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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김헌 지음 / 아카넷 / 2021년 8월
평점 :
“바라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안다” 관조의 철학이 있는 곳.
그리스에 갈 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상상력!이 아닐까.
흔적만 남은 제단에 기둥을 올리고, 석상들을 세우는 것, 불을 피우고, 신화를 쌓아올려 올림푸스로 로도스로 가는 여정의 이야기다.
파란 하늘과 그 보다 더 맑은 바다, 어느 곳이든 신화가 깃든 대지 또한 즐거움일거다.
하늘과 맞닿은 제단의 끝, 도리아스식 기둥을 세우고 삼발의자 위 무녀와, 제물을 들고 줄 선 사람들, 현란한 옷을 입고 금칠을 한 그리스의 석상들, 그 옆으로 퓌토크리토스가 만든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날개를 활짝 편다.
치통을 앓던 이는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으로 아폴론과 테살리아의 공주 코로니스 사이의 아들이다. 태양은 어둠을 몰아낸다. 고통 또한 환한 빛으로 몰아내는 것, 아폴론의 아들이 의술의 신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의 신전에 자신의 치아를 조각한 물건을 놓고 쾌유를 빈다. 이 대목에서 탈모인들은 무엇을 놓고 빌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천금같은 머리카락, 아니면 머리카락 조각?은 좀 어렵지 않을까란~~
파르나소스산엔 뮤지엄의 어원이 된 무사이 9명이 살고 있다는데, 그들을 만나면 영감을 얻어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설도 있다.
고자질을 한 죄로 영원히 돌을 굴려 올리는 시쉬포스, 생각보다 신들은 벌에 있어서 창의적이고 독한 것 같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스를 무찌르고 무사히 돌아오면, 매년 델로스의 아폴론에게 감사의 제물을 바치겠다고 기도했다. 무사히 돌아와 “보은의 축제”는 해다마 열렸고, 이 축제 기간에는 사형등을 엄격히 중지했다. 델로스로 보은의 배가 떠나는 날,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그 덕에 배가 돌아올때까시 사형은 유보되었고, 친구들 및 제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신화는 시끌벅적하다. 온갖 신들이 모여, 인간들이 갈망하는 욕망과 결의, 혹은 위안과 꿈을 대신 보여주느라 시끌벅적할 수 밖에 없다. 인간들의 욕망은 시장통이지만, 그 속엔 진실과 애절함이 담겨 있다.
그리스의 신들 속에 인간의 모습, 인간의 생사와 선악, 내면의 갈등들이 담겨 있으며, 그리스의 신들은 결국 그 시대 그리스인들의 삶이 아닐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뒷세이아> 속 신들은 영원불멸이지만 그들 또한 “운명”에 묶여 있다. 제우스 또한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고, 그의 아들 사르페돈의 죽음도 막지 못했다.
모이라, 에리뉘스의 필연앞에 제우스도 어쩌지 못하는 것. 운명을 거스를 수도 있지만, 도덕적인 책임을 넘을 수는 없다. 잠시 넘는다해도 “복수의 신”(네메시스)에게 평생 쫓기는 운명이 될 뿐이다.
척박한 땅, 다양하고 비슷한 폴리스들이 어울려 살던 그곳에서, 서로 다른 것들의 공존과 조화는 필수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존과 각자의 몫과 분배에 대해 엄격했다. 그리고 선을 넘지 말 것.
과거가 현재가 되고, 결국 미래가 되는 운명, 그 공간적 분배와 몫에 대한 정의와 엄격한 불가침이 그리스인들에게 불행과 행운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통을 이겨내는 낙천성을 만들어 준 것. 한계가 있는 신들과, 도덕적 한계 속의 운명을 거스르지 않으며 사는 삶, 인간다움을 간직하며 인간처럼 고뇌하는 신들, 그리스 신화의 매력이 아닐까.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개방된 모습으로 지중해의 햇살 아래 관조의 삶을 살아가던 그리스인들에서 최초의 철학자(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스를 여행하며 곳곳의 유적지와 그곳에 얽힌 신화들을 설명한다. 신화 속 인물들을 대강 알아야 읽기 쉬울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