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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어린이 유림 6 - 이황- 이기이원론으로 군자의 도에 마침표를 친 유학의 완성자
최인호 지음, 표시정 옮김, 김순남 그림 / 파랑새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집 근처 도서관에서 논어 읽기에 대해 배우고 있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의 공자의 말과 행동을 정리한 책이다. 우리가 보통 좋은 말을 할 때도 ‘공자님 가라사대~’ 하면서 공자의 이름을 인용한다. 이는, 공자가 유학자이지만, 종교 교파를 떠나서 일반적으로 누구나가 그를 위대한 학자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는 아닌 게 아니라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다.
이런 공자의 사상과, 고려 중기 이후 조선 시대를 풍미했던 유학의 사상이 궁금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유림>이 나온 지 꽤 됐지만 뒤늦게나마 아이들과 유학이 무엇인지 기본 개념이라도 익혀두고 싶어서 보았는데, 선택을 잘 한 것 같다.
유학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어려운 감이 있지만, 유학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될 것 같다. 보통 유학이라고 하면 형식에 얽매어 사람들을 옮아 매는 고리타분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그것은 유학의 본뜻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 한 권으로 유학이라는 심오한 학문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느낀 바에 따르면 그렇다. 시대상황에 따라 유학이 폐단이 나타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유학의 근본 뜻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번 권에서는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성리학 논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때 퇴계 이황의 나이는 58세였고, 기대승의 나이는 32세 때였다. 그 후 퇴계가 죽을 때까지 13년 동안이나 두 사람은 26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100통이 넘는 편지를 통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퇴계는 성리학에 대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입장이었고 기대승은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와 기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양자의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이는 기에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1558년에 기대승의 의문 제기로 시작된 퇴계와 기대승간의 사단칠정에 관한 논쟁은 사단칠정논변이라 부르는데 1566년에 끝이 난다.
이와 기는 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다. 이런 철학적인 개념을 두고 유학자들은 달리 해석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조선시대에도 학문적인 논쟁이 있었다니 놀랍다. 그들이 얼마나 성숙된 인간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 책에는 이황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성학십도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성학십도는 1568년 이황이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열 가지의 성학의 개요를 그림으로 그리고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또한 이 책에는 퇴계가 세운 도산 서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도산서원은 우리나라 역사상 서원 문화의 총본산이다. 조선 최초의 서원은 주세붕이 세운 풍기의 백운동서원이었으나 이 서원이 제 기능을 다한 것은 퇴계가 풍기군수로 재직할 때 소수서원이란 이름을 얻으면서부터다. 이것이 지방 교육기관의 효기가 되었다. 퇴계는 1561년 고향으로 돌아가 도산서원을 짓고 여기서 생을 다할 때까지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것만으로는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퇴계의 사상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개방적인 학문 자세를 취했는지, 그리고 학문을 출세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자기 수양을 위한 방법으로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그는 ‘공부가 좋아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학문하는 바른 자세를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