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평점 :
천운영의 신작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세 번째 소설집으로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그녀의 눈물 사용법', '알리의 줄넘기', '내가 데려다줄게', '노래하는 꽃마차', '내가 쓴 것', '백조의 호수', '후에'와 같은 단편 8편을 수록하였다.
그녀의 소설은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직시하게 만들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들을 담고 있다. 수많은 삶에 대한 조롱과 진심이 함께하고 그 삶들은 왜곡과 과장을 통해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물기의 배출'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쇠락해가는 우리 욕망과 육체에 대한 생각들을 표현하고 있다. 산다는것과 나이 먹는다는것에 대한 작가의 느낌 또한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의 여주인공은 울지 않는다. 대신 급식당번시 주전자에 앉아 오줌을 눈다.
작가에게 있어서 눈물의 의미는 어떤것일까? 작가는 통념으로 작용하는 눈물을 거부하고 제의로서의 새로운 눈물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의 오줌, 「알리의 줄넘기」에서의 연습시 흘리는 땀의 의미를 찾는것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붙잡아 둔 생각이었다.
“눈물은 감정의 늪이다. 유약한 인간들만이 제가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눈물은 굴복의 징표다. 나는 눈물대신 오줌을 싼다...” 넘쳐나는 눈물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나는 눈물 대신 오줌을 싼다’ 라고 말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단편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에서는 사업수완이 좋은, 능력있는 아내로 부터 점점 무기력해져가는 주인공인 40대의 사진사와 누드를 찍는 사진관을 배경으로 작중화자인 주인공의 자신의 빠지는 머리카락들, 볼록 튀어나오는 뱃살들로 늙어감에 따라 변해가고 있는 몸의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몸의 탐구'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면 그 인간의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 그리고 그 인생의 골짜기마다 서려있는 감정과 눈물과 욕망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온 시간의 길이만큼이나 변화되어 있는 몸.
노파의 누드를 찍는 소년을 본 작중 화자의 느낌은 지독한 편견과 독선에 대한 허망한 패배처럼 보인다. 반대로 시간의 역사를 거스르는 아내의 젊음과 미모를 질투했다. 아내 역시 늙어가는 그에게 권태로움과 싫증을 느낀 지 오래다. 육체만을 보려는 요즘의 세태가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에 나오는 중년의 사진사 사내의 렌즈를 빌어 말하고 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그는 호흡을 멈춘 채 첫 셔터를 누른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피사체의 오른쪽 측면에서 내리꽂히는 3400'K 텅스텐 조명. 엉덩이를 휘감았다가 재빨리 돌아가는 섬광 같은 채찍질. 어서 일어나 물을 길어. 도드라진 등뼈가 가 박히는 한 줄기 붉은 선. 이 비천하고 더러운 몸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더러운 욕망아. 어김없이 후려치는 매서운 채찍질. 울어라, 소리쳐라, 절규해라. 무의미하던 여자의 몸이 조금씩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애원하는 등뼈, 절망하는 목, 울고 있는 어깨, 순종하는 엉덩이. 그는 살점이 뜯겨나가고 피가 난자해질 때까지 가혹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 (본문중)
아내로 부터 이혼 통고를 받은날 사진관으로 온 그는 할머니의 나체를 찍고 있는 소년을 발견한다. 소년의 카메라 앞에서 노파의 몸은 아름다웠고 숭고했다. 늙음은 단지 추하고 볼품없이 용도 폐기 되는 육체의 겉모습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원숙한 자연의 일부라는것을 깨닫는다.
「알리의 줄넘기」는 혼혈 2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하마드를 최고의 우상으로 생각하는 주인공여자의 연습시 흘리는 땀과 같이 눈물대신 무엇인가 '물기'를 배출하고 있다. 할머니가 ‘제니’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던 시절 흑인군인과 결혼해서 혼혈아를 낳았고, 무하마드 알리에 열광한 그 아이가 자라 낳은 딸의 이름을 알리라 짓고 권투(줄넘기)를 가르쳤다. 알리는 혼혈을 왕따시키는 동급생들에게도 당당하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도 잘 보살핀다. 알리는 유머를 잃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한다. ‘내가 데려다 줄게’는 태생적 소수자인 알리와 다르게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사람이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자살을 결심한 사내를 통해 우울한 삶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