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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민속기행 1 - 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 최상일 PD의 신간민속 답사기
최상일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은 학구적인 냄새가 나면서 굉장히 거창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야기는 구수하다. 백두대간의 산자락에 살기 위해 피신해 들기도 하고 일굴 땅이 없어서 화전을 하러 들어 왔다가 정착하게 되면서 그곳에 마을을 이루며 살게 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들이 그분들의 말투 그대로 들어 있다.
이 책의 작가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연출한 최상일 PD다. 나도 라디오를 통해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서 구전되고 있는 민요나 노동요를 수집해 들려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런 작업이야말로 생생한 역사 수집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인상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경남 산청에서부터 시작해 덕유산을 넘어 추풍령까지, 또 속리산에서에서 죽령을 넘고 소백산에 이르기까지(1권), 태백산에서 대관령까지, 진고개에서 진부령까지(2권)에 있는 여러 산간 마을들을 저자가 돌면서 그곳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서 그 마을이 처음 생겨나게 된 이야기와 당시의 생활 모습에 대해 묻고 답하는 형식에 작가의 짤막한 글들이 덧붙어 있다.
사실 난 이 책을 처음 봤을 땐, 우리나라의 기본 땅줄기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의 곳곳의 자연환경을 소개하면서 그 지역만이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생활 풍습을 소개하는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어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사실 자연풍광이나 고풍스런 멋이나 손때가 묻은 민속품을 사진에 담은 멋진 볼거리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진짜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졌으며 세상의 변모를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무를 베서 숯을 만들고 땅에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군다는 얘기들은 먼 옛날에나 있었던 일인 줄 알았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였음을 알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감자 농사를 짓고, 약초를 캐고, 벌을 치고, 두부도 만들어 팔고, 과일도 재배하면서 굳건하게 이 땅을 지켜온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산제나 잔쌍, 보름청어처럼 마을마다 독특한 풍습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감자떡처럼 그 마을에서만 주로 나서 물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식이 만들어진 이야기, 마을 지명에 관한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마치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전설 따라 삼천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아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숨결이 살아있는 입말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투리가 그대로 쓰여 있어서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챌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방색도 느낄 수 있었고, 진짜 그분들을 마주 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어렸을 적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휴대폰도 없었다고 말하면 쉬 곧이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엄청나게 세상이 변했다는 증거다. 아이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듯, 우리 윗세대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책과 영화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도 그랬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렇게 우리 삶의 모습들을 담은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이 그냥 지금의 모습을 간직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달려졌음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책은 우리의 풍속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 주는 책으로서도 의의가 있겠지만, 여행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 같다. 본래 여행의 목적은 이국적인 풍경이나 보고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내 것과는 다른 문화를 알고 느끼고 오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게 정말 어렵다. 관광만 하도 오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런 책을 읽고 여행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면 좋을 것 같다. 어느 산에 가서 뭘 보고 왔다는 얘기로만 끝낼 게 아니라 ‘어느 마을은 원래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고 이런 일들을 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이렇대’ 같은 이야기까지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목적으로도 아주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