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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먼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7
에벌린 워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평점 :
헤턴저택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가족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자부심이다. 그리고 돈 먹는 하마이기도 하다. 이런 대저택의 주인 토니는 헤턴저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래서 돌로 지어진 이 오래되고 낡은, 유지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면서도 식당에선 덜덜 떨면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이 곳에, 자신의 열정과 젊음과 삶의 열기마저 몽땅 쏟아 부었다. 그런 헤턴저택은 너무나 넓어서 아무리 닦고 쓸어도, 여기저기 먼지가 쌓인다. 모든 걸 쏟아부은 대신, 텅빈 자신의 몸 속 가득 헤턴저택의 먼지들을 쓸어담아 넣고 다닌다. 그래서 그는 김이 새는 인간이다. 무슨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그저 푸식하고 오래된 저택의 낡은 먼지만이 나온다.
그래서일까. 아들의 죽음앞에서도, 레터리부인이 제안하자 암탉 흉내를 내며 게임을 한다. 분노도 슬픔도 왠지 모르게 다 가라앉아 먼지처럼 흡수한체, 낡고 어두운 저택의 성벽같은 모습으로 토니는 담담할 뿐이다.
그런 헤턴저택에 7년이나 갇혀 그 먼지를 옴팡 뒤집어 쓰고 살던 여인이 있다. 토니의 아내 브랜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열쇠다. 이 저택의 문을 열고 나갈 열쇠, 그러니 열쇠의 모양 따윈 필요없다. 문을 열고 나가서, 그 열쇠를 버리고 새로 장만하면 된다. 일단 내 손에 열쇠만 들어오면 된다. 그 열쇠가 바로 찌질함의 극치를 달리는 마마보이이자, 온 동네 외상을 깔고 다니는 존 비버다. 잡식성에 뭐든 주면 잘 먹는 그러나 끊임없이 갉아대는 비버, 교양도 부끄러움도 없지만, 뭐 어떤가.
1930년대의 영국은 먼지가 자욱하다. 그 먼지 속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다. 각자의 일일뿐이다. 그저 토니에게 무관심하고, 브랜다의 불륜에도 똑같이 무관심하다. 공정하지 않은가. 결국 먼지를 걷어내면 모두가 닮아있다.
그런 토니가 이혼을 위해 아내인 브랜다가 소개해준 제니를 만나게 된다. 따뜻하며 묘한 매력의 제니, 그렇지만 토니는 가진 게 없다. 납작하고 볼품없이 회색으로 변한 먼지같은 그의 열정과 사랑은 이미 저택에 묶인지 오래다. 그래서 그는 분노한다. 아내의 위자료를 주려면 저택을 팔아야 한다는 그 사실에.
그리고 떠난 곳, 브라질.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은 결말을 두 가지로 보여준다. 부록의 또 다른 결말보다 그냥 결말이 마음에 든다.
아내의 불륜상대의 엄마가 비싼 값에 (분명히 여기에도 농간과 사기가 있었을 것이다.)제안했을 비석에 피식 웃음이 난다.
<탐험가, 브라질에서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