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관 2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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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2」를 읽으며 눈시울을 몇 번이나 훔쳤는지 모른다.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등골이 쭈뼛 서는 서늘함을 느끼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포룸 로마눔에서 개혁을 외치는 호민관에 환호하는 로마인이기도 했다. 이천년 전부터 쌓여온 역사는 콜린 매컬로의 펜 끝에서 재탄생했고, 번역이라는 프리즘 너머로도 선명한 광채를 드러낸다. 나는 역사를 뛰어넘은 인물들의 생생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하고, 또 해체되어 무력한 독자일 뿐이었다. 역사가 이미 스포일러이나,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될 다른 분들을 위하여 중요한 부분은 감추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로마의 일인자』에서 『풀잎관』이 다루는 시기는 20여년인데, 기원전 110년에서 86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풀잎관 2」의 전반부는 기원전 91년의 호민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가 주인공이다. 『로마의 일인자』에서 게르만에 맞서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군대, ‘마리우스의 노새들’ 대다수는 로마시민 5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최하층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권리가 없기에 의무도 없던 이들은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마리우스는 전쟁 후 그들을 공유지에 정착시키고자 한다. 그들에게 땅을 주겠다는 개혁은 반대에 부딪치고, 마리우스는 세금을 걷느라 미처 그 ‘과정’을 신경 쓰지 못했다. 로마를 대표하는 ‘징세청부업자’들은 학정을 일삼아, 아시아 속주 내 반발은 커져간다. 속주와 이웃한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왕은 지중해 세계에 대한 야망을 드러낸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로마에게 충성(세금, 군인)을 제공하며 ‘로마 시민’이 되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오랜 차별이었고, 이로 인한 불만은 끓어 넘치기 직전이었다.


「풀잎관 1」에서 아시아 속주에 파견된 총독 스카이볼라는 잘못된 세금징수계약을 바로잡는다. 감찰관들은 로마 시민 전수 조사를 계획하고, 이탈리아인들은 거짓 명부를 작성한다. 사실 여부를 증명하지 못할 때 벌어질 참극을 각오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법정을 세워 그들을 가혹하게 처벌하고, 결국 이탈리아인들은 로마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마르시족 실로는 그들의 계획을 마르쿠스 드루수스에게 털어놓고, 형제 간 전쟁을 막기 위해 드루수스는 호민관이 되어 시민법을 개정하기로 결심한다. 로마의 가장 보수적인 피를 이었으며, 도덕과 법의 절차를 지키며 평화롭게 회의를 이끄는 드루수스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 간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 드루수스는 로마의 시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투표일 전날, 그는 법안에 반대하는 원로원의 사주로 피격당한다. 그가 남긴 유언은 ‘누가, 누가 나처럼 우리 공화국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였다.


그 외침에 대한 답은 동맹시 전쟁이었다. 이탈리아는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마르시족은 로마에 선전포고한다. 사태파악을 못한 원로원은 이탈리아인의 참정권 허용을 지지한 이들을 법정에 세운다. 아스쿨룸 피켄툼 학살 이후 겨우 로마로 돌아온 법무관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의 증언을 듣고서야, 원로원은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깨닫는다. 피를 흘리지만 얻을 것은 없는 전쟁, 로마의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미 준비를 마친 이탈리아에 로마는 패전을 거듭한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는 잘 준비된 군사들과 함께 유력 세력으로 떠오른다. 비관적인 루키우스 카이사르의 부관이 되어 답답해하던 술라는 마리우스의 편지로 노장의 군대에 합류한다. 마리우스는 로마에 첫 승리를 가져오지만 뇌졸중도 함께였다. 술라는 폼페이에서 만 3천여 명으로 10만 명이 웃도는 삼니움족을 몰아낸다. 그의 병사들은 그에게 임페라토르라 환호하며, ‘풀잎관’을 선사했다. 율릴라가 아닌, 백인대장들이 엮은 바로 그 풀잎관을! 운명의 여신은 술라에게 활짝 웃었고 그는 로마에 돌아와 집정관이 된다. 언젠가 스카우루스가 예감했고, 선택받은 소수가 본 술라 안의 짐승이 깨어나고 있다.


열 살이 된 어린 카이사르는 안팎으로 배우며 고모부의 손발이 된다. 서서히 죽음에 다가가는 마리우스의 재활의지를 끌어내고, 마리우스 2세의 문제를 확실히 봉합하는 역할을 한 것도 그였다. 카이사르와 함께 시대를 이끌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폼페이우스 스트라보의 수습 군관이 된다. 천성적인 약골인 그를 구원한 것은 폼페이우스 2세였다. 우리의 과거이자 그들의 미래에서 키케로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만 최고가 될 수 없었던 까닭은 그가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이 전장과 맞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다. 어린 카이사르는 마리우스로부터 좋은 가르침을 받는다. 파트리키가 아니라 병사로서 싸우라는 조언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 조언에 충실히 따를 것이고, 자신의 병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 충성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코르넬리아 스키피오니스와 카이피오의 죽음으로 드루수스 저택에 사는 여섯 아이들은 새로운 보호자를 찾는다. 드루수스의 동생 마메르쿠스는 최고위원 스카우루스의 신임을 얻으며, 술라는 아일리아와 이혼하고 달마티카와 재혼한다. 술라의 가정생활을 통해 로마 가장의 권위, 파트리키 여성들의 위치 등을 실감할 수 있다.


로마의 매력은 민주적이고, 도덕을 부르짖으면서도 어느 한 순간에 야수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 찬란한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키고 향유하는 변덕스러운 시민들,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원로원 의원들과 신관들, ‘위엄과 영광’을 재현하려는 파트리키의 욕망, 이 모두는 ‘로마’의 영속을 위해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콜린 매컬로의 탁월한 선택, 어째서 로마 공화정 말기인가를 책장을 넘길수록 실감하고 감탄한다. 로마 공화정의 찬연한 마지막을 장식할 영웅들의 부상과 몰락, 인간적 일화와 초월한 일면들을 활자 위로 돋아내게 만드는 필력. 어떤 찬사도 아깝지 않다.


스카우루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로마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운명이 과연 그것일까?”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는 비쩍 마르고 늙고 털이 뽑힌 새처럼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자네를 아주 좋아하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필리푸스보다도 자네의 손에 맡겨졌을 때 로마가 더 끔찍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한쪽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렸다. “자네는 타고난 무관이 아닐지 모르지만 원로원에 들어온 후 거의 줄곧 군대에 있었지. 내 경험에 따르면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한 원로원 의원들은 독재자처럼 변한다네.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보게나. 그런 사람들은 고위 정치인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정치적 제약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저의 시대가 왔을 때 로마가 어떻게 될지는 그 시기의 로마가 어떤 모습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만은 약속드리죠. 저는 로마가 우리 조상들을 욕보이는 꼴을 절대 두고보지 않을 겁니다. 또한 사투르니누스 같은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꼴도 절대 두고 보지않을 겁니다.” 술라가 냉혹한 어조로 말했다. (39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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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11-26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권까지 읽다가 잠깐 멈춤상태에 있어요.
술라 나왔을 때 엄청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 다시 돌아가야지.
<풀잎관>도 여전히 재미있나 보군요.
어느 한 순간에 야수성, 이 문장이 아주 근사해요. 로마의 특징을 아주 선명하게 설명해주신 것 같아요.
에이바님 리뷰 읽었으니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지요? ㅎㅎ

에이바 2015-11-26 16:19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리비아 드루사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풀잎관 1권에서 밝혀진답니다.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웃다가 다시 울게 돼요. 리비아의 오빠인 리비우스 드루수스도 한층 성숙해지고요. 그가 2권에서는 호민관이 되어 전무후무한 카리스마를 갖게 돼요. 야만이라기엔 좀 맞지 않고, 야수성이 어떤가 했는데 좋다고 해주시니 저도 좋아요. 풀잎관도 꼭 읽어주셔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