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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네 발 달린 친구들
길정현 지음 / 토일렛프레스 / 2021년 9월
평점 :
음표에 색을 붙인다면, 지금 내가 듣는 이 노래는 어떤 그림일까란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데, 나보다 훨씬 먼저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한 이가 있으니, 바로 칸딘스키다. 그는 음악을 청각과 시각, 공감각으로 느꼈고, 그런 그의 그림들엔 귀 기울이고 싶은 매력이 있다. 천재이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지만, 연인에겐 잔혹했던 칸딘스키, 그런 그가 사랑했던 반려동물은 고양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 속엔 숨은 고양이들이 있다고 한다. 우아하고 매력적인 고양이의 걸음이 장난스럽게 담겨 있다면, 클레의 그림 속 고양이는 왠지 뚱해 보인다. 그런데 그런 뚱한 표정들이 너무나 순수하고 아이같은 클레의 그림에 안성맞춤이다.
금붕어를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금멍을 그린 마티스, 개와 비둘기들을 키웠다고 한다. 말년에 비둘기를 피카소에게 맡겼고, 원래 비둘기를 좋아했던 피카소는 흔쾌히 마티스의비둘기들을 맡아주었다. 마티스 사후, 피카소는 마티스가 그리는 기법으로 비둘기를 그려마티스의 죽음을 추모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는 야수파에 속하는 캐나다의 에밀리 카란 작가이다. 일단 생소하기도 하고, 그녀의 숲과 정경이 너무나 야생적인 힘이 넘치고, 원시적인 초록빛들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시절, 트레이너를 타고 다니며 야생의 그림을 그린 화가옆엔 언제나 동물들이 있었다. 쥐 다람쥐 너구리 강아지, 그리고 작고 연약했던 원숭이 우, 큰 원숭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우를 펫샵에서 구해내, 옷을 해입히고 함께 여행하며 행복했지만, 화가는 심부전증으로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에밀리카의 우는 동물원에서 쓸쓸하게 일년만에 죽음을 맞이했고, 에밀리 카는 우를 부르며 죽었다. 서로에게 그리움과 사랑이었고, 우에겐 전부였던 에밀리, 만약 정말 죽어서 가는 곳이 있다면, 에밀리와 우가 만나기를.
로자 보뇌르는 정규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동물을 그리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물론 여성에겐 그림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독학을 했고, 남장을 하고 도살장에 가거나 해부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수많은 동물들, 거기다 사자까지 키우며, 진짜 같은 동물을 그렸던 로자는 페미니스트이자 동성애자였으며, 여왕에게 인정받는 부와 명성을 가진 그 당시엔 보기드문 화가였다.
앵무새를 키우며, 앵무새를 그리는 화가 헌트 슬로넴, 아침을 주는 것만으로도 4시간이 걸리는 엄청난 수의 새들을 키운다고 한다. 그렇게 새의 수가 늘어난 이유는, 주변에서 키우지 못하겠다면 자꾸 헌트에게 갖다 준다는 것. 버려진 그 생명이 안타까워 받아들이고 사랑을 쏟으며 키우는 헌트를 보면,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것엔 정말 큰 결심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개를 키운 수잔 발라동, 그녀의 염소는 잘못 그려진 그림을 먹는 동물파쇄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염소가 오래 살지는 못 했을 거 같다.)
한국의 고양이 그림의 대가 변상벽, 일본의 고양이 대가 쿠니요시 우타가와. 특히 우타가와는 고양이들을 정말 사랑했고, 고양이들이 고양이별로 떠나면, 절에다 위패까지 올릴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고양이를 사랑으로 관찰했던 찐반려묘인임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동물학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예술가들도 있다. 개미핥기를 산책시키고멸종위기의 오셀로(삵과 비슷)를 데리고 다니며 과시용으로 동물을 이용했던 달리(진짜마음에 안든다. 달리는 파시즘과 히틀러에 동조했던 인물이다.)
피카소는 동물을 좋아한걸로 유명하지만, 반대로 투우를 좋아했던 인물이다. 또한 사진작가 더글라스 던킨의 럼피를 키우다가(더글라스가 럼피를 피카소집에 데려왔는데 럼피가돌아가길 거부했다는 설도 있다.) 그런 럼피에게 마비가 오자, 치료하려는 더글라스를 만류하기도 했다. 럼피는 치료받고 회복된 후, 한참을 더 살았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말라는 피카소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지만, 병을 고친 후 한참을 건강하게 살다간 럼피에겐서운할 수도 있다. 그렇게 모델로 그려대고 우려먹더니, 병들고 아프니까 나를 버려? 라고생각하지 않을까.(아래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을 피카소가 자기식으로 그린 그림, 맨 아래 강아지가 럼피)
우린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역할을 맡게 된다. 어떤 역할은 잘해내지만 어떤 역할은 썩 잘해내지 못하기도 한다. 역할에 따른 관계맺기를 하면서 위로나 상처를 받기도 하고, 역할이 끝나면 허무할 정도로 무심히 뒤돌아서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참 피곤하다. 그런 삶 속에서 내 역할이 아무리 하찮아도 변함없는 존재가 있다. 부모? 부모도 실망은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얼굴에 더 잘 드러난다.
(내 위안은 바로 내 뒤에서 코를 골며 자는 똘망이, 2014년생 파란 말띠이지만 푸들인 똘망이다.)
예술가들에겐 더욱 필요한 존재이지 않았을까. 감수성도 예민함도 더 깊고 깊을 그들에게, 성공이든 실패든 세상이 가져오는 부산함 속에서, 그래도 그리고 또 그리고 싶었을 그들을 위로한 반려동물들이다.
(화가들의 그림들이 참 좋았다. 내용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림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책이다. 저번에 읽은 수지그린의 <나의 절친>과 내용이 조금 겹치긴하지만 그래도 좋다.스콧님 소개로 알게 된 책, 아 그림만 봐도 행복해 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