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녀 사냥 ㅣ 보림문학선 7
레이 에스페르 안데르센 지음, 매스 스태에 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마녀 사냥이라는 제목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법 이야기가 나오는 판타지 소설이라 짐작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심오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단 광기로 어머니를 잃은 소년의 입을 빌려 다수의 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는 라이프 에스퍼 애너슨인데, 그는 30대에 교단을 떠난 뒤 외딴 시골에서 투병하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다가 서른아홉 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는 1973년에 출간된 이 책으로 덴마크 교사 연맹 청소년문학상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명예상을 받았다. 또한 그는 1975년에는 세상의 증오와 차별에 맞서는 유고슬라비아 이민 소년의 가혹한 성장기를 그린 <이방인>으로 덴마크 문화부 어린이 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과거 유럽 땅을 휩쓸었던 마녀 사냥의 참상을 어머니를 잃은 소년의 눈과 입을 빌려 보여준다. 힘없는 약자는 집단의 광기와 폭력 앞에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무서운 이야기이다. 집단의 무지와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주인공 에스벤은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치료했던 여자 아이가 잘못되는 일이 생기고, 그 집을 방문한 뒤로 공교롭게도 그 집 암소가 죽는 사건이 생긴다. 이에 그 집 사람들은 에스벤의 어머니를 ‘마녀’ 또는 ‘악마를 숭배하는 자’라고 하면서 화형에 처한다.
이 끔찍한 일을 겪은 에스벤은 무조건 도망쳤고, 역시 그의 엄마처럼 다른 사람을 치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한스 아저씨를 만난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도 결국 엄마와의 이별과 같은 일로 끝이 난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준 에스벤에게 한스는 이렇게 말한다. “병든 사람을 고쳐 줄 때마다 난 나 자신의 화형대에 장작 한 개비를 더 올려놓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게 와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 모두 그 장작더미에 불을 붙일 사람이 될 수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사람이 괴로워하거나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까?”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이런 마음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사명감, 소명의식...자신의 죽음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내치지 않는다. 집단 이기주의로 다른 사람을 마녀나 마법사로 몰아서 쉽게 죽이는 그 암울한 시대에도 이런 깨어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인류의 역사에서 마녀 사냥 같은 우둔하고 몰지각한 행동이 자행됐던 오점이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대중의 힘, 다수의 힘, 이제는 수의 논리가 적용되는 시대는 다소 지났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모두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의 참모습을 잘못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을 거울삼아 반성해야겠다. 왕따 문제도 이 차원에 비춰 봐도 좋을 듯하다.
한스가 에스벤에게 던진 질문이다. “만약 네가 선택할 있었더라면 말이다. 너는 어디에 있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나았겠느냐? 다른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어머니냐, 아니면 그 바깥, 괴롭히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끼어 있는 어머니냐?”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