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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다정한 순간들에 감사하며
힘들 때 고단할 때, 지칠 때, 내가 싫을 때. 사실 이 중에서 제일 곤란할 때가 내가 실고 미울 때다. 타인이 미울 땐 안 만나면 그만이지만 내가 미울 땐 거울 속의 날 보며 욕하는 거 말곤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다정한 그 순간, 다정했던 그 기억이 아닐까.
(나에게 다정했던, 내가 다정했던 그 순간을 추억하면 내가 조금은 덜 미워보이지 않을까. )
나 혹은 너, 또는 서로에게 다정했던 기억들.
작가는 그러한 다정한 순간들, 그 소중한 기억들로 계속 나아간다고 말한다.
비행승무원 초년 시절, 올림머리와 화장엔 젬병인 작가를 위해 새벽에 달려와 준 친구들의 헤어스프레이아 드라이어 소리.
너도 내 나이가 되면 할 수 있다며 철봉에 매달려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50대의 축구부 언니들.
그런 연대와 다정함 덕분에, 오히려 위선이 나을 듯한 무례하고 잔인한 솔직함과 부당함, 선을 넘는 행동들에 대항하고, 그러다 깨지기도 하며, 또 이겨내기도 하면서 천천히 나아갈 수 있다고, 자신의 삶을 걸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제사 등 가부장제에 대해서는 유쾌함과 공감가는 의문을 던진다.
“옥이야 금이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고생해서 잘 키워낸 손녀를 명절마다 데려다 부려먹는 남자네 집안에 벌을 내리는 조상신 이야기는 왜 없는 걸까? 이야말로 한 집안을 쓸어내리고 싶을 만한 일일 텐데. 남자네 집 제사 지내느라 내 제사에는 몇 년째 오지 않는 증손녀 부부에게 분노해서 그 집안에 저주를 내리는 조상신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나? 무엇보다 후손에게 복과 재앙을 골라서 내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녔으면서 밥 한 끼를 알아서 먹지 못해 배고프다고 꿈에까지 찾아오다니 정말 독특한 영혼이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별 생각없는 차별의 언어와 행동들이 누군가에겐 별 생각있게 각인되어 아픔을 줌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인텔리젠시아 커피를 한 잔 내리고, 약사여래 기도등이나 행성램프를 켠 뒤, 가마솥에서 튀겨낸 감자칩을 먹고 싶어 진다. 그 감자칩을 판다는 곳에 올 겨울엔 손모아 장갑을 끼고 여행을 가 보는 것도 어떨까 싶기도 하고.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한다. 엄청난 집순이에게도 와이파이 연결해 줄 분 한 분 정도는 필요하다. 그런 삶 속에서 진중하고 속 깊은 이들은 오히려 오해받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또 인연의 끈은 있는지, 두루두루 닮은 이들끼리 모여 그렇게 살아간다. 나를 모르는 이, 혹은 나를 안다면서 더 잔인해지는 이들에게 기껏 할 수 있는 게 뒤돌아서서 궁시렁거리며 욕하는 소심한 이들이지만, 그래도 가슴엔 누구보다 따뜻했고 다정한 순간들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다정한 순간이고자 노력하며.
그런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순간과 그 순간에 대한 소감, 만나면 유쾌하고 즐거운 친구, 뒤돌아서서 내 욕 안 할 것 같은 친구같은 김혼비 작가님의 책을 읽는 순간도, 내겐 다정한 추억이다.
의식적인 노력을 다한다 하더하도 글은 모든 상황과 입장을 전부 담지는 못한다. 어느 한곳에서는 반드시 누수가 일어나 어떤 존재들은 빠져나가고 배제되고 소외되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표현‘ 을 계속 고민하고 다듬는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D들이 삐쭉댈 만한 말을 최대한 쓰지 않는 것. 누군가 내글을 읽다가 외로워지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것. D가 슬프면 나도 무척 슬플 것이다. D가 아프면 나도 무척 아플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써왔던 말들을 버리고 벼리는 건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순간의기분으로 문 너머 외로운 누군가에게 다가가려다가도,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결국에는 가장 차가웠던 그때의내가 떠올라 발을 멈춘다. 끝까지 내밀 손이 아닐 것 같으면 이내 거둔다. 항상성이 없는 섣부른 호의가 만들어내는 깨지기 쉬운 것들이 두렵다. 그래서 늘 머뭇댄다. ‘그럼에도 발을 디뎌야 할 때와 ‘역시’ 디디지 말아야 할때 사이에서. 이 사이 어딘가에서 잘못 디딘 발자국들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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