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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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봐도, 수학 문제를 풀어도, 몰래 연습장에 축구 필드를 그리며 딴짓을 해도 소용없었다. 어떤 순간은 끊임없이 파고든다. 모든 상상과 감성, 논리와 태도를 허물고 보호 구역을 침입해 속을 난장판으로 뒤집는다.

잊으려고 해도, 외면하려 해도 순식간에 생생하게 복원되는 기억.

너무 강제적이어서 불편한 기억.

그런 건 장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경험이라고 부른다.                p.97


그야말로 올해 여름을 휩쓸었던 이야기를 가을의 문턱에서 만나보았다. 작가가 직접 겪었던 사건들을 토대로 쓰인 소설이라 그런지 감정 표현이 굉장히 디테일하고, 섬세한 작품이다.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되는 천국이라는 미국에 대한 환상이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꿈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 작품 속 제니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제니는 열 살에 갑작스럽게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한 뒤 필사적으로 영어를 배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영어를 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를 잘한다고 모든 고민이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제니는 경계에서 서성이는 존재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다. 얼마 뒤 같은 한국인 이민자 '한나'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뒤, 제니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한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도 윽박지르듯이 자기 이름을 표명하고 다녔다. '잇츠 낫 해나. 잇츠 한나'를 로봇처럼 반복하는 한나는 금방 고집스러운 아이, 유별난 아이로 알려졌다. 한나는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제니는 한나를 안쓰러워하면서도 한심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한나 엄마는 제니의 엄마와는 달리 자주 학교에 나타났다. 한나를 데리러 오는 일 말고도 지도 선생님과 수차례 면담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예민한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곤 했고, 달래면 또 금방 그쳤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한나는 매일 조금씩 귀찮은 아이가 되어갔고, 규칙을 지키지 않고, 숙제를 제출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제니는 그런 한나를 지켜보며 자신이 몹시 미워했던 백인 아이들과 점점 비슷해져간다. 아이들에게 미움받는 한나와 가까워지는 것은 곧 무리에서 다시 한번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제니는 한나가 당하는 것을 방관했고,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으면서 자꾸만 신경쓰는 자신을 혐오스럽게 생각했다. 




"있잖아, 제니."

어느새 물소리가 멈추고 한나가 나를 불렀다. 그 애는 먼저 불러놓고 가만히 있다가 다시 물을 틀었다. 유리에 귀를 박고 있던 나는 말보다는 진동으로, 그 안에서 요동치는 울림으로 한나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처럼 되고 싶어.

그 순간 내 머리카락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타일 바닥으로 똑 떨어졌다. 

동그랗게 고인 물방울이 어디에도 흡수되지 못하고 구르는 것을 보다가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p.159~160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한나는 우연히 제니가 한국어로 통화하는 것을 보고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네가 한국어를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이제 좀 마음이 편해졌다고. 그 동안은 하나도 못 알아 들어서 공지 사항이든, 숙제든 알 수 없었다고. 영어 유치원까지 다녔다는 한나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제니는 한나가 통역을 요구하거나, 숙제를 도와달라고 할 때 마지못한 기분으로 도와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억울함과 분노, 자격지심과 콤플렉스, 질투와 동경, 천국과 지옥....의 감정을 오가며 제니와 한나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나름의 우정을 쌓아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세 번째 여름, 두 사람은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백인 여자아이들이 초대한 호숫가 모임에 가게 된다. 그날은 제니의 생일이었고, 그 호수에서 단 한 사람만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작품은 우리가 '우정'이라고 부르는 감정에 대해, 그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이민자들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이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새라가 한나의 머리끈을 잡아당기고 뜯어내듯 풀어내리는 장면이나, 테일러가 한나를 모욕하는 장면, 여자아이들이 빠르고 어려운 영어로 말하며 한나를 놀리는 장면도 작가가 겪은 것이라고. 그렇게 작가는 한나에서 제니로 자랐다고 말한다. 구조게 적응했고, 로렌처럼 부역했고, 어느 순간부터 자기방어, 합리화, 변명 등의 악순환에 갇혀 스스로에게,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더 많인 이들에게 와 닿았던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머릿속으로만 쓰는 이야기라 직접 몸으로 체화한 이야기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을 테니 말이다. '여름은 고작 계절'이지만, 마음에 커다란 멍이 새파랗게 드는 시간일 수도, 터무니없는 기쁨과 괴물 같은 고통이 동시에 찾아오는 시간일 수도 있다. 누구나 친구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렇게 미숙하고, 순수했던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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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과학
이선 크로스 지음, 왕수민 옮김, 김경일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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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감정은 삶을 헤쳐나가도록 인도하는 길잡이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낸 시간을 담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며, 음악이자 마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부정적 감정에서 도망쳐 기분 좋은 감정만 뒤쫓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 대신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거기서 배우되, 필요할 때는 한 감정 상태에서 다른 감정 상태로 자연스럽게 옮겨 가는 감정 전환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가치 있는 기술들이 다 그렇듯, 감정 전환 능력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다.           p.74~75


매일 우리는 미미한 혹은 격렬한 감정에 기반하여 결정을 내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감정들이 우리 삶의 궤도에 영향을 미친다. 호기심, 적의, 사랑, 질투, 불안, 우울, 기쁨, 고독 등 감정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감정적 삶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시간이 평상시의 33퍼센트에 이른다고 대답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사랑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고, 슬픔은 분노를 부채질하고, 기쁨은 비통함을 누그러뜨리고,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희망을 품기도 한다. 이렇게 복잡한 감정은 대인관계부터 재정문제, 건강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것을 뒤흔든다.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 일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결국 감정에 지배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 책은 감각, 주의력, 관점, 공간, 관계, 문화라는 6가지 감정 전환 도구를 통해 부정적 감정을 인생의 부스터로 바꾸는 과학적인 마음 관리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감정은 억눌러야 할 방해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신호이므로, 올바른 방식으로 감정을 전환할 수 있다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실제로 활용해볼 수 있는 감정 전환 도구들을 삶에 적용하는 방법과 이 도구들로 스스로 감정을 전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최신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들을 알려주고 있으며,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인류가 발생한 이래 우리는 줄곧 감정을 붙들고 사투를 벌여왔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감정에 대한 문제는 시대를 초월해 어디에서나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인류 역사는 감정 조절법을 찾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의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외과 수술법도 사람들의 감정 조절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내면의 전환 도구들은 우리가 손에 집어 들 때까지 잠자코 가만히 있지 않으며, 온종일 외부 요인들에 의해 밀리고 당겨지고 조작된다.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마주치는 가장 강력한 외부 요인 중 하나이며, 감각, 주의력, 관점이라는 내면의 전환 도구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공간'이다.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현실의 우리도 맥락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거주하고 오가는 공간들이 우리의 감정적 삶을 형성하는 것이다.             p.206~207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갈등이 불거져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 때도 결국은 감정이 관건일 때가 많다. 날뛰는 감정 때문에 하루를 망치거나, 감정의 영향을 받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도,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한다. 감정은 우리 삶을 건강과 활기로 가득 채우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을 때는 에너지를 축내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나서 그에 대한 생각과 감정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곤 한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직면하는 것과 회피하는 것, 어느 쪽이 도움이 될까. 저자는 좀처럼 떨치기 힘든 부정적 경험이라면 직면하는 편이 좋다고 말한다. 회피할 경우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데로 전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긍정적 감정이든 부정적 감정이든 상관없이 모든 감정은 우리가 이 세상을 헤쳐나가도록 돕는 일종의 도구 역할을 한다. 모든 감정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삶을 헤쳐나가는 길잡이가 돼준다. 심지어 괴로운 감정이라도 말이다. 


이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우리가 아침에 어떤 메시지를 받고 잠에서 깰지, 우리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생겨난 감정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그날 하루의 흐름부터 가족들의 감정 세계, 직장과 지역 사회 등 모든 것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감정 관리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나를 지치게 하고, 진이 빠지게 만들고, 유혹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되고자 하는 모습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감정은 마치 스트라디바리우스 악기와도 같다. 익숙하지 않으면 소음이지만, 제대로 다루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음악이 된다. 우리는 모두 감정이라는 정교한 악기를 갖고 태어났다. 이제는 이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는 방법을 배워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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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현지 영어회화 무작정 따라하기 - 국내 1호 영국 영어 인플루언서에게 배우는
박희아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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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분한 21세기 런던에서 셜록의 활약을 그린  BBC 드라마 <셜록> 시리즈를 아주 좋아한다. 아마도 영국식 영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드라마가 시작일 것이다. 영국식 영어하면 독특한 발음과 억양부터 먼저 떠올릴텐데, 사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미국식 영어와는 표현 방식과 문화적 뉘앙스까지 다른 점이 아주 많다. 하지만 딱히 영국식 영어를 공부해야겠다 싶은 계기는 없었는데, 이번에 아주 시선을 잡아끄는 책이 나왔다. 


국내 1호 영국 영어 인플루언서가 런던에서의 오랜 학업과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이 책은 영국식 말투와 생활 감각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국 영어 입문서이다. 




영국식 영어의 발음은 정말 매력적이고 독특해서 자꾸 듣고 싶게 하는 마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영국식 발음 자체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자연스러운 발음에 영국 영어 특유의 억양과 어휘를 더해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지 발음만 익히는 데 긏지 않고 영국의 문화와 소통 방식을 함께 이해한다면 더 흥미롭고 풍부한 배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우선 영국식 회화를 구성하는 기본 표현을 상황별로 만나본다. 영국식 인사라고 해서 미국식과 완전히 다르진 않지만, 영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투나 표현은 따로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이 매일같이 쓰는 인사말인 'Are you alright?'는 안녕? 잘 지내? 처럼 가볍게 주고받는 안부인사이다. 하지만 미국식 영어에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어디 아파? 왜 그래? 처럼 걱정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 'Hi, lovely!' 라든가 'Hiya!' 같은 식의 표현도 영국식 표현이다. 영국인들은 lovely를 다양한 상황에서 정말 자주 사용한다고 하니, 익혀두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킹스맨>도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문장을 꼽으라면 바로 'Manners maketh man'이 아닐까 싶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 짦은 한마디에 영국식 매너의 정수가 담겨 있다. 영국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도 '신사의 나라'인데, 실제로 영국에서는 감사와 사과를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영국식 영어는 제안할 때도 Why don't we ~?, How about ~?, Shall we ~? 처럼 배려와 정중함이 담긴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거적을 할 때도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더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완곡어법을 활용해 부드럽게 표현하는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비가 자주 오는 나라로 유명한 영국답게 '비'와 관련된 영국식 표현도 많았고, 놀라움이나 기쁨 등 감정을 표현하는 영국식 영어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입모양부터 다른 '영국식 발음'에 대해서도 포인트를 콕콕 짚어가며 설명이 되어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TALK, FEEL, SOUND, TEA, SENSE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실전 회화부터 자주 사용되는 표현과 발음, 억양, 그리고 티타임 등 문화적인 부분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영국식 영어에 관심이 있다면 정말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대화들은 MP3 음원으로 제공되는데, QR 코드로 간단하게 접속해서 들을 수 있어 좋다. 영국식 말투와 생활 감각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영국 영어 입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런던 현지에서 담아낸 100% 리얼 영국식 영어를 배우기에 너무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중간중간 날씨, 교통, 돈, 축구, 육아 등 영국인의 일상 속 문화 상식들을 수록해 자연스럽게 영국에 대해서, 그리고 영국식 언어 감각에 대해서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해리 포터, 킹스맨, 셜록 홈스, 그리고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영국의 언어와 문화를 멋지게 보여주는 요소들에 매혹되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영국식 영어의 매력까지 공부해보면 어떨까.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의 차이는 약 5% 정도라고 한다. 사소한 차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작은 차이들이 두 언어의 개성과 매력을 만들어 준다. 같은 영어라도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다르게 쓰이면서 전혀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자, 브리티시 잉글리시의 정수를 배워보고 싶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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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지 마, 인생 안 끝났어 - 인생 9할을 웃음으로 버틴 순자엄마의 65년 인생 내공 에세이
순자엄마(임순자)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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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근데 말이야, 그런 시간도 다 지나가더라고. 그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중엔 별거 아닌 일에도 감사하게 돼. 바람 한 줄기에도 웃음이 나고, 걱정 없이 뜨끈한 밥 먹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워져. 그런 게 인생이야. 그러니까, 오늘 힘들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 버티면 돼.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올 거니까. 진짜로. 버티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거야.             p.19


인생의 9할을 웃음으로 버텨온 순자엄마의 65년 인생 내공 에세이가 나왔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128만 구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순자엄마’ 채널의 주인공이 유쾌함 속에 깃든 '진짜 어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책이다. 충북 제천의 농부이자 유튜버인 저자는 아들 쫑구, 며느리 유라, 그리고 남편과 함께  ‘가족 코믹 시트콤’ 같은 매력을 선보여왔다. 


이 책에서는 면목동 가발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던 14세부터 대림산업, 박달한우, 들깨공장, 박스공장 등 생계를 위해 숨 가쁘게 뛰어다니던 수십 년간의 시간부터 유튜브를 시작하며 뒤바뀐 삶의 궤적까지가 모두 담겨 있다. 친근한 어조로 무심한 듯 툭툭 던져대는 말투가 편안하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은 다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서야 그게 다 자산이 됐다는 걸 알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까 고생도 좀 해보고 그래야 끈기라는 게 생긴다고, 경험을 더 많이 해보라고, 젊어서 고생은 그 자체로 자산이라고 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편한 길로만 가려는 게 있다. 잠깐 일하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죽을 만큼 힘든 경험은 애초에 시작도 안 하는 거다. 하지만 이것저것 부딪혀보고 할 수 있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봐야 나중에 어떤 일이 휘몰아쳐도 툭툭 털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다. 인생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애정어린 조언들이 많아 전 세대의 독자들에게 공감이 되고,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렇게 하루를 잘 살아내고 나면 내일도 다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불안한 마음도 싹 가셔지고 그저 좋은 기운만 갖고 살아가자 싶어. 유명세 좀 얻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면 쓰나. 둘에서 냉이 캐서 국 끓여 먹는 삶은 달라진 게 없는데. 이쯤 살아보면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마음은 언젠가 사라지는 보잘것없는 잡생각이라는 걸 알거든. 그보다는 당장 오늘 뭘 하면서 열심히 사는지가 중한 거야.              p.162


저자는 요즘 인생이 참 공평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대단하게 성공하거나, 돈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마음이 평온하니까 젊었을 때 고생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마음이 왜 이렇게 좋을까, 생각해보다 깨닫는다. '아, 이제는 남하고 이러쿵저러쿵 비교를 안 하니까 이렇게 속이 편하구나.' 라고. 친구들 모임 한번 갔다 오면 맘이 막 쓰리고, 그냥 한없이 초라하고 울적해지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렇게 마음 상할 일도 아니었다고, 결국 인생이라는 게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야, 부러워하면 지는 거야. 왜 남 인생을 부러워 하냐. 내가 니 인생 살아줄 것도 아닌데." 사실 남하고 비교하면 한도 끝도 없다. 남을 부러워하거나, 그들과 비교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좋은 날이 왔다는 저자의 말에는 평범한 듯, 소박한 진심이 담겨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떻게 맨날 햇빛 쨍쨍한 날들만 있겠는가. 비 오고 바람 불고 휘청거리는 날들도 오는 법이다. 저자가 그렇게 힌든 날을 벗어나고 싶을 때 쓰는 방법이 뭐냐면, 바로 '생각 바꾸기'이다. '아이고, 빡세다. 근데 내일은 나아지겄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생이 힘들어? 까불지 마, 인생 안 끝났어!" 라고 호통을 치기도, "오늘도 조졌다고? 별일 아녀. 다 지나가!" 라며 토닥여주기도 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지만, 그런 시간도 결국엔 다 지나간다고, 버티면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온다고 말이다. 절대 순탄하지 않았던 삶을 거쳐온 어른답게, 후회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마음만큼, 불안조차 웃음으로 이겨낸 단단한 내면으로 써 낸 글이기에 더 와닿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얼굴에 다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겪는 크고 작은 경험들이 고스란히 얼굴에 그 흔적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즐겁게 살아왔는지가 고스란히 보인다. 저자의 그러한 무한 긍정 에너지가 이 책 곳곳에 깃들어 있다. 따뜻한 응원이 필요한 당신에게, 든든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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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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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기, 그런데 밀실수집가가 누구예요?"

"흔히 말하는 밀실 살인이 벌어지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다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인물이야."

지즈루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꼭 탐정소설에 나오는 명탐정 같잖아.

"...... 그런 사람이 현실에도 있었군요."

"나도 여태 경찰 조직 내부에서 떠도는 농담 같은 건 줄 알았어. 하지만 보아하니 실존 인물인 듯하네. 그런데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p.41~42


여고생 지즈루는 탐정소설을 좋아한다. 오늘도 점심 쉬는 시간에 공립 도서관에서 빌린 <Y의 비극>을 읽었는데, 깜박하고 두고 와버려서 초저녁 어스름이 깔린 시간에 다시 학교에 온다. 책을 찾아 돌아가려다 음악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발견해 다가가는데, 피아노를 치던 음악 교사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작스럽게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숙직실에 있던 선생님에 가서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음악 교사는 이미 죽었고 범인은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다. 문제는 음악실 문과 창문은 전부 안쪽에서 잠긴 채였다는 것이다. 경찰인 삼촌과 사건 관련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야말로 탐정소설에 나오는 '밀실 살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지즈루는 살짝 흥분한다. 그런데 밀실수집가라는 사람이 삼촌을 찾아온다. 


밀실수집가는 흔히 말하는 밀실 살인이 벌어지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다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경찰인 삼촌 역시 여태 경찰 조직 내부에서 떠도는 농담 같은 건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실제로 만나본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까다롭고, 불가능한 범죄가 벌어졌을 때 홀연히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 왔다. 밀실수집가는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로 콧날이 오뚝하고 눈꼬리가 길며 눈빛이 맑은 아주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는 경찰에게 수사 정보를 물어본 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말한다. "진상을 알아냈습니다." 라고. 이야기가 끝이 나자마자 벌써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것인지 다들 어리둥절한 기분일 때, 그는 놀라운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사건이 교착 상태에 처했을 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사건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하면, 경찰들은 술술 사건에 대해서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밀실수집가는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연기처럼 자취를 감춘다. 마치 마법이라도 부린 듯,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대체 밀실수집가의 정체는 뭘까. 




"밀실수집가를 둘러싼 소문 가운데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치 이번 사건처럼 말입니다."

무카이는 끊임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정확한 신상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다 그렇게나 유력한 경찰 실세와 줄이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건이 일어나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 다음 연기처럼 사라지는 겁니다. 꼭......"                p.322


이 작품은 연작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1837년 교토, 1953년 신주쿠, 1965년 오사카, 1985년 도쿄, 그리고 2001년 후쿠시마까지 각각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벌어진 다섯 건의 밀실 살인 사건이 각각의 이야기이다. 흥미로운 것은 밀실수집가가 해결한 사건들 사이에는 수년에 걸친 시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외모였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그의 존재 자체가 단지 뜬소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를 실제로 만나보기 전에는 말이다. 경찰 내에서도 그를 실제로 만나 보았다는 형사가 없기 때문에 조직 내부에서 떠도는 경찰 특유의 전설이나 농담 같은 무언가인 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다들 밀실살인이 벌어지고 나서 밀실수집가가 등장하면 당황스러운 기분부터 드는 것이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작품은 <붉은 박물관>, <기억 속의 유괴>로 이어지는 '붉은 박물관' 시리즈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12년에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구성과 트릭이라는 작가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시리즈물과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이후에도 수수께끼 풀이에 천착하는 본격 미스터리를 꾸준히 집필해 왔는데, 특히나 단편의 명수로 불릴만큼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완성도가 뛰어나다.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트릭, 치밀한 구성과 복선,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다른 시간대로 만든 것은 슬쩍 나타나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아무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는 밀실수집가라는 캐릭터에 더욱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왜 그는 나이를 먹지 않고, 밀실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것인지, 그의 이름은 무엇이며, 직업은 뭔지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과연 그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질 것인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직접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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