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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골트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 정영목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평점 :
<아침부터 계속 ~ 사랑해요 사랑해요 LG~ 란 광고노래가 계속 맴돌았다. 유행도 지난 이 광고노래가 왜 계속 맴도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하 ~~ 어제 밤에 읽고 잔 루시골트이야기때문이었다. 루시골트 이름의 이니셜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당연히 루시골트의 이니셜은 L.G.
그랬다. 입에 하루종일 맴돌았던 씨엠송
우리집 남자가 혹 냉장고? 세탁기? 뭔가 고장나거나 바꾸고 싶은건가 두려움에 떨게 한 그 정체는 어젯밤에
읽은 책. 하 한심하다. 많고 많은 좋은 구절과
절절한 이야기 사이에서 내 자글자글한 뇌의 주름( 어쩌면 편편할지도 모르지만 ㅠㅠ)은 아주 소중하게 LG 만 기억하고 있다니 ㅠㅠ>
깊고 깊은 이야기다. 구불구불 산을 넘어 바다를 건너 어딘가의 골목과 파란 하늘아래를 지나고, 아이가 자라 말수가 없어지고,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잃고, 그렇게 낡아가며 어느 덧 빛바랜 지붕 색과 닮아가는 그 오랜 세월의 이야기.
부모는 아이를 잃었다 생각했고, 그 죄책감 속에서 헤맸다. 그리고 어머니는 성녀의 모습 속에서, 소박한 이탈리아의 골목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위로했고 그렇게 떠났다.
아이는 부모를 잃었다. 자신의 무모함이 부모를 아프게 했고, 떠나게 했다 믿었다.
아이는 울 수가 없었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찾아 온 사랑도 자신의 몫이 아니라 밀어냈다. 외롭고 외로웠지만 그건 자신의 형벌이며, 참아내고 인내했다.
돌아 온 아버지는 이제 늙어버린 딸이 안쓰럽다. 그 때의 그 일은 그저 우연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집에 불을 지르려 했던 청년에게도 슬픔은 충분하다.
잉글랜드는 성공회를 받아들이면서, 구교인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들의 토지를 몰수해, 신교를 믿는 잉글랜드인에게 나눠주었다. 결국 이 때부터 신교도의 지주층이 형성되었고, 아이랜드인 구교인들과 마찰을 빚게 되었다. 그 후 1920년대엔 구교아일랜드인들의 분노로 신교도 지주층들에 대한 테러가 일어났고, 많은 수의 신교도지주들은 아일랜드를 떠났다. 바로 그 시기 신교도지주층이었던 루시골트 집안의 이야기다. 누군가 루시골트의 집에 불을 지르려 했고, 이런 사건에 휘말리면서 루시골트의 집안은 잉글랜드로의 이사를 준비한다. 루시골트는 이사가 싫어서 몰래 탈출을 감행, 하필이면 아이의 옷이 해변가에서 발견되면서 이 이야기의 비극이 시작된다. 아이가 죽은 줄 알고 떠난 부모, 구출 된 아이.
조용하다. 수녀님들이 찾아 와 같이 마셨던 찻잔의 차는 식은 지 오래다.
이제 백발이 성성한 채로,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그러나 다른 여자의 남편인 레이프의 장례식 뒤를 따라 걸으며.
이 비극의 시작이었던,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려 했던, 그 죄책감 등으로 정신병동에서 삶을 마친 호라한을 매 번 찾아가면서.
이탈리아 낯선 곳, 어느 골목을 지난 곳 어머니의 묘소앞에서.
그리고 이제 어쩌면 내일이라도 침실에서 일어나지 못할 자신의 늙음앞에서.
어쩌면 루시골트는 예전 숲길에서 다리를 다쳐 꼼짝도 못 했던 그 때 이미 죽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이고 평온한 듯 보이는 삶과 특별할 것 없는 행동과 대화들이, 작가의 문장을 통해, 아련함과 비애, 슬픔과 인내, 고독과 외로움이 스며든다.
수를 놓고 차를 마시며 산책을 하고 편지를 쓰는 루시 골트의 모습이, 조금씩 천천히 느려져 가는 아버지 에버라드 골트의 모습이, 아내를 대하는 레이프의 모습.
고요하지만 큰 슬픔을 안고 있던, 평온해 보였지만 쓸쓸하고 외로웠던 그녀의 삶은 잔잔하게 밀려온다.
<해변의 바위들이 파도에 파이고 삿갓조개로 덮이면서 밑에 깔린 것이 더욱더 가려지듯이 시간은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던 것을 진실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