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드타이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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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트머스에서 이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 이 사람과 침대를 함께 쓰고, 아이를 낳고,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을 했다. 환상 속에 그리던 백마 탄 왕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멋진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실제로 누군가를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한다는 건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둘 사이가 조금이라도 벌어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만 한다. 두 사람의 사이를 일분일초마다 더 좋아지고 더 열정적으로 만드는 모든 일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내가 조금 어렸을 때, 그러니까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는 막연히 가족이라는 개념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주어진 것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그런데 수십 년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타인과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매 순간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가끔은 무조건 희생해야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공유해야 하는, 사실은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유지되는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은 사랑의 문제가 아닌 책임의 영역이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 또한 절대적인 포기와 희생을 통해서만 견고한 믿음으로 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점점 깨닫게 되었다. 부모와 닮은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낯선 타인처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로 변해가고, 어느 순간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진짜일까? 싶을 만큼 낯설게도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지만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는 기이한 존재라는 말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비밀과 배신, 반전과 폭로라는 코벤 작품의 특징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에게 각자 일정한 몫의 비극을 만들어준다. 모든 집과 가정은 그들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걸로 인해 꽤나 큰 댓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미우나 고우나 그들은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신뢰해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믿음에 관한 무시무시한 진실은 바로 '무조건'이다. 설사 그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감추고 있더라도 말이다.

남이 들으면 그건 '중년의 위기'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은 너무나 편리하게, 너무나 손쉽게 대는 핑계에 불과할 뿐이었다. 사실, 론은 이런 생활을 증오했다. 자신의 직업을 증오했다. 일이 끝나고 이런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과, 말도 듣지 않는 애들과,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과, 전구를 사러 헐레벌떡 철물점으로 달려가는 것과, 자식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난방비 줄일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을 증오했다. 정말 이런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함정에 빠져들었던 걸까? 수많은 남자들은 이런 생활을 어떻게 버텨가는 것일까?

열여섯 아들 애덤이 사람들을 기피하고 홀로 방안에 틀어박히자, 걱정이 된 부모 마이크와 티아는 아들의 컴퓨터에 그를 감시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게 된다. 친한 친구 스펜서가 자살한 뒤 침울해지고 말수가 적어진 애덤이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말도 잘 하지않고 눈에 띄게 변한 탓이다.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것이냐, 아들을 보호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그들은 결국 아들을 몰래 살펴보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다 휴대전화 GPS를 추적하기에 이르고, 그것은 이들 모두를 위험으로 내몰게 된다. 과연 아들의 반항은 사춘기 소년의 일탈에 불과했던 것일까. 왜 애덤은 친구의 죽음 이후로 변하게 된 것일까. 혹시 그 죽음과 무슨 관련이 있었던 걸까. 아들인 스펜서가 자살한 뒤 벳시 힐와 론은 스스로를 자책한다. 왜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그저 십대들이 흔히 보이는 기분 변화라고 무시해버렸을까. 왜 미리 심리치료사에게 꾸준하게 데려가지 않았을까. 왜 아빠라는 사람이 자식의 고민을 전혀 눈치재지 못했을까. 아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데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아들의 손이 쉽게 미칠 수 있는 곳에 처방약과 보드카를 놔둔 자신을 책망하고 만다. 그러다 벳시는 우연히 스펜서가 죽던 날 밤에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들의 절친이었던 애덤을 찾아 그날 밤의 일에 대해 묻는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전과 단테 부부의 아들 루커스는 현재 장기 기증이 필요하다. 의사는 그들의 적합성검사를 했고, 생각지도 못한 당황스런 결과에 직면한다. 단테가 루커스의 친아버지가 아닌 걸로 밝혀진 것이다. 루커스에게 딱 맞는 기증자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마도 가장 유력한 후보자는 그 애의 생물학적 아버지일 것이다. 환자를 위해서는 친아버지를 찾아 적합성 검사를 해야 하지만, 이 사실을 알려주면 단테와 수전 부부는 파국을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이는 여러 해 전에 이혼을 하고 홀로 열한 살 된 딸 야스민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선생님이 수업내용을 빗대어 야스민을 모함하는 말을 했고, 그 이후로 모든 학생들이 야스민을 놀리기 시작한다. 엄마도 없는 데다 아빠라는 사람이 세심하게 관심을 쏟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주의한 루이스턴 선생님에 대한 분노에 빠져 있다. 선생이라는 작자가 단 10초 동안 이성을 잃었을 뿐인데 그 사건으로 한 소녀의 인생이 몽땅 변해버린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이들 네 가족은 모두 전혀 다른 크기의 고민과 불행을 끌어안고 있다. 방황하는 아들을 감시하는 부모, 아들의 자살 원인에 대해 자책하는 부모, 장기 기증이 필요한 아들을 위해 부부 사이의 신뢰를 깨버려야 하는 아내, 그리고 부주의한 선생님 때문에 상처받은 딸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아빠.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는 바깥에서 보면 절대 알 수 없다. 그들 각자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오로지 가족만이 그 슬픔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 내 손을 잡아. 널 놓지 않을께.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당신은 그 어떤 것을 마주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만큼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신뢰라는 건 그런 것이다. 좋은 의도라 해도, 한번 깨지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그럼 어머니인 티아는 이 모든 일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다였다.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그들이 사랑 받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면 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너무나 무작위적이어서 그보다 더한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 마이크에게는 유대인의 표현을 즐겨 인용하는 전직 농구스타 친구가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인간은 열심히 계획하지만, 신은 비웃는다'였다.

할런 코벤의 작품은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수많은 등장 인물은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있고, 결국에는 퍼즐처럼 연결이 된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플롯은 막판에 가서야 단순하게 정리가 되며, 끝을 향해 달릴 때까지 지루할 틈이란 단 한 순간도 없다. 그러니까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서서히 상승하는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에 치달을 때까지 계속 더 높이, 더 높이 가다가 어느 순간 일시에 해소가 되는 스토리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페이지가 아무리 두꺼워도 멈추고 쉴만한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작품들은 대개 독자들과의 암묵적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한 판 게임이다.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약속된 장르의 법칙 아래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것이니 복잡하다고 토 달지 말고, 어디서 본듯한 설정이라고 비웃지도 말라는 선언에 동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코벤 표 롤러코스터의 레일을 성실하게 따라가면서 즐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니까. 코벤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설정과 익숙한 스토리마저 결국 우리네 삶을 비추는 예리한 거울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그저 공감하고, 감탄하고, 뜨끔하다가, 서글펐다가, 당황하고, 마지막으로 안도하면 된다. 사실 그게 우리네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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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0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피오나님이 쓰신 이 리뷰의 첫단락(인용문 말고요)이 참 좋으네요. 저도 이 책을 읽어봐야 겠어요.

피오나 2015-04-01 12:44   좋아요 0 | URL
어떤지 다락방님도 이 책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아요. 가족에 대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해주더라고요. 평소 다락방님의 페이퍼를 즐겨읽었는데, 글 속에 가족들이 자주 등장하셨잖아요. ^^;;

맥거핀 2015-04-0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만들면 꽤 재밌을 것 같아요(이미 영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쩔 때는 이 세상에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사람이 제일 마음 편하겠다 싶다가도, 막상 일 생기면 곁에 남아있는 것은 가족 밖에 없으니..누구 말마따나 갖다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가 없는 게 가족인가 봅니다. (같은 평가단으로서 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피오나 2015-04-01 18:25   좋아요 0 | URL
정말 가끔은 갖다 버리고 싶지만, 그러나 버릴 수 없는 존재..ㅎㅎ 저는 평가단 이전에도 맥거핀 님 글 읽고 있었어요. 특히 영화 리뷰는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답니다.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