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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ㅣ 미드나잇 스릴러
로저먼드 럽튼 지음, 윤태이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그때 그가 몸에 걸친 근사한 이탈리아산 리넨 셔츠와 싸구려 폴리에스터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어. 둘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한 사람이 고른
물건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지. 둘 중 하나는 선물로 받은 게 틀림없어.
선물로 받은 게 넥타이라면 선물한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지 않았으니 좋은 사람이라는 뜻일
거야. 네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눈앞에 닥친 상황을 모면하고 싶을 때면 머릿속으로 자꾸만 엉뚱한 생각을 하는 버릇이
생겼어.
그날, 뉴욕에
사는 비어트리스는 남편 토드와 함께 집에서 손님들에게 일요일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비어트리스의 임원 승진을 축하하며 로맨틱한 휴가를 보내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나흘 째 여동생
테스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소식이었다. 비어트리스는 정신 없이 비행기에 올라 고향 런던으로 향한다.
비어트리스와 테스는 매일 전화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던, 굉장히 가까운 자매였다. 하필 지난 주에 집을 떠나 며칠 여행을 간 곳이
산속이라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 동생과 유일하게 연락을 할 수 없었던 텀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아무런 짐작 가는 일도 없이 동생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거기다 테스는 임신 중이었고, 예정일이 삼 주 뒤인
상태였다. 테스의 실종을
둘러싼 정황들을 조사하고 알게 될수록 비어트리스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여겼던 동생의 낯선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공원의 폐쇄된
화장실에서 동생의 시신이 발견되고, 모든 정황 증거들은 테스가 현실을 비관해 자살한 것처럼 보인다.
경찰 역시 자살로 안정하고 수사를 종결하려고 하지만, 비어트리스만은 테스가 절대 자살할 리 없다고
확신한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어렵다. 거기다 그것이 자살이라는 형태로 다가온다면,
현실을 부정하고 그 죽음에 대해 원망할 누군가를 찾고자 하는 마음 또한 당연할
것이다. 경찰 역시
비어트리스의 반응을 동정심 가득한 눈빛으로 보지만,
그들의 태도는 단호했다.
게다가 남편 토드 역시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렇게 믿고 싶다고 해서 그게 진실이 되는
건 아니라고.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라고. 하지만
비어트리스는 동생이 살해당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테스는 절대로 자살할 리 없었으니까.
크롬메드 사옥을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운명에 대해 생각했어. 인간의 삶이라는 실을 잣고 그 길이를 잰 뒤에 싹둑 자르는 보이지 않는 손길에
대해. 그리고 또
인간의 DNA에 대해
생각했어. 우리 몸 구석구석
모든 세포 속에 우리의 운명에 대한 코드를 담고 있는 이중나선구조에 대해.
그러고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과학이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어.
마치 온 세상이 담합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비어트리스의 의심들을 부정한다. 테스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보기 위해선 오로지 비어트리스 혼자 뭔가를 찾아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같이 병사든, 사고든
어떤 이유로든지 죽는다. 그리고 누군가 또 새로 태어나고,
그렇게 세계는 순환한다.
하지만 매일같이 벌어지는 죽음이란 것도 당사자와 그 가족에겐 일상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죽음이란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할 새 없이 그저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
이해하고 감당할 수 없어 그저 견뎌내야만 한다. 남겨진 가족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만
한다. 비어트리스는 춥고
어두운 화장실에서 홀로 죽어간 동생을 위해서라도 진상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위험한 추적을 반대하지만, 그녀는 홀로 꿋꿋하게,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애쓴다. 그 과정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결국 그녀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그것이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비어트리스가
동생에게 말하는 형식의 편지로 진행된다. 사라진 동생의 뒤를 쫓으며, 죽음에 대한 진상을 추적하며 써 내려간 편지와 그녀가 국선 변호사인 라이트씨에게 진술하는 부분이 교차로
보여지고, 과거 동생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회상으로 등장하고, 그렇게 이야기는 점점 사건의 진상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범인이 검거된 건지,
그가 누구인지,
테스가 자살이 아니라 살해된 것이 맞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비어트리스가 이 사건을 직접 수사했을 뿐
아니라 주요 증인이라 그녀의 증언으로 사건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 정도만 드러나 있을 뿐이다. 시종일관 사라진 동생을 그리워하면서 써내려 간 애달픈 편지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여느 범죄소설이나 스릴러와는 달리 진행이 매우 느린 편이다.
서정적인 문장과 세밀한 감정 표현, 호흡이 긴 서사 구조가 낯설거나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류의 장르에
기대하는 것이 빠른 전개와 강렬한 한 방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느리게,
천천히 읽어야만 제대로 느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야 후반부의 반전에 이르러서 차곡차곡 쌓아온
감정의 둑이 터지고 말 테니까. 나는 그 순간 이해했다. 작가가 왜 인물의 성격과 감정 묘사에 그렇게 공을 들이며 호흡을 천천히 가져가려고 했는지. 서늘하고, 아름답고, 오싹하고, 가슴 뭉클해지는 작품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