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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 기후변화, 금융위기, 인간을 이해하는 불확실성의 과학
팀 파머 지음, 박병철 옮김 / 디플롯 / 2024년 10월
평점 :
불확실성은 인생의 본질이다. 단어 자체의 어감은 그리 달갑지 않지만 우리의 삶은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다음 주에 자동차 사고를 당할지, 복권 1등에 당첨되어 팔자를 고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멀리 내다볼수록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몇 년 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또 찾아와서 내 투자금이 몽땅 날아가는 건 아닐까? 아니면 전 세계에 팬데믹이 닥치거나,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거나,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진 않을까? 일일이 따져보면 확실한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p.26
우리네 인생은 꽤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세계적으로 무슨 변화가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불확실한 것은 우리의 삶만이 아니라 자연의 기본 단위인 입자의 기본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만약 입자의 불확실성이 사라진다면 입자는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까?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론물리학자이자 기상학자인 팀 파머는 불확실한 세계를 '예측'하고 '이해'하는 불확실성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날씨 예측은 슈퍼컴퓨터와 인공 위성으로 수집한 기상 데이터를 통해 예보를 보도한다. 그런데 1987년 10월 16일, 기상 예보가 빗나가면서 그 예보를 믿었던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거의 300년 만에 발생한 초대형 허리케인이 잉글랜드 남부를 같아해 스물두 명이 사망하고 1500만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는 등 총 30억 달러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기상청은 어떻게 수백 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것은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나비효과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또한 2008년에 세계 금융시장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붕괴되었을 때, 경제학자들 역시 왜 그와 같은 일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나비 효과가 드물게 일어나는 이유부터 우리의 실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전염병의 확산 패턴과 경제 상황, 그리고 각종 갈등을 예측하는 앙상블 기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레카를 외쳤던 순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창의력을 발휘하여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두 모드 사이에서 이루어진 미묘한 상호작용 덕분이었다. 전력집중 모드에서 발휘되는 창의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결정적인 유레카의 순간은 주로 저전력 모드에서 찾아오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모드에서 뇌가 잡음에 민감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각 결정의 장단점을 빠짐없이 나열한 후 며칠 동안 그것에 대해 심사숙고 해야 한다. 이것이 유레카의 순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개개의 결정으로부터 초래되는 모든 가능한 미래로 앙상블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p.360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날씨 예측은 어떻게 가능해진 걸까? 우리는 미래의 어느 순간까지 예측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경제, 국가 간 충돌, 자연재해 등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것들도 예측할 수 있을까? 저자는 변화무쌍한 기상(날씨)의 모습을 최대 2주까지 확률로 표현할 수 있는 지금의 일기예보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각기 다른 초기 조건으로 내일의 대기 상태를 50번 시뮬레이션했는데 그중 20번 비가 내렸다면, 내일 비가 올 확률은 40퍼센트가 되는 식으로 확률, 통계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은 날씨뿐 아니라 우리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바이러스 감염 경로와 사망자 추이 등을 분석하고, 금융 생태계가 붕괴하는 시점을 예측하고, 전쟁과 같은 국가 간 충돌을 사전에 인지하는 방법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를 증명해낸다.
물리학과 기상학을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데다 각종 자료와 도표들이 가득해 읽기에 수월한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불확실성의 과학은 철학적이기도, 인문학적이기도 해서 흥미로운 부분이 꽤 많았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양자역학의 수수께끼, 혼돈의 과학에 대한 사회적 해석, 비합리성이나 실패의 징후가 아닌 불확실성의 의미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철학과 과학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물리학과 기상학의 색다른 콜라보(?)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블랙홀을 연구하던 물리학자에서 영국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과학 공무원의 길을 선택한 저자의 이력이 매우 독특한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재 호킹의 연구팀에 합류하라는 제안까지 거절하면서 기상학자가 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불확실한 세계를 예측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지, 저자가 들려주는 불확실성의 과학을 통해 배워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