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요전 날 계단에서 보았지요. 날 기억하나요?
내 이름은 앙투아네트 메이슨 로체스터. 당신은 날 버사 메이슨으로 알겠지요.
그래요. 나는 재산과 태양 그리고 이름마저 빼앗긴, 이 저택에서 유령이라 불리는 바로 그 여자랍니다. 가끔은 혼란스러워요. 내가 배를 타고도 몇 번의 밤과 낮이 지나간 건지. 가끔 깨어보면 그레이스라 불리는 여자가 혀를 차며 말해요. 내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요. 여기가 잉글랜드가 맞나요? 내가 생각했던, 책 속에서 읽었던 그 곳은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곳이 아니었는데요.
내 얘길 해줄게요.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는 거예요. 항상.*
나는 자메이카에서 나고 자란 영국인이에요. 내 생부는 코즈웨이라 불리는, 플랜테이션 농장주였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우린 아주 가난했어요. 내 어머니는 아직 젊은 여인이었고요. 정말 쉽지 않았답니다. 내가 동무 티아의 꾐에 속아 옷을 바꿔 입고 돌아온 날, 엄마는 결심했어요. 내게 제대로 된 생활을 주기 위해 메이슨이라는 영국인과 결혼했습니다. 나를 흰 검둥이로 키우지 않기 위해서요. 크리올의 삶은 쉽지 않아요. 아가씨는 순수한 영국인처럼 보이지만… 우린 영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식민지인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양 측의 노여움을 받는 대상이랍니다…
어느 날, 폭도들의 난입으로 우리집은 삽시간에 불타버렸어요. 이 때, 내 동생 피에르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메이슨씨는 사람들의- 흑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름다운 아네트, 내 어머니는 현실을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병약해진 어머니는 시골 별장에, 나는 수녀원에 맡겨졌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양부는 세상을 뜨면서 내게 3만 파운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아주 먼 바다에서, 그가 왔어요. 당신도 아는 E 말이에요. 아아, 코라 이모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모는 리처드를 나무랐죠. 나- 앙투아네트에 대한 보호 조건 없이, 어떠한 법적 조치도 없이 빈털터리 청년에게 재산에 대한 전권을 넘긴다는 사실을요. 나는 확신할 수 없었어요. 리처드 오빠는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거든요. 내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 사람은 내게 평화와 안전을 약속했어요. 마음의 평화를요!
그는 내게 성애의 즐거움을 가르치고, 그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내게 고통을 주었죠. 나는 내 어머니의 작은 천국, 나의 소중한 신혼집에서 그 소릴 들어야 했어요! 나를 흰 바퀴벌레라고 조롱했던, 그 검은 피부의 계집애 신음 소리를요. E 는 언제나 내 얼굴에서 흑인의 흔적을 찾으려 했어요. 그랬던 그를 보세요! 내 남편의 쾌락은 벽 하나를 넘어 나를 지옥으로 몰았습니다.
나는 간청했어요. 나를 부정한 여자라고, 내 피에 광기가 흐른다는 루머를 믿고 있는 남편에게, 엎드려 내 결백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믿지 않았습니다.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말하고 내 모든 것을 앗아갔어요. 나를 버사라고 불렀어요. 버사, 버사. 마리오네트라고도 했지요. 나는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입니다. 내 이름은 앙투아네트, 교육받은 영국인이에요. 그는 나의 이름을 빼앗고, 재산을 빼앗고 인형이라 조롱하며 이 좁은 곳에 가두었어요.
작은 아가씨, 그에게 속지 마세요.
그는 나를 취하고… 내 숭배와 사랑 모든 것을 취하고는 나를 버렸답니다. 이 차가운 골방에, 나가지 못하게 감시인을 두고는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도록, 내게 정신병이 있다고 하면서요.
작은 아가씨, 당신이 혼자라면 더욱 조심하세요.
내게는 하인들과 유모, 오빠… 가족들이 있었지만 그는 영국 법의 적법성을 내세워 나의 태양을 앗아갔어요. 사랑에 빠진 나를, 모두에게서 고립시켰습니다.
작은 아가씨, 내 경고를 알아차렸나요.
베일을 찢은 건 도망가라는 뜻이었는데…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요…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는 거예요. 항상."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183쪽, E 에게 앙투아네트가 하는 말.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argasso_Sea#/media/File:Sargasso.png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광녀, 버사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크리올이었기에, 진 리스는 브론테의 소설 속 '목소리를 잃어버린' 여성을 변호하고 그 폭력에 저항하려 합니다. 『제인 에어』에는 제국주의와 가부장주의가 녹아 있는데요, 버사는 당시 사회의 바람직한 여성상이었던 "가정의 천사"가 될 수 없었던 제인을 부각시키기 위한 '도구'로 등장합니다. 복합적인 피해자이지요. 사르가소는 조류의 움직임이 거의 없고, 바람도 적어 항해하기 어려운 바다로 꼽힙니다. '사르가숨'이라는 해초도 떠 다니고요. 이는 앙투아네트의 문화와 에드워드의 문화가 이질적이며 서로 융합되기 어려운 사실을 암시합니다. 『제인 에어』에서 제인의 웨딩 베일이 찢어지는 장면이 있고, 이는 앙투아네트가 한 일로 추정됩니다. 광녀로 그려지지만 사실 앙투아네트는 제인에게 어떤 위해도 끼치지 않죠. 제인의 억눌려진 어떤 본능이 반영된 캐릭터로도 해석되기도 하는데요. 이 글은 그것과는 상관없이 『제인 에어』에서 두 여성이 마주친다고 생각되는 장면에서 연상된, '버사'가 아닌 '앙투아네트'가 제인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쓴 글입니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대해서는 예전에 썼던 다른 리뷰(클릭)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