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맛 - 짜장면부터 믹스커피까지 한국사를 바꾼 아홉 가지 음식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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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인의 맛이란게 뭘까? 고향의 맛이라는게 있기나 할까란 궁금증에서 시작한 책읽기 !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입맛의 변화? 식생활에도 정치적 야욕과 경제적 수탈이 담겼던 시절, 서양음식이라면 무조건 우월하다 믿고 따랐던 일본의 모습 등 그 시절의 다양한 식생활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여기서 언급되는 음식들은 대부분의 그 시절 가난한 우리 조상들과는 동떨어진 음식들이라는 것, 그런데 해방 후에도 우리옆에 끈질기게 남아 향수를 자아내는 혹은 우리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는 것 ?

 

(그 당시 경성의 모습은 어땠을까.

학교를 마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우루루 나와서 진고개의 빙수가게에서 딸기물이 잔뜩 얹어진 빙수를 먹겠지. 모처럼 진고개에 왔으니 화신백화점 구경이나 할까, 어슬렁거리다가 일본화과자집에서 단팥빵을 하나 먹을지도 모르지. 졸업식쯤엔 부모님을 모시고 백화점 경양식집에서 카레라이스나 돈까스를 혹은 인천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특별히 공화춘을 가게 될지도 모르지. 모던보이들은 양복을 다려입고, 제비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최승희의 무용에 대해서 열띤 논쟁을 펼칠까 아니면 이상의 묘한 시들을 이야기할까.)

 

일본의 대동아공영. 아시아를 모두 일본의 식민지화 하고자 했던 그들만의 원대한 꿈. 거기엔 민족 정신과 문화에 대한 말살도 포함되며, 식문화의 획일화까지 담겨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미원, 다시다 등에 바로 그런 일본의 식민지 잔재, 맛의 통일화에 대한 음모가 담겨 있다. 정말 악은 꼼꼼하고 치밀하다.

아지노모도

일본인들은 한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불교국가로 채식을 권장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론 섬의 특성상 고기등에 맛을 들여 잡아 먹고 나면, 농사 지을 때 정작 소가 없어 곤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타지역 등에서 소를 사오면 되지만 폭풍이나 파도로 배를 띄우지 못할 경우, 밭갈이 등의 시기를 놓쳐 농사를 망친다. 또한 식량이 그리 풍족하지 않아, 인간과 같은 식성을 가진 돼지를 다량으로 키우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엄청난 서양인들을 봤고, 메이지 유신을 통해 무조건 서양인들을 배우자가 그들의 모토였다. 귀족 계급이름도 공후백자남으로 거기다 갑자기 빵을 먹어라 고기를 먹어라, 그래서 서양인과 같은 체급이 되자는 명령? 웃기지 않은가 국민의 체급과 식성도 명령으로 바꾸려 하다니....

결국 소고기나 돼지고기 수입은 힘드니, 그런 육고기와 다시마등을 이용해 분말로 가루를 낸 우아미, 감칠맛을 일본인 이케나 가쿠나에가 개발한다. 그렇게 일본이 만든 아지노모도는 동아시아로 조선으로 입맛마저 획일화시켰다.

광복이 되어도 그 맛을 못 잊어 밀수 등이 행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미원이니 다시다니 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향의 맛으로 선전했던 다시다. 너무 웃기다. 일본이 원조인 화학조미료가 고향의 맛으로 둔갑하다니.

그것보다 흰옷을 즐기는 (실제로는 염색은 번거롭고 비싸서)것 또한 우리의 정서라 생각해 물감이 든 먹물을 쏘며 어떻게든 색깔웃을 입히려 하고 (물론 일본의 물감을 팔려는 수작)기어이 조선호랑이들을 다 잡아 들이고, 귀신 쫓는 삽살개를 살육해 군인옷을 만들고, 거기다 입맛까지 획일화시켜 종속시키려한 그들. 역시 악은 꼼꼼하고 부지런하다.

 

그러고보면 친정에도 항상 미원과 소고기맛 다시다와 멸치맛 다시다가 있었다. 아이에게 유기농을 해주겠다고 설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살포시 한 마디 하셨다.

맛없는 걸 멕이는 것도 학대여.”

그래서였을까. 어린시절 우리아이에게 엄마가 해준 음식 중 어느 게 제일 맛있냐는 물음에 고민하다가, “보리차라고 했던 슬픈 기억이 난다. 보리차라니.....앗 또 옆길로...... 그냥 동네 아줌마가 간만에 책 한 권 읽었다고 궁시렁 궁시렁 아는 척 하는 글이라고 생각해 주길.

 

첫 외식의 경험은 짜장면, 중국의 짜자앙미엔과 티엔미엔장이 만난 것, 처음엔 주로 중국인 노동자를 위한 값싼 음식이었다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면서 지금의 짜장면이 된 것. 공화춘을 시작으로 왕송산이 캐러멜을 넣은 사자표춘장을 개발하고, 국물을 좋아하는 입맛에 맞춰 자작하게 소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엔 나오지 않지만, 다른 책에서 짜장면에 양파가 들어간건 양파파동때문이었다고 한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들을 위한 채소를 키우는 것이 돈이 되었고, 그래서 갑자기 양파나 양상추같은 것들을 너무 많이 키웠다고 한다. 결국 양파가격은 폭락했고, 그때 그때 가격이 적당한 채소를 쓰던 짜장 소승에 양파가 듬뿍 들어가게 된 것, 그런데 너무나 환상의 조합이라 결국 양파로 정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돈까스.

돈까스! 경성에서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경양식집에서 스프와 돈까스를 먹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 또한 일본인들의 집념? 더 강하고 더 큰 육체를 가지고 서양인과 대등해지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고기를 싫어하는 자국민들에게 기어이 먹이겠다는 오기의 결합이 아닐까.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덴뿌라와 프랑스식 코틀레트의 합치는 엄청난 고열량을 가져왔고, 지금의 돈까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설탕, 사실 이건 좀 슬프다. 동남아가 일본의 식민지화 되면서 설탕이 흔해졌고(특히 대만 등)그러다 전쟁으로 설탕 배급제로 , 그 후엔 아예 사카린 권장으로 사실 우여곡절이 많은 대표 음식이다. 전쟁 후에도 한동안 귀한 취급을 받던 설탕, 그래서 그 유명한 사카린 밀수사건도 있었지 않은가. 귀한 손님이 오면 설탕을 타서 대접하고, 추석선물로 설탕 세트를 받아오던 시절, 지금은?

그리고 커리. 인도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영국해군의 괴혈병을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된 커리. 그리고 이 커리는 일본군대의 각기병을 예방해주기도 했다.

흰쌀밥을 마음껏 먹게 해주겠다면서 군인을 선발했다. 반찬 등 부식은 돈을 내야했는데, 그러자 가난한 군인들이 흰쌀밥만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었다고 한다. 결국 비타민 부족으로 각기병이 생겼고, 잡곡을 주자니 군인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밥 위에 커리를 뿌려주거나, 혹은 싼 채소와 돼지고기 등을 넣어 커리를 만들어 주는 등의 노력으로 각기병을 예방했고, 일본에선 이런 커리를 각종 급식등에 꼭 넣었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도 즐겨먹는 커리, 카레라이스는 오뚜기의 전신인 풍림상사가 처음으로 인스턴트 분말을 개발, 그 후엔 레트로트 카레를 선보이면서 대중화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 바로 단팥빵. 원래 만두에서 유래한 단팥빵은 중국인 임정인이 일본에서 만두를 만들어 팔려다가, 고기를 넣을 수가 없자(육식금지) 일본인이 좋아하던 단팥을 넣어 팔던 것에서 유래, 그 후 서양의 빵이 넘어오면서 빵 속에도 단팥을 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군산의 이즈모야 제과점이 특히 단팥빵으로 유명했고, 해방 후엔 이석우가 불하받아 지금의 이성당이 되었다고 한다.

김밥은 주로 노리마키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우리가 대보름에 먹는 복쌈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소풍때면 늘 빠지지 않는 김밥은, 재료에 따라 맛도 천차만별이며 대강 있는 걸로 말기만 해도 맛있다.

그리고 커피, 인천 대불호텔을 시작으로 손탁호텔 등에서 판매했고, 1961년엔 사치품으로 지정돼 공식수입이 금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부자들은 여전히 몰래 밀수를 통해 사먹었지만.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미제아줌마라 불리던 분들이 있었다. , 나이가 나오는건가.

미제 아줌마라 불리는 분들은 일명 보따리상, 가방 가득 미국에서 나는 신기하고 특이한 물건들을 들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파셨다. 특이한 수세미, 예쁜 연필, 귀여운 앞치마, 큼직한 초코렛 등등 , 지금은 별거 아니지만 그땐 정말 별세계같았던 미제아줌마의 보따리, 거기엔 미국글자가 적힌 커다란 깡통 인스턴트커피도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시대별로 혹은 환경에 의해 정해진다고 생각했지만, 음식에도 정치와 음모와 독재가 숨겨져있다. 제국주의를 위해 혹은 침략과 민족말살을 위해 자행된 음식에 대한 집요한 평가절하(조선의 음식은 맵고 짜고 영양가도 없으며 한심하다), 고향의 맛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일본의 맛이었던 아지노모도 등 숨겨진 음식 속 음모를 알게 돼서 재미도 있었고, 그 시대의 음식문화를 읽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 시절 우리 조상들에겐 위에 언급된 음식들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인들이 배불리 먹었던 흰쌀밥이 어디서 누구에게 빼앗아 갖고 간 것인지 우린 다 알기에.

1945년에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다시다와 미원에 의존한다. 그들이 꿈꾸던 일본중심의 제국주의는 실패했지만, 음식에선 그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있다.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첫 의도를 알기에 씁쓸하다.

 

423일 책의 날 맞이 또 다른 그림 하나.

 

책을 불태우는 것보다 더 나쁜 범죄가 있다. 그중 하나는 책을 읽지 않는 것 이다.”

 

 조지프 브로드스키

(나는 범죄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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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21 17: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탑이 아름답네요~ㅎㅎ😍

mini74 2021-04-21 18:04   좋아요 5 | URL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저것보다 높은 것 같아 찔립니다 *^^*

그레이스 2021-04-21 17: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

페넬로페 2021-04-21 19:2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음식에도 이렇게나 식민지 사관 담겨있다니요~~
미원과 다시다가 그런 역사가 있는지 까맣게 몰랐어요
저는 미원을 우리나라에서 만든건줄 알았죠^^
역시 배워야하나봅니다^^
그래도 저는 여지껏 미원과 다시다를 사용하지 않는 1인 입니다^^

새파랑 2021-04-21 19: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내 키보다 높은 책탑이네요 ㅋ 5센치미터씩 잡아도 2.4미터~!

북다이제스터 2021-04-21 20: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책의 날을 맞아 저도 읽은 글귀가 있는데요.
나무를 종이로 쓰는데 적어도 10~15년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한가지 주제를 최소 10~15년 연구나 고민하지 않고 낸 책들은 나무에 대한 심한 모독이며 종이 낭비라는 글을 며칠전 읽었습니다.
공감되어 덧붙입니다. ^^

bookholic 2021-04-21 20: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음.. 집에 있는 책으로 해보고 싶네요...

라로 2021-04-21 22: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손님에게 설탕을 타서 대접하던 그 시절을 미니님이 기억하시는 거에요??^^;; 책의 날이었군요!!!

mini74 2021-04-21 22:30   좋아요 3 | URL
ㅎㅎ 가끔 친구들이 너 일사후퇴때 태어났냐고 ㅎㅎ 할머니가 계셔서인지 할머니 친구분들 오시면 미숫가루도 타드리고 가끔 시원한 설탕물도 타 드리고 했어요. 커피 안 드시니까 ㅎㅎ*^^*

scott 2021-04-21 2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저 조미료 맛 영쿡인들은 건강식 일명 젠스타일이라고 엄청 환장함 ^ㅅ^

바람돌이 2021-04-22 1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리차에서 팍!!! ㅎㅎ 저는 애들 어릴 때 뭔가 새로운 음식을 자주 시도했는데요. 음식 할 때는 눈을 빛내면서 보고 있던 애들이 막상 먹으면서는 하는 말, ˝엄마 그냥 원래대로 해˝ ㅠ.ㅠ
저는 제일 맛있었던 음식이 울 엄마표 콩나물국인데요. 이게 바로 미원맛이라는걸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죠. 이 책 저도 재밌었어요. 지금 비슷한 컨셉의 백년 식사도 읽었는데 저는 이 책이 더 재밋었네요. ^^

mini74 2021-04-22 18:0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책 주문했어요 *^^* 더 재미있다니 ㅎㅎ 너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