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웬디 워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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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는 결말, 시종일관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만들어내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주는 구성, 기억의 조작과 존재 가치에 대한 예리하고 가차없는 작가의 시선까지..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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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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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자 전혜린의 '드라마 퀸'으로서의 기질, 문학과 예술에 현혹되어 자신이 그 일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문학소녀'로서의 기질 앞에서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을 사람은 없다. 스스로를 '공부 안 해도 성적 잘 나오는 천재 소녀'로 포장하는 기술이라든가, 공부도 뛰어나게 잘했지만 그 이외의 것, 즉 다른 모범생들은 꿈도 꾸지 못할 것들을 서슴없이 해치울 수 있는 '비범한 천재 소녀'로 포장하는 기술. '비범해야 한다'라는 열망은 타인의 시선을 전제한 포즈로 가능해진다는 진리를 그녀는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좋아했던 문학소녀였다. 학창시절 교실 한구석에 펼쳐 세운 교과서 안에 책을 숨겨놓고 읽었던 기억이 있는 당신이라면, 이 책을 만날 수밖에 없으리라. 전혜린을 경유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읽기와 쓰기가 폄훼되어 온 기나긴 역사를 파헤치는 책이라니, 읽기도 전부터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다.

'책 읽는 여자의 흑역사' 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지는 전혜린에 대해, 그리고 그 전혜린에 열광했던 세대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얼핏 전혜린 평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전혜린으로 시작해 전혜린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을 넘어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를 재구성하며 '전혜린'으로 상징되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열다섯 살의 나는 그녀를 동경했고, 전혜린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나는 그녀를 이해한다. 적어도 동감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은 있었다. 이기에 밝은 세속적 약삭빠름을 경멸하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들과 다른 인간임을 보여주겠노라 결심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있었음에도 그녀가 보낸 설명 없는 그림이나 단 한 줄의 시구만으로도 나는 그녀의 심경, 그녀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고 그녀가 내게 보낸 의미를 알았을 뿐 아니라, 또한 그녀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느낄 수 있는 영혼의 벗을 갈망한 시절.

아무나 쉽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없던 시절, 독일로 유학 간 '천재' 전혜린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아버지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삶을 너무 빨리 맞닥뜨린 전혜린의 초조와 불안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던 걸까. 저자는 전혜린에 대해 그녀를 비판적으로 조롱하는 시각, '부잣집 딸내미의 교양 있는-공주-코스프레'라는 시각이 교정되어야만 하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대해 낱낱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의 '사춘기 소녀스러움'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전혜린의 수많은 자전적 글쓰기가 수필이라는 형식때문에 폄하되고 천대받는 것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리고 전혜린의 수필에 담긴 과도한 여성성과 소녀적 감성, 그 글들이 문학소녀의 유치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성인 여성 작가에게 '소녀적' 혹은 '문학소녀'라는 말이 붙을 때의 함의에 대해서도 말한다. 글을 읽는 내내 뭔가 속 시원한 느낌, 내가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마음들을 고스란히 글로 표현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전혜린의 삶과 평가에 대한 이야기가 여류 작가 수난사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야말로 전혜린이라는 대상을 넘어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라는 책의 부제로 완벽하게 도달한다. 당시 소녀들의 독서와 글쓰기가 많은 경우 남성들의 시선을 만족시킬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그것들과 문학소녀를 얕잡아 보는 시선이 결국 여성-독자-작가를 업신여기는 시선으로 이어져야 했던 그 당시의 모순을 짚어내는 동안,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 조차도 분노가 마구 일었다. 대체 왜, 여성들은, 단지 책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긴 세월 동안 그런 수난을 겪어야 했단 말인가. 나도 저자처럼 전혜린을 어린 시절에 만났었기 때문에, 당시에 그녀를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처럼 나도 전혜린의 삶을, 글을 동경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전혜린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러했기에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내 심금을 울린다.

문학소녀. 나도, 당신도 전혜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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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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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 그들과 내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요즘 유행이다 싶은 것들, 혹은 이미 유행도 한참 전에 지나서 이제는 다들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내가 전혀 모르고 있는 건 당연하고, 그들에겐 소소한 일상들이 내겐 너무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 투성이였으니 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생활이 3년 정도 되었는데,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어느 새 3억 광년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리 볼 속 겨울' 처럼,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가 바로 내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욕실 유리컵에 꽂힌 세 개의 칫솔과 빨래 건조대에 널린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 커버를 보며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을 알았다.

                                                                                               -'입동' 중에서

 

 <입동>에는 아이를 잃어 버린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지난 봄, 오십 이 개월이 된 아이를 잃어 버린다. 아이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고, 막을 수 있었다고 자책하기에는 너무도 사소한 사고로 말이다. '가끔은 열 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그리고 남겨진 그들 부부에게 시간은 그렇게 멈춰 버린다. 누가 세상에서 사라졌든 말든, 계절은 바뀌고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들에겐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그대로 였다. 그들만 빼고 지구가 자전하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제자리에 멈춰 선 그들이 바라보는 바깥은 어땠을까. 이제 삼십이 개월이 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그런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그냥 후루룩 읽어 버릴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매일 같이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그 순간에 그곳에 있던 나의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때 그 장소에 있지만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어떻게든 그 순간을 모면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한시도 잊을 수가 없는 그 생각과 감정들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이들은 부재의 무게를 이겨내고 살아가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그 순간에 세상이 끝난 것만 같겠지만, 시간은 여전히 째깍째깍 흘러가고 우리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으니 말이다. 상실과 결핍의 순간보다, 나는 그 이후의 시간들이 더 마음이 아팠다. 아침은 매일 같이 우리를 찾아오지만 어제와 같은 아침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잃어버린 것은 영원히 되돌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마저 초월한 그 무엇 같은 건,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풍경의 쓸모' 중에서

 

아이와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매 순간 셔터를 누르게 된다. 자주 어딘가 서보라고, 여기를 보라고, 웃으라고 말하며 순간을 붙잡아두곤 한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뀐다고 할 정도로 아이가 금방 자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좋은 순간, 행복한 상황은 금방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순간을 남겨 두지 않으면 시간과 함께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라는 사실이 가끔은 슬프다. 그냥 그 순간을 오롯하게 느끼고, 호흡하고, 눈에 담으며 즐겨도 좋을 텐데.. 나는 언제나 풍경은 보지 못하고 그 속에 서 있는 아이만 바라보고 만다. 그렇게 찰칵하는 동작과 함께 순간은 과거가 되어 버린다.

 

 

<풍경의 쓸모>에는 가족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더블폴트의 삶을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강사인 정우는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중 교통사고를 낸 대학교수 대신 가해 운전자가 된다. 그런데 그는 정우의 교수 임용에 좋은 말을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임용을 강하게 반대한다. 가족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가 재혼을 한 아버지는 돈이 필요하다고 그에게 연락을 해온다.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사진이라는 모습으로 행복한 순간을 연출하는 것이, 어차피 매순간 뭔가를 잃어버리게 마련인 삶 속에서 그나마 기대와 긍지를 담고 있는 거라는 걸 안다는 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 엄마랑 아빠는....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 던지게 돼 있거든.

                                                                                       -'가리는 손' 중에서

 

김애란의 이번 작품집에 등장하는 이들은 계절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상실과 결핍의 슬픔을 견디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바깥은 여름인데 여전히 겨울을 살고 있는 삶은 계절을 느낄 수 없다. 너무 이른 아이의 죽음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사는 부부, 타인을 위해 죽은 남편을 이해해야 하는 아내, 가족 같은 개가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혼자 힘으로 안락사를 준비하는 소년 등.. 그들 모두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과 뜨거운 열기 가득한 여름이라는 계절은 감당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지나가고 인생은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누군 가에게는 어느 한 순간부터 그저 상실된 시간, 멈춰진 삶인 것이다.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그를 닮은 아이를 낳아, 알콩 달콩 가족을 이루는 꿈을 꾼 적이 없다. 연애를 할 때도 당시에는 죽고 못 살만큼 좋았던 그와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그저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현재에 충실했을 뿐. 그랬던 내가 어쩌다 보니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일상에 닳고, 육아에 지쳐서 이렇게 평범한 생활을 그리워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나는 김애란의 신작을 읽으면서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선택들과 내가 잃어버린 결핍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것, 혹은 앞으로 손에 넣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 버린 것, 지금은 손에 없는 것,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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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20 15: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나이 먹으면서 예전에 행복했던 기억들이 조금씩 잊혀져가는 걸 느껴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주위에 있는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오나 2017-07-20 19:52   좋아요 0 | URL
그 소소한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는 걸 자주 잊어버리게 되는 슬픈 현실.. 하핫..^^;;;
 
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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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녀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계속 살아 있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어두운 밤이면 때때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회의를 느껴야 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의 질이 과연 이 정도의 노력을 기울일 만한 것인가? 이대로 눈을 감고 다시 뜨지 않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끈질긴 공포와 지독한 노력보다는 어둡고 공허한 무()쪽이 매력적이지 않은가?

과학자이자 전직 비밀 요원, 그 일을 6년 했고, 이후 그들에게서 3년 동안이나 도망 다니면서 살아 왔다. 테러리스트를 심문하는 일을 누구보다 유능하게 해왔지만, 국가와 조직은 그녀를 버렸고,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던 동료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그녀는 침대에는 가면과 가발, 그리고 분장용 피를 채운 비닐 팩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자신은 그 아래 침낭에서 잔다. 밤마다 보안 장치를 설치했다가 아침에 다시 해체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하고, 그 때문에 일어나고 싶은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약국이 무색할 만큼 많은 독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벨트에는 주사기가, 주머니에는 메스 날이, 신발에는 칼, 가방 안에는 후추 스프레이 등등 완전 무장을 하고 다닌다.

이름과 신분을 수시로 바꾸고, 다양한 변장술을 통해 모습을 감추며, 절대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총과 방독면이 세면대 아래 수건 더미에 숨겨져 있고, 자기 전에도 방독면을 쓰고서야 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방침이 바뀌어서 그녀가 필요하다고. 여러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일이 생겼고, 이 일을 해 줄 다른 적임자는 없다고. 절대 망쳐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그녀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이건 그들이 파 놓은 또 다른 함정인 걸까. 아니면 그녀도 이제는 드디어 침대 위에서 편하게 잘 수 있는 날이 오려는 걸까.

그녀는 정말 대니얼에 대해 공부하고 그의 상호작용을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사람은 이렇게 행동한다. 그녀는 그 방법을 전혀 모르거나 완전히 잊어 버렸다. 그녀는 웨이트리스를 상대하거나 칸막이 직업에 필요한 말들만 터득했다. 직장에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안다. 그녀는 불법 의사로 일할 때 환자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전에 그녀는 대상에게서 대답을 이끌어 내는 최고의 방법들을 배웠다. 그러나 미리 정해진 역할 밖에서는 항상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100만 명을 죽일 수도 있는 치명적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미국의 네 개 주에 방출하기로 한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대니엘 비치. 알렉스는 그에게 접근해 자백을 받아 정보를 빼내와야 한다. 그래야 그녀의 이름이 조직의 블랙 리스트에서 사라지고,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도 구할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역사와 영어를 가르치는 표면적으로 대니얼은 흠 하나 없이 깨끗한,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계좌에서 큰 돈이 움직인 내역이 포착되었고, 마약왕 엔리케 데 라 푸엔테스라는 인물과의 연관성도 엿보인다. 알렉스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는 그에게 접근한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너무 순조롭게 그와 말을 나누게 되고, 그를 연구실로 유인하고, 자백제를 주사해 그를 심문하게 된다. 그런데, 그에게 약물을 사용하고, 자백을 강요하며 고통을 주려고 할수록 뭔가 이상했다. 그녀는 자신이 벌써 3년이나 이 일에서 손을 뗐었기 때문에 대상에게 감정을 느끼는 거라고, 그래서 대상의 반응에 영향을 받는 거라고 애써 생각하려 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그녀가 몰랐던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었다. 과연 대니얼의 정체는 무엇이며, 알렉스는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지긋지긋한 도망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녀가 모르는 이 일에 숨겨진 내막은 과연 무엇일까.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작가 스테프니 메이어의 시크릿 에이전트 스릴러는 무려 730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두께의 스파이 소설이다. 제임스 본드의 소설 혹은 영화 제이슨 본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캐릭터가 여성이라는 데에 스테프니 메이어 만의 특별함이 있다. 읽는 내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생존 방법과 각종 지략을 구사하는 알렉스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위기에 몰린 주인공이라는 설정 자체는 평범하지만,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식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고, 매혹적이다. 스테프니 메이어만의 주특기인 로맨스가 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 소설이지만, 국가의 안보나 국민의 생명과 연관된 공공의 안전 등은 사실 이 작품에서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주요 등장 인물은 알렉스를 포함해서 단 세 명이고, 시종일관 그들이 비밀을 파헤치고, 계획을 세우고, 그들을 쫒는 무리로부터 도망치는 모습만 그려지고 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조직의 인물들은 초반과 후반부에만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지루해질 틈은 없다. 스파이 소설에 등장하는 로맨스의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그려낸 듯한 느낌이다. 역시 스테프니 메이어! 라는 찬사가 나올만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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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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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창 밖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보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요?"

"대충, 그렇습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그것은 그다지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수많은 것에 눈을 감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이 우리의 눈을 가려줍니다. 이를테면 당신이 차창 밖으로 눈길을 주면 무엇인가가 보일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부지불식간에 '언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 시절 다니던 영어회화 학원 동료들이 10년 만에 다시 교토로 모인다. 당시에 동료들 여섯 명이 구라마에 진화제를 구경하러 갔었는데, 그날 밤 그 중 한 명이 모습을 감추었다. 홀연히 사라진 하세가와는 그날 이후로도 아무도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마치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오하시는 약속 장소 근처 화랑에서 에서 10년 전에 사라진 그녀와 비슷한 모습의 여자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특별한 그림을 보게 된다. 영원히 계속되는 밤을 연상시키는 그림들은 검은 배경에 하얀 농담으로 그린 풍경으로 기시다 미치오라는 동판화가의 작품이었다. 하나하나의 작품들이 모두 밤이 한없이 펼쳐져 있는 듯한 신비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날 모인 다섯 명의 동료 모두 그 야행이라는 그림에 얽힌 특별한 경험들이 하나씩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들이 들려주는 하기괴한 이야기들이 연작 단편 형식으로 이어진다.

나카이는 갑작스럽게 집을 나간 아내를 찾아간 오노미치에서 아내와 꼭 닮은 낯선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곳 호텔에 로비에 걸린 야행이라는 동판화를 보며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언덕의 폐가에 사는 아내와 너무 닮은 여자, 그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녀의 남편. 게다가 직접 오라고 초대를 했던 아내와는 연락도 되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다케다는 회사 동료와 그의 연인, 연인의 여동생과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여행 중에 미래를 본다는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는 그들 네 명 중에 두 명에게서 사상이 나왔다며, 지금 당장 도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할머니의 예언은 믿을 만한 것일까. 그러나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여행을 계속하기로 하는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호텔을 나와 산조 명품 거리의 상점가를 통과했다. 학생 시절, 이렇게 조용한 거리를 영어회화 학원 사람들과 걸었던 적이 있었는데,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밤의 거리를 걷다 보면 학생 시절의 그 밤과 그대로 연결될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나카이 씨는 기쁜 듯 웃었다.

"그래.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 묘하군."

"신기하죠."

"10년 전으로 시간 이동을 한 것 같아."

여행과 밤, 기차로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무더운 한 여름 밤에 읽어도 등줄기가 서늘해질 만큼 오싹하다. 어느 순간 내가 그들과 함께 야행 열차를 타고 그 기묘한 시간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도 들고 말이다. 불타는 집 옆에 서 있던 묘령의 여인, 초등학생 무렵의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 그 시절 친구의 모습, 죽음을 보는 할머니의 예언, 낯선 장소에서 만난 아내처럼 보이는 낯선 여인,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스님과 기묘한 분위기의 여고생...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항상 '야행'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실제 바깥에 펼쳐진 밤의 어둠만큼이나 작품 속의 세계 역시 완전한 어둠이었다. 영원한 밤의 세계, 그 속에 등장하는 묘령의 여인. 끝도 없이 어둠 속을 계속 달려가는 열차.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것 같으면서도 오싹하고,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독특한 작품이었다.

모리미 토미히코의 작품은 <유정천 가족>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만나는 신작이라 기대가 됐는데, 기존 작품들의 분위기와 다소 달라진, 서늘하고 오싹한 세계를 그리고 있어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동판화가의 그림을 표지화한 것 같은데, 표지 이미지도 너무 아름답고 여름 밤에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어딘가 기묘하고, 괴이한 경험담과 현실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판타지, 그리고 특유의 이야기꾼다운 문체와 스토리가 깊은 밤, 당신의 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름의 교토라는 매력적인 시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는 잠시 나마 여름 더위를 잊어 버리게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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