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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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딸에 대하여」 이후 2년만에 새 장편소설 「9번의 일」을 출간하신 김혜진작가님의 신작을 어제 알라딘에서 택배로 받자마자 오늘 새벽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간 일하던 준오의 아버지이자 혜선의 남편인 그.
판매실적이 저조하여 3번 연속 교육대상자가 되고 교육을 받고 난 뒤 그의 거처가 결정되는 데 그 마저도 최하점을 받았으며 자신보다 사정이 좋지도 않은 후배들의 비난과 질타에도 일을 그만두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점점 자신이 살고 있던 집에서 먼거리에 있는 작은 소도시로 인적이 드물어 실적 올리기도 힘든 외곽지역으로 밀려나고 그 것도 모자라 회사의 정직원이 아닌 하청직원으로 일을 받아야 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하게 그 일을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곧 대학을 가게 될 준오의 등록금과 어머니의 치료비, 고향에 있는 집 수리비, 그리고 이번에 장가를 가게 된 조카 상호까지 떠맡게 될 처지이기에 그만두기 어렵기도 하지만 ‘일이라는 게. 한번 손에 익고 나면 바꾸기가 쉽지가 않아.‘(180쪽)라고 이야기하시는 장인어른의 말처럼 26년이라는 평생의 거의 절반을 한 회사에 몸을 바치면서 일하던 그에게 자신 보다 젋은 사람들은 그만두어도 다른 일을 할 수가 있지만 한 곳에 정착하다시피한 그에게 다른 일이란 새로운 도전에 가깝기 때문에 한때는 전화교환원으로 표창까지 받았으나 지금은 전화선 연결, 보수라는 예전과는 다른 일을 할 수 밖에 없던 황 여사가 결국에는 그만 두게 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처음에 이 소설의 제목인 「9번의 일」을 ‘아홉‘으로 인식하여서 읽었을 때 약간의 의아함이 들었는 데 181쪽 ‘78구역 1조 9번‘으로 간략한 소속과 이름을 부여받게 된 그의 일이 바로 ‘구번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왔던 7번과 3번이 각자의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떠났지만 그는 떠나지 못하였고 마을에 통신탑이 하나 둘씩 세워지고 그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매번 실랑이와 몸싸움을 벌이면서도 기약없는 회사로의 복귀에도 묵묵하게 견디던 그의 모습이 이해가 가는 것은 한 편의점에 약 4개월정도 공백이 있었지만 횟수로 7년째 일하고 있는 제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그라면 그런 저를 보고 나이가 어리니 충분히 다른 일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앞서 언급했던 장인어른의 말처럼 일이라는 게 손에 익히게 된 이상 다른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어려워지는 것을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듣기에는 조만간 재계약을 앞두고 있어 본사와 협의 중이라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약 7년간 일하였던 곳을 그만 두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을 한동안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예감과 책을 읽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도 들게 됩니다.
김혜진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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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film 2019-11-1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 22일 삼청동 과수원에서 열리는 김혜진 작가님 북토크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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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반딧불이 (양장) 마음산책 짧은 소설
손보미 지음, 이보라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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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에서 손보미작가님의 짧은 소설 「맨해튼의 반딧불이」가 출간되어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읽었습니다.
사실, 장편소설이나 소설집처럼 긴 호흡이 아니기 때문에 읽기에는 어렵지가 않았는 데 막상 읽고 나서의 느낌을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불행 수집가와 교환하는 방식˝, ˝잃어버린 것은 그저 잃어버린 것으로˝, ˝ 맨해튼의 반딧불이˝, ˝돌려줘˝ 이렇게 총 4부로 구성된 20편의 손바닥 소설 속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분실물을 찾아주는 탐정이 등장하는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으로˝ 인데요.
의뢰인들은 각각 텔레비전 리모컨과 웨딩사진, 아침 7시 정각을 잃어버렸다는 다소 황당하거나 사소한 의뢰를 하는 데 그 것을 다 받아주고 의뢰를 해결하는 탐정이 인상깊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온갖 알레르기에 시달리며 유난아닌 유난을 떨던 친구가 아보카도 알레르기가 있다고 고백했지만 방금 전까지도 아보카도가 들어있던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모습(아보카도의 진실)이나 누군가 우연히 놔두고 간 피코트로 인해 가까워지게 되고(빵과 코트), 앞서 읽었던 「우연의 신」의 모티브가 되었던 (최후의 조니워커)와 (임시교사)의 모티브가 된 (허리케인) 그리고 자신이 죽게 되어서 슬프다고 하는 연인에게 총을 겨누는 (마지막 밤)까지 총 20편의 짧디 짧은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짧은 소설들도 많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손보미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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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하마
김선재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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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그녀가 보인다」이후로 약 8년만에 두번째 소설집인 「누가 뭐래도 하마」를 내신 김선재작가님의 작품을 읽어 보았습니다.
표제작인 (누가 뭐래도 하마), (한낮의 디지), (일일시고일),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제대로 된 가족의 보살핌이 부족하여 보호시설에 맡겨진 양을 유조가 데려야 감금하다시피하고(누가 뭐래도 하마) 딸만 다섯이어서 아이를 돌보기 위해 막내딸이 오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한낮의 디지)되거나 매번 엄마가 아들을 내버려두고 돌아서고(일일시고일) 남들보다 발달이 느린 아이를 홀로 방치(아무도 모른다)하는 사연들이 가슴이 아팠고 홀로 남겨진 (죽지 않는 사람들)의 노인이나, 곧 사라질 (남은 사람)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노인, 남편이 언제 돌아올지 기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뻐꾸기시계소리를 들으며 멍하게 있는 (아는 사람)의 아내와 15년만에 1달간 유급휴가를 받았으나 아내없이 홀로 떠나 남겨져버린 (3번 국도)의 남자까지......
하나 같이 홀로 남겨져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나 맞이할 예정, 혹은 위기에 처해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남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뒷표지의 ˝까맣게 잊었던 과거가 낙석처럼 눈앞에 굴러떨어지는 날이 있다.˝(3번 국도, 243쪽)라는 문구가 인상깊게 다가왔던 「누가 뭐래도 하마」를 오랫동안 곱씹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상깊은 겉표지와 속표지또한 말이죠.
김선재시인이자 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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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캐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8
하성란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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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 전후로 캐럴이 울려퍼지지 않았는 지도 기억나지 않았는 데 그 이유가 엄청나게도 비싼 저작권료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았답니다.
사실, 제가 일하는 편의점에도 물론 돈을 내고 트는 배경음악이 있는 데 이게 매우 한정적이고 게다가 값싼 기기였는 지 자주 버퍼링이 심하네요. 예전에는 USB에 노래들을 담아와서 틀어왔는 데(음원사이트 다운로드 150곡씩 구매를 늘상 했었답니다.) 그게 편한 것 같아요.
이런 서두를 하는 이유는 또 하나의 핀시리즈가 마무리 되는 9월 25일에 출간된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는 하성란작가님의 「크리스마스캐럴」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주인공의 막냇동생이 황량하기 짝이 없던 버섯모양의 지붕이 기괴하던 리조트에서 10박을 묵었던 이야기와 마트에서 산타모자를 쓰며 일하는 사람 중 정직원과 비정규직, 아웃소싱을 통해 일하는 비정규직이 어떤 사람일까, 또 저작권료 때문에 크리스마스시즌에 캐럴을 틀지 않게 되었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이야기가 액자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사실 저에게도 크리스마스 이브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데요.
1998년 12월 24일에 집을 어지르고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쌍코피가 날 정도로 맞고 결국 내복차림으로 집밖에 쫒겨나버렸고 그런차림으로 있었던 것이 안타까웠는 지 지나가는 행인이 5천원을 용돈으로 주셨고 갈빗집 아주머니가 경찰에 신고하여 아버지가 연행되었던 기억이 있는 데 아버지는 명절 때마다 제가 경찰에 신고했다며 이야기를 단골 레퍼토리로 쓰셨던 기억도 나네요. 그리고 7년 전에도 제가 신고했다고 알고 계시더군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에 불과하고 숙제와 일기를 제대로 해오지 않아 늘 사랑방에 남아있었고 또한 구구단도 잘 외우지 못해서 역시 사랑방에 남아서 선생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외우곤 했던 제가 어떻게 신고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때부터였나봅니다. 조금씩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은.
하성란작가님처럼 저 역시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에는 캐럴이 온 거리에 울려퍼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성란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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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film 2019-11-1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11월 22일 삼청동 과수원에서 열리는 하성란 작가님 북토크 놀러오세요!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259106/items/3217897?preview=1
 
상냥한 사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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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건지만 윤성희작가님의 작품에는 큰 사건이나 아주 중요한 임무나 특징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일이 잘 없습니다.
이번에 읽은 신작 장편 「상냥한 사람」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지요.
과거에는 아역배우로 ‘진구‘역을 맡아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자판기에서 업소용 냉장고로 사업을 확장 한 중소기업에 일을 하고 있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박형민이라는 인물이 아역배우로 활동했던 때로 돌아가서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인터뷰하는 프로그램 녹화를 하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데요.
사실 다 읽었지만 아역배우였다는 다소 특별했던 과거는 하나의 풍경에 불과하지 않았을 까 생각합니다.
분명 아역배우 활동한 그 때의 추억이 어느정도 이야기속에 할애되지만 그 것은 하나의 장치일 뿐 이야기는 형민의 아내, 형민의 아내의 부모와 형민의 부모, 형민의 딸 하영이와 친구 영하, 자살을 시도한 은주, 아내가 살았으나 지금은 형민이 살던 아파트에서 만난 두 할머니, 형민이 다니는 직장 동료들, 형민이 아침에 사먹는 토스트가게 주인부부......
「상냥한 사람」에 등장하는 주연은 분명 과거 아역배우였으나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고 아내와 이혼하였고 아내를 교통사고로 떠나보내고 딸 하영이도 캐나다에 있는 처제에게로 보낸 박형민이 확실하지만 박형민이 만나는 사람들 또한 형민이에게는 조연이나 지나가는 사람 1,2 같은 엑스트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들의 삶에 있어서는 주연이 아닐까하는 당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제 인생에서는 누구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주연이라는 사실을 「상냥한 사람」을 통해 새삼스럽게 알아갑니다.
세번째 소설집「감기」와 네번째 「웃는 동안」, 다섯번째 소설집 「베개를 베다」를 읽었을 때에 느꼈던 감정이 첫 장편소설이었던「구경꾼들」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다소 밋밋하고 크게 이루어진 사건이나 인물이 없어서 흥미가 생기지 않았는 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읽어보면 그 때에 읽었던 느낌과 크게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윤성희작가님, 이번에 동인문학상 최종심후보에 오르셨던데 수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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