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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기 -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
임동숙 지음 / 포토넷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먼저 리뷰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언급하겠습니다. 이 책은 품절되었던 책입니다. 즉, 책의 재고가 없었던 걸 미리 알았어도, 언젠가 제판을 찍게 된다면 구입하려고 북풀에 등록해 두었습니다. 보통 품절된 책이 제판 찍는 경우는 책의 유명세라든가 책의 요구가 밀려들 때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사진 에세이 책이므로 웬만해서는 제판이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혹시나"라는 일말의 기대감이랄까요. 미련스러움으로 등록만 해 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걸 알고도 이웃 한 분께서 이 책을 선물해주셨더군요. 주문하고 며칠이나 재고를 수배했던 모양입니다. 비록 책은 품절이 되었더라도 알라딘에서는 제고를 파악하려고 동분서주 전화를 돌렸을 것이고 출판사나 여러 서점 등으로 제고를 문의했을 것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구할 수 있어서 선물도 주시고, 알라딘에서는 품절된 책을 파악하고 늦게라도 보내 주심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 사람은 사진 책에 대해서는 상당히 소홀한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이런 사진 책은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읽으라는 의도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사진에 다가서려는 의도를 가진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나온 책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카메라 광풍이 한풀 꺾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의 열기도 점점 식어 사늘해져 가는 것도 느낍니다. 급격히 일어난 들불은 바람이 불면 이내 꺼져 버리듯이 한때는 전 국민이 사진작가라도 된 마냥, 사진에 대해 온갖 열의를 보였다가 식었습니다. 한동안 아주 많은 갤러리 사이트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사진이 포스팅되기도 하고 일반적으로도 각종 동호회나 취미 사진 모임도 심심찮게 있었던 걸로 압니다. 그렇게 활성화되어 가던 사진의 열기가 어느 순간부터 차츰차츰 사거라 들기 시작하더군요. 일례로 사진가들의 달동네로 불렸던 '레이소다'라는 사이트도 그렇게 많은 사진 유저들이 들락 날락 그렸지만 지금은 사이트 명맥만 겨우 유지될 수 있을 것이고 보면 얼마나 침체되어 가는 것인지 느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열심히 활동했던 수많은 각종 사진 동호회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봐도 그 열기가 얼마나 냉랭하게 식었는지 포스팅하는 작품의 수를 보면 금방이라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보다 더 나아가서 아예 동호회가 해체되어 버리고 사이트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진의 열기가 정말 예전만 못한다는 것도 뚜렷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진을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사진을 하라거나 말라거나 어떤 권고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란다고 할 사람이라면 하지 말라 해도 할 것이고 할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하란다고 할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한다는 것에는 일정한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사진적인 태도가 다양한 이유로써 있거든요. 사진의 의도를 가진 태도가 사진을 찍는 유일한 자격인 셈입니다. 사진은 단 한 가지의 가치의 주제이지만 사진의 태도는 한 가지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거든요. 사진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딱 한가지 권고 사항은 다름 아닌 책이라고 말해 줍니다. 단지 책을 가지고 어떤 재미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예외입니다.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성찰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피사체를 들여다보며 관조하려고 한다면 꼭 사진을 권하겠지만 이것이 아니라면 무어라 사진에 대해 말하기 상당히 꺼려집니다. 사진은 무엇보다도 삶의 성찰적 예술 기질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직업적인 사진이라면야 예외로 해두기로 하죠. 그야 물론 밥벌이용 사진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업이니까 하는 것이 제일 큰 원인이자 동력입니다만은, 일반적으로 취미 내지 애호적 차원에서 사진은 특별한 성향이 있어야 하니까요. 누구나 다 예술이야 하겠지만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성향일 것입니다. 사유가 점점 깊어지려는 사람들의 글과 아닌 사람들의 글을 보면 느껴지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사진도 이와 마찬가지 일테죠.
그렇게 많이 사진작가를 하려는 듯이 카메라를 들었던 사람들이 점차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진을 찍지 않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합니다. 디지털 기계적 호기심인 이유가 하나의 큰 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의 4대 취미가 낚시,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라고도 하는 이유 중에 카메라가 들어가는 이유와도 같은 것입니다. 호모 루덴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놀이로서의 유희성에 카메라도 포함되거든요. 그래서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수집하는 컬렉션도 있거든요. 낚시, 자동차, 오디오는 어디까지나 소비적 취향입니다. 낚시를 좋아한다고 물고기를 만들 수는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오디오는 음악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소비의 취향입니다. 자동차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카메라 자체의 소비가 아니라 사진이라는 창조적 의미의 가치거든요. 따라서 이런 호모 루덴스는 어디까지나 소비적 취향으로써 한 놀이의 장난감 혹은 도구로서의 의미를 지칭하는 것이겠지요. 카메라는 도구는 도구인데 낚시처럼 물고기를 잡아서 매운탕 거리도 없습니다. 철저히 가치와 의미의 놀이이기 때문에 카메라의 총량에 대해 사진의 가치는 늘 비례하지 않습니다. 카메라를 사고 점점 사진에 눈을 떠가는 과정에 있어서 하다가 그만두고 중지되는 까닭이 바로 사진은 놀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진을 하는 것에 있어서 카메라를 놓지 않고 끝까지 가는 사람들의 성향을 놀이의 차원을 넘어 서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바로 삶이 예술로 연결되는 미학의 짜릿한 고역을 스스로 짊어지는 형벌을 감수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네 바로 예술적인 삶의 지향점. 이 방향성의 삶이 사진의 지속성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진입장벽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아무나 카메라 들고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으면 다 사진이 됩니다. 그러나 찍는다고 다 사진의 예술적 기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눈치를 채기 시작하면 그때서는 카메라를 내려놓게 되는 이유입니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입니다. 취미도 시쳇말로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 부르다 보면 식상해지고 지루해진다는 것과 똑같이 여겨진다면 그만 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사진이 광풍처럼 불다가 잠잠해지거나 소원해지는 이유입니다. 한때 사진을 처음 시작하고 지역 동호회에 가입하고 사진 찍으러 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진 한다고 열변을 토하던 사람들은 지금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아예 동호회 자체가 산산이 흩어지고 없습니다. 인적인 재단에 사람들이 없으면 재단은 사라지고 없는 거나 같은 이치입니다. 다들 그렇게 사진을 관두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이제는 시작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사진에 디지털 1세대의 사람들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없어졌습니다. 사진 인구 천만 명이라는 허구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이 일상의 이야기에서 점차 예술적인 마인드로 넘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글은 아무나 낙서처럼 쓸 수 있어도 고도의 사유를 요구하는 시를 쓰려 하지는 않습니다. 일기가 시로 변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멈추게 됩니다. 글씨를 처음 배울 때처럼 "가나다"를 알았다고 시를 쓸 수는 없거든요. 인식에서 시작해서 문법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사진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글 한 줄에 문장의 미학으로 전이될 수 있는 속성. 이게 사진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사진으로 일기를 쓰자고 주장합니다. 일기를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일기는 쓰는 사람만 씁니다. 일기를 쓰는 사람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될 것입니다. 기록이란 의미를 가지고 개개인의 일상에 대한 디테일한 자아의 존재적 감수성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일기거든요. 사진이란 일기도 다를 바 없이 똑같습니다. 일기야 어렵게 쓸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꾸준히 기록하는 차원이라면 상당히 어려워하거든요. 내적인 성숙함 또는 내적인 사유가 결합되어야 일기를 쓸 수 있듯이 사진일기라는 것도 같습니다. 기막힌 문장 한 줄이 나오기까지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어야 나오듯이 사진도 수많은 실패와 그 실패의 경험이 명문장을 만들듯이 특징적인 사진으로 변모하는 것이겠지요. 일기를 무슨 작품처럼 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하루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삶의 재고.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담보 없는 가치의 방향. 이것이 일기라는 형식으로 맞춰진 것이겠지요. 여기에서 작가는 일기를 쓰듯이 사진도 쉽게 쓸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일기처럼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쓰는 것이야말로 언젠가 되돌아보는 사진의 이야기가 그 사람의 인간성의 면모를 다잡아 보는 것의 역할이라고 주장합니다. 일기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겠지요. 그렇기에 어떤 목적성을 가진 사진이 아니라도 좋다고 말합니다. 다만 사진이 글과 달리 자신의 일상에서 제일 특징적이고도 유의미한 시간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사진을 점점 고도화시키고 농밀하게 압축시킨다고 말합니다.
이 책도 여타 사진작가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은 눈으로 찍음으로써 마음에 품고 있는 의도를 반영 시킨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거대한 거울이며 이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의도를 눈으로 선택하고 주장을 선점하는 것이라고 하죠. 역시 사진은 다분히 심리학적인 측면이 강조되었으니까요. 우리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일기에 적는 것처럼 사진도 이런 이미지로 찍기를 바라는 작가의 주장을 읽게 됩니다. 멋모르고 찍던 시절의 사진은 그야말로 사진작가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찍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목적의 순수성에서 실망하게 바쁠지도 모릅니다. 글 잘 쓴다고 다 시인이나 소설가 문필가 될 것도 없는 것처럼 사진에 감수성을 우월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해서 작가할 것까지도 없습니다. 일상의 이야기를 사진적으로 표현하는 그 표현의 방식이 글 대신에 사진이라는 점이 차이가 날뿐이었으니까요. 이제는 커다란 DSLR 카메라와 렌즈를 들고 찍을 것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에 카메라가 다 있습니다. 일기를 쓰는 것과 같이 그날의 포인트에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고 내가 있는 그곳이 바로 거울이란 세상에 나를 비추어 자신의 삶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모습이길 원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작품을 담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했던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다 내려놓고 일기를 쓰듯이 그렇게 사진 찍고 싶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받고 밥 벌어 먹고사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쉽지 않은 일상에서 어디엔가 먹고사나이즘을 잠시만이라도 재껴 놓고 흐르는 시간의 곁에 서서 관조하며 바라볼 수 있는 성찰의 몰두. 이것이 카메라는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사진 찍기는 울림있는 소박함으로 사진 찍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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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에 한 번씩 일요일에
휴일을 맞아 와이프와 함께,
휴일마다 혼자 찾아가는 곳을 갔다.
"얼핏 떠오르는 것 없냐"라고 물었다.
"꿈같다"라고 한다.
그래, 딱 오늘 이 장소에서
보는 풍경이 몽환으로 보였다.
흡사 진경산수화의 무채색의 농담으로
그려진 꿈속에서 보았던 몽환화 같았지.
뿌연 운무가 세밀한 풍경의 생략시키고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리는 초겨울의 문턱에서
풍경은 '시간의 꿈'이란 말을 걸어온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삶 또한 기억에서
자꾸 생략되어지고 본 것처럼, 꿈꾼 것처럼
기억의 줄거리만 남기고 저편으로 흩어지고야 만다.
오늘의 세상에 걸쳐진 시간이
흡사 "세상과 분리된 다른 시공간"과 같이
연출하고 있었다.
그래 지나고 나면,
다 꿈같은 거야.
사진은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의 꿈을 찍는 것이라고 새롭게
정의 내리고 싶었다.
아. 시간의 꿈이여.
존재의 생략이여.
< 참고 : 사진일기, 임동숙 저, 포토넷,20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