단 한 번도 위법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p.281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윤리학이란 무엇인가. 윤리학은 인간이 하는 행동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판단, 즉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여러 문제와 규범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윤리는 인간이 하는 일, 행위에서 생기는 선악의 규범을 뜻한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선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윤리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따로 생각한 적이 없고 의식한 적이 없었을 뿐, 우리는 항상 무언가의 규범을 따르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무엇을 윤리, 도덕으로 생각하는지는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 윤리학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 두 가지 질문이 있다. 만약 당신이 어느 시의 시장인데, 한 건설업자가 찾아와 이번에 하게 될 중요한 건축 공사의 시공사로 자신의 회사를 지명해달라며 답례로 1억 엔을 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만약 당신이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위중한 병에 걸려 아이도 낳을 수 없고,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한 답변을 고를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고르든 제대로 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학에서 중요한 것은 답을 도출하는 것뿐 아니라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현실 속 일상부터 픽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윤리 및 도덕에 관해서는 설명하기 힘든 일이 많이 있다. 이렇듯 이 책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으로 풀어내고 있어 윤리학 전반을 쉽게 아우르면서도,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으로 보여주고 있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더 나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으며, 가장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윤리 철학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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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 1~10 세트 - 전10권 - 클래식 블랙 리미티드 에디션 캐드펠 수사 시리즈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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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죽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네." 마크 수사를 지켜보던 캐드펠이 말했다. "작년 여름 마을에서 아흔다섯 명이 죽었지.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그저 편을 잘못 들었다는 이유로 죽은 게야. 죽음은 전쟁 중엔 죄 없는 여인들에게 떨어지고, 평화로울 땐 악인에 의해 저질러지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선한 일을 하며 살아온 노인들에게, 잔인하고 무분별하게 떨어진다네. 하지만 저세상에는 균형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흔들려선 안 돼. 자네가 보는 건 완벽한 전체에서 부서져 나온 조각에 불과하네."                - 4권, <성 베드로 축일> 중에서, p.257~258


18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완성된 엘리스 피터스의 역사추리소설 '캐드펠 수사 시리즈' 총 21권 중에 먼저 1~5권이 나오고, 이번에 6~10권이 나왔다. 10권의 책을 한 꺼번에 보관할 수 있는 한정판 박스세트로도 구성되어 있는데, 낱권으로 구매하는 것도 ‘클래식 블랙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구매하는 것이 20%된 가격이라 구매를 미루었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특히나 이 시리즈는 책 등이 예쁘게 디자인되어 있어 박스 세트로 담아 놓으면 정말 근사하다. 블랙 컬러의 케이스에 실버 컬러의 문구만 심플하게 새겨져 있고, 측면을 비스듬히 깎아 더욱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박스 커버다. 


원작의 시리즈 완간 30년을 기념해 전면 개정된 버전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 입고 출간되지 않았더라면, 미처 만나지 못하고 지나갔을 텐데 리커버 버전이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정말 시공간을 뛰어 넘어 여전히 심금을 울리는 보물 같은 작품들이니 말이다. 




엘리스 피터스는 움베르트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작가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12세기 수도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장미의 이름>에 비견되기도 한다. 직접 만나보니 움베르트 에코보다는 루이즈 페니의 중세 버전같은 느낌이 더 들었지만 말이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는 십자군으로 전쟁에 출정했었고, 바다에 나가서도 10년 동안이나 해적선을 격파했던 거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수도원에 귀의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중이고, 관심사는 오로지 식물의 탄생과 성장과 번식에 관한 것뿐이었다. 허브밭을 가꾸며 신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주변에 사건이 일어나고, 그가 '탐정'이 되어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이 시리즈의 주요 서사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치열한 전쟁터에서 보냈지만, 지금은 허브밭을 가꾸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캐드펠 수사. 그는 베네딕토회의 계율과 아무런 마찰도 빚어내지 않되 자신의 욕구에도 멋지게 들어맞는 일상의 규율을 마련해 충실히 지켜오고 있었다. 늘 아침기도가 시작되기 전 허브밭에서 두어 시간 밭일을 하고 대회의실에 가면 가장 어두컴컴한 구석의 기둥 뒤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것이 일종의 루틴인데, 이렇게 인간적인 면모가 가득한 캐릭터라 더욱 공감되고 매력적이다. 캐드펠은 참전 군인으로 살았던 거친 과거를 묻어둔 채 수도원에 귀의해 평화롭게 살아가는 친절한 노수사로 등장하는데,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그의 과거 속 인물이 등장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씩 비밀이 드러나면서 재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한 연중의 농사, 철이면 철마다 해야 하는 쟁기질과 써레질,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일도 계속되어야 하는 법이었다. 영혼의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이곳 수도원과 교회의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캐드펠 수사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고작 인간에 불과한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벌일 수 있겠는가.          - 6권, <얼음 속의 여인> 중에서,  p.17


이 시리즈에는 매번 끔찍한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작품마다 한 쌍 이상의 연인을 통해 사랑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보여주었다. 격렬한 사랑, 풋풋한 사랑, 아낌없이 퍼주는 사랑, 멀리서 지켜주는 사랑, 이별 후 재가 되어버린 사랑, 죽음을 앞둔 불꽃같은 사랑 등... 사랑의 온도도 다르고, 배경도, 방식도 제각각이다. 인간은 아주 사소한 일로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앨리스 피터스는 이러한 삶에 대한 아이러니를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추리소설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 주었다. 


매 작품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대단히 생동감있고, 매력적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어 준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각 권은 독립된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데, 주요 서사 외에 차곡차곡 쌓이는 배경과 인물들이 빚어내는 하모니가 정말 조화롭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도, 원하는 이야기만 골라서 읽어도 훌륭하다. 드라마틱한 서사를 담백하게 풀어내는 방식, 군더더기 없는 분량, 다양한 인물 군상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쓰인 통찰력있는 문장까지... 추천해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은 시리즈이다. 대부분의 시리즈물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 역시 이야기가 거듭되면서 캐릭터의 매력이 더해지면서 깊이 있는 서사를 보여주고,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점이 줄 수 있는 차별화된 매력 또한 다음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더해주는 마성의 시리즈로 완성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나왔던 1~5권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번 6권에서는 유리처럼 반짝이는 얼음 속에서, 얼음처럼 찬 시체가 되어 발견된 소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귀족 가문의 남매와 그들을 안내하던 어린 수녀가 사라졌고, 캐드펠 수사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속에서 사라진 이들을 찾다가 피살당한 ‘얼음 속의 여인’을 발견하게 된다. 차디차게 죽어 있는 소녀에게 얼음이 관이 되었고, 그녀의 육신은 살인을 고발하기 위해 죽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체 어린 소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계절적 배경이 지금과 딱 맞아 떨어져서 서늘한 겨울의 풍경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캐드펠 수사는 얼음 속에 갇힌 시신이 단순 강도 살인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번 작품 역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의 의무감과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데, 덕분에 살인 사건은 한층 더 복잡하게 뒤얽히며 미스터리와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작가가 살아온 세월만큼의 깊은 통찰력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온 연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총 21권이나 되는 긴 시리즈라서 좋은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도 내가 읽지 않은 작품들이 많이 남았다는 것, 그래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껴가며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매혹적인 중세 역사 미스터리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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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 기후변화, 금융위기, 인간을 이해하는 불확실성의 과학
팀 파머 지음, 박병철 옮김 / 디플롯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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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은 인생의 본질이다. 단어 자체의 어감은 그리 달갑지 않지만 우리의 삶은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다음 주에 자동차 사고를 당할지, 복권 1등에 당첨되어 팔자를 고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멀리 내다볼수록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몇 년 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또 찾아와서 내 투자금이 몽땅 날아가는 건 아닐까? 아니면 전 세계에 팬데믹이 닥치거나,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거나,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진 않을까? 일일이 따져보면 확실한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p.26


우리네 인생은 꽤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세계적으로 무슨 변화가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불확실한 것은 우리의 삶만이 아니라 자연의 기본 단위인 입자의 기본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만약 입자의 불확실성이 사라진다면 입자는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까?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론물리학자이자 기상학자인 팀 파머는 불확실한 세계를 '예측'하고 '이해'하는 불확실성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날씨 예측은 슈퍼컴퓨터와 인공 위성으로 수집한 기상 데이터를 통해 예보를 보도한다. 그런데 1987년 10월 16일, 기상 예보가 빗나가면서 그 예보를 믿었던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거의 300년 만에 발생한 초대형 허리케인이 잉글랜드 남부를 같아해 스물두 명이 사망하고 1500만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는 등 총 30억 달러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기상청은 어떻게 수백 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것은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나비효과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또한 2008년에 세계 금융시장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붕괴되었을 때, 경제학자들 역시 왜 그와 같은 일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나비 효과가 드물게 일어나는 이유부터 우리의 실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전염병의 확산 패턴과 경제 상황, 그리고 각종 갈등을 예측하는 앙상블 기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레카를 외쳤던 순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창의력을 발휘하여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두 모드 사이에서 이루어진 미묘한 상호작용 덕분이었다. 전력집중 모드에서 발휘되는 창의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결정적인 유레카의 순간은 주로 저전력 모드에서 찾아오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모드에서 뇌가 잡음에 민감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각 결정의 장단점을 빠짐없이 나열한 후 며칠 동안 그것에 대해 심사숙고 해야 한다. 이것이 유레카의 순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개개의 결정으로부터 초래되는 모든 가능한 미래로 앙상블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p.360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날씨 예측은 어떻게 가능해진 걸까? 우리는 미래의 어느 순간까지 예측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경제, 국가 간 충돌, 자연재해 등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것들도 예측할 수 있을까? 저자는 변화무쌍한 기상(날씨)의 모습을 최대 2주까지 확률로 표현할 수 있는 지금의 일기예보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각기 다른 초기 조건으로 내일의 대기 상태를 50번 시뮬레이션했는데 그중 20번 비가 내렸다면, 내일 비가 올 확률은 40퍼센트가 되는 식으로 확률, 통계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은 날씨뿐 아니라 우리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바이러스 감염 경로와 사망자 추이 등을 분석하고, 금융 생태계가 붕괴하는 시점을 예측하고, 전쟁과 같은 국가 간 충돌을 사전에 인지하는 방법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를 증명해낸다. 


물리학과 기상학을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데다 각종 자료와 도표들이 가득해 읽기에 수월한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불확실성의 과학은 철학적이기도, 인문학적이기도 해서 흥미로운 부분이 꽤 많았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양자역학의 수수께끼, 혼돈의 과학에 대한 사회적 해석, 비합리성이나 실패의 징후가 아닌 불확실성의 의미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철학과 과학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물리학과 기상학의 색다른 콜라보(?)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블랙홀을 연구하던 물리학자에서 영국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과학 공무원의 길을 선택한 저자의 이력이 매우 독특한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재 호킹의 연구팀에 합류하라는 제안까지 거절하면서 기상학자가 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불확실한 세계를 예측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지, 저자가 들려주는 불확실성의 과학을 통해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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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요괴 2 : 조마구 -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어린이 부문 우수상 수상작 반려 요괴 2
김영주 지음, 밤코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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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아닌 '반려 요괴'라는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면서도 귀여웠던 작품, 반려요괴 그 두번째 이야기이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주인공이 반려 요괴를 돌보면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것이 주요 서사인데, 1권에서는 주희가 화단 할아버지 대신 수레지기가 되면서 끝이 났었다. 반려 요괴 수레지기는 수레 안에 사는 요괴들을 돌보고 원하는 요괴와 만나게 하는 임무를 하게 된다. 


2권에서는 주희가 본격적으로 요괴들을 돌보는 과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요괴 방을 청소하고, 식성에 맞게 먹이도 채우고, 간지러운 곳도 긁어 주고, 상처 난 곳에 약도 발라주고, 떼쓰는 요괴들을 달래주기도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요괴의 반려를 찾아주는 일을 맡게 된다. 과연 주희는 첫 번째 과제를 잘 해낼 수 있을까.




귀여운 강지처럼 생긴 조마구는 자신의 반려 인간을 찾아 달라고 주희에게 부탁한다. 조마구는 자신의 반려로 화가 많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화를 잘 안 내는 남자애를 찾아 달라고 말한다. 착하고 순한 아이라고 알려졌어야 하고, 나이는 열살, 엄마랑 둘이서 살면 좋겠고, 물건을 집어 던지면 더 좋고, 먹는 걸 좋아해야 한다는 등등 조건이 너무 많았다. 조마구의 말을 들으면서 주희는 생각한다. 저런 조건에 딱 들어맞는 아이를 찾으려면 천 년은 걸릴 것 같다고 말이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 주희는 친구인 해진이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같은 반 친구인 동구를 발견한다. 귀여운 남자가 이상형인 해진이가 두어 달 전부터 관심을 가진 아인데, 한 달 전에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엄마랑 둘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연히 화장실에 갔다가 주희는 동구가 혼자 화를 내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조마구에게 데려가보기로 한다. 




동구를 요괴의 길로 데려가 조마구를 보여주는 주희는 마음에 든다면 조마구를 데려가 함께 살아도 된다고 말해준다. 작고 귀여운 데다 첫눈에 시선을 확 끄는 조마구가 마음에 들었던 동구는 조마구를 집에 데려가기로 한다. 주희는 동구에게 '만약 네가 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야.'라며 주의 사항에 대해 알려주지만, 동구는 조그맣고 순하고 약해 보이는 조마구에게 당할 만큼 자신은 약하지 않다고 생각해 무시한다. 과연 조마구가 찾던 반려 인간이 동구가 맞을까?


귀여고 사랑스럽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조마구는 설화 속에서 형제의 어머니를 해치는 것으로 나오는 존재이다. 혹시 전설처럼 조마구가 동구의 엄마를 잡아먹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요괴는 인간의 화를 먹고 자라서,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마구는 더 이상 품에 쏙 안길 만큼 작지 않았고, 동구에게 엄마의 앞치마를 하고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대체 동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반려 요괴’ 시리즈는 우리 설화 속 인물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이 색다른 재미 요소인데, 이번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소문을 가진 조마구가 등장해 요괴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극에 몰입감을 더해준다. 세상의 어떤 생명체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를 돕고, 도움을 받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동물도, 친구도, 가족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반려'의 의미란 무엇인지, 반려가 된다는 것에는 어떤 책임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 옛이야기와 현대 이야기를 색다르게 조합해 요괴와 인간이 서로의 반려가 되는 따뜻한 판타지 동화가 탄생했다. 100% 어린이의 선택으로 최종 수상작을 결정한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우수상 수상작답게 어린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려 깊은 동화이기도 하다. 엉뚱하고 매력 넘치는 요괴들과 함께 환상적인 반려 요괴들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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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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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일 중요한 요소는 루마니아어에 관해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일본 서점에는 관련 서적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대학에서도 전문적으로 배울 곳이 없었다. 애초에 루마니아어 자체를 아는 사람이 적었다. 같은 로망스어군, 위에서 언급한 두 언어나 프랑스어와 비교하면 지명도가 천지 차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그랬다. 아무도 루마니아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려는 나, 완전 힙해…. 이렇게 나는 루마니아어라는 드넓은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 루마니아어로 시작한 나의 언어 학습은 극에 달했는데, 결과로 말하자면 지금은 완전한 어학 오타쿠다.                 p.58~59


이 책의 원제는 <지바에서 거의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인 내가 한 번도 외국에 가보지 않고 루마니아어 소설가가 된 이야기>이다. 한국어판은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라는 제목에다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런데, 루마니아어라니... 대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희귀 언어를 홀로 독학해서 그 언어로 소설을 써서 발표하는 일이 가능한 걸까. 


이 거짓말같은 이야기가 실화라니 뭔가 비현실적인 농담같았다. 하지만 일본인 히키코모리 루마니아어 소설가는 실존하고 있으며, 이 책에 쓰인 모든 이야기는 진실이라는 것! 개인적으로 이 책을 쓴 작가처럼 어학 오타쿠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히키코모리에서 시작해 수천 편의 영화를 보고 글을 쓰다, 루마니아 영화에 나오는 루마니어와 사랑에 빠져 홀로 독학을 하게 된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했다. 특히나 루마니아어가 완전히 마이너한 언어라 정보가 너무도 없었는데, 페이스북에서 루마니아인 3,000명과 친구가 되고, 인터넷 뉴스 기사로 각종 슬랭과 문법을 공부 하는 등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독학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더할나위없이 즐겁게 느껴졌다. 





나는 루마니아'어'로 이민하는 것이다. 어떤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외국어를 할 때 원어민 같은 완벽함을 추구하는데, 내 목표는 그게 아니다. 나는 외부인이기에, 언어 이민이기에 할 수 있는 것으로 한 방 먹이고 싶다. 완벽함 같은 것은 오히려 내다 버렸다. 나만의 루마니아어를 만들고 싶다.

이 여정은 아마도 평생이 걸려도 끝나지 않겠지.

그러니까 굉장히 두근거린다.               p.197


사실 어학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꾸준하고 고독한 일이다. 중도포기하거나, 의욕을 잃어버리거나, 좌절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이다.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은 어학 공부의 경우 더 그렇다. 희귀언어, 소수언어를 배운다면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고독이 가르쳐주는 것은 당신이 혼자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오히려 그걸 즐긴다면 그 언어가 자신만의 독특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사이토 뎃초처럼 말이다. 돈 없고, 직업 없고, 친구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히키코모리였던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나는 일본인입니다. 그렇지만 루마니아어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설도 씁니다. 정말 악마적으로 멋있지 않습니까?" 라는 문장에 담긴 의지와 자기애가 정말 근사하게 느껴진 것은,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학을 좋아해서 뼛속까지 어학 오타쿠라고 스스로 말한다. 노르웨이 영화와 인도네시아 영화에 빠졌을 때는 노르웨이어와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고, 프랑스인과 데이트했을 때는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자신의 소설이 라트비아어로 번역되었을 때는 라트비아어 교재를 사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어학 참고서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제는 공부용이 아니라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되어 몇 번이나 들춰본다고 하니, 정말 제대로 된 어학 오타쿠구나 싶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든, 낯선 어느 곳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뭐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가 되긴 하는 것이다. 그저 멈춰 있지 말고,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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