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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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는 곧 인플레이션의 역사다. 이 때문에인플레이션이 끝났다는 말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2016년에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였지만,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 태세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통화를 붕괴시킬 수 있는 세력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통화 붕괴 작전의 각본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화폐가 파괴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통화량의 증가로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모든 상품의 물가가 전반적으로 꾸준히 오르는 경제 현상을 말한다. 그러니까 물건 값은 계속 오르는데, 내 월급은 언제나 제자리인 상태.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그만큼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물가가 오르는데, 그에 맞춰 가정의 수입은 오르지 않으니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인플레이션은 반갑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애써야 하는 고생에 비하면 지불하는 돈의 가치는 그에 결코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이 책은 역사상 손에 꼽히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떠올리면 치를 떨었던 독일의 학자들이 저술했다. 저자인 하노 벡은 2000년 인류 역사에 감춰진 인플레이션의 비밀을 파헤쳤다. 그는 소시민들이 금융위기 시대에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함을 깨닫고 인플레이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고, 그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금리와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35년 동안 꾸준히 하락해왔다. 이러한 하향세는 이제 종지부를 찍고 상승세로 돌아설 조짐이 보인다. 바로 그 전환점에 서서,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어떤 전략을 짜야 이러한 위기로부터 소중한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고, 실용적이고, 유용한 정보들을 가득 담고 있다.

 

 

부채를 처리할 때도 인플레이션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셈이다. 결국 인플레이션만큼 국가의 채무를 해결하기에 매력적인 방법은 없다. 앞 장에서 우리는 국가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간파하고 앞장서서 인플레이션을 조장해온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처럼 오랜 교훈을 정치인들이 잊을 리 없다. 여기에서 반론이 제기될 만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인플레이션율을 직접 결정할 수 있을까?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1923년 초인플레이션 때문에 쓴 맛을 한번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또다시 인플레이션을 조작하라는 유혹이 손짓을 하고 있다.

 

지폐의 탄생과 함께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따라서 돈의 역사는 곧 인플레이션의 역사이기도 하다. 최초의 화폐는 등장하자마자 국가에 의해 본래의 화폐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니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돈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돈이 나타내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나 공감이 될 수밖에 없는 대목은 다름아닌 '피해자는 언제나 소시민이라는 점'이었다. 가난할수록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더 많은 타격을 입게 된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집도, 금도, 유가물도 없다. 그저 통장에 현금이 조금 들어 있을 뿐. 인플레이션은 바로 이 현금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의미이니 저소득 계층일 수록 인플레이션을 피해갈 기회가 더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플레이션 게임의 승자는 누구인가? 저자는 말한다. 인플레이션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채무자와 채권자 중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될지는 인플레이션율을 예측하고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좌우된다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열심히 돈을 벌고 모으면 된다는 순진무구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 것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감춰진 원리가 무엇인지 알려 하지 않고 그저 아끼면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꼭 만나보기를 바란다. 경제에 관해 완전히 관심이 없었던 이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쓰여진 책이라 이해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경제가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현명하게 돈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그래도 조금은 덜 피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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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말할걸 그랬어
소피 블래콜 지음, 최세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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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열차가 강 밑을 지날 때 당신이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어요. 당신에게 손수건을 건네준 여자가 나예요. 그럴 때미혼이신가요.”라고 묻는다면 실례였겠지만, 그때 내 머릿속은 당신이코피 터지게근사하단 생각뿐이었어요.

 

완연한 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것이 겨울이 벌써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옆구리가 허전한 계절이 돌아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 솔로인 사람들은 12월이 오기 전에 어서 분주히 주변을 살펴서 자신의 짝을 만나길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엔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테니까.

 

여기,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우연들이 모여서, 인연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이 있다. 어쩌면 부질없는 희망일지도, 어이없는 착각일수도 있는 순간들을 따뜻하고 유며 있는 그림으로 표현해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마법같은 책이다.

 

미국에는 '놓친 인연(MIssed Connection)'이라는 웹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좀 더 능청스럽게, 좀 더 용기를 내서, 앞뒤 재지 말고 그냥 말할걸 왜 못 했나, 가슴 치며 후회할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연히 마주쳤지만, 어쩌다 놓쳐버린 인연에 대한 사연을 올릴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있다니, 너무도 영화 같은 일이다. 이곳에서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빨래방에서, 거리에서 우연히 스치듯 만난 그 혹은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익명으로 올릴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당사자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안고서 사람들을 웹사이트에 글을 올린다.

 

오늘 하루 동안에도 한눈에 사랑에 빠진 그들과 다른 수천 명이 '놓친 인연'에 사연을 인터넷에 올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메시지를 상대가 읽을 확률은 유리병 속 편지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사연을 적은 종이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렸을 때 받아볼 확률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오솔길에 빵부스러기를 흘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소피 블래콜은놓친 인연사이트에서 무궁구진한 사연들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들의 사연을 읽는 게 좋았다. 그래서 사연들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블로그에 모으고, 그 사연들을 그림으로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의뢰 받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하고 싶은 작업을 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게 되면서, '놓친 인연'을 휴 그랜트 영화 못지않게 매력적이고, 페이스북만큼 중독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다정하고 친근한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희망, 그를 통해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 ‘놓친 인연’에 글을 써서 올리며 갖는 희망이 실낱같을지언정, ‘당신이 이 메시지를 읽을 것 같진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메시지마다 15와트의 희미한 희망 전구가 달려 있다.

 

M열차에서 실크스크린을 들고 있던 여성분 보세요.

나 당신 쫓아가던 거 아니에요.

나도 그 동네에 살아요.

 

첫눈에 반하는 사랑 따위, 이제는 믿지 않는 너무도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가끔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순간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순간은 짧게 스치듯 지나가버리고 말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떠올려보면 아쉬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나의 운명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고, 거기서 어긋난 운명이 내 삶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누구나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분명, 아무도, 누구도 사랑하지 않던 순간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삶은 진부하고, 쓸쓸하다. 매 순간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싶다면, 항상 사랑해야 한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니 말이다. 

 인생이 좀처럼 나를 믿어주지 않을 때, 현재의 별볼일 없는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세상에 존재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 친구, 연인이 있어 우리는 오늘도 꿈을 꿀 수 있다. 그러니, 아직 그런 소중한 존재를 찾지 못했다면 당신, 소피 블래콜의 이 책을 보면서 당신의 인연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길 바란다. 당신의 인연은 멀리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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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짜툰 6 - 고양이 체온을 닮은 고양이 만화 뽀짜툰 6
채유리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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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짜툰 시리즈를 처음 만났던 것이 2014년이었으니 벌써 3년이나 시간이 흘렀다. 시리즈는 어느 새 여섯 번째 이야기로 접어들었고, 이번 작품에서는 짜구를 저 먼 곳으로 보내줘야 하는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어 읽기도 전부터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카리스마 군기 반장 뽀또, 새침하고 도도한 아가씨 짜구, 까칠하고 고독한 쪼꼬, 천방지축 막내 포비로 시작한 스토리는 시간이 흘러 낯가림이 심한 막내 봉구까지 다섯 식구가 되었었다. 뽀또와 짜구가 2003년생, 쪼꼬가 2004년생, 그리고 포비가 2009년생, 막내인 봉구가 2015년생이다. 뽀또와 짜구, 쪼꼬는 어느새 삶의 황혼기를 보내는 노년의 나이라 이제는 높은 곳보다는 조금 덜 높은 곳으로 올라가 쉬고, 가끔은 침대 위로 점프하는 것도 힘들어 하고, 종종 다리를 절기도 해서 관절약도 먹이고 있다.

널 만나서 꿈처럼 설레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거 같은데.. 벌써 13년이 흘렀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가진 유전자가 전혀 달라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대도,

나는 이 아이들과 사는 게 참 좋다. 후회하지 않는다.

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나도 어릴 때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있고, 강아지는 이 십여 년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강아지나 고양이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유달리 공감할 수 있는 대목들이 참 많은 편이다. 특히나 우리집 강아지 토토가 딱 뽀또와 짜구 나이라서 이번 작품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던 것 같다. 토토는 다행히 아직까지 활발하고, 큰 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소소한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병원 신세를 자주 진 편이라 나이를 먹어갈 수록 걱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짜구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며, 아픈 짜구를 위해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주고, 새 화장실도 장만하고, 사료를 잘 먹지 않아 종류 별로 시도해보고, 전용 간식도 따로 마련하는 등의 노력이 남일 같지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닥칠 일이었으니 말이다.

강아지나 고양이, 그 외의 동물들을 키워본 이들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것'에는 항상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순히 예뻐하고, 귀여워하는 것만으로 동물을 키울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마다 늘어나는 유기견, 유기동물들에 대한 문제 또한 어리고 작을 때 단순히 예뻐할 생각만 했지, 그들이 아프고, 늙으면 귀찮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뽀짜툰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정말 이들을 진짜 가족처럼 대하는 모습에서 종종 감동을 받곤 한다. 키우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진짜 하나의 대상으로, 가족처럼 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짜구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다시 남겨진 고양이 네 남매와 함께하는 북적북적 일상이 이어진다. 살아있는 이들은 또 어떻게든 삶을 살아내야 하니깐.

고양이와 살아온 지 14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이 녀석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물론 늘 좋기만 하는 건 아니지.

때론 짜증도 나고, 귀찮기도 하고..

빠른 이별에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희를 만난 걸 후회한 적이 없어.

운명같던 순간들. 나를 만나줘서 고마워. 나와 함께 살아줘서 고마워.

짜구가 떠나고, 이제 넷이 된 식구들은..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툭닥거린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카리스마 뽀또는 열네살이 되니 되도록 몸을 사리고, 귀찮아 하는 입장, 올해 열세살이 되는 쪼꼬는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체급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건지, 최근 몇년새 부쩍 더 돼지가 되어 버렸다. 먹신 포비는 종종 쪼꼬가 핫도그로 보이는지 씹어드시려 하고, 이쯤되면 귀찮은 녀석을 피할법도 한데, 이상하게 쪼꼬는 그런 포비의 행동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제 한살하고도 7개월쯤 더 먹은 봉구는 어엿한 성묘가 되었지만, 뭔가 좀 덜 자란 것처럼 여전히 체구가 작다. 이들 네 식구들의 북적거리는 유쾌한 일상은 짜구를 떠나보낸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오늘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어 준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짜구를 잊지 못해 꿈 속에서 만나곤 하지만 말이다.

쪼꼬의 다이어트 대작전부터 도망치는 애들을 쫓아다니며 양치시키기, 새로운 터널을 두개나 구입해서 벌이는 놀이, 그리고 진을 다 빼놓는 목욕 전쟁까지... 배꼽 빼놓는 유쾌한 에피소드들이 가득 이어진다. 강아지도 그렇지만, 고양이들 역시 나이를 먹어도 아이같은 면을 많이 가지고 있어 함께 놀다 보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하는데, 제3자가 보기엔 다소 유치해보이는 그 행동들도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나를 순수한 시절로 되돌려놓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겪어온 사람 입장에서 보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공감 백퍼센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뽀짜툰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공감할 부분이 참 많은 따뜻한 작품이다. 나도 강아지를 이 십여 년 키우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주변에 워낙 동물을 아끼는 이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채유리가 가 아기 길 고양이 뽀또와 짜구를 처음 만나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과정부터 함께했던 이야기가 식구가 점점 늘어가고, 어느 덧 식구 중 하나가 떠나가는 스토리에 이르기까지.. 한 마디로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곁눈질로 대충 보아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오랜 기간 고양이와 함께 애정으로 살아온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소소한 디테일들이 마음이 짠해지게도 하고, 빙그레 미소 짓게도 만들어주었다.

단순히 고양이가 애완동물이라는 소유물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걸 매 페이지마다 보여주는, 그야말로 애정 가득한 이 작품이 그래서 난 참 좋다. 스토리 자체는 가볍게 보일 수도 있는 만화이지만 채유리 작가의 이 웹툰에도 그런 애정의 깊이와 따스한 온기가 담겨져 있어 보고 또 봐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짜구야.

나도 너로 인해 참 행복했단다. 

더 좋은 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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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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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지금도 두려움과 멸시가 뒤섞인 까끌 까끌한 감정이 있다. 그래도 갈색 손을 잡았을 때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징그럽다든지 불쾌한 느낌은 없었다. 용기를 내서 다가가면 의외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좀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면 평범하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악의는 없었다'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중요한 건 굴절된 감정과 공포심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거다. 극복하느냐 아니냐는 너 자신이 결정해야 해.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도록."

"여기는 전쟁터니까?"

일상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작품들을 나름 꽤 읽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전쟁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게다가 전쟁터의 조리병이 주인공인 이야기라니, 분위기가 어떨지 책을 읽기 전에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작품의 배경은 1944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선을 무대로 현대 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인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유럽 전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의 작가가 젊은 일본 여성 작가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주인공 팀은 인생을 사는 낙이 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먹는 것'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음식을 사랑한다. 먹는 것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의 레시피 공책을 즐겨 읽어 왔고, 그 낡은 공책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음이 놓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열일곱 살 생일을 앞두고 있을 때,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곳곳에 지원병을 모집하는 고지가 나붙는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속을 달려가고, 여기저기 다치고, 그러나 적을 쳐부수어 영웅으로 떠받을 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팀도 전쟁에 지원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훈련을 받기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자신은 군인이 적성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낀다. 사격도 잘하지 못했고 달리기도 평균보다 느려서, 덩치만 큰 어린애라고 '키드'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조리병을 증원한다는 공고를 보고, 조리병이 되기로 한다. 조리병의 역할이란 대원에게 전투식량을 나눠주고, 재료와 시간과 장소에 여유가 있을 때 요리를 하고, 식중독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전투가 벌어지면 총을 들고 일반 병사들과 함께 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팀을 비롯한 동료들은 입대한 뒤 2년에 이르는 훈련을 거쳐, 1944년 초여름, 첫 출정을 나가게 된다.

 

“어이, 뭐가 그렇게 시끄럽냐?” 간수가 또 문을 두들겼다.

“그냥 레시피를 외우는 것뿐인데. 난 조리병이니까.”

........나는 계속해서 레시피를 읊조렸다. 보리 수프를 끓이고 진짜 계란을 풀고 P-38로 콩과 참치 통조림을 딴다. 치즈를 뿌려 노릇노릇하게 굽고 삶은 새우에 타바스코와 갈릭 오일을 뿌렸다. 야전 취사 차량의 연기 냄새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뜨거운 오븐과 떠들썩한 말소리, 스푼으로 접시를 두들겨 밥 달라고 재촉하는 식욕 왕성한 병사들. 배고팠던 나날을 달래주는 따뜻한 수프.

이야기는 전체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전쟁터라는 비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매우 소소한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 굉장히 현실감이 없는, 직접 겪어 보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전쟁터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들은 적과 싸우기 위해 먹고, 마시고, 잠자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일상을 공유해야만 한다. 누군가에게는 비일상인 곳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되는 것이다. 불길에 휩싸인 채 낙하한 공수병, 임무를 다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은 유도병, 구호소에서 그저 죽음을 기다리던 부상병. 어쩌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란, 그저 우연히 제비뽑기에서 당첨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매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상 미스터리는 어떤 모습일까.

뭐든 낙하산과 바꿔 낙하산을 모으는 병사, 갑자기 사라져 버린 600상자 분량의 분말 달걀, 네덜란드 민가에서 아이들을 남기고 자살한 부부, 설원을 떠도는 유령 병사... 등등 소소한 수수께끼들이 벌어지고, 팀을 비롯한 조리병들이 그것들을 퀴즈처럼 풀면서 그들의 일상이 이어진다. 하지만 미스터리 자체보다 그것을 풀어내어 답을 찾는 과정이 너무 쉽고, 간단해서 다소 맥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일상 미스터리가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전해주는 긴장감이 더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스터리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리병의 일상이라던가, 조리병으로서 맞이하게 되는 전쟁터의 모습이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오븐의 온도를 판단하기 위해, 소매를 걷고 오븐 속으로 손을 쑥 넣어 뜨거워지는 정도로 오븐 온도를 파악해 요리를 한다거나, 분말 달걀 등 건조 식품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라던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할머니의 레시피를 줄줄 외운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그 어떤 작품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신선한 내용들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전쟁에 참전해보지 못한 젊은 여성 작가가 쓴 이야기라서, 자료 조사나 상상력으로 빚어낸 배경일 테니 어느 정도 잘못된 부분이나 사실과 달라진 내용 상의 허점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오직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묘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분들이 그것들을 감싸주며 독특한 일상 미스터리를 완성하지 않았나 싶다. 후카미도리 노와키는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생긴정의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는데, 이는 아마도 현 일본 정부에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고군분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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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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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핑은 신신라이를 잡지는 못했지만,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는 것을, 뱀이 두더지를 집어삼키는 것을, 작은 새가 벌레를 포위해서 섬멸하는 것을, 개미가 소나무 껍질을 갉아먹는 것을, 벌이 들꽃의 심방에 침입해 탐욕스럽게 꽃가루를 빨아먹는 것을 목격했다. 만물 사이에도 학살과 능욕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것은 아름다운 명분을 지닌 채 이루어지고 있었다.

 

룽잔진의 가축들은 도축업자 신치짜를 보면 지금 자신들이 쬐는 햇볕이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었다. 신치짜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칼이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참마도가 그의 아내를 죽게 하고, 그의 양아들을 살인자로 만든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신치짜의 양자인 신신라이에게 강간을 당하고는 삶이 많이 바뀌게 되는 난쟁이 안쉐얼은 수명을 점치며 비석을 새기는 일을 했다. 안쉐얼은 사법경찰 안핑의 외동딸이었는데, 신치짜가 가축들이 무서워하는 대상이라면 안쉐얼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그녀가 비석에 누구의 이름을 새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쉐얼이 신신라이에 의해 몸이 망가진 뒤로 더는 하늘과 관련이 없다고 여기며, 그녀가 인간 세상으로 추락한 징조를 찾기 시작한다. 하룻밤 사이에 신에서 마귀의 대열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세상에 해가 뜨지 않았으면 말세도 없었겠지요. 인간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경찰 안핑은 그 직업 때문에 사람들의 두려움을 샀다. 사람을 죽이는 그의 손이 닿은 물건에 원혼이 들러붙어 있기라도 한 듯, 그의 손이 닿는 것을 모두들 꺼려했던 것이다. 그의 아내 조차 그의 직업을 알게 되고는, 아이를 낳자 마자 이혼을 요구하고 떠나 버렸을 정도이다. 유일하게 그의 손을 무서워하지 않는 여자가 있었으니, 반신불수가 된 남편을 20년째 수발을 들고 있는 장례식장 염습사 리쑤전이었다. 그녀 역시 직업 때문에 사람들이 꺼려 하는 손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로 그 손을 통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자신들의 손과 관련된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사형장과 장례식장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란 으스스하고 피비린내 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곳에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는 많았다. 이들 외에도 장애인 친구를 돌보며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탕메이를 비롯해서 각각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만 무려 40명에 이르는, 정말 중국의 대륙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서리에게도 열렬히 낭만적인 일면이 있었다. 나뭇잎 살결에 스며든 서리는 그것과 입 맞추어 가을의 형형색색 잎들이 꽃처럼 활짝 피게 했다. 서리에 금빛으로 물든 소나무 침엽은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금바늘을 떨어뜨렸다. 서리에 촛불처럼 새빨갛게 물든 하트 모양의 백양나무는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새빨간 하트 잎을 떨어뜨렸다... 이 시기에 룽산 산꼭대기에 서서 뭇 산들에 눈을 돌려 온통 물든 숲들을 바라보면 산속 모든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꽃나무가 되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었다.

 

 물론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은 이 소설 외에도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수많은 인물들에게 각각의 이야기를 부여했다는 점일 것이다. 전체 이야기 17장에 남긴 개별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 만으로도 각각 따로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밀도가 높다. 그렇다고 단편처럼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고, 모두 다른 주인공으로 쓰여 있지만 그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 설켜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씨줄과 날줄처럼 긴밀하고도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이 거대한 중국 현대 사회 속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삶을 그려낸다. 그래서인지 470페이지 정도의 그렇게 두껍다고는 할 수 없는 분량을 읽어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야기가 지루하다거나,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내용 전개가 빠르고, 다양한 매력의 인물들이 쉴 틈 없이 등장해 눈길을 사로 잡지만,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밀도가 느껴져 후루룩 그냥 읽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츠쯔첸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작가 후기에 밝히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인물들이기에 이렇게 생생하게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2년 가까이 공들여 쓴 작품이기에 어떤 단어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고, 불필요한 묘사나 늘어지는 대목 없이 완성된 작품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하늘의 시편이 아니라 범속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눈물이다

 

이 작품 속 이야기는 모두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다. 도시화와 환경 파괴, 사형 집행 방식의 변화와 장례제 개혁, 불임 수술, 사법기관의 가혹 행위, 불법 장기 매매, 영웅 만들기와 선전 선동, 매관매직, 참전 병사 대우 등과 관련한 역사 청산 문제뿐만 아니라, 죄악과 양심, 도덕과 인간 존엄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구조와 시적인 문장을 통해서 그려지고 있다. 츠쯔젠은높고 높은 산과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 이러한 경관은 나의 문학적 이상에 딱 들어맞는다. 그것은 바로 소인물에게도 높이 솟음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그리고, 그들의 선함과 악함, 분노와 격정을 보여주면서 비로소 '문학적 허구의 삶'이 아니라 '진짜 피가 돌고 땀이 흐르는 삶'을 그려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난 것 같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 동안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작품은 꼭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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