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
조너선 케네디 지음, 조현욱 옮김 / 아카넷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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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은 이미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서식하던 행성에서 진화를 했다. 해를 끼칠 수 있는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염병은 역사 전체에 걸쳐 수많은 사람을 죽여 왔으며, 인류의 진화를 이끈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다. 바이러스와 상호작용하는 인체 세포 부위에서는 인류가 침팬지와 갈라져 나온 뒤에 발생한 모든 유전자 변이의 30퍼센트를 바이러스가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p.21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난 1만 3,000년 동안의 인류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총, 균, 쇠'를 꼽았다. 왜 인류 역사는 대륙마다 다르게 전개되었는지,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에 대해 인류 문명을 바꾼 세 가지, 총(군사력), 균(전염병), 쇠(과학기술)로 설명했다. 그런데 총과 쇠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균, 균, 균이다. 


이 책은 '균이 총칼보다 더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인 미생물은 단순히 질병, 부패, 죽음을 일으키는 매개체만이 아니다. 실제로 무수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역사 전체에 걸쳐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가고 여러 문명을 약화시켰지만, 그 폐허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등장하고 번성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미생물 없이는 인간의 삶, 아니 모든 형태의 복잡한 생명체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학,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 경제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연구를 토대로 지난 5만 년의 인류사를 살펴본다. 현생인류의 출발인 호모사피엔스 시대부터 종교개혁, 산업혁명, 자본주의의 형성 등을 거쳐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최근까지 역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은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우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지배하는 지구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항상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수많은 미생물에 둘러싸여 있다. 일부는 우리를 돕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른 미생물들은 우리를 해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인류와 전염병 간의 오랜 투쟁이 반드시 비극이나 심지어 익살극으로 끝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쁜 결과를 피하려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염병으로 인한 인류 멸종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p.343


17세기 초, 갈릴레오는 망원경의 렌즈 순서를 바꾸면 아주 작은 사물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미생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하늘의 별과 행성을 관찰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본격적으로 인간이 미시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50년이 더 지난 뒤였다. 네덜란드 델프트의 직물상이자 과학자인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자신이 사고파는 직물의 품질을 검사하기 위해 렌즈를 개발했다. 그리고 우연히 미생물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 새로운 세계의 중요성을 과학자들이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200년이 지난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프랑스 화학자 파스퇴르가 포도의 발효, 우유의 산패, 육류의 부패 등 다양한 과정에 미생물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 


인간은 이미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서식하던 행성에서 진화했다. 해를 끼칠 수 있는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인류 진화의 초기에는 여러 종의 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현재 우리 인류와 같은 종인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면역 체계를 획득했기 때문이니 말이다. 우리 몸은 미세한 생명체로 완전히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체 세포보다 약 40조 마리의 박테리아가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이 수치의 10배 이상이다. 이러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대부분은 우리를 병들게 하지 않는다. 함께 진화하며 서로 긴밀하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렇듯 세계에서 가장 미시적인 존재인 균의 관점에서 다시 쓰는 인간의 서사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게다가 이 책은 원서에는 없는 컬러 화보 32컷을 엄선해 수록했는데, 균의 막강한 영향에 대한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인류 최초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를 발견한 순간에 대한 자료, 알타미라 동굴 벽화, 최초의 농부들이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의 스톤헨지, 고대 도시의 전염병을 그린 미술 작품, 로마의 전염병을 묘사한 그림, 몇 세기에 걸쳐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중세 혹사병으로 인해 국경에 설치한 페스트 장벽, 중세의 지도, 런던의 콜레라와 코로나19에 대한 사진까지 만나볼 수 있다. <사피엔스>, <총균쇠>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이 책도 꼭 만나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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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감각 - 식물을 보고 듣고 만질 때 우리 몸에 일어나는 일들
캐시 윌리스 지음, 신소희 옮김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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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식물을 만지고 쓰다듬을 때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동물을 어루만질 때와 마찬가지로 생리적, 심리적 안정 효과가 있을까? 이웃집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처럼 거리낌 없이 공원의 나무를 껴안아야 할까? 원예가 나이를 떠나 모든 사람의 건강에 여러모로 유익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원예 치료는 우울증이나 기억 상실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의 건강 개선책으로 각광받고 있다.            p.163


책상 위에 화분 하나를 놓아두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식물을 바라보면 인지 수행력이 향상되고, 나무를 만지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맨손으로 정원일을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왜 그런 걸까? 이 책은 식물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해준다. 옥스퍼드대학 생물학과 교수인 저자는 자연이 우리 몸에 정말 이롭다는 것을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선구적이고 중요한 연구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과학적으로 밝혀낸다. 무엇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우리의 감각이 자연과 상호작용할 때 우리 몸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신체와 정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알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로웠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창밖을 바라보고 싶은 충동이 있는 것 같다. 창밖에 녹지가 펼쳐져 있다면 더욱 그렇다. 어째서 그런 걸까? 왜 교실이나 업무 공간에서 자연 풍경이 내다보이면 주의가 그리로 쏠릴까? 우리를 잠시나마 지금 여기서 벗어나게 하는 풍경의 힘이 궁금했다. 2016년에 일리노이 대학교 연구진은 교실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이 학생들의 인지 기능과 성취 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로 한다. 그들은 5개 고등학교의 학생 94명을 무작위로 교실 셋 중 하나에 배정한다. 나무가 있는 녹지가 내다보이는 곳, 빈 벽이 내다보이는 곳, 그리고 창문이 아예 없는 곳 세 군데였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주의력과 생리적 스트레스 수준이 비슷했지만, 활동을 마칠 무렵에는 현저한 차이가 나타났다. 창밖으로 자연 풍경과 녹지가 내다보이는 교실의 학생들이 나머지 두 군데의 학생들보다 시험 결과가 훨씬 좋았으며 평가 과정에서 높아진 스트레스 수준도 한층 빨리 떨어졌던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자연 풍경을 볼 때 일어나는 이런 변화에 대해 생물학적 기초 지식부터 시작해 의학과 심리학적 요인을 분석하며 그야말로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해준다. 




집과 온실에 이국적인 식물을 전시하는 취미는 조지 시대와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20세기까지 대유행했다. ‘응접실 야자수’는 많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식 요소로 떠올랐으며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다양한 야자수나 양치류, 기타 튼튼한 식물을 총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사람들의 열광은 식물 자체에만 그치지 않았다. 정물화가 벽을 장식하고, 아르누보 건축물이나 윌리엄 모리스와 같은 디자이너의 영향으로 벽지, 가구, 패브릭에도 자연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이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p.212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물을 만지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아기를 가게에 데려가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지고 싶어하는 이유도 인간은 촉각을 통해 학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촉감은 어떨까. 우리가 식물을 만지고 쓰다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동물을 어루만질 때와 마찬가지로 생리적, 심리적 안정 효과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휴대전화 원예 게임과 실제 흙을 채운 화분에 식물을 심는 활동을 하게 하고 생리적, 심리적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심박 변이, 피부 번도도, 체온을 즉정하고 기분 빛 불안 수준을 설문지로 확인해보았다. 그 결과 아이들은 원예 게임보다 실제 식물 놀이를 할 때 생리적으로 훨씬 더 안정되었다. 또한 더 편안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불안도 현저히 줄어드는 심리적 안정 효과도 나타났다. 


저자는 그 밖에도 식물을 만지는 행위에 대한 다양한 최신 연구 데이터를 통해 일상에서 녹색 식물을 보고 만지는 일이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여주고 정신 집중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자연경관의 효과부터 시작해 우리가 식물의 색을 어떻게 감각하고 다양한 색상의 식물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시각, 후각, 촉각, 청각 등 우리의 감각 별로 장을 나누어 설명해준다. 자연의 다양한 색채가 우리의 웰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허브나 장미 등 식물의 향이 어떻게 삶의 질을 높여주는지, 새 소리와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지닌 특별한 효과와 식물을 만지고 쓰다듬을 때 우리의 심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 우리의 오감과 식물이 맺는 관계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자연을 실내에 들이는 인테리어가 중세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플랜테리어가 수백 년 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신기했다. 이 책은 우리를 치유하고 지탱하는 식물의 힘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조목조목, 탁월하게 정리하고 있다. 덕분에 누구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식물과 함께 사는 삶을 꿈꾸게 될 것 같다. 우리가 초록에 끌리는 과학적인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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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문화 - 미국과 일본의 선택적 기억, 집단적 망각 Philos 시리즈 34
존 다우어 지음, 최파일 옮김, 김동춘 해제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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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전하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참화와 고통을 야기하는 것은 상상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타인의 심리에 대한 감수성과 더불어 도덕성도 무뎌진다. 머나먼 곳에서는 일어나는 파괴에 대한 간단하고 실제적인 이해 역시 추상적으로 흐르게 된다. 태평양전쟁의 경우가 확실히 그랬다. 1945년 미국의 폭격 작전이 60곳이 넘는 도시지역을 가루로 만든 뒤, 패전한 일본에 상륙한 미국인들은 거의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대도시들이 온데간데없고 수백만 명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은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와 동일한 반응이 2003년 봄에 바그다드를 점령한 미국인들에게서도 나왔다.            p.169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항공모함 6척이 하와이 제도 오아후섬 북쪽 200마일 해상까지 접근해 미국 태평양 함대 기지가 있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다. 12척의 미 해군 함선이 피해를 입거나 침몰하고 미군 2,334명과 민간인 103명이 사망한다. 다음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 상하원 합동 회의에 나타나 미합중국이 일본 제국의 해군과 공군에 고의적으로 갑작스레 공격당했다며, '오욕 속에 길이 남을 날'이라고 표현한다. "오욕"은 즉시 일본의 배신과 기만과 더불어 '진주만'을 가리키는 미국의 코드가 된다. 그리고 1945년 8월, 세계사에서 가장 끔찍한 폭탄이 터진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핵실험에 성공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 폭탄에 의한 사망자 수는 무려 21만 5000명에 달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알카에다 테러범들에게 미국의 민항여객기 4기가 연쇄적으로 납치당했다. 이 비행기 충돌로 인해 110층 짜리 쌍둥이 빌딩인 세계 무역 센터가 완전히 붕괴되었고, 미 국방부 본부인 펜타곤의 건물 일부가 붕괴되었다. 9.11테러로 2,977명이 사망하고 25,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10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는 역사상 가장 사망자가 많은 테러로 기록되었다. 9.11 테로 공격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범죄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미국 논평가가 가장 먼저 끄집어낸 단어는 '오욕'이었다. 전문가와 정치인, 경악한 미국인들은 어디서나 거의 반사적으로 '진주만'을 떠올렸다. 과거와 현재는 한순간, 마치 영화 속 플래시백처럼 접합됐다. 미국은 9월 11일을 진주만에 도덕적으로 상응하는 것으로, 그날 시작된 투쟁을 제2차세계대전에 상응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 거기서부터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시작된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여기에 세상의 새로운 악들이 더 있었다. 힘의 정치라는 그레이트 게임에서 일본 점령은 "대기 지역"과 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세력권이라는 더 큰 의제의 일부에 불과했다. 법과 질서 유지에 항복한 일본군을 활용하는 일은 처음에는 계획에 없었을지라도 이 게임의 의미심장한 일부가 됐다. 그리고 패전 일본에 쏟은 자애로운 가부장 같은 관심은 다른 아시아인들을 향한 미국 및 연합국의 정책 및 관행과 날카롭게 대비됐다. 

아시아에서 포성이 정말로 멈추고 평화가 찾아온 곳은 유일하게 일본뿐이었다.               p.556


'전쟁의 문화'라니. 과연 전쟁이 '문화'일 수 있을까 궁금했다. 문화는 그 사회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일반화된 태도나 의식, 습관, 신념 등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전쟁의 문화'란 무엇인가. 이 책은 “진주만공격, 히로시마 폭격, 9.11 테러,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이라크 침공”이라는 네 사건을 통해 드러난 전쟁의 문화를 살펴보고, 현대 전쟁의 문화적 패턴을 분석한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공격을 9.11 이후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비교하는 것이 중심 서사인데, 전쟁계획가의 오만과 위선, 그리고 합리적 선택권의 행사가 실제로는 어떻게 비합리와 무책임의 상징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9.11과 결부된 많은 것들이 진주만과 제2차세계대전을 떠올릴 만한 요소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기에 역사와 동시대의 사건을 하나로 묶어서 살펴보는 일이 더욱 의미가 있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오히려 만성적인 전쟁 국가가 되었고, 전쟁의 문화는 미국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의 일부가 되었다.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상한 역사학자 존 다우어는 미국과 일본, 두 제국의 전쟁문화를 세세하게 해부하면서 현재라는 입장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역사적 시각 자료 122컷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더욱 생생하게 진주만, 히로시마, 9•11, 이라크라는 네 전쟁에 대해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전쟁의 논리와 수사가 어떻게 폭력을 용인하고 그 기억이 어떻게 선택적으로 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전쟁의 문화'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미국이 개입한 아시아 전쟁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 말이다. 이 묵직한 책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단히 훌륭한 대답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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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 어떻게 살 것인가 Philos 시리즈 35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김상운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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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가함이란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을 가리킨다. 한가함은 한가함 속에 있는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즉, 한가함은 객관적인 조건과 관련이 있다. 

반면 지루함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감정이나 기분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 관련되어 있다. 즉, 지루함은 주관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p.120


끊임없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딜레마가 있다.  자극이 없으면 지루해하면서 지나친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끊임없는 자극은 견딜 수 없지만 자극이 없는 것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살아가면서 정작 지루함은 피하고 싶어 한다.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한데, 왜 그로 인해 지루함이라는 불쾌한 상태가 되는 걸까. 삶을 관통하는 이 정반대되는 두 가지 방향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은 '한가함과 지루함'에 대해 철학적인 고찰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은 왜 자극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극을 갈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인간의 근원적 모순인 '지루함'이라는 기분의 정체에 대해 탐구한다. 일본에서는 누적 판매 50만 부를 달성하며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기도 했는데, 이번에 초판본에는 없었던 최신 뇌과학 연구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출간되었다. 러셀, 하이데거, 파스칼, 루소, 키르케고르,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 지루함과 권태에 관한 사유가 400년을 이어져 왔다는 사실부터 매우 흥미로웠는데, 저자는 우리가 겪는 ‘지루함’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우리 각자가 지닌 고유한 역사와 기억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지루함'이라는 기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지루함이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의 발현이다. 하이데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가능성이란 자유를 가리킨다. 인간은 지루해한다. 아니, 지루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다. 하이데거는 이로부터 결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단에 의해 인간의 가능성인 자유를 발휘하라고.... 하이데거는 인간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인간만이 지루해한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은 지루해하지만, 동물은 지루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311


'지루함'과 '한가함'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사실 평소에 지루하다는 생각이나 한가하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별로 없어서 더 궁금했던 책이다. 대체 한가하고 지루한 감정에 대해서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할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그 사유라는 것이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고, 차근차근 따라 가다 보면 꽤나 일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도 설명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셀의 지루함론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이런 식이다. 러셀이 말하는 '지루함이란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꺾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이란 오늘을 어제로부터 구별해 주는 것이다. 사람은 매일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그래서 오늘을 어제와 구별해 줄 것을 갈망한다. 사건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불행하거나, 비참한 사건이어도 된다. 보통 지루함의 반대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루해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흥분할 수 있는 것이면 불행이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 책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든 지루해지고 마는 인간의 삶과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갈 것인가'이다. 사실 지루함과 기분 전환이 뒤얽힌 삶, 지루함도 있지만 나름 즐거움도 있는 삶,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하지만 세상은 인간다운 삶을 허락하지 않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빵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빵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빵뿐 아니라 장미로 장식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모리스의 사상을 비롯해서 인간의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파스칼의 말, 지루함이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된 것은 낭만주의 탓이라는 스벤젠의 입장, 인간은 어떻게든 무언가에 괴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지닌다는 니체의 의견에 이르기까지 지루함의 계보학을 만나보자.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문학, 생물학, 의학을 넘나드는 사유의 시간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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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노후 독립 - 나이 드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오종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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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대수명이 길어질수록 우리 인생에 추가로 주어지는 시간이 많아진다. 70세까지 산다면 61만 3,200시간이 주어지지만, 100세까지 산다면 87만 6,000시간이 주어진다. 따라서 26만 2,800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후반기 인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돈 모으는 데 쓸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지식이나 기술을 터득하는 데 쓸 것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 건강을 돌보거나 휴가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p.109~110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100세 시대는 분명 과학과 의학의 진보가 가져다 준 선물이지만 오래 사는 것이 모두에게 축복은 아니다.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긴 노후가 재앙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60세에 퇴직한다 해도 40년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력과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시간은 오히려 고통이 될 수 있다. 저출산과 고실업으로 자녀에게 부양을 기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하고 풍요롭게 나이 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전 통계청장이자 노후설계 전문가인 오종남 교수는 이 책에서 자녀나 국가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노후설계 방법을 제안한다. 자식과 나라에 기대지 않는 독립적인 노후를 위한 11가지 전략은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철학부터 소비 습관, 건강, 인간관계, 배우자와의 유대까지 꼼꼼하게 짚어준다. 저자는 공부하고, 일하고, 활동하며,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이는 능동적 노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데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노후 대비는 모든 방면을 고려한 입체적인 준비가 필수라고 말이다. 노화와 노쇠는 다르다며, 노년기에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70대에 들어서면 다양항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는데, 70대는 건강한 100세 인생을 위한 골든타임이기 때문에 식습관 조절과 운동 등을 통해 잘 관리해나가야 하는 시기이다. 단순히 오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누구든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노년의 시간 역시 그렇다. 다만 클라인의 시각에서 보면 사람이 늙지는 않고 계속 젊게만 산다는 게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노인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적합한 단계에 있다. 젊은 시절과는 다르다. 젊었을 때는 대부분 바쁘게 일하느라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같은 철학적 화두에 매달릴 겨를이 없다. 노년에 들어 노익장의 삶이냐, 아니면 철학자처럼 느긋한 삶이냐를 놓고 고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각자의 성향과 건강 상태, 경제적 상황 등을 바탕으로 조화롭게 삶을 꾸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208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늙음'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하고 유동적인 경계 지대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엇갈리고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변화의 시간을 잘 통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노년기는 한참 일할 때와는 다른 고민과 심신의 변화가 찾아오게 마련이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억력이 감퇴하고, 인지 능력이 저하되고,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병에 잘 걸리게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 몸의 시스템은 40대 이후로 확연하게 달라진다고 하던데, 이는 50대, 60대가 되어가면서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좀더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에너지 넘치게 삶을 대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어떻게 슬기롭게, 노후를 대비할 수 있을까. 


노년은 잘 무장해야 진입할 수 있는 낯선 세계가 아니라 친숙하던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시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에도 '노년이 인생의 절정일 수도 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면 어떨까. 이 책은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혀야 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하며, 다른 사람을 통해 자극과 조언을 받으며 귾임없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읽다 보면 마음가짐을 서서히 달라지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이다. 이는 더 늦기 전에 나이 듦에 대한 태도와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보다 능동적인 노후를 위한 대비로서 와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듦의 철학과 태도부터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을 노후 생활에 유리하게 접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가올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고, 준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젠가 준비해야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노후 대비를 지금부터 차그차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늙어가도 마음은 늙지 않도록, 누구든 자신의 노년을 떠올릴 때 걱정이나 불안이 아닌 설렘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었다. 성큼 다가온 '100세 시대를' 제대로 대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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