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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메리 셸리의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창조물은 시체 부분들을 꿰매 붙이고 전기로 생명을 불어넣어 만들어 지죠. 제가 구상하는 건 꿰맨 자국 없는 완전한 존재들입니다. 저는 어떤 장비, 알파벳 네 자만 이용하는 워드 프로세서 같은 장비로 그들의 DNA를 작성함으로써 그들을 탄생시킨다고 할 수 있죠... 작가가 알파벳 스물네 자로 소설 등장인물을 창조하는 것과도 비슷하죠. 다만 그것들이 피와 살과 신경을 갖춘 <진짜> 존재, 생생히 살아 있는 새로운 존재라는 점만이 달라요.」 p.79~80
언제나 신작이 출간될 때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키메라의 땅>을 가제본으로 만나보았다. 디자이너의 표지 스케치와 아이디어 메모를 담아 특별한 표지 이미지와 1,2권 합본판으로 만들어진 가제본이라 더욱 근사하다. 페이지를 펼치면 '이 이야기는 당신이 이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는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5년 후에 일어난다'는 일러두기 문장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이 이야기가 어쩌면 근미래에 펼쳐질 우리 인류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매 작품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도 기대 이상이었다.
진화 생물학자인 알리스 카메러는 최신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인류를 개발하려는 중이다. 공중을 나는 인간, 땅을 파고들어 가는 인간, 헤엄치는 인간, 이렇게 세 종류의 인간이다. 서른 살의 젊은 나이인 카메러 교수는 탁월한 생물학자이지만, 학창시절 친구였던 뱅자맹 웰스가 연구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었기에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극비리에 진행되던 연구는 한 기자에 의해 연구소가 침입당하면서 유출될 위기에 처한다. 그런 식으로 언론에 알려지기 전에,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로 한다. <변신 프로젝트>는 아직 실험적인 단계에 불과했지만, 먼 훗날 인류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거라고 발표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가 맞닥뜨릴 시련에 대처하려는 것이 그 목적으로, 세 가지 아종은 인간과 다른 종의 이종 교배의 결과물이다. 인간과 박쥐의 혼종인 에어리얼, 인간과 두더지의 혼종인 디거, 그리고 인간과 돌고래의 혼종인 노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창조물과 뭐가 다르냐며, 혼종 생명체를 괴물 취급한다. 그렇게 반대론자들로부터 극심한 위협을 받게 되자, 웰스는 알리스가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피신하게 해준다.

박쥐 인간은 말을 계속한다.
「내가 내다보는 최상의 미래는 이래. 혼종들은 번성하며 각자의 문명을 건설해. 한편으로는 사피엔스와, 다른 한편으로는 혼혈들과 더불어 말이야. 이 아름다운 세상 전체가 서로 뒤섞이고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살아가.」
포세이돈은 어이없다는 듯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하데스는 회의적인 표정이 된다.
「내가 바라는 미래이기도 하다.」 알리스가 동의한다. p.490
우주 정거장에 체류 중인 우주 비행사들은 다섯 명이었고, 각기 다른 연구를 하는 생물학자들이었다. 비교적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그들조차 여러 동물의 혼합인 혼종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알리스의 연구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사실상 알리스의 프로젝트는 시대를 앞선 연구였고, 신화 속 동물인 키메라 혹은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는 게 구인류를 멸망시킬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듣고는 실제로 자신의 프로젝트가 엄청난 실수면 어쩌지라는 의문이 알리스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던 중 지구에서는 3차 세계 대전이 발생해 핵전쟁으로 지구가 거의 파괴되는 일이 벌어진다. 지구에서 410킬로미터 떨어진 상공에 우주비행사 몇명이 유일한 생존자가 되는 걸까. 우여곡절 끝에 알리스는 고농도의 방사능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3종의 키메라 배아를 들고 지구에 귀환하는 데 성공한다. 알리스의 혼종 인류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극소수 인간만 생존한 지구에서 인간과 동물의 혼종 신인류인 에어리얼, 디거, 노틱이 탄생한다. 과연 구인류와 신인류는 조화롭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극중 알리스 교수의 말을 빌어 인간이 어리석고, 분별없고, 비이성적이고, 지구상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종들을 한없이 경시한다고 말한다. 너무나 오만한 나머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인간들에게 생물 다양성의 중요함에 대해,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종의 다양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지진을 대비해 날 수 있는 능력을, 쓰나미가 닥칠 경우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을, 지구 온난화가 극심해질 때 지하에 거주하며 버틸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인류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4분의 3이 고작 며칠 만에 사라졌다는 비현실적인 상상력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나면 언젠가 일어날 법한 현실이 되어 버린다. 실제로 지구에 생명이 출현한 이후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고, 인류가 환경을 파괴시키며 생물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걸 보자면,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한 과학자들의 예측이 우리의 미래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테니 말이다. 자, 기발한 상상력과 방대한 철학, 그리고 과학적인 정보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해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지금 바로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