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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생각한다 -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과 동물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적절할까? ... 동물을 도덕적으로 존중하기 위한 기준은 대체 무엇이어야 할까? 고통을 느끼는 능력일까, 삶의 의지나 지능일까? 똑똑한 동물의 생명권이 지능이 낮은 동물의 생명권보다 더 크고 귀할까? 인간과 다른 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평가하는 것은 어렵고도 중차대한 과제다. p.18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사실 이것은 스스로를 다른 모든 생물종보다 우월한 종으로 여기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수십만 종의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명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동물을 마치 물건처럼 생산 수단화하고, 생존 기계나 고기 공급원으로 사육한다. 수백만 마리의 돼지와 닭, 소들이 비좁은 우리와 케이지에서 평생을 보낸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숨긴다. 왜냐하면 보지 않아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데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고 지배하며 고통을 가할 권리는 대체 누가 준 것일까. 왜 우리는 반려동물은 귀여워하면서 식탁 위의 고기나 실험실의 동물들에게는 냉담한 것일까. 이렇게 모순된 태도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일까.
이 책은 동물의 권리와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토대에서부터 초기 문화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동물 사육 시설과 도축장, 실험실들을 살쳐 보고 우리가 현재 직면한 난제들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검토한다. 오늘날 인간의 모든 학문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이든 고인류학이든 동물 생명이 어떤 점에서 인간 생명과 다른지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동뭉 행동학자들은 동물의 인지 능력을 측정한 뒤 인간과 비교하면서 거의 모든 점에서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유인원의 지능을 윌와 단순 비교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분자 유전학은 우리에게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침팬지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원숭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과학에서건 많은 사람의 통념적 생각에서건 별로 의심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선을 바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같은 대형 유인원들은 얼마나 인간적일까? 저자는 이를 분자 유전학으로 살펴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과학과 철학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깨닫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동물원의 사육 조건은 여전히 많은 점에서 비판받는다. 물론 동물원장들도 섬세한 관람객들만큼 그런 조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더 이상 맞지 않고, 많은 비용을 들여야만 서서히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동물원의 비난받을 환경이 아니라 어떤 사육 조건이든 상관없이 동물을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내놓는 것이 원칙적으로 합당한 행위인가 하는 것이다. p.474~475
거의 모든 문화학자가 공통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있다. 더 높은 힘에 대한 믿음과 죽음의 두려움은 인간만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저자는 제인 구달과 대화를 나누면서 침팬지에게도 낭만적인 사랑, 종교적 감정, 신앙 같은 것이 존재할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직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구달이 들려준 이야기는 매우 놀라웠다. 그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적으로 무언가에 사로잡힌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감정조차 분명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과 오성, 사고력과 판단력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절대적 척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동물을 몸의 노예로 설명하는 철학적 전통은 길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과 동물의 확정적 차이에 의구심을 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동물도 처음부터 도축되고, 사냥감이 되고, 쫓기고, 독살되고, 귀여움을 받고, 훈련을 받고, 공포를 주거나 경탄의 대상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눈과 분류 체계 안에서만 동물에 대해 정의 내린다. 우리 행성의 생물은 주로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기능적으로 분류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 사랑>은 선별된 특정 종에게만 맞추어진 협소한 감정일 뿐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동물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멸종시키고 먹어 치우고 독살한다. 그렇다면 가슴의 도덕에는 어떤 감정과 동물에 대한 어떤 정서적 이해가 깔려 있을까? 모든 대목들이 공감되고, 이해되고, 감탄스러웠던 책이다. 동물권, 동물 윤리에 대해 다루는 책들을 꽤 읽어 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폭넓게 사유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생물과 인간의 역사를 생물학적으로 살펴보고, 인간과 동물의 윤리학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며,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고민한다.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지만, 어렵지 않게 너무너무 잘 읽히는 책이었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책이 국내에 꽤 많이 출간되어 있는 편인데, 이번에 처음 만났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정말 글 잘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마자, 저자의 책들을 몇 권 주문했다. 철학을 다루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많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앞으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무조건 믿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과학책, 철학책, 인문학책을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