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감옥 모중석 스릴러 클럽 41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끝이 보이지 않은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바다, 그림 같은 풍경 속의 호수 모두 바라보는 건 좋아하지만, 수영을 하거나 물에 들어간 적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는 인감의 심연과 닮아 있어 오싹하고, 잔잔한 표면 아래 뭘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호수 또한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전혀 다른 걸 감추고 있는 우리네 사회와 닮아 있어 무서울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물의 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잠수를 잘하는 남자라 스스로를 칭하는 그가 호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뭘까.

그녀는 마비된 느낌이었다. 프랑크가 들려준 이야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자기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명백하게 담겨 있어서 허무했다.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은 늘 발생하고, 상황이 좋게 변할 때도 있고 나쁘게 변할 때도 있다. 그녀 스스로도 이런 일을 겪었고, 수잔 살인사건 이후로 잃어버린 행복의 흔적을 되찾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가 되찾았다고 느낀 안전은 착각이었다. 살인범은 나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다시 찾은 거지. 조금 빨리 걸었으면 나를 성큼성큼 따라잡을 수 있었을 거야.........

누군가 한 여인을 물속으로 세차게 밀고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여자의 몸을 에워쌌고, 죽고 싶지 않아 물속에서 숨을 쉬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만다. 목으로 들어온 물 때문에 숨이 막혀왔고, 폐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제멋대로 날뛰던 경련이 서서히 느려지고, 그렇게 마지막 숨을 내쉬고는 침묵이 찾아온다. 이 작품은 물 속에서 죽는 한 여자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모든 형태의 죽음이 그러하겠지만, 익사는 그 대상에게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카운트 다운을 알리는 방식이라 특히 잔인한 것 같다. 여자들을 익사시키면서 그것을 그녀와 함께 춤을 춘다고 표현하는 이 남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강변에서 익사체가 발견되고, 타살이 분명한 시신의 배에는 전기인두를 사용한 경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대상은 바로 에릭 슈티플러 경정으로 한때는 잘나가는 경찰이었지만, 지금은 싸구려 브랜디에 기대며 명예퇴직할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마누엘라 슈페를링 경위는 이제 막 경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강력계 살인 담당 부서에 배정된 참이다. 그녀는 자신을 무시하는 오만한 상사와, 살인사건 전담팀 내 다른 남자 형사들의 은근한 따돌림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야만 한다. 의류 할인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라비니아는 그 남자가 자신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의 그림자에 쫓기는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녀의 외로움은 사방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여전했다. 그러다 여전히 정체 모를 남자에게 쫓기다 우연히 탄 택시에서 택시운전사 프랑크를 만나게 된다. 프랑크는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해 수면발작과 수면장애, 탈력발작 증세를 겪으며 일상을 버티고 있다.

 

범인의 사적 복수심은 분명 에릭을 향해 있고,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은 수상하기 짝이 없으며, 그 와중에 갖은 핍박을 받으며 수사를 하는 마누엘라의 고군분투는 어떤 면에서 애처롭기까지 하다. 범인은 물과 관련되어 에릭과 어떤 연관이 있어 보이고,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라비니아는 프랑크를 만나 위로를 받지만, 그들은 각각의 이유로 여전히 외롭기만 하다. 그렇게 각각의 인물들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자신만의 플롯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맞닥뜨리게 되는 조그만 반전은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고, 범인과 피해자의 내면까지 리얼하게 그려내는 심리 묘사는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킨다.

남녀 무용수가 두 개의 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이듯이 남자도 녹아서 여자와 하나가 되었다. 그의 심장도 여자의 박동에 맞추어 같은 박자로 뛰었다.

여자 얼굴은 그의 얼굴과 겨우 1센티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여자는 크게 치켜 뜬 기괴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자기가 당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그 눈은 그저 불안과 공포로 가득했고, 눈앞에 닥친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둘은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춤이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사라진 소녀들> <창백한 죽음>, 그리고 <지옥계곡> 이은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네 번째 국내 출간 작이다. <사라진 소녀들>에서는 시각장애인 소녀의 실종사건을 통해 인간의 사악한 본능에 대해 그렸었고, <창백한 죽음>에서는 소시오 패스의 실체를 생생히 추적해서 수사하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지옥계곡>에서는 절친이었던 친구들간의 관계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멀어지는데, 모두 다 악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더 나쁜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었다. 세 작품 모두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그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묘사해 숨어 있는 악을 그리고 있으며,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매 장면마다 긴박하고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주었던 공통점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를 심리 스릴러의 제왕이라 칭할 것이다. 우리가 도덕성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얼마나 나약한 토대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것인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일상 속의 지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말이다. 그는 스릴러와 호러를 오가며 인간 내면에 자리한, 가장 원초적인 본능과 악을 다루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언제나 말해왔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지옥을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의욕 넘치게 일에 뛰어 들지만 혼자만 따돌림 당하며 겪는 마누엘라의 망연자실도, 친구를 잃고 몇 년간 불안감에 시달리는 라비니아의 공포도,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된 인간 관계조차 할 수 없는 프랑크의 외로움도, 품위와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에릭의 허무함도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매 작품마다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깊고 어두운 심연을 바라보며 그들만의 지옥을 그려내고 있다. 심리 스릴러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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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표지는 그림이 아닌가봐요. 이전 책들은 일러스트 (?) 같았던거 맞죠?

피오나 2016-12-21 13:11   좋아요 1 | URL
넹ㅎㅎ 사라진소녀들과 창백한 죽음은 뿔에서 나왔고요. 지옥 계곡과 물의 감옥은 비채에서 나왔거든요. 그래서 표지 이미지 느낌이 좀 다르죠^^

[그장소] 2016-12-21 18:35   좋아요 0 | URL
아.. 출판사가 달랐네요! 알려주셔서 감사~ ^^
저는 지옥계곡을 안봐서요. 그 전 뿔 것은 본거네요. ㅎㅎ

ICE-9 2016-12-2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피오나님 전작주의자시군요. 혼다 테츠야 때도 놀랐지만 설마 안드레아스 빙켈만도 다 가지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피오나님 앞에서 전 감히 미스터리 매니아라고 말도 못 할 것 같네요. 저는 지금 ‘물의 감옥‘ 읽고 있는데 ‘지옥 계곡‘과 너무 다른 스타일이라 과연 빙켈만 맞나 하는 생각을 했네요. 피오나님 말씀대로 ‘심리 스릴러의 제왕‘답게 더 깊어진 심리 스릴러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피오나 2016-12-24 17:03   좋아요 0 | URL
전작주의자맞습니다ㅋㅋ 그래서 시리즈가 한두편 나오다가 말면..정말 아쉽더라구요. 괜찮은 작가의 시리즈도 많이 팔려야 계속 나올테니 출판사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