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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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셰바이천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피해자의 신원을 찾고 그들이 피살된 경위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셰바이천의 살인 동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홍콩이라는 압력솥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정신병을 안고 있다. 그러다가 압력을 못 이기고 폭발해 머리에서 나사가 빠져버리면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는데, 이 모든 건 주사위를 던지듯 운에 맡길 뿐이다. 사회복지사도 인류학자도 아닌 경찰은 그런 사회문제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            p.52


홍콩의 구닥다리 아파트인 단칭맨션에서 한 남자가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던 41세 셰바이천은 무직으로 방 안에서 숯을 피워 죽었다. 경찰은 타살 혐의가 전혀 없고, 범죄 연루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무심코 열어본 옷장 안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옷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유리병 속 보존액에 담긴 인간의 팔다리와 장기, 얼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이천은 은둔형 외톨이로 20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방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표본이 된 시신은 대체 누구란 말일까. 낯선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언론은 '은둔족 살인 사건' 또는 '은둔족 살인마' 같은 말을 만들어 내며 자살한 용의자가 정신 질환을 앓았으며 망상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추측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유리병 20여 개에 담긴 토막 시신을 이어 붙인 결과 피해자는 남녀 각 한 명씩으로 추정되었다. 두 피해자의 연령대는 비슷했으나, 사망 추정일은 달랐는데, 여자는 수개월에서 최대 반년전, 남자는 최소 1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였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고, 아무런 단서가 없는 상황이었다. 셰바이천의 방에 추리소설, 특히 엽기적인 살인을 다룬 소설이 많았다는 사실 외에는 딱히 증거가 될만한 요소가 없었다. 경찰 쉬유이와 셰바이천의 친구이자 이웃에 사는 추리소설가 칸즈위안이 각자의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지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최선을 다했다는 건 나도 알아요... 시스템에 속한 모든 사람은 언제나 현실적인 선택을 하죠. 두 가지 선택지가 앞에 있을 때 자기 윤리 기준을 위배하지만 않는다면 리스크가 적은 쪽을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에요. 다만 이 평범한 선택이 쌓이면 '악'이 될 뿐입니다...... 바이천 한 명이 희생하면 수천수만 명의 안온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데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정의를 명분으로 앞세운 그런 선택은 결코 정의가 아니에요.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악입니다."             p.390~391


이 작품은 <13·67>, <망내인>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탄탄한 독자층을 보여하고 있는 찬호께이가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찬호께이의 작품은 국내에도 꽤 많이 소개되어 왔는데, 이번에는 <13·67>처럼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더욱 기대하며 읽어 보았다. 이야기는 은둔족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현재와 화자를 알 수 없는 '망자의 고백', 그리고 제목 미정인 소설에서 발췌된 내용이 교차로 진행된다. 셰바이천의 친구인 칸즈위안은 경찰에게 용의자였다가 조력자가 되는데, 경찰은 그를 경계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며 사건을 조사해나간다. 수사 과정과 별개로 진행되는 두 가지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단서가 되어 주기도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덕분에 중반을 넘어서도 쉽게 진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이 작품의 중요한 재미가 되어 준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홍콩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단절과 무관심이 일상화된 풍경을 보여주며 인간 심연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실은 소설이 아니지만, 가끔 진실이 더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독이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진다. 용의자의 주변을 조사할수록 수사는 점점 더 미궁에 빠지고, 사건의 조각들이 쌓일 수록 진실은 예상치 못했던 방향을 향하게 된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날 때 홀라 왔다가 떠날 때도 혼자 길을 떠나게 된다. 그러니 인간에게 고독은 정해진 운명 같은 것, 인생이란 원래 고독한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고독이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과 사회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안전한 방 안으로 숨어든 '은둔형 외톨이'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500페이지를 넘는 분량이지만 중반을 훌쩍 넘어설 때까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탄탄한 구성과 플롯으로 잘 짜여진 작품이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에 나왔던 캐릭터가 등장해 반가웠고, 거듭되는 반전 또한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주었다. 자, 오랜 만에 만나는 찬호께이의 본격 미스터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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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 풍선껌 다산어린이문학
이정란 지음, 모루토리 그림 / 다산어린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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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2학년 2반에서 햄스터 키우는 모임인 '햄이모'에서 쫓겨나 속상하다. 햄스터 동동이를 이모가 도로 데려간 걸 햄장인 민아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하루는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햄스터를 키우고 싶다고 졸랐지만, 엄마는 안 된다고만 한다. 속상한 마음에 집을 나왔는데 시원한 아이스크림 생각이 나서 편의점에 간다. 그랬던 계산대에 못 보던 할머니가 서 있는게 아닌가. 할머니는 풍선껌 한 통을 계산대에 이거 딱 하나 남았다고 씩 웃으며 말한다.




얼결에 볼록 풍선껌을 사서 나온 하루는 껌을 꺼내 본다. 껌 종이에는 '떡갈나무 벤치 아래에서 말풍선이 팡팡!'이라는 문구가 서 있었다. 지난 봄 소풍 때 했던 보물찾기가 생각난 하루는 사자 분수대 뒥쪽 숲속 산책길로 통하는 오르막길로 향한다. 벤치에 앉아 껌 하나를 꺼내 오물 거리다 입김을 불었더니 풍선이 엄청 크게 부풀어 오르다 팡, 하고 터진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온몸이 갈색 털로 뒤덮인 다람쥐가 나타난다. 다람쥐와 함께 풍선껌을 씹었더니 하루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말이 통하는 마법 풍선껌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루는 야생 다람쥐 볼록이와 함께 매일같이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숲에 사는 다람쥐와 친구가 될 수 있다니, 그것도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너무 귀여운 이야기였다. 풍선껌을 씹었더니 속마음이 팡팡 터진다는 설정도 아주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은 책임지고 돌보지도 못하면서 그저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집에서 같이 살아야 반려동물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반려'라는 말에 대한 관점을 살짝 바꿔준다. 그리고 생명을 존중하는 법에 대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동물 친구가 등장하는 동화는 기존에도 많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품 안으로 동물을 데려와 귀여움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만난 두 존재의 교감을 그려내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이야기 속 민아는 햄스터를 네 마리나 키워 '햄이모' 모임의 햄장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 하얀 털이 보송보송한 강아지 비숑에 푹 빠져서 강아지를 살 거라고 말한다. 그럼 키우던 햄스터는 어쩌냐고 묻는 하루에게 민아는 햄스터야 뭐, 사촌 동생들 키우라고 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사실 민아는 햄스터 키우기 전에 달팽이도 키웠었는데, 결국 그 달팽이도 아파트 화단에 버렸던 적이 있기에 하루는 헛웃음이 나온다. 


극단적인 경우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민아처럼 반려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예쁘면 갖고 싶고, 지겨워지면 어디론가 치워 버리고, 또 다른 것을 데려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 말이다. 반려동물은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어린이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서 책임질 수 있는 마음까지 배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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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수명 - 진실한 글을 향한 예술과 원칙의 대결
존 다가타.짐 핑걸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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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레비 프레슬리가 스트래토스피어 호텔앤드카지노의 350미터 높이 타워 전망대에서 뛰어내린 그날,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시 당국이 영업 허가를 받은 관내 스트립 클럽 서른네 곳에 대해 한시적으로 랩댄스를 금지시켰고, 고고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타바스코소스 병을 버키츠 오브 블러드라는 술집 지하에서 발굴했으며, 미시시피에서 온 한 여성은 진저라는 소녀를 상대로 35분 동안 틱택토 게임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p.13~15


2002년 7월 13일,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 호텔에서 열여섯 소년이 투신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에세이스트 존 다가타는 그 사건에 대한 글을 쓰지만 사실 오류가 많다는 이유로 잡지에 게재를 거부당하고, 얼마간의 개고를 거쳐 다른 잡지에 재투고하게 된다. 글이 게재되는 조건은 내부 팩트체크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는 거였는데, 그렇게 인턴 편집자 짐 핑걸과 존 다가타의 기나긴 전쟁이 시작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구성이 상당히 독특해 흥미진진했다. 존 다가타가 쓴 에세이 원문을 토막토막 쪼개어 페이지 중간에 수록하고, 양 옆으로 편집자의 팩트체크 과정과 두 사람의 논쟁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팩트가 충돌하는 내용은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책의 반 정도 되는 내용이 붉은 색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실제 편집 과정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진실은 정확성에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에세이스트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철저하게 확인하는 집요한 팩트체커의 양보없는 끝장 논쟁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지금 제가 이 에세이에서 그러고 있다는 겁니까? '자기과시를 위해' 이야기를 '위조한다'고요? ... 한데 대관절 언제부터 약간의 지적 아나키즘이 나쁜 것이 되었죠?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예술의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결정짓는 규칙을 용납하기 시작했나요? 오히려 일상적 담론에선 잘 용납되지 않는 자유도 예술가에게는 권장되는 분위기 아니었습니까? 말하자면, 우리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예술에 의지하는 것 아닌가요? 예술가가 한계를 시험하고, 규칙에 도전하고, 금기를 파괴해주길 다들 내심 기대하지 않나요?               p.135


엄밀히 말하면 이 설명은 부정확하다, 저자가 이 수치를 어디서 얻었는지가 불분명하다, 정보의 출처부터 좀 의심스럽다 등으로 조목조목 문장을 따지고 드는 편집자와 정확성에 치중하다 보면 극적 효과도 떨어지고 글이 너무 투박해진다는 에세이스트의 공방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신문의 기사면처럼 빼곡하게 구성이 되어 있어 가독성 자체는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천천히 따라가면서 읽다 보면 금방 빠져들게 되는 몰입감이 있는 책이었다. 글의 어감이 주는 느낌이 좋아 수정하고 싶지 않다는 말에 그러면 의도적으로 수치 오류를 범하게 되는데 독자의 신망을 잃지 않겠느냐고 받아치는 편집자. 그리고 자신이 무슨 공직에 출마할 것도 아니고 그저 흥미롭게 읽을 만한 글을 쓰고자 할 뿐이니 상관없다는 작가. 일다 보면 편집자의 말에도 수긍이 되고, 작가의 의도에도 공감이 된다. 그야말로 이성과 감성의 대결이랄까. '그의 죽음을 더 각별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와 독자들에게 명확한 사실을 제공해야한다는 사명감의 대결이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한 사람은 자료나 문헌을 확인하며 명확한 사실을 원한다. 또 한 사람은 어느 정도 변형된 사실이 사건의 실체와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목적은 독자에게 진실한 글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논픽션은 현실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옳고, 사실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맞다.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가의 고민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어 두 사람 중 어느 쪽에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이 작품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이다. 해리 포터를 연기했던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팩트체커 역을 맡기도 했다고 하니 연극 버전도 궁금해진다. 논픽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 편집과 집필 과정에 숨겨진 비밀, 틀림없는 사실과 그럴듯한 허구 사이의 진실... 진짜 업계 사람들의 속 뒤집히는 티키타카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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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초대륙 -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판구조론 히스토리
로스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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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질학자들은 판게아의 운동학적 춤에 대체로 동의한다. 이렇게 해서 초대륙이 무엇을, 어디서, 언제 형성하는지 답이 나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초대륙 순환이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머피와 낸스의 난제로 돌아왔다. 우리는 판구조론과 판게아가 실제로 형성된 원리를 융화시킬 수 있을까? ... 초대륙 논쟁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기존 모델에서 결정적인 요소인 맨틀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너무 큰 게 빠져 있었다.             p.83


지구의 표면은 여러 개의 단단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조각을 '판'이라고 부른다. 지구의 판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일 년에 몇 센티미터 정도라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하지만, 거대한 판들의 움직임은 그 경계에서 지진과 화산 활동을 만들어 낸다. 바다 또한 크기와 모양이 변하고 있는데, 지구의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은 점점 좁아지고 있고, 대서양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대륙 이동을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판 구조론'이다. 판들이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으로 앞으로의 면적 변화를 예상하는 것이다. 


현재의 지도를 보면 각 대륙이 전 세계에 흩어져 저마다의 고유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2억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이들은 한데 뭉쳐 있었다. 대륙 다수가 하나의 판으로 모여 있던 과거 지구의 시기를 가리켜 '판게아'라 부르는데, 이는 초대륙이라고 불리는 반복되는 현상의 최신판이다. 지구가 존재해온 45억 년 동안 붙었다 떨어지며 적어도 두 개의 초대륙이 있었고, 일부 과학자들은 미래에도 초대륙이 또 나타나리라고 예상한다. 물론 다음 초대륙이 형성되기까지 앞으로 2억 년은 걸리겠지만 말이다. 과학자들은 미래의 초대륙에 대해 여러 가지 방향에서 예측을 하고 있다. 대륙 이동은 여러 판의 복잡한 상호 작용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미래의 초대륙이 정확하게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초대륙의 형성과 분열은 반복된다는 점이다. 




지질시대는 지질학자들이 시간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지구의 역사는 수천, 수십만, 수백만, 심지어 수십억 년에 걸쳐 있어서 시간을 구분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숫자로만 시간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그 방식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지도 않다. 마치 1년을 계절이나, 달, 또는 주로 나누지 않고 온전히 365일로만 세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지구 역사는 긴 시간 간격을 더 짧은 단위로 점차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사건의 흐름에 따라 결정된다... 한마디로 지질시대는 지구 변화를 측정하는 척도다.              p.193


이 책은 미국의 주목받는 지질학자가 적어도 세 개의 초대륙이 존재했다는 증거에서부터 약 2억 년 후에 만들어지리라 예상되는 다음 초대륙에 대한 전망을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다음 초대륙 지형을 노리는 주요 후보들을 제시하고, 판구조 운동에 여전히 남아 있는 현대 미스터리를 탐구하며, 대륙이 움직이는 원리를 예측하는 데 필요한 과학을 설명해준다. 수많은 데이터와 사진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고,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고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지구과학 교양서'라고는 하지만, 사실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니다. 지질학을 비롯한 지구과학 분야의 연구 결과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주고 있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몇 억 년 뒤에 벌어질 지구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는 '지구를 이해한다는 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탁월한 방식'이라는 저자의 말이 와닿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빌린 용어인 '지리 문해력'을 살짝 변형한 '지질 문해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앞으로 인류가 자연과 문화 자원을 보호하고 각종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지리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저자는 지리학이라는 지구와 대기, 그리고 인간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을 지구 전체의 물리적 구조를 연구하는 지질학으로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인류에게 그 어느 때보다 ‘지질 문해력’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의 새로운 현실이고,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대중과 정치계의 의견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해 부족이라고, 수많은 사람이 지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기분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지질학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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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의 보물에 숨겨진 놀라운 과학 Philos 시리즈 31
브린 넬슨 지음, 고현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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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든 싫든, 우리는 이 관계망에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배출하는 똥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사람들은 우리의 똥이 한편으로는 악취를 풍길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 줄 수도 있는 "지킬과 하이드" 같은 양면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한다면 똥은 인류를 지켜 주고, 혁신을 일으키고,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물질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p.19~20


이 책의 표지에 커다랗게 표기된 제목을 보고 기겁하지 마시라. 설마, 내가 아는 그것? 이라고 생각했다면 맞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는 자원이자 가장 많이 낭비되는 똥의 과학적 가치와 무한한 잠재력을 탐구한다. 사실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태국에서는 코끼리의 배설물로 친환경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고,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들어지는 고가의 루왁커피도 있다. 게다가 인간이 배출하는 똥은 죽어 가는 환자를 치료할 수도 있고(미생물 치료), 친환경 버스 연료가 될 수도 있으며,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비료로 사용되고, 범죄 현장에서 단서가 되거나 멸망한 문명을 추적하는 귀중한 자료도 될 수 있다. 미생물학 박사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똥에 대한 혐오감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부터 생태계 순환에서의 물질적 역학, 범죄 수사와 고고학의 증거, 건강의 지표와 질병 추적 도구로서의 가치와 재생 가능한 미래 자원이자 환경문제 해결의 열쇠로서 똥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에 살던 거대한 동물이 숲에서 똥을 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거대한 초식동물들은 몸집에 걸맞는 양의 먹이를 먹었고, 섭취한 식물들을 거대한 거름더미로 변화시켰다. 이들은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면서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고, 그들은 또 주변 곳곳에 배설물을 배출한다. 이러한 배설물로 비옥해진 땅에서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이 식물을 먹은 초식동물들은 다시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는 순환이 반복된다. 그로부터 약 2만 년이 지난 지금, 지구상에서 소 다음으로 똥을 많이 싸는 인간은 이러한 순환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인간은 자기 배설물을 자연 세계에서 격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지구에서 가장 쓰임새가 많은 천연자원 중 하나를 사실상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그럴리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음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똥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 책은 우리가 왜 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똥이 몸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똥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지구를 지배하는 거대 동물로서 우리는 자연을 대체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자연의 순환과 일치하는 가치의 순환을 복원하고 확장할 능력과 책임을 가진다. 똥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아니지만, 똥은 변화의 시작이 되기에 충분하다. 시모고에, 인분, 인디언의 검은 토양, 검은 황금을 다시 떠올려 보자. 때때로 희망은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정의할 풍경 곳곳에 그 선물을 전달해야 한다.               p.606


사람들은 자신의 똥이 회색곰이나 코끼리의 똥만큼 유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생존하는 동안 인류는 계속 똥을 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똥을 재사용하지 않고 계속 낭비할까. 사실 똥은 '역겨운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똥에서는 기생충과 원생동불부터 곰팡이,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는 미세 생물체들이 발견되고, 그 냄새 또한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혐오의 대상은 똥뿐만이 아니라 혈액, 땀, 구토, 소변, 정액, 타액 등 타인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당신을 역겹게 하는가? 저자는 흥미진진한 취재와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우리가 똥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도록 도와준다. 


누구나 다 누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똥, 누구나 고정 관념 때문에 언급하기 싫어하는 똥에 대한 이야기는 거침없고, 유쾌하게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선다. 우리가 남긴 똥에는 DNA와 냄새 그리고 미생물과 곤충에 대한 방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보존된 똥은 고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이동했는지, 그들이 죽음과 질병 그리고 주변 세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려 주는 타임캡슐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똥이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줄 수호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해 주는 증인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이 과장은 아닌 것이다. 한때 서양 국가들에서 '질병 중의 질병' '문명 특유의 모든 끔찍한 질병의 원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끔찍하고 두려운 존재로 여겨졌던 위력적인 질병이 '변비'였다는 점을 비롯해 시대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똥에 대한 사유는 기발하고 재치있으며, 생생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우 복잡하면서도 가장 과소평가되고 있는 자원 중 하나인 똥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그것의 엄청난 잠재력을 만나보자. 과학적 호기심과 창의적 발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펼쳐지는 이 놀라운 책이 우리가 똥에 대해 개똥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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