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기쁨』1, 2, 3권을 다 읽었다. 아직 4권은 읽는 중이긴 하지만 제일 재밌던 건 1권이다. 신나게 읽고 생각하기를 이 시리즈는 모아야겠구나, 구매하고 인덱스도 마음껏 붙였다. 이해가 안 되니 어떤 면에서는 고역이기도 했다. 읽고난 결론은 클래식 음악은 서양 문화의 총체라는 것이다. 정신 세계와 물질 세계를 모두 담고 있다고 해야 할까? 클래식 음악 서적을 보면서 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다니! 어떤 느낌인지 전해질려나? 


아는 음악가가 등장할 때야 조금 숨이 틔는 듯 했다. 바로크 시대의 륄리라던가, 고전의 바흐라던가 하는... 열심히 읽고 3권 쯤에서 『음악의 시학』을 펼쳤다. 신기한 것이 이해가 좀 되더라! (역자가 같은 분이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스트라빈스키의 하버드 강연을 옮긴 『음악의 시학』에는 마뉘엘의 숨결이 닿아 있다. 스트라빈스키를 보좌했던 수브친스키도 대담에 초대되고, 파리 음악가들의 네트워크를 조금은 알게되었다고 할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인덱스 정리를 위해『쇼팽 노트』를 펼치니 너무 쉬웠다. 흑흑. 지드 선생님은 대단한 분이셨어... 이렇게 명쾌하게 글을 써 주시다니...


이외에도 클래식 서적 페이퍼에 올렸던 책들을 헤아려보니 11월부터 총 10권을 읽었다. 펼친 순서는 다음과 같지만 덮은 순서는 다르다. [쇼팽 노트/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피아노의 역사/ 쇼팽, 그 삶과 음악/ 더클래식 둘/ 음악의 기쁨 1,2,3,4/ 음악의 시학]



클래식 서적을 읽으니 자연히 다른 책들은 멀리하게 됐다. 지나친 표현인 것 같지만 조금 질린다고 할까? 그래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택했다.



『차일드 44』 2, 3권을 읽었는데 리뷰는 한 줄로 가능하다. [왜 레오는 햄보칼 수가 없어!!!!!!!!!!!!ㅠㅠㅠㅠㅠㅜㅜㅠㅜㅠㅜㅠㅜㅠㅠ] 솔직히 재미없었다. 콜리마랑 두딘체프 언급되는 거 말고는... 1권이 제일 낫다. 톰 롭 스미스는 최근 BBC에서 방영한 『런던 스파이』에서도 각본을 맡았다. 벤 휘쇼, 짐 브로드벤트, 에드워드 홀크래프트, 샬럿 램플링, 마크 게이티스가 출연한다. 『얼음 속의 소녀들』도 그렇고, 스미스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리고 거기서 오는 상실과 공포를 정치와 사회문제로 확장하고 연결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다 좋은데 후유증이 너무 남아...


반면 한스 라트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그냥 술술 넘어간다. 재밌었다. 『드라큘라』 상권도 조금씩 읽었는데 아직 썩 끌림이 없다. 한 번 쯤 읽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유로피아나』는 재밌는데 이상하게 책장이 잘 안 넘어간다. 다른데 마음이 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나름대로 내년 계획을 세우기를, 다음 책들의 리뷰를 쓰리라!!! 



『셰익스피어의 책』은 거의 다 읽었기 때문에 리뷰를 쓸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책을 시작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하나씩 읽을 예정인데 과연 될 지 모르겠다. 『피네간의 경야 이야기』도 앞부분은 읽었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올해 읽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잘 안 되어 내년으로 넘어간다. (내년은 내일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5권 리뷰를 반드시 쓸 것이다! 자신 있다. 『신곡』도 읽을 것이다. 자신 있다!! 사실 이 책은 『피네간의 경야 이야기』를 읽기 위한 준비라고 해도 된다...


가능성이 높은 순서: [셰익스피어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6/ 신곡 지옥, 연옥, 천국 / 피네간의 경야 이야기]



이왕 하는 김에 욕심을 더 부려보았다. 물론 이들을 읽을 가능성은 『피네간의 경야 이야기』를 읽을 가능성보다 높다. 아무리 쉽게 쓰여졌어도 읽기가 너무 힘들어... 사실 『악의 꽃』은 한 번 읽었지만 제대로 음미하면서 읽으려고 넣었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고등학교 다닐 때 독후감 써야 해서 읽었는데... 기억도 안 난다. 



이 버전으로 읽었다. 집에 책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듯. 도대체 어떻게 읽은거야? 책세상에서 나온 걸로 읽으려고 했는데 집에 열린책들 책이 있어서 이 버전으로 읽으려 한다. 어쨌든 나는 준비성이 철저하니(?) 책은 거의 다 가지고 있다. 실천이 부족할 뿐... 2016년에는 꼭 읽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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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2-3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스트를 보아하니... 내년에도 에이바님께 계속 반하게 될 듯 하군요^^
에이바님 뜻 한 대로 다 이루시는 한해 되세요^^

에이바 2015-12-31 23:46   좋아요 0 | URL
오로라님도 2016년 바라는 바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ㅎㅎ

붉은돼지 2015-12-3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신년 독서계획 완주하시길 응원합니다.
새해에도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또 기원합니다. ^^

에이바 2015-12-31 23: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붉은돼지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요. 건강하시고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

cyrus 2015-12-3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에 셰익스피어 전작 읽기 도전을 감행했다가 도중에 포기한 기억이 나네요. 이것 말고도 전작 읽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한 작가들의 책이 많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에이바 2015-12-31 23:49   좋아요 0 | URL
너무 야심만만한 계획일까요? ㅎㅎ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cyrus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후애(厚愛) 2015-12-3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편안한 저녁 되시구요~

에이바 2015-12-31 23:49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 내년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요^^

물고기자리 2015-12-3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진지한 독서를 하시는 에이바 님, 새해에도 행복한 읽기의 나날들이 이어지시길 바랍니다^^ 리뷰 기대하고 있을게요ㅎ

에이바 2015-12-31 23:50   좋아요 0 | URL
물고기자리님의 진지하고 즐거운 사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서니데이 2015-12-3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올해도 참 많은 책 읽으셨네요. 페이퍼의 내용,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내년에도 로마시대 이야기를 비롯해서 좋은 이야기 담은 페이퍼 읽으러 자주 올게요.
올해는 편안하게 보내시고, 내년엔 더 좋은 일들 함께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에이바 2015-12-31 23:53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저도 늘 페이퍼 보면서 따뜻함과 정보를 얻고 있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6월,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표지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영중인 사람의 물 밑 그림자인데, 언뜻 봤을 땐 어깨와 배 부분이 동그랗게 뚫린 ‘옷’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다 “내 인생, 남은 날은 여름방학이야. 숙제도 없이.”라는 카피라니 표지 그림도 뭔가 나무늘보 같고. 여유인지 게으름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내용인가 보다 했다. 2015년을 며칠 앞두고서 '휴가'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요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책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 손에서 놓을 수 없는 흡입력, 가벼운 내용이지만 독서 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묵직한 한 방. 이렇게 삼박자가 히트작의 요건이 아닌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화’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는 독서가 보는 독서가 된다, 이런 말인데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작가가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독서하지 않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얘기를 듣는 소설들이 그러한데, 궁극적으로 독자 수를 늘리는 데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읽다보면 빠져들기 마련이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려는 욕망이 생기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볍다고 평가되는 소설들도 너무 후려쳐서는 안 된다 생각하지만 별점을 매기는 시간이 오면 언제나 고민이다. 소설이 속하는 장르 내에서 상대평가를 할 것인지, 리뷰 전체를 보아 평가를 할 것인지... 결국 그 때 그 때 내 마음대로지만, 어쨌든 대체로 별 넷은 읽을 만 하다(혹은 소장할 만하다)는 뜻이고 별 셋은 그보다는 약간 못하다는 뜻이 되겠다. 그렇게 별 셋(3.5/5.0)을 준 이 작품에 대해 소개해보자면, 이사카 고타로는 『사신 치바』, 『골든 슬럼버』 등으로 유명한 작가라는데 나는 잘 모른다. 미스터리 작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남은 날은 전부 휴가』의 이야기들은 약간의 추리가 가미된, 대체로 휴머니즘적인 분위기이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어른의 성가신 오지랖」, 「불길한 횡재」,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 이렇게 다섯 개의 단편이 실려 있고 옴니버스 구성이다.


표제작인 「남은 날은 전부 휴가」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오카다와 미조구치의 등장을 알린다. 첫 시작은 이렇다.


"사실은 바람을 피웠습니다."

식탁 맞은편 자리에 앉은 아버지가 말했다. '벚나무를 꺾었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소년만큼이나 시원스러웠다. "상대는 같은 회사 사무직 여성, 스물아홉 살의 미혼입니다."

 (중략)

"그거." 나는 김이 새서 뺨을 긁는다. "바람피운 게 무슨 비밀이야. 누구 때문에 이사를 하게 됐는데." 가족 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만 살기에 이 집은 너무 넓었다. 집값에 비해 방이 많다는 점이 역효과를 낳은 꼴이다. 그래서 팔기로 했다. 이사 준비가 끝나고 업자가 올 때까지 시간이 남아돌자 "어차피 오늘로 하야사카 집안은 해체니까 그 전에 한 명씩 비밀이나 폭로할까" 하는 말을 꺼낸 것은 어머니였다.


이렇게 하야사카 가족의 해체를 알리는 순간에 휴대폰이 울렸는데, ‘친구 해요’라는 익명의 문자 알림이었다. 교통사고 사기단으로 활약하던 오카다가 탈퇴를 원하자 ‘이 문자에 긍정적 답장이 오면 너는 자유’라고 미조구치가 걸었던 조건이었다. 하야사카들은 가족이 해체하는 마당에 친구나 사귀자며 이 답장에 오케이 하고 오카다는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선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간다. 골 때리죠? 단편들은 계속 이런 식이다. 잠깐이라도 이름이 나온 인물들은 다른 이야기에서 언급되거나 출연하며 조금씩 반전을 풀어놓는다.


남을 협박해서 이윤을 챙기는 공갈단도 그 나름대로 따뜻한 마음을 베푼다는 것일까? 오카다도 미조구치도, 프로 사기꾼답게 누군가를 도와줄 때도 그럴 듯한 상황 설정에 공을 들인다. 이 과정이 꽤 재미있다. 오카다의 어린 시절, 미조구치의 젊은 시절 그리고 하야사카 가족과의 계속되는 우정까지 읽어 내리노라면 나도 마음대로 “내일부터 전부 휴가!”라고 외치고 싶다. 다시 표지 얘기로 돌아와서, 소설을 다 읽고 표지를 보니 마냥 귀엽고 나도 저 물에 뛰어들어 유유자적 헤엄이나 치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털어놓자, 오카다는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한다. “꿈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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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3편인 『게르망트 쪽』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총 7편(현재 1편 2권 분권하여 출간중)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편 『스완네 집 쪽으로Du côté de chez Swann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3편 『게르망트 쪽Le Côté de Guermantes

4편 『소돔과 고모라Sodome et Gomorrhe

5편 『갇힌 여인La Prisonnière

6편 『사라진 알베르틴Albertine disparue

7편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


민음사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좋은 이유는 프루스트 전공자인 김희영 교수님의 번역이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아드 판본이고요. 프루스트의 문장 특징이 호흡이 길다는 것인데요, 문두에서 시작, 전개되며 떠오르는 이미지 묘사가 계속되는데다 어감을 살리기가 무척 까다롭습니다. 그렇다고 끊어서 번역하면 프루스트가 의도했던 '맛'이 안 나고요. 치열하게 고민한 작업이라는게 느껴지는 그런 작품입니다.


의외로 지루하지 않고 재밌습니다. 번역도 새로워졌고, 주석과 해석도 풍부하고... 시리즈에 대한 이미지가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요. 먼저 읽으면서 다음 편을 기다리는 재미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저도 3편이 출간되었으니 내려놓았던 2편을 마저 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절판된 테이크아웃 시리즈의 『프루스트』 편을 보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는 사람은 입원해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요. 다이제스트판으로 읽어봄직 합니다. 의외로 괜찮다고 생각했던 추천법은 시리즈 순서대로 읽지 않기입니다. 여기서는 사랑 얘기가 나오는 5편 『갇힌 여인』을 먼저 읽는게 어떠하냐고 제의합니다. 사랑과 전쟁 이야기는 모두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니까요. 민음사 본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으니 이전에 출간된 버전으로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근데 이 버전은 오래된 번역이다 보니 좀 지루할 수 있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이 재출간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좁은 문』에서 발견되는 사랑에 대한 분석입니다. 


목차


제1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믿음의 문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관념과 실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제2부 

『좁은 문』에서의 알리사의 거울놀이 

『좁은 문』에서의 타인 읽기 

『좁은 문』에서의 알리사의 흰옷


지드가 NRF 편집장이던 시절에 프루스트의 원고를 거절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프루스트는 사교계 한량이라고 해야 하나 속물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거기에 대한 편견이 작동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프루스트 문장이 문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해야 하나, 좀 그래요. 프루스트가 여러 번 고쳐쓰고 때문에 판본도 여러가지 입니다. 결론적으로 이것이 프루스트의 고유의 문체이지만 당시 지드는 그것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확하지 않으면 프랑스어가 아니다Ce qui n'est pas clair n'est pas français" 일까요? (이 부분은 확실치 않은게 지드가 지적한 문법 부분이 원고를 거절할 때였는지, 출간 이후 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아마 거절할 때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또 두 사람의 의견이 갈라진 곳은 동성애자에 대한 묘사입니다. 4편 『소돔과 고모라』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동성애자를 부정적으로 비치게 할까 하는 우려 때문인데 시각 차이니까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시공사에서도 새로이 출간되었습니다. 출간일은 오늘이네요! 번역가 성함을 보니 기대되는군요. 재출간된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과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민음, 을유, 펭귄 판 『좁은 문』은 이미 읽었고, 『배덕자』 때문에 민음판을 가지고 있는데요. 시공사 번역은 어떤 분위기일지 기대됩니다.


2016년을 맞이하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좁은 문』 모두를 읽어보시는 건 어떠신지...




+) 만화로 보시려면 열화당에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추천합니다. 원문 그대로를 싣고 있어서 좋습니다. 총 열두 권 기획이고, 2013년에 6권을 작업, 출간되었습니다. (1권부터 1998년, 2000년, 2002년, 2006년, 2008년, 2013년에 델쿠르 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스테판 외에 홈페이지에 가면 타언어로 번역된 표지도 볼 수 있습니다. (링크)




+) 『게르망트 쪽』 주문시 양장노트도 증정한대요. 예약 구매했으면 눈물 흘렸을 듯...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51223_lost&start=pb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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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24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을 다 모으고,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소장하고 싶어요. 소설에 언급되는 화가의 그림들이 나와서 좋더라고요. 이 책이 품절되어서 아쉬워요.

에이바 2015-12-24 21:00   좋아요 0 | URL
열화당에서 나온 만화 말씀인 줄 알았어요. 저도 1권은 봤었는데 이거 괜찮아요. 무슨 상도 받았던 것 같은데... 본문에 추가해놔야겠네요. ㅎㅎ cyrus님이 말씀하신 책도 괜찮은 것 같은데 아쉽네요...

cyrus 2015-12-24 21:05   좋아요 0 | URL
만화로 된 책도 가지고 싶어요. 제가 언급한 책의 출판사는 ‘까치’입니다. ^^

AgalmA 2015-12-24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각의 박물관>에서 다이앤 애커먼이 프루스트를 육체적 쾌락에 빠진 호랑방탕한 인물처럼 슬쩍 얘기하던데, 프루스트 평전 두꺼워서 안 읽고 있다가 홧김에 보내버린 게 원통! 책 읽기도 버거운데 작가 추적까지 해야 하다니 독자가 아니라 점점 탐정이 돼가고 있는 기분ㅜㅜ
그러고보니 위에 책탐정 cyrus님이 등장ㅎ

에이바 2015-12-24 21:03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소돔과 고모라에 나오는 인물 때문에 그런걸지도요. 프루스트는 짝사랑은 했지만 연애는 못했던 인물로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 디스 당하는... 방탕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들은 것 같기도 한데 ㅋㅋㅋ 음... 네...ㅋㅋㅋ

cyrus 2015-12-24 21:12   좋아요 1 | URL
To. Agalma님 / 책탐정, 정말 마음에 드는 별칭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고 보니 프루스트 평전 한 권도 있어야겠어요.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체 줄거리보다 프루스트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요. ^^

blanca 2015-12-24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 전 예약구매했어요...

에이바 2015-12-24 21:17   좋아요 1 | URL
blanca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알라딘과 민음사는 예약 구매자에게도 양장노트를 증정하라! 증정하라!!

AgalmA 2015-12-24 21:18   좋아요 0 | URL
이래서야 예약구매 하겠나요-_-;;

단발머리 2015-12-25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원..... 1권에 인물 소개 읽고 책을 고이 책장으로 보내드린 이 1인은 이 페이퍼에 마음 심히 불편합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읽어야겠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하면서요.
갈길은 멀지만....
에이바님,
메리 크리스마스!!

에이바 2015-12-25 09:43   좋아요 0 | URL
새해 독서 목록에 올려놓으시길 추천드립니다....ㅎㅎ 저도 읽는 건 자신있지만 과연 리뷰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단발머리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서니데이 2015-12-25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에이바 2015-12-25 23:3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늦었지만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셨길요!!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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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라트의 이 소설은 출간 전 '7인의 작가전'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다. 그 때도 느낀 거지만 진짜 골 때린다. 순화된 표현을 찾아봤지만 이 표현이 딱 맞는 것이,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먼저 주인공 야콥은 심리 치료사인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아주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석 달 전 이혼했는데(그는 부부 상담도 한다) 상담소도 잘 안 되어 집세도 못 낼 지경이다. 가족 소개를 해볼까. 유명 심리학자였던, 돌아가신 아버지와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사랑을 주는 어머니, 실력있는 투자가이자 바람둥이 남동생까지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어머니와 소름끼치도록 비슷한 전 부인 엘렌은 천 억대 자산가이다. 소개 글만 봐도 갑갑하지 않은가? 이들은 하나같이 야콥 야코비를 압박하는 사람들로, 신랄한 혀를 가질 수 밖에 없었겠구나 수긍하게 만든다. 사건은 어느 밤, 전 부인이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된다. 사실 이유는 다른 것 같지만, 지금의 결혼생활을 위해 상담이 필요하다는 엘렌이다. 그녀와 투닥거리던 야콥은 전 부인의 현 남편(권투선수, 페더급)의 방문을 맞이하고 인사를 나누기도 전, 총알 주먹에 코를 맞아 기절한다.


구급차에서 깨어난 후, 진료를 위해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야콥에게 40대 후반의 남성이 말을 건넨다. 서커스 어릿광대로 일하는 그의 이름은 아벨 바우만. 그는 심장 주변이 따끔거린다며 심리치료의 필요성을 느낀다는데 마침 야콥 야코비가 심리 치료사이지 않은가! 어차피 빈털터리인 야콥은 마지막 환자일지도 모를 그와 상담을 시작한다. 아침식사를 함께 하다 우연히 다시 코를 얻어맞은 야콥은 병실에서 깨어나고, 동생과 어머니가 찾아와 한바탕 난리를 벌인다.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다인실이 아니라 독실이다. 갑자기 나타난 아벨은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데 심지어 회진도 돌았다고 한다. 상황 파악이 끝나기도 전, 경찰관이 아벨을 타인 사칭 혐의로 연행하고, 환자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야콥도 동행한다. 알고 보니 아벨은 상습범이란다. 유치장에서 알아낸 바로는 의사, 건축가, 판사, 검사, 폭파 전문가, 은행 직원, 핵물리학자, 소방대원, 선장, 기장 등의 행세를 했다는데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담당 환자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야콥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혹시 당신이 신이라도 되나요?」라고 묻고 아벨은 그렇다고 한다. 자기가 신이라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아벨의 가족을 만나러 함께 뮌헨으로 향하는 야콥. 아벨에겐 아들도 있단다! 전 부인의 이름은 무려 마리아! 그녀의 남편은 목수 요셉! 심지어 신앙심도 아주 깊다고 한다. 골 때리죠? 다행히도 아들의 이름은 크리스티안, 수도원에 들어간 수사라 한다. 이미 가족들에겐 자신이 신이라고 커밍아웃한 아벨. 그는 정말 ‘신’일까? 아니면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까?


우리는 타인의 주장을 믿기 위해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야콥도 그러했고, 요셉과 마리아도 그러했다. 아벨은 적정한 수준에서 증명하려 애쓰나,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소설의 세계관에서는 신의 힘이 사그러드는 이유가 사람들의 믿음이 줄어서라고 했다. 아벨도 그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다. 신이 있다면 전쟁, 고문과 같은 잔인한 ‘현실’을 모른 체 할 리 없다. 그런 말에 나름의 변명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눈속임이 아닌 기적을 불러 보시지? 라는 말에도 신으로서의 고충을 털어 놓는다. 이쯤 되면 독자들마저도 어리둥절하다. 이 사람이 정말 신인지, 아니면 달변의 사기꾼인지.


아벨이 사기꾼이라는 전제로 이야기해보면, 그의 논리에는 오류가 있다.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신’으로서 아벨은 마치 유희를 하듯, 미시적 역사에 한 발 걸치고 있었다. 카지노 등지에서 돈을 따는 것만으로, 혹은 잔에 물을 채우는 등의 눈속임으로는 그가 ‘신’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과학이라는 도구가 있지 않은가!) 또 이야기는 야콥의 시선으로 전개되는데 현재 그는 심신이 꽤 미약해진 상태다. 코뼈가 내려앉은 이후 계속 같은 부위를 맞아 쓰러지는 데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동생은 날랐고, 엄마는 자신을 믿지 않고, 왜인지 기댈 만한 친구도 없다. 전 부인은 묘하게 나를 스토킹하고 있고 상담소도 없는 내게 유일한 환자는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중년 남성(직업: 광대, 사는 곳: 외곽 트레일러)이다. 과연 야콥이 제 정신으로 이 모든 일을 겪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벨의 말이 진실이라는 가정 하에서 생각해보면, 그가 자신이 신임을 증명한다고 이른바 ‘기적’을 일으킨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믿을까? 독일이나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재림 예수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들을 사기꾼이라 부른다. 또 종교적 광신에 대한 예는 역사적으로 이어져 왔으니 부작용이 너무 크다. 과학적으로 그의 존재와 기적을 증명하기 위해 매달리는 사람, 그를 사기꾼이라 고소할 단체들, 이를 취재하는 미디어들. 성경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은 제자 토마스가 이런 말을 듣는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 종교적 믿음과 현실적 회의 사이는 이렇게나 멀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의심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재미있어 다음 장을 넘기기에 바쁠 뿐이다. 어쩌면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를 만나 인생을 다시 살게 된 야콥이야말로 제대로 된 상담을 받은 게 아닐까. 조금은 급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긴 하지만, 그 안에서 풀어내는 유머와 휴머니즘, 적절한 종교문제 마무리까지 나무랄 데 없는 소설이다. 그나저나 오늘 밤에는 자기 전에 기도나 한 번 해야겠다. 곧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 신과 다이렉트로 얘기나 좀 나눠야지.


* 야콥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출간된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에서는 ‘악마’의 방문을 받는다. 본격 신계 전문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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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2-2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웃으면 안되는데;;
하면서 읽었어요,
재미있었어요, 에이바님 좋은하루되세요^^

에이바 2015-12-22 14:40   좋아요 1 | URL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

서니데이 2015-12-2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편안하고 좋은, 화요일 밤 되세요.^^

에이바 2015-12-24 13:53   좋아요 1 | URL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네요. 서니데이님 2015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좋은 분들과 행복한 한 해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

후애(厚愛) 2015-12-23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한 오후 되시고, 저녁 맛 있게 드세요.^^

에이바 2015-12-24 13:54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이렇게 빨리 2016년이 올 줄은...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아요. 편안하고 행복했던 한 해가 되셨길 바랍니다. ^^

AgalmA 2015-12-2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보고 궁금하던 차 였는데, 표지랑 내용이 너무 잘 어울려욧ㅎㅎ! 아, 골 때려ㅋㅋ

에이바 2015-12-24 20:47   좋아요 1 | URL
읽으면 더 그래요 ㅎㅎ 악마가 찾아온 신간은 한 술 더 뜰 것 같아요 ㅋㅋㅋ
 
피아노의 역사 - 피아노가 사랑한 음악, 피아노를 사랑한 음악가
스튜어트 아이자코프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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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에서 꼭 들려봐야 할 곳은 악기 박물관이다. 아르누보 양식의 이 건물 계단을 올라 입장료를 지불하고, 짐을 맡기고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관람객은 헤드폰을 하나씩 받는데 원하는 악기 앞에 서면 연주가 흘러나온다. 그곳에서 생애 처음으로 하프시코드(쳄발로)를 봤다. 클라비코드와 장식용 기린 피아노도 보았다. 눈이 많이 나린 날이었고, 그날따라 무거웠던 마음을 날려버린 건 하프시코드의 선율이었다. 악기에 그려진 화려한 장식과 음악에 취한 나머지, 건반악기 층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 현악기, 타악기 전시관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아주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부터 피아노는 가구가 되었다. 이사철이 되어야 존재감이 드러나는, 악기가 아닌 가구 말이다. 생각날 때쯤 뚱땅거리는, 조율하지 않아 ‘도’는 만날 소리가 나지 않는 그런 가구. 몇 년 만에 악보를 꺼냈더니 연습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소음들이다. 듣는 귀는 천상계에 있건만, 들리는 소리는 지구 내핵... 조용히 악기를 덮고 책을 폈다. 제목은 『피아노의 역사』이지만 원제를 보면 『피아노의 자연사』 혹은 『피아노 박물지』로 번역할 수 있다. 다 읽고 나니 ‘피아노 박물지’라는 제목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들을 찾아 듣고 생긴 관심으로 클래식 관련 서적을 독파하는 중이다.


책소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재즈’에 대한 지분이 상당하다. 저자가 미국인이기도 하지만 음악사에서 이 장르가 끼친 영향이 지대하고, 위대한 연주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첫 번째 피아니스트가 오스카 피터슨이라는 사실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어째서 피터슨인가. 1장의 제목 〈전통의 집대성〉에 어울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피터슨은 정통 클래식 음악을 배웠고, 그 토대 위에 재즈를 받아들여 판테온에 올랐다. 그가 사사한 드 마키는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 스테판 토만을 사사했다. 따지고 보면 피터슨은 리스트의 계보에 있는 셈이다.


(...) 선생님은 또한 피아노 ‘스타일’의 참된 의미는 나만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가르쳐주셨다. 그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음전stop', 즉 음질을 변화시키는 기계적 장치를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재즈 오르간 연주자들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들이 선택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재즈 오르간을 대중화한 거장 지미 스미스와 똑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동일한 음전들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정한 자기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듣는 이가 연주자를 똑바로 식별해낼 수 있는 소리를 빚어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므로 오스카 피터슨은 제자들이 자기 연주 방식을, 아니 그 누구의 방식도 따라하게 놔두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빌 에번스와 같은 유형의 코드 보이싱[화음을 이루는 음들을 안배해 연주하는 방식]을 사용하자 선생님은 이렇게 소리치셨다. “그건 네 것이 아니잖아!” 피아노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그만의 방식이 있었다. 터치, 타임, 톤, 테크닉, 테이스트가 그 요소들인데 모두 ‘T’자로 시작하는 단어들이므로 그는 이를 ‘5T'라고 불렀다. 당연히 그는 그 모두를 갖췄다.


-나의 스승 오스카 피터슨, 마이크 롱고, 1장 (24)


책의 전반부에서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발달사를 다룬다.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발전했으며 음악사에서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가. 롤랑 마뉘엘이 얘기한 '피아노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출현한 악기'라는 설명이 어울린다. 이어지는 내용은 피아노계 최초의 슈퍼스타인 모차르트,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음악가들의 연주 여행이다. 저자는 조금은 망설이면서도 음악가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4원소에 대응하는 '흥분가, 연금술사, 리듬주의자, 선율주의자'인데 조금은 위험한 분류일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인다.


'불'에 해당하는 흥분가들에는 베토벤, 로큰롤의 제리 리 루이스, 재즈의 세실 테일러가 있다. '물'에 해당하는 선율주의자들에는 슈베르트, 바흐, 조지 셰어링. '공기'인 연금술사에는 빌 에번스, 드뷔시, 셀로니어스 멍크. '흙(땅)'에는 패츠 도미노, 아르투로 오파릴, 프로코피예프와 같은 리듬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분류에 이어지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선율이 심장에 호소한다면 리듬은 심장을 제외한 신체 근육조직 전부에 불을 지른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그 경계를 넘나들며 이 네 요소는 서로 맞물려 있다.'


건반 악기인 피아노를 연주함에 있어 선율을 중시할 것이냐, 타악성을 중시할 것이냐에 따라 작곡가의 스타일이 바뀐다. 다음은 각 장에서 유심히 봤던 음악가이다. '흥분가들'의 베토벤과 리스트,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제리 리 루이스, 얼 하인즈. '연금술사'는 드뷔시에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고 메시앙, 쇤베르크, 스크랴빈을 다룬다. 드뷔시가 초기 재즈 피아노에 끼친 영향도 다루고 재즈의 제왕 듀크 엘링턴도 등장한다. 존 케이지의 프리페어드 피아노에 대한 설명도 있다. 글을 쓰다가 깨달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다음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출처 및 크게보기, 만든 이의 설명)


'리듬주의자들'은 전체 장이 재즈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그, 릴, 더블, 탭댄스, 래그타임 이러한 춤꾼들로부터 시작된 음악에서 재즈에 스윙, 살사에 스파이스, 미니멀리즘에 트랜스까지의 계보가 소개된다. 거슈윈이 등장하고, 아트 테이텀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이 장을 읽으면서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흑백 친선 야구시합」이 떠올랐다. 조금 뜬금없지만 그 대목을 소개해본다.


그곳에는 유색인종들만 있었다. 밝은 색조의 붉고 푸른 새틴 드레스를 입고 그물 스타킹을 신고 보드라운 장갑을 끼고 와인색 모자를 쓴 여자들, 번들거리는 턱시도를 입은 남자들. 음악이 쿵쿵거리며 밖으로, 위로, 아래로, 댄스장 위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롱 존슨과 캐버너와 지프 밀러와 피트 브라운, 모두가 케이크워크* 박자에 맞추어 광낸 신발을 신고 크게 웃으며 위아래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를 절뚝이는 빅 포와 그의 애인, 캐서린도. 다른 모든 잔디 깎는 사람과 나룻배꾼과 수위와 가정부가, 다 함께 무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케이크워크: 미국 남부의 흑인 놀이에서 발달하여 나온 춤. 또는 그런 2박자의 춤곡.

-『레이 브래드버리』(현대문학) , (131)


'선율주의자'에서는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멘델스존, 쇼팽이 등장한다. 쇼팽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다. "신사 여러분, 모자를 벗으시길. 천재의 등장입니다." 피아노 연주 방식을 영원히 바꾼 천재, 오붓한 환경에서 건반 위에서 속삭이는 연주를 하고 에라르보다 플레옐 피아노를 선호했으며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박자 감각... 또 에리크 사티, 모리스 라벨이 언급된다. 11장은 미국을 비롯한 각 나라별 음악의 색깔들, 12장은 러시아 학파에 대한 설명이다. 앙드레 지드가 『쇼팽 노트』에서 언급한 안톤 루빈시테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호로비츠, 라흐마니노프, 리흐테르, 아슈케나지, 프로코피예프 등 익숙한 이름들이다. 12장에서 등장하는 한스 폰 뵐로는 프란츠 리스트의 사위인데 아내가 친구 바그너와 사랑에 빠져 이혼한 연주자이다. 그의 미국 연주회들이 인기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14장 〈세계로 통하는 길〉은 루빈스타인, 호프만, 코르토 등 폴란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출신 연주자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주요 경연대회(콩쿠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1980년 쇼팽 콩쿠르의 포고렐리치 관련,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쇄신 등 논란거리도 짚고 있다. 15장 〈첨단의 연주자들〉에서는 글렌 굴드를 소개하며, 마지막 장에서는 극동 아시아에 피어오르는 클래식 시장 열기를 소개한다. 야마하가 뵈젠도르퍼를 인수했다는 걸 알았다. 〈첨부 노트〉에는 못 다한 이야기들을 실었는데, 책장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은 왠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반도 못했을 것 같다는 것이다. 1장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즐겁게 읽었다. 이 또한 공부할 거리를 많이 남기는 책으로, 분량은 시대와 대륙, 연주자별로 고르게 배분되어 있으며 피아노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머레이 페라이어(머리 퍼라이아)의 글로 마무리할까 한다.


(...) 이상적으로는 머리로 듣는 소리를 곧바로 손끝으로 옮겨내야 한다. 그러나 소리를 내려면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단지 빠르게 연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의 저음 또는 한 토막의 대위 선율을 빚어내기 위해서이다. 나는 하나의 악구를 연주하려면 예를 들어 호른이나 오보에 소리를 듣고 피아노로 그와 같은 효과를 내려고 노력한다.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인 다음, 그 소리를 피아노로 재창조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소리의 뉘앙스를 더 풍부하게 귀에 담아둘수록, 피아니스트가 이해하고 빚어내야 할 음의 빛깔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더 잘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급증이 날 수도 있다.


피아노 연주는 정말이지 환상의 예술이다. 색깔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색깔에 대한 환상이라는 편이 낫겠다. 악기가 훌륭할수록 더 많은 가능성이 주어진다.


-피아노 소리 만들기, 머리 퍼라이아, 6장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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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16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분량이 꽤 있어서 매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면 읽을까 말까 고민합니다. 사진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이라면 읽어볼 만한데. ㅎㅎㅎ

에이바 2015-12-16 18:21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빌려봤었는데 결국 샀어요. 읽을수록 마음에 드는... ㅋㅋㅋ 재즈 좋아하시면 더 즐겁게 읽으실 것 같아요. 사진도 적잖이 실려 있고요.

cyrus 2015-12-16 18:22   좋아요 0 | URL
클래식 음악보다 재즈 음악의 비중이 더 많은가 보군요. 에이바님이 알려주신 정보, 참고하겠습니다. ^^

에이바 2015-12-16 18:26   좋아요 0 | URL
클래식과 재즈 둘 다 적절한 것 같아요. 저는 클래식 위주를 원해서 그렇게 느낀 것 같기도 한데 재즈가 현대음악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결국 제가 재즈를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ㅎㅎ

비로그인 2015-12-16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야겠네요 불끈!
근데 4원소 어쩐지 끄덕끄덕하게 되네요~재밌어요!
에이바님덕분에 또 바로 오스카 피터슨 주간이 돌아왔습니다~^^

에이바 2015-12-16 20:48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처음 들었던 피터슨이 아마 캐롤이었던 것 같아요 ㅎㅎ

AgalmA 2015-12-1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레이 페라이어 인용하신 글에서 ˝이상적으로는 머리로 듣는 소리를 곧바로 손끝으로 옮겨야야 한다˝는 부분은 이성복 시인이 머리가 아니라 언어-감각이 먼저 나가게 해야 한다 말하던 것과 비슷한 거 같아요.
원리는 참 비슷한데 그 실행이 참 난관~_~;

에이바 2015-12-16 20:51   좋아요 1 | URL
오 역시 예술은 통하는군요... 어떻게 보면 꾸준한 연습에 의한 체득 체화 이런데서 그런 능력이 나오는 것도 같아요 실행은... ^^;;

물고기자리 2015-12-16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뭔가에 꽂히면 공부하듯 집중하는 성향이라ㅋ 에이바님의 독서 스타일이 정말 호감입니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분야가 있다는 것만큼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없는 것 같아요ㅎ

에이바 2015-12-17 17:22   좋아요 1 | URL
요즘 약간 시들해졌는데 물고기자리님 댓글보고 힘내야겠습니다 ㅎㅎ 그쵸 덕후 만세! 입니다 ㅎㅎ

서니데이 2015-12-1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부터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 잘 치지 못해도 고가의 악기인데, 피아노를 들여놓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들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 가구처럼 한 구석에 남는 것도 같습니다. 오래된 피아노와 건반의 소리도 바이올린이 그렇듯 특별한 느낌이 있을지, 에이바님의 글을 읽으면서 조금 상상해보았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에이바님, 오늘도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에이바 2015-12-17 20:40   좋아요 1 | URL
그래서 오래된 업라이트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상태와 연주자는 엉망이지만요. ㅎㅎ 서니데이님도 좋은 시간 보내시길요..

단발머리 2015-12-1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조율도 안 된 피아노로 쇼팽 왈츠를 한 페이지 치고는, 아.... 몰랑 하고 있었더랬죠.
저는 피아노를 사랑하지만, 연습은 안 한다는...

아는 이름이 별로 없어요.
공부할 게 많아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ㅎㅎㅎ

로마 섭렵하시고 이제 클래식으로 가셨나봐요.
너무 멋져요, 에이바님. 진짜 교양인 인증, 알라디너 에이바님^^

에이바 2015-12-18 12:06   좋아요 0 | URL
몇 년 만에 치는지 손꼽아보기도 부끄럽더라고요. ㅎㅎ 일독만 했는데 다른 책들을 보면 겹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재독할 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클래식은 재밌는데 넘 어렵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단발머리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