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의 뇌과학 - 매일 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잠과 꿈에 관한 거의 모든 과학
라훌 잔디얼 지음, 조주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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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꿈이 펼치는 마법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꿈을 꿀 때 우리는 육체를 초월한다. 어느 순간, 더는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눈을 감고 있지만 앞을 볼 수 있으며, 몸은 가만히 있지만 꿈속에서 걷고, 달리고, 운전하며 심지어는 날 수도 있다. 또한 입은 다물고 있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살아 있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현재에 존재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미래로 떠날 수도 있다.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곳이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다... 매일 밤 펼쳐지는 경이로움, 그것이 바로 꿈이다.           p.12~13


누구나 매일 밤 자면서 꿈을 꾼다. 그것은 악몽이 될 수도 있고, 다가올 일에 대한 예지몽이 될 수도 있으며,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거나, 가고 싶었던 곳을 가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꿈을 꾸는 것일까? 그리고 그 꿈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신경외과 전문의인 저자가 꿈을 꾸는 동안 인간의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꿈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어디에서 오는지, 대체 꿈이란 무엇인지 등 다양한 질문에 과학적인 대답을 들려준다.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와 그 사이 존재하는 수조 개의 연결로 이루어진 우리의 뇌가 꿈이라는 현상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그 원리를 알고 보면 그 속에 숨겨진 잠재력이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꿈에는 의미가 있으며, 나는 우리가 꿈을 꾸기 위해 진화했다고 믿는다.'라는 저자의 말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꿈은 비일관적이고, 무작위적이고, 초현실적일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꿈에도 규칙이 있고, 한계가 있으며, 실제로 불안한 감정을 치료해주거나 영감과 창의성과 연결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꿈이 가진 진화적 이점과 가치에 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그 외에도 자각몽과 악몽, 야한 꿈의 기원, 꿈을 조작하는 방법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꿈을 해석하려면 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기억해야 한다. 살펴본 것처럼, 꿈은 매일 밤 일어나는 뇌의 활성화와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로, 고도로 감정적이고 시각적이며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감정과 시각적 연결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들이다. 따라서 꿈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나는 꿈을 이해하기 위해 꿈의 감정적, 시각적 측면, 즉 꿈의 핵심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2단계 접근법을 고안해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강조하는 것은 꿈에서 경험하는 시각적, 감정적 경험이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도의 강도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             p.275


악몽에 시달리던 55세 남성이 있었다. 그는 어른이 된 후에도 종종 악몽을 꾼 적이 있었지만, 최근에 악몽을 꾸는 빈도가 너무 잦아 걱정이 된다고 병원을 찾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자는 참전 용사인 그가 악몽을 꾸는 것이 PTSD의 증상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가 꾸는 악몽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동물들'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그가 자주 꾸는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가 조현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꿈과 깨어났을 때의 환각, 그리고 망상이 섞인다는 그의 증상이 조현병의 증상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꿈을 꾸는 동안 같은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의 얼굴을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행히 정신 질환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에게 '뇌와 신경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꿈이 깨어 있는 삶, 즉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준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꿈을 꾸면서 보내면서도 왜 꿈을 꾸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시간으로 계산했을 때 인간이 인생의 3분의 1을 꿈을 꾸며 보낸다고 하니 말이다. 자신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꿈을 꾼다. 꿈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뇌가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던 꿈이 하는 일들이었다. 꿈은 상상력으로 창의성을 발현시켜주고,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항할 수 있게 해주며, 우리에게 닥칠 신체적·정신적 위험에 신호를 보낸다. 그렇다면 꿈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정신적 작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벌어지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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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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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대체 어떻게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거니?"

자,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두 번째 이유를 말할 차례죠? 헥사에서 일한 처음 며칠 동안은 약간 정신이 나간 상태였거든요. 온정신이 다른 일에 쏠려 있었고 당시 동료들과 대화가 많지는 않았지만 일이 머리를 식혀주었어요. 또 우리 노동 환경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기 시작할 때쯤에는 이미 그 환경에 익숙해져버린 후여서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요? 무슨 헛소리냐 싶죠?            p.35


케일리는 전 연인에게 이용당하고 재정이 거의 파탄 난 상태였다. 근무하던 콜센터보다 높은 시급을 주는 '헥사'라는 회사에 취직하게 되는데, 그곳은 업무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케일리가 하는 일은 온라인 상에 올려지는 콘텐츠들을 점검해 삭제하는 일이었는데, 하루에 500개의 클립을 확인해야 했다. 어떤 소녀가 아주 무딘 주머니칼로 자기 팔을 쑤시는 실시간 방송을 봐야 했고, 어떤 남자가 자신의 독일셰퍼드를 발로 세게 차는 영상도 있었다. 두 아이가 서로를 노려보며 위험한 정도로 많은 양의 시나몬을 입에 욱여넣는 영상이며, 히틀러를 찬양하는 노래 영상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않는 이미지와 영상들을 매일 지켜봐야 했다. 


모두 좀비처럼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서 스스로 뭘 하는 줄도 모르고 깊게 빠져들었다가 갑작스럽게 수만 가지의 역겨운 이미지 폭탄을 맞아 뇌의 신경회로가 거의 즉각적으로 끊어지는 일을 매일 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책상에서 일어서면 곧장 스톱워치가 작동하는 열악한 노동 조건까지 그야말로 최악의 근무 환경에 있었다. 하지만 케일리는 돈이 필요했고, 그곳에서 버텨내려고 한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은 그러한 업무 내용으로 인해 우울해하고, 편집증으로 인해 테이저건을 들고 잠자리에 들고, 슈퍼마켓에서 누군가 뒤에 서 있으면 움찔하는 등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되고, 점차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야기는 케일리가 그곳을 나와서 ‘헥사’에게 하청을 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거대 플랫폼 회사를 고소하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그간의 일에 대해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덕분에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에세이라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었다. 극중 수많은 이야기들이 현실의 그것과 교차되고, 중첩되면서 점점 더 진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이미지에 대한 장기적인 노출로 인한 2차 트라우마는 우울증과 불안, 강박적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스티틱 씨, 당신이 배포한 언론 보도 자료에 이렇게 쓰여 있었던가요? 그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들어맞는 말이었어요. 하지만 시흐리트와 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우리 중 누가 강박적 사고를 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로서는 정말 시흐리트를 믿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화요일 오후에 부품 창고에서 왼쪽 선반에 휴대폰을 세워두는 것도 내버려둘 정도였으니까요.            p.159~160



매일 같이 소셜 미디어에는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고, 수십 억명의 사람들이 그러한 게시물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뿐만 아니라 다크웹을 비롯해 각종 불법적인 사이트까지 더하면 그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고 말이다. 물론 합법적으로 아무나 이용 가능한 소셜 미디어에도 유해한 게시물들이 수시로 업로드 된다. 나 역시 거의 매일 스팸 댓글이나 쪽지 등을 차단, 신고하지만, 그것들이 영원히 없어지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이 작품은 그렇게 소셜 미디어에 유해 게시물로 신고된 게시물들을 검토하고 삭제하는 일을 하는 콘텐츠 감수자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소위 온라인 청소부인 이들은 전 세계에는 사람들이 신고한 게시물을 면밀히 검토해 ‘디지털 쓰레기’에 해당하는 경우 플랫폼에서 삭제한다. 하지만 선정적인 묘사, 혐오 표현, 강간, 자살 시도, 학대, 참수 장면… 등을 매일같이 화면으로 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온라인의 '유해 콘텐츠'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소설로 그려내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우울증과 편집증, 음모론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 그들의 일상은 결코 전과 같아질 수 없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 소설은 우리가 외면하고, 모른 척 해왔던 소셜 미디어의 불편한 부분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을 통해 디지털 세계의 알려지지 않은 그 이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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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지 마 과학! 19 - 라면 먼저? 수프 먼저? 놓지 마 과학! 19
신태훈.나승훈 글.그림, 홍훈기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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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37만 부, 일본에서 63만 부가 넘게 판매된 대한민국 대표 학습 만화 <놓지 마 과학!> 시리즈 19권이 나왔다. 초등학교 교과 과정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과학적 질문들을 기발하고 재미있게 풀어내어 자연스럽게 과학에 재미를 붙이고 그 원리를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학습 만화이다. 


학습적인 요소만 담은 만화가 아닌 유머러스한 에피소드와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스토리가 더해져 예측할 수 없는 재미를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놓지 마 과학!> 시리즈는 <놓지 마 정신줄!>의 정신이, 정구와 함께 교과서 과학 지식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정신줄 놓은 대학생, 정신이는 낮에 자고 저녁에 일어나 밤새 게임을 하는 것이 생활이지만, 과학에는 천재적인 소질이 있어 모르는 것도, 못 만드는 것도 없는 캐릭터이다. 정신이의 여동생 정주리, 고3 수험생이지만 공부보다 밥 먹는 것과 만화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신이의 사촌 동생인 정구는 정신이한테 과학을 배우면서 사고를 치는 게 주요 일과다. 이 세 명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만년 과장 아빠, 이 집의 최고 권력자인 엄마까지 엉뚱발랄한 가족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번 19권에서는 달에서 내 몸무게는 어떻게 될까? 과학적으로 라면을 더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뜨거운 것을 만지면 왜 귀를 잡을까? 하품을 하면 왜 눈물이 날까? 모기는 왜 피를 빨아 먹을까? 철새들은 어떻게 길을 잘 찾을까? 등등 초등 3~6학년 과학 교과와 연계된 12가지 주제의 알찬 과학 정보들을 만날 수 있다. 


정신이가 탐정이 되어 사건 해결을 위해 활약했던 전편들에 이어 이번에는 오랜만에 일상 단편 에피소드 구성으로 돌아왔다. 신체검사를 앞두고 다이어트에 돌입한 주리의 이야기와 라면을 잘 끓이는 방법을 두고 주리와 정구가 논쟁을 벌인 이야기, 무시무시한 마그마 김치찌개를 둘러싼 작은 사건, 낚시하러 갔다가 지렁이의 초록색 피에 혼비백산한 사연 등 그야말로 정신줄 놓고 깔깔거리게 만드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웃으며 읽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과학 지식이 쏙쏙 들어오는 학습만화답게 이번 19권부터 새로운 학습 코너 '정신이의 과학 신문'가 생겼다. 사진과 그림이 수록된 신문 형식으로 구성해 만화 속 과학 지식들을 꼼꼼하게 짚어볼 수 있도록 했다. 압력과 끓는점의 예술, 햇빛을 쬐는 동안 만들어지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 모기에 물리지 않는 방법, 철새들이 길을 잃지 않고 사는 곳을 옮겨 다니는 방법 등 과학을 좀더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함께 제공되는 부록인 파워 카드 10장으로 책을 다 읽고 놀이를 통해 내용을 복습할 수 있다. 중요한 과학 상식을 뽑아 퀴즈로 만들었는데, 앞면에는 질문과 귀여운 캐릭터가 있고, 뒷면에 퀴즈의 정답이 수록되어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교과의 내용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연관되어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과학 원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놓지마 과학!> 시리즈는 그렇게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질문을 통해 과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신줄 놓고 즐기다 보면 모든 과학 지식을 저절로 습득하게 마성의 학습 만화! <놓지마 과학!> 시리즈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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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잡초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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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밟혀도 밟혀도 다시 일어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잡초 같은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잡초처럼 끈질기게 버텨야 한다.”라고 말하며 ‘노력’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잡초의 실제 모습은 다르다. 사실 잡초도 밟히면 일어날 수 없다. 한 번 정도는 모르지만 몇 번을 계속해서 밟히면 일어날 수 없다. 밟히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잡초의 진짜 모습이다. 이 모습에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래서야 잡초의 정신을 내세우기도 민망하다. 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잡초의 강인함이다.              p.25


보통 잡초는 바라지 않는 곳에 자라나는 식물이라고 정의된다. 다시 말하면 방해가 되는 풀, 즉 훼방꾼인 것이다. 하지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훼방꾼'이라고 여기면 그저 그런 잡초일 수 있지만, 그것이 이제껏 본 적 없는 가치를 지닌 식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기도 한 것이다. 


길이나 밭, 공원 등 인간이 만들어낸 곳에서 자라는 잡초, 사실 이런 곳은 자연계에는 없는 특수한 환경이다. 그러니 잡초란 쓸모없는 식물이 아니라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고 특수한 진화를 이룬 특수한 식물'인 것이다. 




매일 물을 주는 화단의 화초들까지 시들어버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아무도 물을 주지 않아도 길가의 잡초들은 싱싱하게 잘 자란다. 그 이유는 뭘까. 아스팔트 틈새나 보도블록의 경계 같은 장소에서도 잡초는 꽃을 피운다. 재미있는 것은 잡초를 흔하고 하잘것없는 식물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잡초가 어디서나 자라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잡초는 각각 자신 있는 장소에서 자란다. 풀이 자주 베이는 장소에는 자주 베여도 자신 있는 잡초가 자라고, 잘 밟히는 장소에는 밟히는 데 자신 있는 잡초가 자란다. 풀베기를 당하는 장소의 잡초는 생장점이 낮고 풀베기를 당해도 충격이 적은 형태를 띠는 것들이 많고, 잘 밟히는 장소에서 자라는 잡초는 줄기를 옆으로 뻗거나 잎을 땅바닥에 붙여 펼치는 식으로 밟혀도 충격이 적은 형태를 갖춘 것들이 많다. 역경을 기회로 이용하는 잡초의 전략은 그들의 놀라운 생명력과 연결된다. 



사실 잡초는 식물 도감에 기재되어 있는 것과 다른 생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봄에 핀다고 씌어 있지만 가을에 피거나 1미터 정도의 키로 자란다고 쓰여 있지만 10센티미터 정도에서 꽃을 피우는 경우도 있다. 잡초는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식물이다. 그러나 잡초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잡초는 예측이 어렵고 변화가 심한 장소에서 자란다. 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환경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변화한다... 당연한 모습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잡초는 강하다.                p.178~179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척박한 곳에서 홀로 싹을 틔우기 위해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하는 잡초들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자연계에서 살아남은 위대한 식물인 것이다. 잡초는 진화 과정에서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곤충이 찾아오지 않는 환경도 있었고 동료로부터 고립되어 딴꽃가루받이를 할 수 없었을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들 속에서도 잡초는 살아남기 위해 환경의 변화들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켜왔다.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이자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쉽고, 재미있게 식물학에 대한 풍성한 지식들을 풀어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을 기회로 바꾸고 살아남기 위해 도전하고 분투하는 잡초들의 지능적인 전략들을 정리했다. 바랭이, 금방동사니, 애기땅빈대, 개미자리, 둑새풀 등 처음 이름을 듣는 식물도 있었고, 광대나물, 민들레, 닭의장풀, 달맞이꽃, 질경이, 제비꽃, 갈대 등 익숙한 식물들도 있었다. 조용한 생존경쟁의 비밀, 서로 보탬이 되는 윈윈 전략, 불안전한 환경을 이겨내는 발아 전략,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진화 전략,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응 전략이라는 5개의 카테고리로 식물들을 분류해 알아보기 쉽도록 했고,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대부분 밭이나 정원에서 발견되는 낯선 식물들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이걸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녀석을 없애면 다른 녀석이 자라날 공간이 넓어질 뿐이다. 그야말로 잡초는 식물계의 깡패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민들레가 정원을 소유한 어른들에게는 없애버려야 할 꽃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잡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들의 생명력에 주목해 그들의 놀라운 센스와 수완을 배울 수는 없을까라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이 책을 써냈다. 애기땅빈대에게 위만 바라보지 않고 옆으로 뻗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개미자리를 통해 무엇이 내게 가장 소중한지를 돌아보고, 살갈퀴에게 달콤한 보상을 준비해 조력자를 고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광대나물에게는 머리 좋은 상대를 선별해서 손을 잡는 수완을 배우는 식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식물학 책이지만, 일종의 자기계발서처럼 읽을 수도 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잡초의 전략을 통해 그들처럼 현명하고 다양한 우리만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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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양말이 사라졌어 스콜라 어린이문고 41
황지영 지음, 이주희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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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리는 발이 자주 시렸다. 부모님에게 혼났을 때, 같이 놀 친구가 없을 때, 아무도 자기 마음을 몰라줄 때, 더 발이 시리곤 했다. 아무도 그런 규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돌아가신 제주도 할머니만은 유일하게 규리 마음을 알아주었다. 마음이 시려서 발이 시린 거라고, 발목에 귤을 수놓은 주황색 귤 양말을 직접 떠 주셨다. 귤 양말을 신으면 할머니 손이 규리의 시린 두 발을 감싸 주는 것처럼 포근해서, 늘 신고 다니곤 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귤 양말 한 짝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규리는 자신의 귤 양말 한 짝을 신고 있는 낯선 아이를 거실에서 발견한다. 바로 눈물 도깨비 루이였다.




눈물 도깨비 나라에 사는 도깨비들은 인간들의 눈물에서 태어나 눈물로 만든 소금을 먹고 산다. 그래서 눈물을 모으러 다니는데, 머리끝까지 눈물이 가득 찬 인간을 찾아 눈물 주인의 양말을 신고 걸어 다니며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다. 눈물이 인간들을 삼켜 버려 슬픔 속에 갇히기 전에 도와주는 것이다. 루이는 규리와 규리 엄마의 눈물을 닦으러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규리는 자신의 귤 양말을 돌려 받고 싶었고, 절대 신으면 안 된다는 루이의 말을 어기고 양말을 신었다가 교실이 눈물 바다가 되고 만다. 결국 규리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눈물로부터 구하기 위해 도깨비 나라로 향하게 되는데, 다른 도깨비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눈물 닦기 대작전을 성공해낼 수 있을까.




눈물 도깨비 루이는 귤 양말을 규리에게 다시 준 벌로 일 년 동안 빨래꾼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눈물을 짜낸 양말을 깨끗이 빨아서 너는 일인데, 엄청난 양의 양말을 혼자서 빨아야 한다. 대신 다른 도깨비가 규리에게 나타나 루이가 주고 간 양말을 찾으러 왔다고 말한다. 규리는 아이들이 온종일 울고 있다고, 제발 울음을 멈추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말하지만, 루이가 여기 올 수 없으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던 규리는 눈물 도깨비 나라에 몰래 따라가게 되는데,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늘에는 별이 빼곡했고, 은하수는 선명하게 빛이 났으며, 나무와 꽃들도 울창하고 탐스러웠다. 가로등은 전구가 아니라 눈물을 채운 병이었고, 집들의 벽마다 알록달록하게 양말 모양이 있었다. 그곳에서 수레에 양말을 산처럼 쌓아둔 채 빨래를 하고 있는 루이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함께 친구들을 돕기 위해 나선다. 그렇게 눈물 도깨비들과 인간이 함께 해내는 아주 특별한 모험이 시작된다. 




눈물을 닦아 주는 양말 도깨비라니...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설정이다.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더라도, 크기가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도 말이다. 손으로 만져지는 눈물뿐만이 아니라, 꿀꺽 삼킨 눈물들도 있게 마련이다. 눈물이 나쁜 건 아닌데, 사람들은 자꾸만 눈물을 참으려 한다. 이 작품은 그렇게 눈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꼬르륵 가라앉기 전에,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우리를 토닥여 준다. 주위를 둘러 보면 우리는 결코 혼자라고 아니라고, 시린 발을 감싸주는 귤 양말처럼 그들의 존재가 우리를 포근하게 안아줄 거라고 말이다. 서로에게 눈물 도깨비가 되어 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슬픔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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