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일즈맨의 죽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신화 속 영웅들은 신이한 탄생과 모험 속에서 인정받고, 미인을 얻어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 같지만, 실제론 허영이나 허세로 혹은 다양한 불경죄나 주변의 질투로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특별했고 주목받았기에 오히려 더 증폭되는 비참함.
현대인의 영웅은 어떤 모습일까. 온갖 것들을 팔아대며 최고의 커미션을 받아 챙기고, 두둑한 지갑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일까? 박목월의 시 속 아버지처럼 얼음의 길을 걸어 육삼문의 신발을 보며 미소 짓는 아버지일까.
윌리는 선량한 사람은 아니다. 도덕적이지도 않다. 그에게 삶은 형이 걸어들어간 정글이지만, 부자는커녕 살아남기에도 급급하다. 살아 남는 데는 선량도 도덕도 거추장스럽다. 아이들에게도 일탈을 비범과 기개라며 옹호한다. 도시의 삶엔 정글의 법칙이 맞지 않다.
그저 평범한 세일즈맨, 소시민. 자랑스런 큰아들이 최고의 미래를 만들어 줄 거라 믿었지만, 최악의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에 분노하고, 그럼에도 아들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다.
( 네 인생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
아버지! 전 1달러짜리 싸구려 인생이고 아버지도 그래요
난 싸구려 인생이 아냐 나는 윌리 로먼이야 너는 비프 로먼이고
제발 절 좀 놓아 주세요 예? 더 큰 일이 나기 전에 그 거짓된 꿈을 태워 없앨 수 없나요?)
좋았던 시절, 쌓아올린 벽과 지붕 아래서, 행복하고자 했던 공간 속에서, 외로움과 고지서와 할부금도 다 갚기 전에 고장나는 가전제품들만이 쌓인다.
현재의 공간에서 과거를 만나면, 그 시절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간 걸까 윌리의 혼잣말은 과거를 향한다.
비프가 가슴에 품은 비밀과 스스로 팽겨쳐버린 미래는 그의 마음에 커다란 구명을 내버렸다, 그 구멍은 농구공으로도 만년필로도 낮은 임금의 육체적 노동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우상이였던 형의 추락과, 형의 후광이 꺼진 지금 해피는 춥다.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욕망만 큰 해피는 침대 옆의 여자로도 따뜻해질 수 없다.
만약 윌리가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면? 아니 윌리는 완강하게 거부하지 않았을까.
그나마 할부금을 다 갚은 집마저 넘어가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 실크스타킹에 대한 미안함에 비프에 대한 죄책감, 최선을 다한 삶이 최악이 되는 순간, 그는 시간을 멈추고 과거의 그 때, 아이들의 미래를 꿈꾸며 집을 짓던 그 때로 성큼 성큼 걸어들어간다.
자신의 사망 보험금으로 다시 한 번 비프에게 찬란한 미래가 찾아오길 바라면서.
(윌리 어느 누구에게도 죽는게 더 나은 경우는 없네.)
(새파랑님 별 다섯개 추천으로 읽은 책 ~엄지척! 난 왜 엄짙척 이모티콘이 없는걸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