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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저자인 리사 레노바는 하버드대학에서 신경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할머니를 보고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이 이야기는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려 치매에 빠지는 50세의 하버드대 여교수 앨리스의 이야기다. 시간의 순서대로 그녀의 병이 얼마나 깊어지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모든 이야기가 그녀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치매가 무엇이며 치매 환자가 겪게 되는 혼란과 좌절, 공포를 아주 소상히 알 수 있다.
앨리스는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자기 삶의 최고의 가치로 삼았고 늘 자부심을 가졌던 하버드의 지성인이라는 지위를 잃어가자 진정한 자아 찾기에 골몰하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어 못마땅했던 막내딸 리디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던 것은 가족들이 환자를 마치 투명인간처럼 대한다는 점이다. 어차피 기억을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앨리스 자신에 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에서 그녀를 무시하고 가족들이 마음대로 정해 버린다. 이런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환자들이 느끼게 되는 배신감과 절망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이렇게 50세 환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알츠하이머 병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하고 발병 초기에 이상 증상을 발견해 조기 치료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작품 외에도 알츠하이머를 소재한 작품들이 더러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영한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와 텔레비전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도 있었고, 외국 작품으로는 니콜라스 스파크의 <노트북>이 있다. 이밖에 뇌질환 환자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전개한 책으로는 <사일런트 랜드>가 있다.
치매, 생각할수록 무섭다. 우리 인생 자체가 공수래공수거라지만, 그래도 갈 때는 아름다운 기억이라도 가져갈 수 있는데, 그런 삶의 추억마저 고스란히 시간 속에 내어주고 가야 한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가? 우리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 중 하나가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젊어서는 어릴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의 추억이 힘이 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것이고, 늙어서는 아름답고 행복했던 전성기의 추억이 고단한 삶을 즐겁게 끌어주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마저도 잊은 채 내 삶이란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세상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치매 환자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 평가되는 내 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내 모습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을 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