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체파리의 비법 팁트리 주니어 걸작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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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성과 인간은 같지 않다고 말했던 그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은 여전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가지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웠고, 또 감탄스러운 만큼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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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빵빠라빵 여행
야마모토 아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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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의 유명 빵집들을 순례하면서 다양한 빵들을 하나씩 맛보고 소개해주었던 <역시 빵이 좋아!>에 이어 이번에는 핀란드와 덴마크의 빵을 맛보겠다는 생각으로 무모하게 시작된 두 여자의 여행을 그린 북유럽 빵 만화 여행기이다. 빵을 찾아 북유럽으로 떠나다니 거기다 절친 빵 마니아도 함께 말이다. 생각만 해도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려 편의점 빵이다. 홍콩에 가면 정말 아무데서, 아무 빵이나 사도 다 맛있을 것 같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던 너무 맛있었던 편의점 빵!!!!!!!

 

 

해외여행을 가서 빵 홀릭에 빠졌던 적이 당연히 나에게도 있는데, 북유럽은 아직 가보지 못한지라 그곳이 나에겐 홍콩이었다. 홍콩의 유명한 에그타르트를 비롯해서 디저트들과 베이커리, 케익류도 물론 좋았지만, 가장 쇼크였던 건 편의점에서 팔던 빵이었다. 숙소인 호텔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편의점에 아예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빵들의 맛이 웬만한 베이커리 못지 않았던 거다. 게다가 가격도 얼마나 저렴하던지, 우리 돈으로 천원 정도했던 커다란 곡물 빵이 너무 담백하고 고소해서 여행 기간 내내 아침에 먹었던 기억이 난다. 호텔에서 조식을 배불리 먹고 나와서 또 편의점에 들러 빵을 샀는데, 그럼에도 먹을 때마다 맛있어서 감탄했다. 공장에서 만들어 오는 빵이 아니라 매장 뒤편 어딘가에서 직접 구워서 오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빵을 사려는 사람들도 많았고, 조금만 늦게 가도 인기 있는 빵들의 칸은 휑하니 비어 있기도 했다. 어쩜 이 나라는 편의점 빵 마저 맛있단 말이냐. 싶어서 굉장히 부럽기도 했던 경험이었다.

 

이곳은 괌이다. 너무 달아! 너무 달아!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시나몬 롤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정말 단맛의 끝장을 보여주었던,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시나몬 롤을 맛볼 수 있다!!

 

 

 

괌에서 먹었던 단맛의 극치를 보여주는 끝장나게 달콤했던 시나몬 롤, 오키나와에서 먹었던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고 은은한 닷 맛이 인상적이었던 슈크림빵, 오사카에서 먹었던 고소한 풍미에 결이 살아있던 초코크로와상, 교토에서 먹었던 심플한 외관에 비해 너무 맛있었던 카루네, 대만에서 먹었던 엄청난 크기의 치즈카스테라 등등... 해외 여행을 가서 맛집을 찾아 다니는 거야 다들 하는 거지만, 나는 항상 빼놓지 않고 빵 투어를 다니곤 한다.

<북유럽 빵빠라빵 여행>은 핀란드, 덴마크 등 각국의 특징에 맞는 독특한 빵들이 가득했다. 산미가 강한 호밀빵을 햄버거 번으로 사용한 핀란드의 햄버거도 궁금하고, 버터 풍미 가득한 덴마크의 데니시도 너무 먹어 보고 싶었다. 빵이 주식인 나라는 햄과 치즈의 종류가 다양한 편인데, 그래서인지 햄버거, 샌드위치 등의 메뉴가 굉장히 탐이 났다. 새우, 파프리카, 아티초크, 청어, 해물토마토 소스, 올리브 페이스트까지 다양한 재료가 토핑된 스페인식 오픈 샌드위치도 굉장히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말이다.

게다가 두 여자의 여행기도 함께 실려 있어 빵에 관한 소개 외에도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도 매우 재미있다. 산타 마을, 무민 미술관을 찾아 가는 것도, 기차에서 떠들다 현지인에게 혼나는 것도 말이다. 그렇게 여행을 끝나고 출국길에 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질리지가 않아." "빵은 짱이야."라고. 내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라서 말이다. 사실 "매일 빵만 먹고 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가 나의 모토이다. 뭐 그럴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핫..

이들의 다음 여행기인 '런던편'이 작년 11월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영국의 빵은 어떤지 너무 궁금하다. 야마모토 아리의 빵빠라빵 여행이 앞으로도 계속 되어 세계 곳곳의 빵들을 소개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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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6-04-18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티비에서 우연히 빵 맛집 탐방하는 백종원님 보고서 침을 꼴깍 삼키느라 힘들었는데 피오나님 글 읽으니 당장 빵집으로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ㅎ 저는 익숙한 빵집만 찾아다니는 편이였는데 이곳저곳 투어를 다녀봐야겠어요 ㅎㅎ

피오나 2016-04-18 17:51   좋아요 0 | URL
하핫..저도 그 방송봤어요!! 빵 맛집 편이라 챙겨봤지요ㅎㅎ 해피북님도 저처럼 빵 좋아하시나봅니다^^

cyrus 2016-04-18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몸이 탄수화물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살 안찌는 완벽한 체질이었으면 빵을 실컷 먹었을 겁니다. ^^

피오나 2016-04-18 23:35   좋아요 0 | URL
사실 제일 중요한 부분이죠. ㅋㅋ 빵이란 다이어트와는 정반대의 행성에 존재하는 음식이니까요ㅋㅋㅋ
 
역시 빵이 좋아!
야마모토 아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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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주 어릴 때부터 나의 빵 사랑은 매우 유별났다. 오죽하면 엄마가 "너 그냥 빵집 사장한테 시집가라"고 하셨을 정도였으니 뭐.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제과점을 운영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었다. 더 나이가 들고 나니, 그냥 원하는 빵을 어디든 가서 사 먹을 수 있도록 함께 빵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면 되겠구나.로 생각이 바뀌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내 남편은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가.. 역시 사람이 이상형을 만나 결혼하기란 쉽지가 않은 일인가 보다. 하핫..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 중에는 서울의 온갖 빵과 케잌 맛집을 다니면서 데이트를 했고, 결혼 후 임신 중에도 나의 빵 사랑은 이어졌는데... 배속 아기에게 빵이 좋지 않다는 둥, 임신 중에 빵을 많이 먹으면 아기에게 아토피가 생길 수 있다는 둥.. 주변에서 하도 말들이 많아 눈물을 머금고 빵 금식을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좋은 재료를 사용한 빵은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국내산 유기농 밀을 사용하거나 계량제나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발효종으로 만드는 빵을 찾아 다니며 먹기도 하고, 버터나 계란 없이 만드는 채식 베이킹 방법으로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이제 17개월이 되는 우리 아들도 벌써부터 나처럼 빵을 엄청 좋아하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 닮아서 그렇다며 남편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그래도 빵순이로서 우리 아들이 빵돌이가 되는 것은 언제든 환영이다.

이런 나에게 마치 선물 같은 책이 출간됐으니, 바로 야마코토 아리의 만화 <역시 빵이 좋아!>이다. 야마모토 아리가 조리사 면허를 갖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라 그런지, 각종 빵에 대한 묘사와 설명은 가히 전문가 수준이다. 그래서 만화지만 웬만한 빵 레시피 북 못지 않게 정보가 가득하고, 군침이 도는 장면들이 많다고 할까. 저자는 빵에 죽고 못 사는 친구 아코와 함께 71종에 이르는 일본의 온갖 빵들을 맛보며, 그 재료와 특징, 크기, 맛과 냄새, 제빵 기법, 곁들이기 좋은 것 등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나 이 책이 나같은 빵 마니아에게 너무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실사를 방불케하는 먹음직스러운 빵 일러스트이다. 만화로 보여지는 부분 자체는 다소 성의 없다고 느껴질 만큼 간단, 대충인데, 빵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와 정반대로 마치 사진 같다고 보일 만큼 세세하고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일본의 유명 빵집들을 순례하면서 다양한 빵들을 하나씩 맛보고 소개하는 만화이다 보니, 책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부록에 만화 속 빵을 판매하는 빵집들의 주소와 영업시간 등의 정보가 수록되어있어, 일본 여행욕구를 마구 불러일으킨다. 일본에 가는 친구들이 늘 사오곤 하던 '도쿄바나나' '긴자딸기니 하는 건 당분간 잊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탐나는 빵들이 많아 곧 일본에 갈 예정인 그들에게 당장 이 만화를 보여주고 싶어진다.

우리나라에도 야마모토 아리같은 작가가 유명 빵집들을 순례하면서 이런 책을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국내에도 전국 곳곳 빵 맛집들이 가득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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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할머니와 함께 요리를 - 토스카나에서 시칠리아까지, 슬로푸드 레시피와 인생 이야기
제시카 서루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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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음식의 특징은 정확한 계량이 아니라 대충 손짐작으로 넣는 재료들과 분명 냉장고에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얼마 안 있으면 뚝딱뚝딱 마술처럼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아닐까 싶다. 우리 엄마도 이제 손자에겐 할머니가 되었는데, 어릴 때 가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는 너무 맛있어 방법을 물어보면 대부분 적당히, 한 움큼, 살짝 등등 이해할 수 없는 계량 법을 알려 주곤 했다. 그게 뭐야. 했는데 지금 내가 엄마의 입장이 되고 보니 매일매일 음식을 만들면서 쌓이는 노하우라는 것이 정확한 레시피와 계량 법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렇게 매일같이,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해온 할머니들의 음식이 맛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내공이란 그 누구도 쉽게 따라 하거나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일 테니 말이다.

 

 특히나 유럽의 음식문화와 재료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약간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 할머니들의 집밥이었다. 언젠가 여행 프로그램에서 현지 이탈리아 할머니들의 소박한 밥상을 본 적이 있는데, 화려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음 음식이었지만, 이상하게 따뜻하고 푸근하고, 맛있어 보였다. 그러니 유명 셰프인 저자가 1년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며 12명의 할머니들에게 그들의 요리를 맛보고 그들의 삶과 지혜를 배우는 이 여정은 나에게 꿈같은 일정이 아닐 수 없었다.

라 미아시아는 코모 호숫가의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 먹던 케이크로, 변변찮은 재료로 만들어내는 맛난 요리다. 조반나의 얘기로는 라 미아시아는 레시피랄 게 전혀 없고, 그저 알뜰한 주부가 묵은 빵과 농익은 과일, 신선한 우유로 난로의 벌건 잉걸불에 구워내는 즉석 디저트다. 이 케이크는 만들 때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한다. 묵은 빵이 부드럽고 달콤한 라 미아시아로 멋지게 변신하는데, 크리미하고 촉촉하면서 위쪽은 살짝 바삭 하다. 오후에 차와 함께 먹기도 하고, 따끈한 아침식사로 내기에도 손색이 없다.

저자가 셰프이기 때문에 요리 과정과 재료에 대한 묘사 또한 매우 정확하고, 또한 할머니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더해져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이탈리안 슬로푸드 레시피북'이 탄생했다. 12명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81가지 레시피는 재료와 계량 법, 만드는 순서 외에도 저자만의 맛깔스런 설명이 덧붙여져서 완성된 요리의 사진을 보지 않아도, 요리에 대한 설명만으로 침이 꿀꺽 넘어가게 만들어준다. 레시피 자체보다 그들만의 팁이 더욱 재미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뭉근히 조린 밀라노 키트롤인 인볼티니에 대한 설명 중에 이 요리를 마마 마리아 할머니가 즐겨 만드는 이유가 바로 '하루 전날 만들어두었다가 먹을 때 다시 데우면 되기 때문에 부엌이 깨끗하고 식사 시간이 덜 부산하다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녀는 일요일에 딸과 손주들이 식사를 하러 오면 폴렌타와 함께 인볼티니를 만들어준다는데, 레시피 자체보다 그녀가 즐겨 만드는 그 이유가 확 와 닿아서 나도 손님 접대용으로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손님 접대를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 주부라면 아마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하루 전날 만들어서 다음날 데워도 맛있는 음식이 있고, 미리 재료만 준비해서 꼭 당일 날 조리해야만 하는 음식이 있으니 말이다. 다리아 할머니의 페스토 소스와 함께 내는 야채 스프 처럼. 왜냐하면 이 야채수프는 조리한 당일에 먹어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조리한 다음 날 식탁에 낼 경우에는 다시 데울 때 반드시 근대와 그 줄기를 추가로 넣어야 한단다. 싱싱한 근대를 넣어 데우면 수프 색이 멋지게 살아나기 때문이라나.

 

그리고 저자가 '몸과 마음을 두루 치유할 수 있는 집'이라 표현한 우샤 할머니의 집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녀의 제빵 기법도 재미있었고, 요가를 통해서 구축한 그녀의 인생관도 멋있었기 때문이다. '영혼의 디저트' '견과의 믿기지 않는 풍미' 한 번의 솜씨 발휘로 달콤한 마법의 손가락을 가졌음을 보여준다'는 식의 표현만으로 그녀의 빵들에 대한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견과류를 올린 파삭한 달걀 케이크, 세 종류의 사과 케이크, 아주 얇은 아몬드 조각 케이크, 어느새 농익은 길쭉한 자두로 꽉 채워 구운 자두 타르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이즐넛 롤까지. 저자와 우슈는 천천히, 체계적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요리를 만들어갔다고 한다. 우샤의 요리 접근법은 '절제와 탐닉의 만남'이라고 했는데, 그녀가 빵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요리 방법에 대해 마법 같다고 생각이 될 정도였다.

 

 

'세상 어떤 것도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아요. 인생은 항상 꿈일 뿐. 인생은 단단히 굳어 있지 않은 무한한 빈 공간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죠.'

 

이 책이 단순한 레시피 모음집을 넘어서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요리를 통한 여행의 여정과 오랜 세월을 겪어온 그녀들의 삶에 대한 통찰들은 웬만한 에세이북 못지 않게 뭉클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이었으니 말이다.

요리를 하면서, 또는 요리뿐 아니라 인생의 어떤 일이든 그 대상을 존중하고 품위를 지키면서 순간순간 정성을 다하면, 그 재료가 틀림없이 맛깔 나고 깨달음을 주는 의미 있는 경험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깨닫게 되었다. 이 진리가 확실하고 명확하게 적용되는 대상은 음식이지만(맛과 감각은 위대한 매개체이므로), 내 몸의 건강과 건전한 인간관계에도 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를 표현하는 우샤의 주된 수단은 요가와 명상이었고, 내 경우는 요리였다. 우리는 버터와 설탕을 요리하며 만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인생을 배웠다.

직접 밭에서 가꾼 채소, 집에서 기른 가축, 바다에서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사용한 이탈리아 집밥들은 마치 영혼을 채워주는 것 같은 음식들이었다. 애초에 슬로 푸드라는 것 자체가 식문화 운동의 하나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음식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음식 문화의 전통을 계속 이어가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세계 각국의 음식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데 목적을 두고 시작된 이것은 이탈리아인이 처음으로 각 나라의 전통 음식을 지키자는 취지로 발의했다고 한다. 정성껏 키운 재료들로 시간과 정성을 다해 만드는 음식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삶에 대해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다. 바쁜 현대인들이 패스트푸드에 길들여 건강을 해치는 것을 걱정하는 우리네 엄마들, 할머니들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일 테고 말이다.

 

한 그릇의 요리가 삶을 바꿀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요리란 쓰는 식재료와 먹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이들 모두에게 귀를 기울이는 소통의 한 방법이기도 하니 말이다. 카를루차 할머니가 요리를 할 때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이라고 가르쳐준 것처럼. 누구를 위한 음식인지. 음식을 먹을 사람들이 행복한지 혹은 위안이 필요한지. 비를 맞아 뼛속까지 한기가 든 상태인지, 아니면 덥고 땀이 났는지 고려해야 궁극적으로 음식을 요리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 내 친구와 가족에게 최고의 맛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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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아이들 1부 : 동굴곰족 1 대지의 아이들 1
진 M. 아우얼 지음, 정서진 옮김 / 검은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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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존재가 원래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를 진짜처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소유자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아주 오랜만에 그 한계를 넘어선 것 같은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그 동안 그래도 꽤 많은 양의 다양한 책들을 읽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언제 선사시대에 관련된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던가 자문해봤다. 사람들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 나다 해도, 선사시대 자체를 고증해서 재현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인지, 그에 관한 소설은 여지껏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크로마뇽인' '네안데르탈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라니. 네안데르탈인이 유인원에 가까운 미개한 원시인이었던 걸로만 알았던 나에게 이 소설은 굉장히 놀랍고도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의 발걸음을 내딛게 만들어 주었다. 정말 진정한 '상상력의 끝판왕'이라고나 할까.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구축하고 만들었을까 내내 감탄하면서 말이다. 배경은 무려 3 5천년 전의 빙하기이다. 크로마뇽인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네안데르탈인이 서서히 사라지던, 두 인간 종족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작가의 상상력은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두 인류 간 교집합을 만들어내고, 석기시대의 생활상에 대한 어마어마한 고증은 우리에게 실제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매혹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고 나서 목우르는 그의 커다란 두뇌가 가진 힘을 활용했다. 그들은 전두엽이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고 미숙한 발성기관으로 인해 언어 사용도 제한된 원시인이긴 했지만, 독특하게도 커다란 두뇌를 가졌다...........또한 그들의 기억이야말로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본능이란 이름으로, 조상의 습성에서 유래한 무의식적 지식이 발달되어 있었다. 커다란 두뇌 뒤쪽에 저장된 기억은 단지 그들 자신의 기억일 뿐 아니라 선조의 기억이기도 했다. 그들은 조상에게서 배운 지식을 불러올 수 있었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더 멀리 나아갔다. 종족의 기억은 물론 자신의 진화과정까지 기억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저 아득한 과거까지 더듬어 돌이켜보면 텔레파시가 통하듯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간직된 기억들이 결합되면서 하나가 된 마음에 닿을 수 있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물가에서 놀던 다섯 살 소녀 에일라는 갑작스러운 지진에 의해 세상에 홀로 남게 된다. 엄청난 진동 속에 땅이 갈라지고 점점 커지는 틈 속으로 흙과 바위와 나무들이 떨어져 내린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 역시 흔들리다 쓰러져 깊은 나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소녀는 춥고 두려웠으며 날이 갈수록 허기까지 더해져 무섭기만 했다.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해 오로지 장애물을 지나고 지류를 건너고, 눈앞에 닥친 순간을 살며 개울을 따라 걸어갔다. 그러다 동물의 공격을 받고 홀로 죽어가던 중, 새로운 동굴을 찾아 길을 나선 동굴곰족의 주술 치료사 이자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된다. 현생인류에 속하는 크로마뇽인 에일라는 고대인류 네안데르탈인인 이자와는 외모부터 다르다. 푸른 눈과 금발머리, 곧은 다리에 큰 키, 손이 아닌 언어로 의사표현을 하는 에일라는 높은 이마에 작은 코, 이상할 정도로 평평한 얼굴이었고, 네안데르탈인들은 부리 모양의 커다란 코, 입은 동물의 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왔고, 낮게 경사진 이마와 크고 길쭉한 머리통에, 목은 짧고 굵고, 뒤통수는 후두골이 툭 튀어나와 있다. 활처럼 휜 다리는 근육이 발달했고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종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발상부터 신선했지만, 그 상상을 매우 리얼하게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이야기에 훅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씨족 내 강력한 주술사인 크렙과 주술 치료사인 이자의 보호 아래 에일라는 점차 동굴곰족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지만, 족장의 아들인 브라우드는 여자인 에일라의 토템이 동굴사자로 정해지자 자신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느껴 그녀를 증오한다. 당시 이들 사이의 불문율이란, 남자의 명령에 여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여자는 사냥은커녕 무기를 만들 때 쓰이는 연장조차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다소 억압적이고 남성우월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에일라는 그런 체제가 가진 불합리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하는 캐릭터이고, 당연히 기존 종족의 우두머리는 그것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브라우드의 그런 증오는 일상적인 구타와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걸로도 에일라를 굴복시킬 수 없게 되자 결국 그녀를 강제로 범하게 된다. 당시 동굴곰족에서는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든, 성행위를 요구할 수 있었고 여자가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사이에서 태어난 에일라의 아들 두르크다는 소설 발표 당시 저명한 고고학자로부터 신빙성 없는 가설을 소설에 담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두 인류 간의 짝짓기는 불가능하며 서로 접점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두 인류의 특성을 골고루 갖춘 혼혈인의 유골이 발견되어, 기존 이론이 뒤집히며 작가의 남다른 혜안이 다시금 주목 받기도 했단다. 상상력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에일라는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에 떠오른 불미스러운 생각을 쫓아내려고 했다. 난 여자야, 나는 사냥을 하면 안 돼, 무기조차 만져서는 안 되는 걸. 하지만 나는 줄팔매를 사용할 줄 알아!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해도. 아이의 생각은 대담해졌다. 도움이 될지 몰라. 오소리나 여우 같은 것들을 죽이면 더 이상 우리가 잡은 고기를 훔쳐갈 수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 흉측한 하이에나들도. 그런 것들을 잡으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해봐. 에일라는 교활한 포식자들의 뒤를 쫓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M. 아우얼의 <대지의 아이들> 시리즈는 십여 년 전에 국내에 발간된 적이 있다. 물론 엄청난 분량 덕분에 6부까지 모두 출간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모두 절판이 되어 재미있다는 소문만 무성했던 전설의 대작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다는 소식에 굉장히 설레었었다. 1부의 이야기 두 권만 해도 무려 천 페이지에 다다르는 분량이다. 전체는 그만큼의 이야기가 6부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스케일이 된다. 총 집필 기간만 해도 30년이라고 하니, 고스란히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을 이 시리즈만의 묵직한 감동이 시리즈를 모두 만나기 전부터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다.

 

 

시작은 구석기 시대의 미이라 한 구가 발견되는 것에서부터였다고 한다. 그 미이라는 의과적인 수술을 통해 한쪽 팔을 절단한 흔적이 있었고 반신불수였던 걸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미이라가 상당히 나이를 먹은 후 늙어서 죽었다는 것이었는데, 생존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구석기 시대에 어떻게 '늙어서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었을까.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출발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이미 읽은 사람들은 모티브가 된 이 미이라가 <대지의 아이들>에서 주술사 크렙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M. 아우얼은 엄청난 상상력의 소유자이지만, 그것을 단지 머릿속에서 진행된 이야기로 그리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느끼고 체험해 사실적인 부분들을 구축했다. 3년에 걸쳐 선사시대에 관련된 수많은 책을 모두 섭렵한 것은 물론 고고학자들의 발굴 현장도 직접 답사했고, 인류학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실제 구석기인들의 방식을 체험해보면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3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을 오로지 한 작품에만 매달린 작가의 삶이란 어떤 걸까. 스물 다섯에 이미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된 한 여자가 육아와 직장 샐활을 병행하다 마흔 살이 되어 이 작품을 구상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해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작을 쓰게 되었다고 하니, 작품만큼이나 그녀의 삶도 드라마틱하기 그지 없다. 나도 그 엄청난 여정에 한 걸음 내딛게 되어 매우 설레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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