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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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닉의 주선으로 개츠비와 데이지가 재회하는 장면이었다. 짐짓 편안한 척 허세부리며 벽난로 장식에 기대었다가 옆으로 떨어지는 시계를 붙잡는 모습은, 장식으로 남은 지난 추억과 시간을 되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반영된 장면 같았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재회의 순간이니 멋있고 여유로워 보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하지만 속마음이 모두 드러나는 그런 모습 말이다. 개츠비는 유독 데이지 앞에서 서툴러 보인다. 닉과의 대화에서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며 자신만만했다.

 

옥스퍼드 출신의 부자인양 행세하지만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벌거숭이가 되는 남자. 여유로운 모습은 오간데 없이, 그는 순정만이 남은 그 시절 청년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아마도 개츠비가 데이지를 숭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데이지는 어떤 사람인가. 톰은 아내를 가리켜 웃음소리에서도 짤랑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걸음걸음 돈이 연상되는 데이지는 부유한 환경에서 배양된 순수함이다. 개츠비가 사랑하고, 욕망하지만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그리고 여전히 가질 수 없는 존재. 그녀는 과연 개츠비의 순정을 받을만한 인물일까? 아니 애당초에 개츠비가 사랑한 것은 데이지의 영혼, 그 존재였을까, 아니면 부유한 배경을 포함한 그 모두였던가?

 

불법, 험한 일들을 통해 부를 쌓은 개츠비는 왜 데이지를 되찾으려고 했을까. 순전히 옛 사랑을 위해서 그 모든 일을 했단 말일까?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에 부족했던 조각이자 트로피였던 것은 아닐까? 남편에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라 종용하는 모습은 이제껏 데이지를 대한 태도와 다르다. 공들인 시간의 탑을 무너뜨리는 미숙한 모습이다. 어째서 그런 선언을 하려 했을까. 왜 그리 자신만만했을까. 개츠비는 톰을 이겼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가난했던 과거 때문에 그리워만 했던 옛 연인을 가진 톰 뷰캐넌은 ‘진짜’다. 외모와 지위를 모두 가진, 하다못해 스노비즘마저 그가 속한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데이지가 사랑했던 개츠비의 조건들은 허상에 불과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톰을 이기고 데이지를 되찾는 것은 진정한 성공이다.

 

관계에서 톰은 데이지의 우위에, 데이지는 개츠비의 우위에 있다. 톰이 개츠비에게 데이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도 아무 일이 없을 거라며 자신만만해 하는 것도 괜한 것이 아니다. 외롭고 화가 났던 데이지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예전의 모습만 찾으려했던 개츠비의 비극은 예견된 것이었다. 개츠비가 사랑했던 데이지는 현재 모습의 일부일 뿐이다. 남편의 부정에도 그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익숙한 토양을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딸이 ‘아름다운 바보’로 자라길 바라는 모습에서 묻어나는 수동성과 체념을 보라. 데이지를 갖는 데에는 돈이 다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노력했던 것에 비해 개츠비는 연인의 마음을 보살피지 못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순진했다. 꿈을 좇는 열정은 이리도 순수한 걸지도...

 

그에게 데이지는 다른 세계에 속한 별이다. 너무도 멀리 있는 별, 신기루 같은 별에 가까이 가기 위해 더러운 일에 손을 담근 숭배자는 몰락한다. 별은 숭배자를 보살피지 않는다. 비참했던 현실 속에 과거의 연인은 얼마나 미화되었을까. 시간을 되돌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은 개츠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한 개츠비. 건너편 저택의 초록색 불빛, 은빛 후춧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던 개츠비. 짧은 여름을 함께 보낸 닉만이 그를 기억할 뿐이다. 흘러간 시간을 잡지 못한 남자. 오지 않을 전화를 영원히 기다리게 된 그 남자의 순정은 갈 곳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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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2-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때 개츠비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왜 이런 소설을 읽으라고 했지? 하고 이해가 안갔어요. 대체 어디가 위대한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몇년 전 김영하씨의 번역판이 새로 나오면서 영화도 개봉하고 해서 그때 다시 읽은 개츠비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제가 그 나이가 되었고 그들의 마음을 이젠 이해할 수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닉에 의해 `위대한` 이라는 형용사가 덧붙여지잖아요. 전 그 장면이 그렇게 안쓰러웠답니다.

에이바 2015-12-09 10:21   좋아요 0 | URL
그게 고전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읽을 때 마다 새롭고, 또 얻어가는 것이 따로 있는... 칼비노가 한 얘기기도 하지만요. ^^

cyrus 2015-12-08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츠비는 잘못된 연애로 스스로 파멸한 `연못남`이었습니다.

에이바 2015-12-09 10:22   좋아요 0 | URL
개츠비의 신분상승, 성공에 대한 욕망이 데이지로 발현된게 아닌가 해요. 또 그만큼 순수했기에 `great`라고 덧붙여진 것이겠죠...

AgalmA 2015-12-11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사생활 이야기도 그렇고...
<위대한 개츠비>가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적 작품이란 평은 사후적 왕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가들이, 예술가들이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른다고 종종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시대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이기도 하겠죠. 글이 쓰는 자의 어떤 (것/식)의 반영이라는 전제를 생각할 때. 그 간극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어쨌거나 독자인 우리는 제 3자이며, 작가는 소설과의 대결 속에서 독자를 염두에 둘 여유가 없죠. 끊임없이 선택과 결단을 내리며 진행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읽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블랑쇼의 말은 은유가 아니라 매우 사실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톰도, 데이지도, 개츠비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피츠제럴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고요. 아무려나 제 생각입니다~_~;
좀 더 생각해 볼 문제라 제 서재로 옮겨갔어요. 댓글은 에이바님 서재에서 남겨주셔도 될 듯 :)

에이바 2015-12-11 09:25   좋아요 0 | URL
제 리뷰가 물질만능주의로 읽히나요? 다시 읽어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제이에게 왜 `데이지`여야만 했을까 궁금하더군요. 제이의 심리를 유추해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연애를 할 때 상대의 존재 자체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조건도 그 사람을 정의하는 일부인데- 하는 생각이요. 저는 오히려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비판보다는 연애와 돈(부)에 대한, `위대한 개츠비`의 통속소설적인 면에서 글을 쓴거라 생각했는데 리뷰에선 표현이 안 됐나봐요. 초록색 불빛을 안 쓸 걸 그랬나요? 일부러 꿈, 이상 이런건 안 쓰고 데이지와의 관계만 집중했는데 좀 부족한 글이군요... 아무튼 저는 그런 면에서 cyrus님이 남겨주신 댓글 `연못남`에 동의하는데, 단지 어떤 개츠비의 `순정`이 어디서 발현된 건지 조금 더 생각해봤어요. 오히려 피츠제럴드의 여성관계와 작품을 비교해보면 Agalma님 말씀이 더 타당하죠. 이 작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시의 시대관이 잘 드러났고, 피츠제럴드의 변명이라고 할까 뭐 그런 점이 개츠비를 순정남으로 포장하게 된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고전의 대열에선,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보다 앞에 있지 않나요? 통속소설이지만 해석이 좀 더 열려있는...

AgalmA 2015-12-11 12:00   좋아요 0 | URL
아니요. 에이바님의 리뷰평이 그런 걸 말한다는 게 아니라 세간의 평(특히 비평가)들을 말한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통속성 관점이셨어요.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개츠비-데이지의 과거에 대한 프리뷰 같기도 했어요. 뭐랄까. 피츠제럴드는 이런 스토리의 원형을 계속 재현하고 싶어했다는 생각도 들었죠. 하루키가 단편을 장편으로 늘리며 구축하는 공통된 모티브를 보듯이. 그래서 저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시대의 통속성보다 작가 자신이 어떤 동인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을까를 궁금해하게 된 거죠.

통속 소설 관점에서 <포스트맨은...>과 비교도 재미난 지점입니다. 통속성에 대해 이 작품은 파악은 하고 썼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이전인 <위대한 개츠비>가 더 모던한 건 당시의 낭만성 때문일까, 작가의 개성 때문일까 가늠해보게 되기도..

참고 말씀 감사합니다 :)

에이바 2015-12-11 15:30   좋아요 1 | URL
아 저는 리뷰에 대해 말씀하시는 줄 알았어요. 피츠제럴드 소설은 `위대한 개츠비`만 봤고 여유가 생기면 `밤은 부드러워`를 볼까 했는데요. `겨울 꿈`이 개츠비의 프리뷰 같다 하시니 그 작품도 궁금해지네요. 윗 댓글에서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작가의 의식(혹은 의도)과 독자, 평론가 간 해석의 차이가 Agalma님의 설명으로 보다 명확하게 느껴집니다. 하루키가 피츠제럴드를 좋아하는 것도 말씀하신 것과 관계가 있을런지도 모르겠어요. 두 작가 다 잘은 모르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드네요.

다락방 2015-12-1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을 아주 좋아해요. 정말 좋아합니다. 지난번에 이 리뷰 읽고 추천만 누르고 갔었는데 위에 보니 아갈마님과의 댓글 대화중에 <겨울 꿈> 언급이 되어서 반가운 마음에 그만 털푸덕 주저 앉아 댓글답니다. <겨울 꿈>하면 저는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죽은 사람들> 도 같이 생각이 나요.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딱히 연관이......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이건 이상하게 꼬리를 잡아서요, <겨울 꿈>은 <죽은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면서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애러비>로도 연결되는 겁니다. 왜 그것들이 연결되느냐 누가 물으면 아무도 답할 수 없는데 그래요.

에이바님이 위대한 개츠비만 보셨다면, 아, 에이바님, 피츠제럴드는 단편이 압권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 특히나 <컷 글라스 보울>은 정말 제가 좋아하는 단편이에요. <비행기를 타기 전 일곱시간>이란 단편도 좋고요. 아..피츠제럴드의 단편은 사랑입니다. ㅠㅠ

에이바 2015-12-15 10:51   좋아요 0 | URL
찾아보니 말씀하신 단편들이 피츠제럴드 단편선에 실려있네요. 두 분께서 말씀하신 `겨울 꿈`이 궁금해요. 어떤 작품이길래 개츠비의 원형같이 느껴지고, 또 조이스의 작품까지 연상되는지 기대되네요. 다락방님의 강력 추천, 꼭 읽어볼게요. ㅎㅎ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SE (+ PLUS SEM 초도한정) (2disc)
조지 밀러 감독, 샤를리즈 테론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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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알리는 엔진 소리. 이어질 카 체이스를 위해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배경은 초반부에 모두 설명된다. 임페라토르 퓨리오사가 워릭(전투 트럭)을 몰고 떠나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이다. 영화의 대사는 많지 않지만 대신 액션들이 보여주고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세계는 핵전쟁으로 황폐화된 호주 대륙이다. 물(아쿠아 콜라)을 가진 시타델, 무기를 생산하는 무기 농장, 기름과 인신매매를 담당하고 있는 가스타운이 연합을 이루고 있으며 통치 군벌은 임모탄 조, 무기농부, 피플이터이다. 그 중 우두머리는 임모탄 조이고, 극은 시타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권력과 소유: 임모탄은 어떻게 군벌이 되었는가】


첫 장면에서 워보이들에게 ‘사냥’ 당한 맥스는 등 뒤에 ‘문신’이 새겨진다. 마치 소나 돼지에 도장을 찍듯이, ‘성기 온전함, 모든 이에게 수혈가능(Universal Doner)’와 같은 사용가치를. 문신은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다. 스플렌디드에 따르면, 임모탄의 아내들도 Breeder(번식하는 이)라는 문신을, 워보이들은 Battle Fodder(Cannon Fodder, 총알받이)라는 문신이 있다. 맥스가 거부했던 ‘해골’ 낙인은 임모탄을 상징하는 것으로 워보이, 워펍(War Pup)은 물론 퓨리오사의 목 뒤에도 찍혀 있다. 시타델 사람들은 기능(문신)과 소유(낙인)로 존재한다.


임모탄의 권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막에서 기동성은 매우 중요하다. 이 세계의 권력은 ‘자동차’다. (전투 후에도 자동차를 수거하는 차량이 따로 있다.) 워보이들이 외치는 V8은 8기통 엔진을 의미하며, 그들이 임모탄에 경배할 때 손깍지를 끼는 것도 이 엔진을 가리킨다. 따라서 워보이들이 경배하는 자동차, 그 중에서도 최고 사양인 V8 2개의 2천 마력을 자랑하는 워릭을 모는 퓨리오사는 예사 사령관이 아니다. 여성, 팔이 하나인 그녀가 워릭을 몰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은 퓨리오사에 보내는 임모탄의 경배에서도 드러난다. (임모탄의 차도 V8 2개이며, *퓨리오사만 워릭의 킬스위치를 알고 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는 운전대를 잡는 것도 권력이다. 임모탄도 자기가 탄 차의 운전대를 남에게 넘기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 워보이들이 운전대를 들고 달려나갈 때 운전대를 쥔 눅스와 슬릿의 실랑이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눅스: 넌 내 창병이잖아! You’re my lancer!

슬릿: 내가 방금 승진시켰어! I’ve just promoted myself!


고로 워보이들 사이에서도 운전병이 창병보다 계급이 높다. 천부적인 운전 실력을 가진 눅스의 소원은 워릭을 운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퓨리오사의 위치를 알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운전대(권력)를 잠시나마 넘길 때마다 그녀의 동지가 늘어나는 것이다. 모터사이클 갱에게서 도망칠 때, 퓨리오사는 맥스에게 킬스위치를 알려준다. 해치를 통해 워릭에 올라탄 그녀에게 화기를 넘기는 맥스. 그들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그 곳을 벗어난다. 눅스 역시 퓨리오사의 허락 하에 워릭을 몰게 되고 동지가 된다.


‘물’과 ‘자동차’. 권력의 마지막 조각은 ‘종교’다. 시타델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다. 청년들, 총알받이가 되어줄 ‘워보이’들은 어떻게 세뇌할까? 워보이들이 워릭을 준비하며 외치는 구호를 잘 들어보면 “Kami-crazy Warboy! Fuk-ushima Warboy!”다. 임모탄의 연설에서도 “My half-life Warboys”라 한다. 핵으로 황폐화된 세계에서 사람들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이들은 워펍 시절을 거쳐 워보이가 된다. 이들은 임모탄이 이끄는 자동차 신앙의 최전선에서 전쟁을 수행한다. 그들은 ‘용맹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전사들의 ‘천국’인 발할라에 가기를 열망한다. 몸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눈두덩이는 시커멓게 칠하는 그들의 외모는 죽음, 해골을 떠올리게 하며 임모탄을 상징(낙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래 폭풍에 휩쓸려 날아가는 워보이들을 바라보다 “What a day! What a lovely day!”를 외치는 눅스. “I live, I die, I live again! I’m awaited in Vahalla!”라는 대사를 보면 그에겐 행운의 날이 맞다. “Witness me!"라는 말은 발할라에 가기 위한 자격인 용맹한 죽음을 증거할 목격을 의미한다. ‘Kami-crazy’ 직전 치아에 뿌리는 크롬 스프레이는 자동차 신앙을 상징하며 동시에 천국에서도 반짝거리라는 의미로 읽힌다. 눅스를 격려하며 크롬 스프레이를 뿌려주는 임모탄의 ‘은총’. 몸을 던지는 모로소프를 ‘목격’하고 “Mediocre!"를 외치는 워보이들. 이는 그의 용기를 치하함과 동시에 호승심을 불러일으키는 구호다.


워보이 중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 두프 워리어, 그는 빨간 옷을 입은 기타리스트이다. 예로부터 전쟁에는 북이나 백파이프를 포함한 군악대가 함께 했다. 정원에 나갈 때도 행차를 알리는 오케스트라를 대동했다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떠올랐다. (루이 14세는 한 술 더 떠, 춤까지 췄다. 영화 『왕의 춤La danse du Roi』 참고) 두프 워리어를 위시한 워보이 악대는 임모탄의 행차를 알림과 동시에, 전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전쟁이 호각 상태일 때는 음악이 최고조에 올랐다가 소강에 이르면 잦아든다.


【매드 맥스의 여성: 젖과 자궁, 그리고…】


시타델의 여성은 두 부류이다. 젖을 상징하는 ‘어머니’와 자궁을 상징하는 ‘브리더’. 여기서의 어머니(Mothers)는 영화 초반, 거대한 유축기를 유방에 연결하고 ‘어머니의 우유’를 생산하는 이들이다. 화면 전환이 빨라 놓칠 수도 있는데, 이들은 아이(또는 인형)을 가슴에 안고 어르고 있다. 아마도 젖이 돌게 하려는 의도인 듯 하며, 이 때 생산된 우유의 품질을 검사하는 듯한 임모탄 조와 릭투스가 등장한다. 여기서 임모탄은 ‘브리더’들의 탈출을 보고 받는다.


그리고 자궁을 상징하는 브리더(Breeder). 워보이들이 그들을 지칭할 때 '아내'라기 보다는 임모탄의 보물이자 브리더라고 하며, 등에도 브리더라는 문신이 있다. 늙고 병든 임모탄은 자신의 왕국을 물려줄 건강한 2세, 아들을 갈망한다. 그의 두 아들은 신체·정신적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임모탄은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은 소녀들을 납치해 감금하고 성폭행한다. 퓨리오사가 가스타운으로 가던 방향을 바꾸자, 금고와 같은 문을 연 임모탄. 태교를 위함인지 그랜드 피아노, 칠판이 보인다. 브리더들을 보살피던 미스 기디는 말한다. 그들이 퓨리오사에게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고. 탈출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퓨리오사는 맥스와의 대화에서 자신은 어릴 때 납치당했고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다고 한다. 사령관이 되어 워릭을 모는 지금이 최고의 기회(best shot)라고 하며 다섯 아내들이 희망(hope)을 찾는다면 자신은 구원(redemption)을 찾는다고 한다. 퓨리오사와 아내들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첫째, 그들이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는 것, 둘째, 그들이 향하는 곳이 어머니들의 녹색 땅(Green place of many mothers), 퓨리오사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퓨리오사 역시 브리더로 끌려왔고, 불임이기에 내쳐졌다가(아니었다면 지금도 브리더일 것) 어떤 결심에 의해 사령관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권위는 “It’s a detour.”라는 말에도 의심을 가지지 않는 워보이 에이스의 모습에서 확인된다.


시타델 바깥의 여성은 부발리니다. 퓨리오사 일행이 동쪽 끝까지 달려 도착한 곳이자 퓨리오사가 속한 가족이자, 사회. 특별한 것은 연령대가 높은 여성들이 전사로 등장하는 것이다. 젖도 자궁도 아닌 그녀들은 새로운 정체성-인간-을 부여받았다. 흔히 '섹시'하게 그려지는 '여전사'와 달리,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그려지는 '노령의 여전사'들은 생존을 위해 총을 들고 모터사이클을 운전한다.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관계, 대사(lines)】


분노의 도로(Fury Road)를 달리는 퓨리오사는 이 집단의 리더이자 보호자이다. 그녀는 총 네 번의 추격을 따돌린다.


첫번째는 버저드(Buzzards)- 고슴도치를 연상시키는 차량을 모는 약탈자들이다. 러시아어를 한다. 두번째는 모터사이클 갱(Rock Rider)들이다. 종래의 약속이 깨지자 워릭을 공격하며, 임모탄과 워보이들이 뒤따른다. 퓨리오사는 모래폭풍으로 뛰어든다. 여기서 맥스가 합류한다. 세번째는 모래폭풍을 벗어난 일행들을 임모탄, 무기농부, 피플이터가 추격한다. ‘디에스 이레’가 흘러나오는 인상적인 장면, 그리고 초현실적인 장소를 지난다. 눅스와 부발리니가 합류한다. 네번째는 시타델로 돌아올 때, 임모탄네 파티와 한바탕 추격전. 임모탄은 퓨리오사가 직접 처단한다. “Remember me?”


브리더로 끌려와 팔이 잘리고 워릭을 모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퓨리오사는 복잡한 내력을 가진 인물이다. 자신은 ‘구원’을 찾는다고 하지만, 분노의 질주 후 돌아온 고향에서 부발리니식 몸짓에서 느껴지는 그리움과 애틋한 눈빛… 그리고 사막에서의 절규는 그녀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왼손에 있던 의수를 벗어 던지고 울부짖는 퓨리오사. 리더이기에, 하룻밤을 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그녀에게 맥스는 제안한다. 이에 일행들이 의견을 밝히고 퓨리오사는 이를 수렴하여 결정한다. 맥스가 이 무리의 리더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던데 워릭은 줄곧 퓨리오사가 운전하며, 다른 이가 운전할 때는 퓨리오사의 허락 하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Hunted by scavengers... Haunted by those I could not protect.”라는 대사는 맥스를 잘 설명한다. 그를 따라다니는 어린아이의 환영은 죄책감을 상징하며, 그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물(재킷, 자동차)이다. 감독 조지 밀러의 말을 빌리자면 ‘야생개’ 인 그는 생존에 특화된 인물이다. 맥스는 첫 만남에서부터 퓨리오사를 의식한다. 의수를 벗었음에도 퓨리오사는 그와 호각으로 싸우며, 눅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녀가 이겼을 것이다. 맥스가 퓨리오사를 제압하기 위해 굳이 총알 세 발을 사용한 것도 그러하다. 킬스위치로 인해 워릭이 멈추자 맥스는 퓨리오사를 경계하면서도 보조석으로 물러나는데, 이 때 무기를 거의 회수해간다.


그랬던 두 사람이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시타델로 돌아오자는 결의에서 보여진다. “숨도 쉬지마. Don’t breathe.”라는 장면, 맥스가 퓨리오사의 우월함을 인정한 것은 그의 어깨를 지지대로 빌려준 밤이다. 총알 셋 중 두 발을 날린 맥스와 달리, 퓨리오사는 한 발로 무기농부 차에 있는 조명을 명중시킨다. 자신의 분수를 아는 맥스는 '함께' 시타델로 돌아오지만, 다시 '홀로' 떠난다. 분노의 도로(Fury Road)를 달리는 퓨리오사(Furiosa)의 마지막은 맥스의 시선에서 보는 모습이다. 이는 그가 관찰자이자 목격자(witness)임을 드러낸다.


아내들의 첫 등장은 “저 아래에선 숨도 못 쉬겠어요”의 스플렌디드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등장은 모래 폭풍 후, 맥스의 시선을 통해서다. 그들은 헐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차림이지만 카메라가 좇는 시선은 '성적 대상'으로 보이는 줌업이 아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모래 위의 현실감 없는 등장. 신기루 같다. 물로 모래를 씻어내는 옆으로 대그와 치도는 정도대를 끊는다. 하지만 맥스의 신경은 온통, 적으로 인식된 퓨리오사에 가 있다. 아내들은 맥스, 눅스와 함께 있으면서 대상화, 타자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워릭 안에서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We are not things!” 그들이 외치는 구호는 워릭을 따라 뛰는 와중에도 정조대를 걷어차고 침을 뱉는 대그의 모습에서, 그리고 퓨리오사를 겨눈 임모탄의 총구 앞에 배를 드러낸 스플렌디드의 결연한 눈빛에서 드러난다. (이 와중에도 임모탄은 “That’s my property” 라며 아기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아내들이 분명 탈주의 장애물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 동안 여성 캐릭터가 어떠했는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길들여졌는가? 이 영화가 여성들을 긍정적으로, 인간으로 그렸기에 페미니즘 영화로 ‘분류’되지 않는가?)


아내들은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퓨리오사의 싸움을 거들고, 캐릭터도 확실하다. 스플렌디드는 운전대를 뺏길 와중에 큰 용기를 보이고, 맥스는 엄지를 올린다. 토스트는 총알을 헤아리고, 화기를 장전하며 이후엔 임모탄의 차를 잠시나마 운전한다. 대그는 입이 걸고, 부발리니 할머니와 교감하며 희망의 씨앗을 챙긴다. 케이퍼블은 실의에 빠진 눅스를 위로하고 감화시킨다. 치도는 퓨리오사를 돕기 위해 릭투스를 속인다. 퓨리오사? 퓨리오사는 복수를 하고, 구원을 위한 희망을 본다.


이렇듯 영화에서 여성의 힘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들이 꿈꾸는 희망의 장소는 ‘어머니들의 녹색 땅’이다. 여성이 젖과 자궁으로만 존재했던 시타델에서와 달리, 시타델 바깥의 여성인 부발리니는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다. 기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여성성’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여성이자 인간이며, 전사이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임모탄 닮은 아들일 거라며 한탄하던 대그. 아기가 ‘딸일 수도 있잖아’ 라는 말에 씩 웃는 모습은 이 세계에서 여성이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한다.


아내들 중에서도 주목할 인물은 스플렌디드이다. 아내들의 리더이며, 임모탄이 가장 총애했던, 산달이 가까운 누가 봐도 임신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궁과 어머니’라는 역할기대를 저버린다. “우리 아이들은 당신처럼 되지 않을 거야”라는 대사는 모성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총구 앞에 배를 드러낼 수도 있다. 이를 보고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당당한 여성이 아닌가?


이러한 주어진 여성성- ‘어머니가 아니면 창녀’라는 공식을 파괴하는 또 다른 장면은, 무기농부가 추격하는 밤이다. 싸우고 돌아온 맥스는 피를 뒤집어 썼고, 씻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엔진을 식히기 위해서 꺼내놓은 듯한, 양동이에 담긴 우유가 있다. 이게 무엇이냐는 말에 돌아온 대답은 ‘어머니의 젖’이다. 그는 개의치 않고 피를 씻어낸다. 이를 정화라 볼 수도 있겠지만 맥스의 거침없는 태도를 볼 때, 나는 모성신화를 깨부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독 대사가 적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조지 밀러가 의도한 길어진 추격전이기도 하지만 액션 자체가 극을 이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대사들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광신적 컬트인 임모탄교. Immortan은 Immortal(불사, 불멸)을 생각나게 한다. 사실 암덩어리를 매달고 사는 늙은이이나, 워보이들의 환호는 그에게 아드레날린을 선사한다. Witness, Mediocre는 워보이들의 운명이다. 또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시타델에서, 가스타운에서- 이 세계의 인간들은 ‘소유’되는 ‘물건’으로 그려지며, 지칭되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Goods, My property, My deficit amounts.


【매드 맥스의 주제: 인간】


영화의 줄거리를 단순화하면, 성폭력 피해자가 기회를 노리다 감금된 다른 피해자들을 이끌고 탈출하는 내용이다. 납치, 감금당했고 나중에는 이동하는 수혈팩이 되었던 또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의 졸개도 탈주의 길에서 자아와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다. 광신적 컬트에 열광했던 이(눅스)가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운명처럼 느껴진다. 자유를 찾아 떠났던 이들은 박해받는 이들의 정신적·육체적 해방을 위해 탈출했던 장소로 돌아온다.


이 세계에서 권력은 수직적이다. 물은 임모탄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뿌려지고, 워릭을 비롯한 자동차들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시타델의 주민들도 위로 오르고자 하는 욕망을 보이지만 발에 채여 떨어진다. 그리고 이제, 시타델 사람들은 퓨리오사 일행과 함께 위로 올라간다. 중독되지 말라며, 아쿠아 콜라라고 부르던 물은 ‘어머니들’에 의해 아낌없이 뿌려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임모탄, 피플이터와 같은 남성이 군림했던 세계의 부당함을 드러내고, 함께 한다는 어떤 희망을 남긴다. 희망과 구원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주한 현실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 여성을 타자화하고 사람을 대상화하는 시선들에 맞서 소리 높여 외친다. Fang it!


페미니스트 아젠다가 없던 조지 밀러의 영화가 바람직한 노력으로 영화를 만들었더니 페미니스트 아젠다를 가진 영화가 되었더라, 인간을 얘기하려던 그의 의도가 어떤 결과를 맺었는가. 이 영화를 페미니스트 영화라고 보이콧한 분들은, 마초적 영화에도 보이콧하셨는지…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The First History of Man

희망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최초의 인류*


*영화가 끝나고 스태프 롤이 올라오기 직전에 나오는 문장으로, 영화관에서 본 자막 그대로 옮겼다. 자막의 '더 나은 삶'보다 '더 나은 우리 자신을 찾기 위해'라는 뜻이 더 와 닿는다는 제안이 있었다. 더불어 '최초의 인류'는 '히스토리 맨'으로 그대로 옮기거나, '최초의 인간'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 본다. 영화 개봉 후 밝혀진 설정에 따르면, 히스토리 맨은 미스 기디와 같이 몸에 새긴 문신을 통해 후대에 역사를 전달하는 인물들이다. 영상 번역가는 새 역사를 쓸 퓨리오사 일행에 던져질 명제를 염두에 두고 옮긴 듯 하다. 


-링크: 코믹북 발행 소개히스토리 맨 위키

-관련 포스트: 칸 영화제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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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2-0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를 봤을때의 감동을 아직도 기억해요. 정말 우와~~~~를 연발하다보니 어느새 끝났더라고요. 사실 전 매드맥스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아서 별 기대없이 봤었거든요.
이렇게 멋진 영화를 에이바님의 리뷰로 읽게 되서 또한번 감동입니다^^

에이바 2015-12-07 10:54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관에서 세번이나 봤어요. 나중엔 상영관이 없어서 더 볼 수 없었다는... ㅜㅜ
12월이고 하니 올해의 작품 생각하면서 지난 글을 정리해서 올렸어요.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네요.
 
풀잎관 2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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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2」를 읽으며 눈시울을 몇 번이나 훔쳤는지 모른다.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등골이 쭈뼛 서는 서늘함을 느끼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포룸 로마눔에서 개혁을 외치는 호민관에 환호하는 로마인이기도 했다. 이천년 전부터 쌓여온 역사는 콜린 매컬로의 펜 끝에서 재탄생했고, 번역이라는 프리즘 너머로도 선명한 광채를 드러낸다. 나는 역사를 뛰어넘은 인물들의 생생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하고, 또 해체되어 무력한 독자일 뿐이었다. 역사가 이미 스포일러이나,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될 다른 분들을 위하여 중요한 부분은 감추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로마의 일인자』에서 『풀잎관』이 다루는 시기는 20여년인데, 기원전 110년에서 86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풀잎관 2」의 전반부는 기원전 91년의 호민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가 주인공이다. 『로마의 일인자』에서 게르만에 맞서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군대, ‘마리우스의 노새들’ 대다수는 로마시민 5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최하층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권리가 없기에 의무도 없던 이들은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마리우스는 전쟁 후 그들을 공유지에 정착시키고자 한다. 그들에게 땅을 주겠다는 개혁은 반대에 부딪치고, 마리우스는 세금을 걷느라 미처 그 ‘과정’을 신경 쓰지 못했다. 로마를 대표하는 ‘징세청부업자’들은 학정을 일삼아, 아시아 속주 내 반발은 커져간다. 속주와 이웃한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왕은 지중해 세계에 대한 야망을 드러낸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로마에게 충성(세금, 군인)을 제공하며 ‘로마 시민’이 되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오랜 차별이었고, 이로 인한 불만은 끓어 넘치기 직전이었다.


「풀잎관 1」에서 아시아 속주에 파견된 총독 스카이볼라는 잘못된 세금징수계약을 바로잡는다. 감찰관들은 로마 시민 전수 조사를 계획하고, 이탈리아인들은 거짓 명부를 작성한다. 사실 여부를 증명하지 못할 때 벌어질 참극을 각오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법정을 세워 그들을 가혹하게 처벌하고, 결국 이탈리아인들은 로마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마르시족 실로는 그들의 계획을 마르쿠스 드루수스에게 털어놓고, 형제 간 전쟁을 막기 위해 드루수스는 호민관이 되어 시민법을 개정하기로 결심한다. 로마의 가장 보수적인 피를 이었으며, 도덕과 법의 절차를 지키며 평화롭게 회의를 이끄는 드루수스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 간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 드루수스는 로마의 시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투표일 전날, 그는 법안에 반대하는 원로원의 사주로 피격당한다. 그가 남긴 유언은 ‘누가, 누가 나처럼 우리 공화국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였다.


그 외침에 대한 답은 동맹시 전쟁이었다. 이탈리아는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마르시족은 로마에 선전포고한다. 사태파악을 못한 원로원은 이탈리아인의 참정권 허용을 지지한 이들을 법정에 세운다. 아스쿨룸 피켄툼 학살 이후 겨우 로마로 돌아온 법무관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의 증언을 듣고서야, 원로원은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깨닫는다. 피를 흘리지만 얻을 것은 없는 전쟁, 로마의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미 준비를 마친 이탈리아에 로마는 패전을 거듭한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는 잘 준비된 군사들과 함께 유력 세력으로 떠오른다. 비관적인 루키우스 카이사르의 부관이 되어 답답해하던 술라는 마리우스의 편지로 노장의 군대에 합류한다. 마리우스는 로마에 첫 승리를 가져오지만 뇌졸중도 함께였다. 술라는 폼페이에서 만 3천여 명으로 10만 명이 웃도는 삼니움족을 몰아낸다. 그의 병사들은 그에게 임페라토르라 환호하며, ‘풀잎관’을 선사했다. 율릴라가 아닌, 백인대장들이 엮은 바로 그 풀잎관을! 운명의 여신은 술라에게 활짝 웃었고 그는 로마에 돌아와 집정관이 된다. 언젠가 스카우루스가 예감했고, 선택받은 소수가 본 술라 안의 짐승이 깨어나고 있다.


열 살이 된 어린 카이사르는 안팎으로 배우며 고모부의 손발이 된다. 서서히 죽음에 다가가는 마리우스의 재활의지를 끌어내고, 마리우스 2세의 문제를 확실히 봉합하는 역할을 한 것도 그였다. 카이사르와 함께 시대를 이끌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폼페이우스 스트라보의 수습 군관이 된다. 천성적인 약골인 그를 구원한 것은 폼페이우스 2세였다. 우리의 과거이자 그들의 미래에서 키케로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만 최고가 될 수 없었던 까닭은 그가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이 전장과 맞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다. 어린 카이사르는 마리우스로부터 좋은 가르침을 받는다. 파트리키가 아니라 병사로서 싸우라는 조언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 조언에 충실히 따를 것이고, 자신의 병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 충성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코르넬리아 스키피오니스와 카이피오의 죽음으로 드루수스 저택에 사는 여섯 아이들은 새로운 보호자를 찾는다. 드루수스의 동생 마메르쿠스는 최고위원 스카우루스의 신임을 얻으며, 술라는 아일리아와 이혼하고 달마티카와 재혼한다. 술라의 가정생활을 통해 로마 가장의 권위, 파트리키 여성들의 위치 등을 실감할 수 있다.


로마의 매력은 민주적이고, 도덕을 부르짖으면서도 어느 한 순간에 야수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 찬란한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키고 향유하는 변덕스러운 시민들,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원로원 의원들과 신관들, ‘위엄과 영광’을 재현하려는 파트리키의 욕망, 이 모두는 ‘로마’의 영속을 위해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콜린 매컬로의 탁월한 선택, 어째서 로마 공화정 말기인가를 책장을 넘길수록 실감하고 감탄한다. 로마 공화정의 찬연한 마지막을 장식할 영웅들의 부상과 몰락, 인간적 일화와 초월한 일면들을 활자 위로 돋아내게 만드는 필력. 어떤 찬사도 아깝지 않다.


스카우루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로마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운명이 과연 그것일까?”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는 비쩍 마르고 늙고 털이 뽑힌 새처럼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자네를 아주 좋아하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필리푸스보다도 자네의 손에 맡겨졌을 때 로마가 더 끔찍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한쪽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렸다. “자네는 타고난 무관이 아닐지 모르지만 원로원에 들어온 후 거의 줄곧 군대에 있었지. 내 경험에 따르면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한 원로원 의원들은 독재자처럼 변한다네.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보게나. 그런 사람들은 고위 정치인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정치적 제약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저의 시대가 왔을 때 로마가 어떻게 될지는 그 시기의 로마가 어떤 모습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만은 약속드리죠. 저는 로마가 우리 조상들을 욕보이는 꼴을 절대 두고보지 않을 겁니다. 또한 사투르니누스 같은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꼴도 절대 두고 보지않을 겁니다.” 술라가 냉혹한 어조로 말했다. (39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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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11-26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권까지 읽다가 잠깐 멈춤상태에 있어요.
술라 나왔을 때 엄청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 다시 돌아가야지.
<풀잎관>도 여전히 재미있나 보군요.
어느 한 순간에 야수성, 이 문장이 아주 근사해요. 로마의 특징을 아주 선명하게 설명해주신 것 같아요.
에이바님 리뷰 읽었으니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지요? ㅎㅎ

에이바 2015-11-26 16:19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리비아 드루사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풀잎관 1권에서 밝혀진답니다.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웃다가 다시 울게 돼요. 리비아의 오빠인 리비우스 드루수스도 한층 성숙해지고요. 그가 2권에서는 호민관이 되어 전무후무한 카리스마를 갖게 돼요. 야만이라기엔 좀 맞지 않고, 야수성이 어떤가 했는데 좋다고 해주시니 저도 좋아요. 풀잎관도 꼭 읽어주셔요.ㅎㅎ
 
쇼팽 노트 - 가장 순수한 음악 거장이 만난 거장 1
앙드레 지드 지음, 임희근 옮김 / 포노(PHONO)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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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의 『쇼팽 노트』는 ‘이 책을 몬테 카시노 수도원장 신부님의 영전에 바친다.’로 시작한다. 음악 애호가이나, 연로한 탓에 피아노 앞에 앉은 지 오래인 신부님은 소리 없이 악보를 읽으며 음악을 상상한다고 한다. 독일인인 그가 지드에게 털어놓은 비밀은, 그가 읽는 악보가 바흐도 모차르트도 아닌 ‘쇼팽’의 악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음악 중에 가장 순수한 음악이죠.’ 지드는 매우 공감하며 이렇게 글을 잇고 있다.


“가장 순수한 음악.” 바로 이것이다. 내가 감히 입 밖에 내어 말하지 못한 표현, 그토록 연세 높고 중요한 인물인 종교계 원로가 지닌 일체의 권위로부터 보호하려고 내가 마음쓰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놀라운 표현, 그러나 콘서트에서 연주자들이 우리에게 연주해 보이는 그 현란하고 세속적인 것이 쇼팽의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것이다. (9)


맞다. 내가 생각하던 쇼팽의 음악에 대한 감상이 바로 그것이다. ‘현란하고 세속적인 음악.’ 나는 클래식 애호가도 아닐뿐더러 쇼팽에 대해서도 유약하고 섬세한 기질의 작곡가, 상드의 남자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10월부터 쇼팽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17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쇼팽을 이렇게도 칠 수 있는 거였나? 결국 유투브 채널을 통해 몇 번이고 그의 연주를 보고 들었고, 실황 앨범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관련 책을 여럿 보기 시작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쇼팽 노트』는 그 중에서도 특히 어렵게 느껴진 책이다. 앙드레 지드라는 이름의 무거움이 첫째, 쇼팽의 음악에 대한 그의 숭고한 사랑이 둘째, 그리고 쇼팽의 음악 세계를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이 그 어려움들이었다.


1장인「쇼팽 노트」의 시작부터... 나는 쇼팽의 전주곡(프렐류드)을 감상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D단조 전주곡, A단조 전주곡이라고 하면 모른다. 하지만 번호를 붙여 전주곡 24번, 전주곡 2번이라 하면 금세 알기에 책은 포스트잇으로 가득해졌다. 이렇게 얇은 책에다 이리도 많은 인덱스라니. 아무튼 지드는 「쇼팽 노트」에서 그가 생각하는 쇼팽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지드의 생각에, 쇼팽을 리스트처럼 연주해서는 안 된다. 기교로는 결코 쇼팽을 연주할 수 없다. 그러한 연주는 세속적이고 속물적이며, 가장 좋은 연주는 ‘산책’과도 같은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연주자의 손가락 아래서 빚어지는 악구들이 그 사람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처럼 보이고, 연주자 자신조차 깜짝 놀라게 되고, 듣는 이를 연주자의 황홀경 속으로 들어오라며 은근히 불러주는 것이 나는 좋다. (16)


‘제안하고, 가정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하는 쇼팽의 음악은 ‘당신을 문득 멈추게 하고 얼굴을 붉히게 하는’ 것이지 능수능란한 기교적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쇼팽은 감상적이다. 하지만 지드가 그를 좋아하고 칭송하는 것은 그러한 슬픔(단조)을 통해 기쁨(장조)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음표에 인간적인 감정을 담아, 음 하나하나에 표현적인 힘을 싣는 것이 바로 쇼팽의 표현력이다. 여기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전주곡’이다. 종래의 전주곡이 푸가와 짝을 이루었던 것(그래서 이름이 전주곡)과 달리 쇼팽의 전주곡은 그 자체로 손색없는 ‘연주회용 전주곡’이다. 이 전주곡들은 쇼팽의 천재성이 드러난 작품이라 평가된다.


지드는 쇼팽의 음악을 기교만으로 연주하는 것에 대해 여러 번 불만을 털어놓는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문제는 쇼팽을 연주할 때 테크닉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이다. ‘악구가 끊임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이 쇼팽의 특별한 기법이라는데 말이 쉽지... 오른손의 루바토를 위해 왼손의 박자가 정확하게 지켜져야 하지만 결코 반주처럼 느껴져서는 안 된다. 지드가 지적하는 것처럼 기교로서만 연주해서도 안 되고, 감상적으로만 연주해서도 안 된다. 결국 (다른 음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쇼팽의 음악도 테크닉과 해석의 섬세한 조화가 요구되는데 이는 간과되기 쉽고, 따라서 쇼팽의 음악은 연주하기 까다롭다는 것이다.


「쇼팽 노트」는 쇼팽에 대한 지드의 해석과 연주 가이드라 할 수 있다. 지드 자신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으며(1927년 2월 28일 일기에 따르면 매일 세 시간씩 연습한다고!), 악보를 보고 연구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을 들인다. (그가 피아니스트 아니크 모리스를 교습하는 장면이 담긴 영화 내용도 실려 있다.)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때는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지드가 해설하는 작품의 악보, 마디가 함께 실려 있지만 해당 작품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지 않으면 그의 목소리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2장인 「앙드레 지드의 일기」와 3장 「쇼팽 노트에 관한 단문들」은 1장을 보충하는 텍스트들이다. 4장에서 미카엘 레비나스는 지드의 「쇼팽 노트」에 덧붙여, 쇼팽의 음악을 해설하고 있다.


지드는 쇼팽의 작품이 폴란드적인 감성을 담아낸 것을 인정하면서도, 프랑스 방식도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마도 '해설'에 따르면, 프랑스 피아니즘을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쇼팽은 자신을 폴란드인이라 생각했지만, 주 무대는 프랑스였기에 그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연주했던 플레옐이 프랑스 브랜드이기도 하고... 거의 평생을 음악과 함께하며, 쇼팽을 듣고 연주하고 사랑해온 지드가 쓴 「쇼팽 노트」를 단번에 이해하겠다는 것은 내 욕심이다. 그래서 아마 이 책의 리뷰는 다시 쓰게 될 것이다. 여러 연주자들의 해석을 듣고, 악보를 보며 조금은 피아노를 쳐 보기도 하고, 쇼팽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이다. 아, 나도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 애정을 쏟아 부은 이런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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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1-1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저도 요즘 에이바님덕에 예약구매한 조성진 실황 앨범을 아주 잘 듣고 있어요. 아들이 `이걸 대체 어떻게 구입했냐고` 놀라더라고요. 아침에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듣는데, 너무 좋아요. 쇼팽은 현란한 기교의 곡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가을, 낙엽, 회색빛 아침이랑 어울리더라고요. 차를 타고 달리던 무미건조한 길이 덕분에 아주 풍성해졌어요^^

에이바 2015-11-19 16:24   좋아요 0 | URL
오로라님의 아침이 풍성해졌다니 저도 기뻐요.^^ 저도 요즘 조성진의 연주 덕에 참 행복하답니다. 어제는 소나타가, 오늘은 프렐류드 3번, 내일은 스케르초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작품도 계속 바껴요. 오로라님처럼 저도 쇼팽은 현란한 기교로 가득찬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드는 오히려 가장 순수한 음악이래요. 악상을 화려하게 꾸민다거나, 기교를 통한 표현이 아니라 `완벽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표현을 극도로 단순화`하려고 했다고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아요.ㅎㅎ

2015-11-19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9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고기자리 2015-11-19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팽이 듣고 싶어지는 글이에요. 인용하신 지드의 글도 정말 좋아요. 사실 어떤 분야이든 덕후의 글은 읽는 재미와 깊이, 감동을 주기 마련인데 무려 덕후가 지드라니^^, 저도 읽어 보고 싶은 책입니다!!ㅎ

에이바 2015-11-19 23:23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지드가 쓴 글이라 물고기자리님 생각이 났어요. 지드의 밀알~ 책에 등장하는 유년시절 쇼팽 음악과의 마주침도 실려 있어요. ^^
 
기욤 아폴리네르 시집 : 내 사랑의 그림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0
기욤 아폴리네르 지음, 성귀수 옮김 / 아티초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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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 아래로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네.’


마리 로랑생과의 이별 후 썼다는 「미라보 다리」는 기욤 아폴리네르를 서정적인 시인으로 기억하게 했다. 사실 이 시 밖에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를 담은 아티초크 아트워크-표지의 강렬함은 마음에 쏙 들면서도 다소 의아했다. 시집과 딱 맞아떨어지는 감각적인 표지들이 아티초크의 빈티지 시선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집을 떠듬떠듬 읽은 후에야 표지가 너무도 잘 어울림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이 시집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서’를 모았다. 세상 어느 시가 사랑을 말하지 않겠냐만, 이건 진짜 ‘연애편지’다. 얼굴이 무지 화끈거려서 도무지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에로스적 욕망이 넘실거리는 그런 글이다.


안나 드 노아이유의 시선 『사랑 사랑 뱅뱅』도 '사랑'을 다루고 있고, 읽을 당시 시인의 감정 표현이 굉장히 솔직하다고 느꼈다. 좀 노골적이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기욤 아폴리네르의 작품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안나의 시가 일기처럼 내밀한 감정을 털어놓는다면, 기욤의 시는 청자를 제대로 상정하고 열망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사랑의 그림자』에 실린 시들은 오로지 한 사람, ‘루’에게 바쳐졌다. 루이즈 드 콜리니샤티용 백작. 정작 시인의 구애에는 미지근하다 그가 군에 입대해버리자, 다음 날 병영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 여인. 8일간의 밀회 이후, 자신의 연인 ‘투투’와 지내기 위해 돌아가 버린 하지만 시인의 몸과 마음을 이미 취해버린 바로 그 ‘무법자’가 아폴리네르의 장미이자 별, ‘루’이다.


병영에서 쓰인 시들은 루에 대한 욕망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루에 대한 기욤의 감정은 ‘갈망’이다. 그녀의 손길을, 그녀의 몸에 닿고 싶은 욕망은 육체에서 정신에 대한 소유욕으로 발전해간다. 멀리 있는 연인의 또 다른 연인(투투)에게는 ‘우리가 루를 지켜줘야 한다’는 「송가」를 보내기도 한다. 그의 사랑, 열광은 폭력적이면서(육체) 결코 폭력적이지 않(정신)다. 놀라운 것은 관계는 고작 6개월, 세 번의 만남이었으며 마지막 만남에서 이별했음에도 시인은 여전히 ‘루’를 위한 연서를 썼다는 것이다. ‘번역 노트’에 따르면 주변 인물들은 기욤이 루이즈에 의해 성애에 눈떴기 때문이라 본다는데,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에 대한 생생한 욕구와 갈망, 끝없는 그리움. 사랑을 솔직하게, 직설적이면서도 뭉근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너무 사랑하면 바보가 된다더니 시인이 바로 그러하구나. 시에 담긴 감정의 색채가 너무도 선연하고, 너무도 간절해 그 감정에 휩쓸리게 된다. 얼굴을 붉히면서도 천천히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시, 삶을 마비시키는 강렬함. 비록 사랑의 속도는 같지 않았지만, 오래 지속된 만큼 기욤의 사랑은 더 다듬어지고 깊어만 간다. 남의 연애편지를 훔쳐보는 기분이란 이런 것이구나! 


어두운 전나무 숲에서 신음하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이제 나는 우수에 처박힐 것이다

오 나의 루 너의 큼직한 두 눈망울은 나의 유일한 동무들

나의 루가 나를 잊었으니 나는 모든 걸 잃지 않았는가


-「오늘 밤 나는 참호에서 자련다」중에서 (102)



-「Sous les ponts de Paris」는 1914년에 발표된 샹송입니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살았던 벨 에포크의 분위기가 조금 느껴지지 않나 합니다. Lucienne Delyle이 1950년에 부른 버전을 링크합니다.

- 소개하는 시는 자체검열을 마친 '점잖은' 문단입니다. 얼마나 노골적이길래 하시는 분들은 시집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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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1-1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폴리네르가 무명시절에 썼던 포르노 소설 두 편이 있는데, 내용이 엄청 야합니다. 오래 전에 <일만일천번의 채찍질>이라는 제목으로 성귀수 씨가 번역한 책이 나왔는데, 절판되었어요. 이 책 안에 ‘일반일천번의 채찍질’과 ‘어린 돈 후안의 무용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문출판사에서 이 두 작품을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 만들었어요.

에이바 2015-11-18 20:56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찾아보고 좀 놀랐답니다. 서정적인 시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범상찮은 과거를 가지고 있더군요. 말씀하신 채찍은 이 시집에서도 자주 등장해요. 좀 쉬었다가 알코올을 읽어볼까 하는데 솔직히 아폴리네르가 두렵습니다. ㅎㅎㅎㅎ

AgalmA 2015-11-20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기네 올젠이 없었다면 키르케고르의 철학은 어찌 되었을지 모르죠. `루`에게 바친 아폴리네르의 시들 보니 키르케고르의 열정이 문득 생각나서..:ㅡ)

에이바 2015-11-23 21:42   좋아요 0 | URL
철학자의 개인사를 알고 있으니 사랑을 지키기 보다 떠나는 용기를 낸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레기네가 젤 불쌍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