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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
조너선 케네디 지음, 조현욱 옮김 / 아카넷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은 이미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서식하던 행성에서 진화를 했다. 해를 끼칠 수 있는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염병은 역사 전체에 걸쳐 수많은 사람을 죽여 왔으며, 인류의 진화를 이끈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다. 바이러스와 상호작용하는 인체 세포 부위에서는 인류가 침팬지와 갈라져 나온 뒤에 발생한 모든 유전자 변이의 30퍼센트를 바이러스가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p.21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난 1만 3,000년 동안의 인류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총, 균, 쇠'를 꼽았다. 왜 인류 역사는 대륙마다 다르게 전개되었는지,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에 대해 인류 문명을 바꾼 세 가지, 총(군사력), 균(전염병), 쇠(과학기술)로 설명했다. 그런데 총과 쇠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균, 균, 균이다.
이 책은 '균이 총칼보다 더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인 미생물은 단순히 질병, 부패, 죽음을 일으키는 매개체만이 아니다. 실제로 무수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역사 전체에 걸쳐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가고 여러 문명을 약화시켰지만, 그 폐허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등장하고 번성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미생물 없이는 인간의 삶, 아니 모든 형태의 복잡한 생명체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학,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 경제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연구를 토대로 지난 5만 년의 인류사를 살펴본다. 현생인류의 출발인 호모사피엔스 시대부터 종교개혁, 산업혁명, 자본주의의 형성 등을 거쳐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최근까지 역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은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우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지배하는 지구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항상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수많은 미생물에 둘러싸여 있다. 일부는 우리를 돕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른 미생물들은 우리를 해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인류와 전염병 간의 오랜 투쟁이 반드시 비극이나 심지어 익살극으로 끝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쁜 결과를 피하려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염병으로 인한 인류 멸종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p.343
17세기 초, 갈릴레오는 망원경의 렌즈 순서를 바꾸면 아주 작은 사물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미생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하늘의 별과 행성을 관찰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본격적으로 인간이 미시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50년이 더 지난 뒤였다. 네덜란드 델프트의 직물상이자 과학자인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자신이 사고파는 직물의 품질을 검사하기 위해 렌즈를 개발했다. 그리고 우연히 미생물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 새로운 세계의 중요성을 과학자들이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200년이 지난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프랑스 화학자 파스퇴르가 포도의 발효, 우유의 산패, 육류의 부패 등 다양한 과정에 미생물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
인간은 이미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서식하던 행성에서 진화했다. 해를 끼칠 수 있는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인류 진화의 초기에는 여러 종의 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현재 우리 인류와 같은 종인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면역 체계를 획득했기 때문이니 말이다. 우리 몸은 미세한 생명체로 완전히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체 세포보다 약 40조 마리의 박테리아가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이 수치의 10배 이상이다. 이러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대부분은 우리를 병들게 하지 않는다. 함께 진화하며 서로 긴밀하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렇듯 세계에서 가장 미시적인 존재인 균의 관점에서 다시 쓰는 인간의 서사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게다가 이 책은 원서에는 없는 컬러 화보 32컷을 엄선해 수록했는데, 균의 막강한 영향에 대한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인류 최초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를 발견한 순간에 대한 자료, 알타미라 동굴 벽화, 최초의 농부들이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의 스톤헨지, 고대 도시의 전염병을 그린 미술 작품, 로마의 전염병을 묘사한 그림, 몇 세기에 걸쳐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중세 혹사병으로 인해 국경에 설치한 페스트 장벽, 중세의 지도, 런던의 콜레라와 코로나19에 대한 사진까지 만나볼 수 있다. <사피엔스>, <총균쇠>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이 책도 꼭 만나보길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