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어린이 유림 2 - 공자-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길을 실천한 유가의 왕중왕
최인호 지음, 김영우 엮음, 이우창 그림 / 파랑새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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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고향은 중국 산동성 곡부다. 공자는 이곳에서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3년 73세의 나이를 숨을 거뒀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士) 계급에서 태어난 공자는 자신이 태어난 노나라에서 하찮은 벼슬에 종사하다가 55세 되던 해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 주유천하를 한다.

 공자가 살았던 때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리던 극도의 혼란기였기에 공자는 무려 13년 동안이나 전국을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가는 나라마다 괄시를 당한 뒤 68세의 늦은 나이에 곡부에 돌아와 경전 편찬에 주력한다.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악기>, <춘추>의 6개 경전과 중국 최초의 시가집 정리가 이때 이루어진다.

  이상이 세계 3대 성인 중 한 명인 공자의 일생이다. 나머지 두 성인이었던 석가와 예수의 생애 또한 보잘것없었지만 공자의 생애 또한 그렇다. 칠십 평생을 살았더라면 뭔가 화력한 이력들을 잔뜩 남겼을 법한 데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 즉 유학은 중국 역사와 조선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여 도대체 공자는 어떤 사람인지, 그의 사상은 또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인류 3대 성인 중 한 분이니만큼 공자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도 적지 않을 텐데 이 책을 보면 도움이 되겠다.

  유가의 핵심사상은 인(仁)을 바탕으로 예(禮)를 바로잡아 각자 자신의 본분에 맞게 바른 길을 걷는 것이다. 인이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남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을 말한다. 이런 일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본분에 맞는 예를 지킨다면 이상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고 공자는 생각했다.

  이 당시는 공자와는 완전히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으로 노자가 있었다. 공자는 기원전 506년 노자를 만나지만, 무위의 도를 추구하는 노자와는 사상적 공통적인 전혀 없음을 확인한다. 무위(無爲)의 도를 통해 상하 구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는 내용을 담은 노자의 <도덕경>은 <성경> 다음으로 인류에게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한다.

  노자와는 달리 현실적인 신분제의 틀 안에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공자의 사상이다. 이를 위해 공자는 정명주의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원대한 사상들이 주위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책에서도 공자가 제나라의 경공을 찾아가지만 당시 제나라 재상이었던 안영에 의해 공자는 현실의 정치를 모르는, 소위 말만 그럴싸한 취급을 받는다. 이후에 오래도록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찾아 주유천하를 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이다.

  하지만 어쨌든 공자의 사상은 2500년 동안 중국을 지탱해온 지배적 이데올로기다. 한번쯤 관심 갖고 알아보면 좋을 주제이다. 우리나라 조선 500년을 지탱해온 사상이며 여전히 현재 우리 사회에도 유교적인 전통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탐구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공자의 사상을 잘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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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일공일삼 11
엘레노어 에스테스 지음, 루이스 슬로보드킨 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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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따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로도, 그리고 사소한 말 한마디로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일들을 자주 잊고 산다. 세 치 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속담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감을 수도 있지만 그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바로 그런 이야기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별 뜻 없이 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상대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완다 페트론스키가 그 예다, 그녀는 폴란드 이주민인데, 페트론스키라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도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완다가 페기에게 지속적으로 놀림을 받게 된 것은 세실이 진홍색 새 드레스를 입고 온 날부터다.

  아이들이 세실의 드레스를 보고 저마다 드레스에 대해 한마디 할 때 완다도 자기도 모르게 자기 집에 드레스가 백 벌이 있다고 말한다. 깨끗하긴 했지만 다림질 되지 않은 파란색 드레스 한 벌만 입고 오는 완다의 이 말을 믿는 아이들은 없었다. 이 말 때문에 완다는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그때부터 페기는 매일 아침 완다가 학교에 오는 길목에서 완다를 기다렸다가 드레스가 몇 벌 있냐고 묻는 행동을 시작한다. 페기와 함께 다니는 매디는 페기가 완다를 괴롭히는 것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괜히 말했다가는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아무런 말도 못한다.

  그러다 그림 그리기 대회를 통해 완다에게 훌륭한 드레스 백 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페기와 매디를 자신들의 잘못에 뉘우치지만 완다는 이미 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 후 페기와 매디는 완다에게 사과 편지를 보낸다.

  아이들은 작은 일로 친구들을 괴롭힌다. 괴롭히려고 일부러 작정해서 하는 짓은 아니지만 이름을 갖고 놀리기도 하고 생김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게 된다. 그에 대해 상대방이 싫다는 표정을 지어도 아랑곳 않는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지 알려준다. 또한 상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그가 하는 말도 곡해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잘못된 일임을 알려준다.

  이 책은 왕따를 당하는 아이, 왕따를 시키는 아이, 또 왕따를 방관하는 아이의 입장을 잘 적어놓았다. 특히 왕따를 방관하는 것도 큰 잘못임을 지적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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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단의 비밀 - 방정환의 탐정소설 사계절 아동문고 34
방정환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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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라는 잡지도 창간한 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의 작품 중에 탐정소설이 있다는 것을 안 지가 그리 오래지 않다. 탐정 소설 하면 으레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만든 코난 도일과 포와로와 미스 마플을 만들어낸 아가사 크리스티가 떠오르기 때문에 서양 작가들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치하에 있던 1920~30년대에 국내 작가가 아동 탐정 소설을 창작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반가웠다. 그 당시에도 우리 어린이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는 이런 이야기를 창작한 작가가 있었다니 매우 이례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방정환 선생은 이 책을 그저 재미만 주기 위해 쓴 것은 아니고 암울한 시대에서 억압받고 있던 우리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썼다고 한다. 이 책에는 중편인 <동생을 찾으러>와 장편인 <칠칠단의 비밀>, 이렇게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이 두 편 모두 지혜와 용기만 있다면 어떤 위기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두 편 모두 청나라 사람들이나 일본인 곡마단에 청국에 끌려간 여동생을 오빠가 구해낸다는 이야기다. 오빠가 전문 탐정처럼 변장을 하고 꾀를 내서 여동생을 구해내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두 이야기에서 여동생은 아마 우리나라를 빗댄 것 같다. 청국에 시달리고 일본인의 지배하에 놓인 우리나라의 상황을 그들 나라의 악당들에게 잡혀간 여동생으로 설정한 것이다. 아무리 악당들이 힘 있고 수적으로도 많더라도 주위 사람들과 협동하고 지혜와 용기를 발휘한다면 반드시 물리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굳이 이런 숨은 뜻을 찾지 않더라도 그저 탐정소설로서의 재미만으로도 얼마든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재미있는 어린이 탐정 소설이 예전부터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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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왕, 펠레 - 트루파일 4, 축구이야기 트루 파일 4
앨런 맥도널드 지음, 장석봉 옮김, 양정익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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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다. 하여 이 월드컵 시즌에 맞춰 읽으면 좋을, 축구에 관련된 책이 있어서 무척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거리의 왕, 펠레>다. 축구 하면 펠레의 이야기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축구 경기 관전을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레에 대해서는 브라질 선수라는 것밖에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남아공 월드컵에 맞춰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도 아주 흥미로워할 것 같아 이 책을 권했다.

  제목이 <거리의 왕, 펠레>라고 해서 펠레의 위인전인 줄 알았다. 그런데 펠레의 이야기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축구 역사상 빛나는 기록을 세운 축구 선수 이야기나 축구에 얽힌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도 수록돼 있어서 더 재미있다.

  모두 6편의 축구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그 이야기들 사이사이마다 축구 역사상 기록적인 일들을 짤막한 글로서 여러 편 적어 놓아서 과거의 유명했던 축구 선수들을 아는 데도 도움이 되고 축구 역사에 길이 남는 진기록들도 알 수 있다.

  1953년 영국에서 있었던 잉글랜드 대표 팀의 스탠리 매튜스 이야기, 1990년 월드컵에서 카메룬의 검은 돌풍을 일으킨 로제 밀라 이야기, 축구의 황제 펠레 이야기, 1966년 최초의 월드컵 트로피인 쥘리메 컵의 도난사건 때 이 트로피를 찾아낸 피클스라는 강아지 이야기, 1953년 영국에서 열렸던 잉글랜드 대 헝가리 경기 이야기, 1966년 영국 월드컵의 대표 선수로 선발된 형제 잭 찰튼과 보비 찰튼을 키워낸 그의 어머니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잭 찰튼과 보비 찰튼 형제는 잉글랜드 국가 대표팀에서 함께 뛴 20세기 최초의 형제 선수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많은 형제 축구 선수들이 등장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축구 때문에 빚어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 전쟁 이야기를 비롯해 흥미로운 축구 관련 이야기가 많다.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고조된 때인 만큼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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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 유산 이야기 샘터 솔방울 인물 2
한상남 지음, 김동성 그림, 최완수 감수 / 샘터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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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가을에 <바람의 화원>이라는 책의 출간과 동명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조선 후기 화가였던 혜원 신윤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었다. 이때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는 신윤복의 진품 ‘미인도’가 전시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바로 그 미술관이 이 책의 주인공 간송 전형필 선생이 호를 따서 만든 ‘간송미술관’이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 손으로 넘어간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데 평생을 바친 분이다. 그는 일본 유학 후 귀국한 뒤 휘문고보 시절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을 통해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난다. 간송은 <근역서화징>이라는 우리나라 역대 서화의 역사를 총정리한 작품을 준비 중이던 오세창으로부터 우리 문화재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평생 해야 할 일을 정한다. 그 후 그는 집안의 많은 재산을 투자해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쓴다.

  국보 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294호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같은 국보급 유물들을 일본인들에게서 비싼 값에 사들이고, 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훈민정음(국보 70호)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신윤복의 화첩, 겸재 정선의 화첩 등 귀한 서화들을 수집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193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워 수장하고 6.25전쟁 중에도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 힘쓴다.

  그의 이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귀한 문화재들이 우리 앞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외국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유산이 많고 여전히 제자리를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 하여 간송 선생의 우리 문화재 보호에 대한 사명감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문화재들이 그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해외를 떠돌았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먹고 살기에 바빠서 우리 문화를 돌볼 여력이 없었는데 그나마 이런 선각자가 있었기에 우리의 귀중한 역사 유물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간송미술관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으며 1년에 두 차례 기획 전시만 한다고 한다. 이는 이곳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설기관이라 일반 전시보다는 한국미술사 연구가 주목적인 연구소의 특성상 상설 전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도 아직 못 가봤다. 올 가을에는 꼭 가보고 싶다.

  어쨌든 이곳에는 훈민정음 등의 귀한 고서를 비롯해 고려청자, 조선백자, 불상, 그림, 부도, 석탑 등 많은 유물이 있으며 이 중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0점이 된다고 한다.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 하에서도 우리 문화를 지키려 했던 그 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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