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공적인 연애사 - 당신을 사랑하기까지 30만 년의 역사
오후 지음 / 날(도서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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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정말 사적이기만 한걸까.
 
사랑한다는 말처럼 설레는 게 있을까. 나스메 소세키의 일화 중(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에선 사랑한다는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면서 사랑한다는 말에 대치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달이 아름답네요 혹은 달이 아주 푸르구나”라고 썼다고 한다. 후타바테이 시메이는 좀 더 격렬하다. 러시아책 속 사랑에 대해 “죽어도 좋아”라고 번역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아이들 사이에선 “나는 너를 마시멜로해”가 유행한 적도 있다. 알렝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 하는가의 구절임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일 포스티노의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계속 아프고 싶어요.”
황지우의 『늙어가는 아내에게』중에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나는 너를 봄날의 곰만큼 좋아한다”는 고백.
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다른 말로 치환해도 설레는 건 마찬가지다. 20대의 나는 봄날의 곰만큼 좋아한다는 말이 설레서, 다이어리에 써놓곤 했다. 봄날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잠이 덜 깬 듯한 털복숭이 아기곰을 끌어안고 뒹굴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순간의 행복만큼 사랑한다니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연애시절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닐걸?” “응?”
“어, 아마 엄마곰이 나타나서 죽여버릴걸, 그러니까 낭만적인 게 아니라, 치정살인극일수도 있어. 특히 봄엔 겨울동안 굶주린 곰이 가장 사나워질때거든.” 고맙다. 가르쳐줘서 !!! 나도 알거든? )

젊은 시절의 사랑이 봄날의 곰만큼 보송보송하고, 마시멜로처럼 달콤했다면(나는 제외다), 치료되고 싶지 않을 만큼 죽어도 좋을 만큼이었다면, 중년의 사랑은 이제
“달이 아름답네요”로 시작해서 “임자, 우리 괜찮았지?”의 단계로 걸어가는 사랑이 아닐까.
 

이런 다분히 사적인 연애사를 오후작가님이 공적인 영역으로 끌고 나온 책이 바로 <가장 공적인 연애사> 이다
처음엔 규칙이 없는 사랑이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근친을 제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부분 씨족사회였기에 주변의 다른 씨족사회의 여성들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런 다른 씨족여성과의 거래를 주도한 것이 남성집단이었기에, 그런 관계에서부터 서서히 가부장적 권력독점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루이스 모건의 말을 빌어 설명하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 모수오족은 지금도 모계사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만 13세 이상이 되면 마음에 드는 남성을 밤에 집으로 부를 수 있는 야사혼을 하며, 종속되는 관계는 아니다. 아이가 생기면 모계사회에서 모두 같이 키우게 된다고 하는데, 이 모수오족에겐 경쟁이나 질투 분노나 탐욕이란 개념이 없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바리족에선 임산부는 같은 마을의 남자들과 부지런히 성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그 남자들의 장점을 모두 닮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지만, 실제로는 그 남자들이 자신의 아이를 지켜주기에, 자식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혼이 지위와 재산을 물려주는 수단이 되면서 성이 통제되었다. 그러면서 여성은 억압과 감시를 받는 존재가 된다. 농경사회에서는 일의 대부분이, 그리고 일년치 식량을 지키는데는 남성들이 유리했고, 전쟁 등을 통해 권력을 독차지 하게 된다. 그러자 자연히 딸의 가치는 낮아였고, 딸살해 등의 관습이 생기기도 했다.(황하에 떨어지는 붉은 꽃잎이란 책에선, 중국의 여아 살해를 다루고 있다. 황하강에 아이를 버리거나, 비닐에 싸서 던져 버리는 것.)
동물들에 빗대어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지만, 실제 동물의 세계에선 암수 서로 자기 역할을 할 뿐, 인간처럼 상대의 성을 억압하며 약탈하는 경우는 없다.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 또한 남성이 권력을 얻자,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권력자들은 스스로 근친상간을 당연시하였다. (이집트의 남매 파라오, 함스부르크 왕가, 고려시대의 친족결혼, 일본에선 사촌간 결혼이 불법이 아니다.)
나이지리아의 티브족은 서로 딸과 아들을 물물교환하지만, 항상 성비가 딱 맞는 것은 아니다. 아들만 가진 집안에선, 물물교환할 딸 대신 청동창을 준다고 한다. 티브족에게 청동창은 권력을 의미한다. 결국 청동창은 화폐이자 신부값이 되는 것이다.
중세사회 또한 여성은 물물교환의 대상이자 동맹을 맺는데 필요한 도구였다. 남성들은 아내에겐 정조와 순결을 요구했고, 본인들은 온갖 다양한 제도와 장소를 이용해서 불륜을 즐겼다. 대표적으로 바티칸의 시스티나 대성당은, 식스토 4세가 운영한 유곽에서 번 돈이 큰 역할을 했고, 그런 대성당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했다.
그 후에는 귀족의 여식들은 무도회를 통해 데뷔하고, 남자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의 집에 찾아와 담소를 나누었다. (브리저튼의 시대가 온 것)
그러다 산업혁명 등으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렸고, 하층민들에게도 로맨스는 필요했다. 하지만 하층 도시 젊은이들에겐 찾아 올 집이 없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데이트다. 둘이 같이 나가서 공원을 거닐고 음식을 먹는 데이트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지만 데이트에도 돈이 드는 것, 당연히 임금격차 등으로 남성들이 더 많은 돈을 부담했고, 그런 경제적 차이로 인해 여성들은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성이란 허울로 치장을 해야 했다.
일본의 학자 가토 슈이치는 연애결혼이 우생학적이라고 주장했다. 잘생기고 능력있는 이들이 짝짓기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바람기는 바소프레신수용체와 관련이 있으며, 바소프레신수용체가 많을수록 유대감이 깊어 바람 피울 확률이 적다고 한다.
<원더우먼>의 원작자 윌리엄 몰턴 마스턴은 특이한 자신의 결혼생활과 성적 취향을 담아 원더우먼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믿음직하며 경제력도 책임졌던 아내 엘리자베스와, 자신의 성적취향에 맞는 올리브 번과 함께 산 것. 원더우먼엔 아내와 올리브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 이것은 처첩의 모습이 아닌가 싶겠지만, 아내와 올리브 또한 여자애인관계였던 것. 둘은 각자 두명의 아이들을 두었고, 윌리엄 사후에도 사이좋게 살았다고 한다.
폴리아모리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여자와 남자가 일대일로만
종속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공동체다 모두가 가족이며, 아이들은 공동육아)가장 유명했던 종교 폴리피델리티(폴리아모리공동체)는 오나이파로 은나이프와 포크 등을 제작하며 공동체를 유지했지만, 2세대 들어서는 일부일처제로 회귀했다고 한다.
 

무성생식을 하던 이들도, 환경이 척박해지면 유성생식을 한다고 한다. 무성생식보다 훨씬 힘든 유성생식을 선택함으로서, 인구조절을 하는 것. 그러니 인류는 얼마나 연애가 힘들겠는가 말한다. 사랑, 연애, 결혼이라는 것이 사회구조적으로 어떻게 변질되고, 어떤 집단에 유리하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공적인 연애사다.

미래의 연애는, 결혼은 어떻게 변할까. 프랑스처럼 결혼이 아닌 동반자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 우리의 결혼은 너무 많은 것을 어깨에 지운다. 그저 사랑하고 그래서 같이 살고 싶은데, 그 순간 어디선가 숨어 있는 것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배려라는 이름의 참견, 나이란 계급장.

( 출판사의 만류로 통째로 빠진 1장은 구매인증만 하면 아주 잘 정돈된 파일로 보내주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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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19 20: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 웬만해서 아이시떼루(사랑해) 라는 말 보다
스키다(좋아해) 라고 말하고 여기서 좀더 발전 하면 (스고끄,다이 /굉장히 아주 많이)를 붙입니다
봄날의 곰만큼 뽀송한 말은 하루키옹 소설속에서!ㅎㅎ

근데 이책 1장은 통쨰로 인쇄되지 않은 건가여??

mini74 2021-11-19 20:53   좋아요 3 | URL
네~~1장 통째로 ppt 형태로 보내줍니다~ 스키다! ㅎㅎ 스콧님 스키다! ㅎㅎㅎ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

stella.K 2021-11-19 20: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파격적이네요. 그때 TV에서도 그러더니.
역시 오 작가답네요. 근데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쓸 일이 아니면
저는 그냥 미니님 리뷰로 만족해야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mini74 2021-11-19 21:00   좋아요 5 | URL
TV에도 나오셨군요. ㅎㅎ 책엔 훨 많은 내용이 나옵니다. 작가님의 애절한 ?! 연애사까지 ㅎㅎ 스텔라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토요일 보내세요 *^^*

stella.K 2021-11-19 21:03   좋아요 3 | URL
작가의 연애사꺼정...?!
아 또 이러면 마음이 흔들리는뎅...OTL

프레이야 2021-11-19 21: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 이 책 소개 보다가 알라디너 티비 오늘 처음 보게 되었어요. 간명하고 또랑하게 넘 좋으네요^^
혹시 경북 쪽이신가 싶어요.

mini74 2021-11-19 21:22   좋아요 3 | URL
앗 고맙습니다 ㅎㅎ 맞아요 부모님은 경상남도 출신 저는 경상북도에서 나고 자란 ㅎㅎ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프레이야 2021-11-19 21:28   좋아요 4 | URL
그렇군요. 예쁜 목소리에 언뜻언뜻 들리는 경북 억양이 더욱 정감 있어요 ^^

책읽는나무 2021-11-20 08:32   좋아요 1 | URL
저도 며칠 전 티비 알라디너 첨 봤어요~^^
들으면서 어?대구쪽 사투리가 들린다?싶었었거든요^^
울 막내동생이랑 올케가 몇 년째 경북 경산으로 이사 가서 터잡고 살고 있어 친근했어요^^
토박이가 아니어서인지 동생네는 아직 경북 사투리를 쓰진 않더군요.
근데 경남,경북 사투리라고 쓰고 보니까 좀 우습기도 하네요.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음 다 똑같이 들릴텐데 말이죠ㅋㅋㅋ

mini74 2021-11-20 09:15   좋아요 2 | URL
헉 ! 저 대구에서 태어나서 쭈욱 살다가 경산에도 잠깐 살았어요. 경남과 경북의 그 억양 차이가 있지요. ㅎㅎ

미미 2021-11-19 21: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나열해 주시니 치환된 사랑 표현들이 더 로멘틱하게 느껴져요~♡ 남편분하고 미니님 봄날의 곰들처럼 천생연분입니다ㅋㅋㅋㅋ

mini74 2021-11-19 21:56   좋아요 4 | URL
지금 옆에 있는데 불곰같기도 하네요 ㅎㅎ 저는 이왕이면 판다로 ㅎ 판다도 곰 맞죠 ㅎㅎ 미미님도 옆지기님과 즐거운 토요일 보내세요 ~

새파랑 2021-11-19 2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의 ‘봄날의 곰‘이랑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 랑 ‘기적소리만큼 널 사랑해(?)‘ 이게 생각나네요 ㅋ 역시 낭만적인 미니님~!!

mini74 2021-11-19 22:45   좋아요 2 | URL
앗 생각이 나요.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 그 문장도 낭만적이지요 , 한밤의 기적소리만큼 *^^*

페넬로페 2021-11-19 23: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봄날의 곰처럼 좋아한다는 말 좋아해요~~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양한 변화들이네요.
아까 stella.k님과는 연예만 하기로 했는데
다음생에 가능할 것 같아요~~

mini74 2021-11-19 23:36   좋아요 2 | URL
ㅎㅎㅎ 페넬로페님 넘 재미있으세요. 다음 생 예쁜 연애하세요 ㅎㅎ

단발머리 2021-11-20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달이 아름답네요‘가 좋거든요. 근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와 연애, 결혼 이야기까지 아주 정리가 잘된 책이네요.
미니님 영상으로 다시 한 번 보았더래요. 저도 무민으로 정했습니다. 아직 구매하진 않았지만요.
from 작년 다이어리 책기록 & 메모 보고 살짝 심쿵한 사람

mini74 2021-11-20 09:09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 저도 지금은 달이 아름답네요가 참 운치있고 좋다 란 생각이 들어요. 일요일 줄겁게 보내세요 ~

책읽는나무 2021-11-20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해~라는 표현이 저렇게도 다양하다니요!!^^
저는 사랑한다는 말을 정말 정말 말로 표현 못하는 경상도 보리 문댕이였거든요~그래서 남편은 늘 섭섭해 하긴 하지만요ㅋㅋㅋ
글로는 너무나 잘 써지는데 입으로는 절대 뱉어지지 않는 문장이었는데요..아이 낳고 키우면서 이 말이 요즘엔 자연스럽게 좀 나오긴 하더라구요.그래도 남편에겐 정말 힘든 말이에요ㅋㅋㅋ 아이들,친구들에겐 잘 쓰곤 하는데 말입니다!!^^
말로 표현 못해도 듣는 건 너무나 달콤하네요~전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해!! 저 말이 사르르 녹네요ㅋㅋㅋ
봄날의 곰처럼도 참 좋았는데..맞아요!!
겨울동안 굶주린 곰!!! 아...섬뜩하네요ㅋㅋㅋㅋ
사랑의 역사에 관한 책이라니!!
흥미롭습니다^^

mini74 2021-11-20 09:13   좋아요 1 | URL
ㅎㅎ 경상도 보리 문댕이 정말 오랜만에 들어요. ㅎㅎ저희집도 좀 ㅠㅠ ㅎㅎ근데 남편이 강아지한태는 애정표현을 잘해요. 그리고 한번씩 이렇게 시키죠. 똘망이! 아줌마 물어 ! ~ 다행히 말을 참 안듣는 개라서 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21-11-20 09:22   좋아요 1 | URL
보리 문댕이!!! 이렇게 나이 연식 나오나요?? 옛날 사람요!!ㅋㅋㅋ
그나저나....악!!! 남편님 너무 제 스퇄이에요.ㅋㅋㅋ
저는 재밌는 사람 좋던데..ㅋㅋㅋ
강아지가 반대로 그 말이 애정표현의 말로 알아듣는 게 아닐까요??ㅋㅋㅋ

페크pek0501 2021-11-20 1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결혼 문화가 많이 변해서 주위에 결혼하는 이들 - 사촌들의 자식들 - 의 얘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어요. 남자가 집 장만, 여자가 가구 장만,의 규칙이 깨진지는 오래인 건 알지만
동거로 시작해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게 결혼식장을 잡기 어려워 날짜를 멀리 잡아 놓고 집값이 자꾸 오르니 미리 사 두게 되고... 그래서 빈 집에 들어가 먼저 살게 되는 경우도 있나 봅니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는데 그런 멋진 문장이 있는 거 생각 안 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mini74 2021-11-20 15:33   좋아요 0 | URL
우리때와 많이 달라진듯 해요.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거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