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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도서관 - 호메로스에서 케인스까지 99권으로 읽는 3,000년 세계사
올리버 티얼 지음, 정유선 옮김 / 생각정거장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3,000년 세계사를 책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니 너무도 매력적이다.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짚어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지만, 무엇보다 그 시간들을 문학을 통해서 읽어낸다고 하니 말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무생물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한 사람이 시신의 뼈로 인형을 만들고, 생명을 넣게 되며 시작한다. 이 괴물은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창조한 사람'과 '창조된 것'은 죽음에 이르는 대결을 하게 된다. 이 원작에는 이후 무명의 창조물이 계속해서 더해졌고, 오독이나 오해가 늘 따라다니게 됐다. 실제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창조자의 이름이지만, 현재는 대부분 창조된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지칭해 부르고 있다. 또 창조자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라고 알려졌지만, 책 속에서 그는 한낱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프랑켄슈타인>은 모두가 알고 있거나, 더 정확히는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책일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 '삶이 문학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위한 간단 테스트'라는 항목으로 15가지 문항이 작성되어 있다. 1~5개는 문학적 삶을 살 가능성이 있고, 6~10개는 꽤 문학적인 삶을 사는 사람, 그리고 11~15개는 완벽히 문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란다. 나에게 해당되는 문항은 13개, 나의 삶은 문학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결론. 하핫. 자신도 모르게 책에 빠져들어 읽다가 목 결림, 수면부족 등으로 몸이 힘들었던 적이 있다거나,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거나, 문학 작품에서 파생된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해 본 적이 있다거나.. 이 책은 그렇게 삶이 곧 문학인 이들에게는 완벽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문학적 삶을 꿈꾸게 만들만한 환상적인 가이드가 될 테고 말이다. 비밀의 도서관이라는 매혹적인 제목만큼이나 설레 이는 서두로 시작하는 책 속으로 그렇게 들어가 보았다.
다양한 장르의 책에 관해 생긴 질문을 탐구하고,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하며 시작되었다는 저자는, 잘 알려진 책의 덜 알려진 면을 밝히는 것과,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이 우리 주변의 세계와 놀라운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도서관 책장 뒤로 넘어가 대체로 잊힌 책들,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라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간과된 사실을 갖고 있는 책들에게 집중한다. 역사 속의 책에 대해 분류하고, 그리고 있기에 카테고리는 시대 별로 나뉘어져 있다. 고대,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 낭만주의, 빅토리아 시대, 그리고 미국, 유럽,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문화적 사건을 개략적으로 다루고 있어 3,000년 세계사를 한 번에 읽을 수 있기도 하다. 호메로스, 이솝, 유클리드부터 단테,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을 거쳐, 찰스 다윈, 루이스 캐럴, 마크 트웨인, 그리고 빅토르 위고, 레프 톨스토이, 프란츠 카프카, 안네 프랑크에 이르기까지 총 99권의 책을 통해 읽는 세계사는 지루할 틈 없이 흥미진진하다.
1897년, 고딕소설의 팬들은 한 편의 소설에 특히 열광했다. 어둡고 스모그 자욱한 당시 런던 거리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영국 동부에서 막 런던으로 온 수수께끼 같은 이방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그는 초자연적 힘을 지닌 인물이다. 다양한 인물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 소설은 동성애, 과학적 발견, 런던에서 일어나는 범죄 등의 주제로, 후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두려움과 불안에 교묘하게 다가간다. 이 책의 초판은 빠르게 매진됐으며, 계속 인기를 끌었고, 1919년 영화화됐다.
위 설명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아니라, 적어도 당시에는 <드라큘라>보다 더 많이 팔렸지만 지금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에 관한 묘사다.
읽는 사람은 없어도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책인 기하학원론,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방귀 뀌는 악마,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쓴 최초의 극작가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 최초의 탐정소설은 뭐였을까. 그리고 탐정 홈즈를 만든 단 하나의 책,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3주 만에 소설을 쓴 피츠제럴드, 법정에서 온갖 욕을 하게 만든 책, 채털리 부인의 연인 등등 목차만 읽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항목들이 가득하다. 원래 제목이 '끝이 좋으면 다 좋다'였던 <전쟁과 평화는> 잘 알려지기는 했지만 끝까지 읽는 사람은 거의 없는 대단한 소설 중 하나다. 흔히들 이 소설을 역사상 가장 방대한 분량의 소설로 여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이 역사적 기록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만큼이나 대단한 일은, 톨스토이가 아내와 이별하기 40년 전, 이 작품을 쓸 당시 아내 소피아가 원고 전체를 손으로 일곱 번이나 필사하면서 그를 맹목적으로 도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오랫동안 아내를 멀리하다 이별했고, 며칠 뒤 폐렴으로 기차역에서 사망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작품이 쓰인 당시의 뒷 이야기, 숨겨진 배경, 실제 출간된 시점의 시대적 반응, 역사적 가치, 작품이 가진 의미 등 역사적으로 뿐 아니라 문학사로서도 이 책은 매우 가치가 이다.
책이란 것이 '위대한 문학 작품'이거나 '읽고 싶어도 시도할 시간이나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는 소설'일 필요는 없다. 책이란 생각보다 더 실용적인 것일 수 있고, 서양 역사에서 책이 지니는 중요성은 더 폭이 넓고, 그것들이 실제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익숙하거나 망각된 책들로 가득 찬 상상의 도서관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그저 아무 페이지나 들추고 잠깐씩 멈춰서 구경하더라도 당신의 삶이 문학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당신의 삶은 문학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