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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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서둘러야겠다. 잠 못 드는 밤이면 그 기억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니까. 몸부림 한 번, 기침 한 번, 핏방울 하나까지, 몹시도 천천히. 그러니 빨리 이야기를 끝내야겠다.

우리는 침실로 들어섰다. 내가 고기 써는 식칼을 들고 앞서 걸었고, 내 아들 헨리는 포대를 들고 뒤에 따라왔다.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었지만 아예 심벌즈를 치면서 들어왔다고 해도 아내는 깨지 않았을 것이다.

                                                                                -'1992' 중에서

아버지는 식칼을 들고, 아들은 포대를 든 채 두 사람은 아내가 자고 있는 침실로 향한다. 그는 아내의 코 고는 소리와 머리맡에 있는 자명종 시계의 째깍째깍 소리를 함께 들으며 그들이 꼭 지체 높은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는 의사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 오로지 피가 너무 많이 나면 안 되는데. 라고 중얼거리면서. 어린 아들은 그 상황에서도 울지 않는다. 두 사람이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은 매우 잔인하고 끔찍하게 그려진다. 아내가 장인에게 유산으로 상속받은 땅을 자신이 소유한 농장과 합치고 싶었던 그는 그 땅을 팔고 싶어 하는 아내와의 의견 충돌로 지독하게 싸웠다. 1922년 겨울부터 봄까지. 그러다 법으로 해결할 생각도 했으나, 아내에 대한 증오가 커져 그녀가 죽었으면 하고 바랄 지경에 이르자 소송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열네 살 어린 아들을 꼬드겨 살해에 가담하게 하고. 이렇게 쎈 이야기로 시작한 이 스토리는 결국 그를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데 그 과정이 어마어마하다. 쥐들의 공격은 초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내기도 하고, 그가 저지른 끔찍한 행동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게 무슨 말이죠? 혹시... 그러니까 지금 본인이.... 불사신이라는?"

"확실히 엄청 오래 살기는 했지. 선생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도 아마 그 덕분일 거요. 선생이 원하는 건 십중팔구 수명 연장일 것 같은데."

"힘들겠죠, 아무래도?"

스트리터가 물었다. 머릿속으로는 자기 차까지의 거리와 뛰어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면서.

"당연히 가능하지..... 대가만 치른다면."

                                                                                  -'공정한 거래' 중에서

암에 걸려 시한부를 살고 있던 남자는 텅 빈 4차선 도로를 건너가다 한 뚱뚱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자신과 조촐한 거래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하고 제안을 한다. 자신이 파는 것은 '연장'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연장을 원한다고, 신용카드 기한을 연장하거나, 키를 늘려 달라고 하거나, 머리 숱을 늘리려고 하거나, 혹은 애정을 연장해주거나, 대출 기한을 연장해주기도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수명을 연장해주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며, 미워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본다. 몸 속에 있는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싶으면 다른 누구한테 옮겨야 한다며. 남자는 자신의 가장 친한 불알친구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그를 선택한다. 그렇게 남자의 암은 기적처럼 완치가 되고, 이후 톰에게는 줄기차게 불행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벌어지는 악운들의 퍼레이드는 꽤나 섬뜩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 내 수명을 15년 늘려주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선뜻 그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을 보며, 그래도 내가 저 상황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게 될까. 이 작품집에 실린 이야기 중에 <공정한 거래>만 단편이고, 나머지 세 편은 중편 분량인데,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겨주는 단편이었다. <빅 드라이버>는 그의 작품 <미저리>를 연상시키는 도입부가 인상적이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은 연쇄살인마 남편을 둔 아내의 매우 충격적인 스토리가 펼쳐진다.

스티븐 킹은 이 작품들을 쓰면서 <어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 또 그들이 선택할지도 모르는 행동 방식을 기록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가끔 세상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간절한 희망조차도 물거품이 되어 버리곤 하니까 말이다. 스스로도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독하다고 말하는 그는 '독자에게 달려 들어서 공격하는 소설이야말로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며 언제나 그런 작품들을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근본이 대개는 착하다고 믿는' 그의 소설 속에서 언제나 무시무시한 등장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이 밀어 붙이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언제나 스티븐 킹은 '역시'라는 감탄사를 끌어내는 멋진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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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23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완동물공동묘지..가 막 떠오르는!^^

피오나 2015-09-24 09:17   좋아요 1 | URL
아.저는 그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어요. 이 작품집과 비슷한 분위기인가 봅니다ㅎㅎ

[그장소] 2015-09-24 09:18   좋아요 0 | URL
음..좀 짬뽕..이랄까요? ^^

cyrus 2015-09-23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정오 네이버 검색어 순위에 ‘살인’과 관련된 단어가 세 개나 나왔어요. 오원춘, 량첸살인기, 이태원 살인사건. 오늘은 유난히 스티븐 킹의 소설 서평을 자주 보네요. ^^

피오나 2015-09-24 09:17   좋아요 1 | URL
오. 그랬군요. 가끔 보면 세상이 소설만큼이나 끔찍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