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까치글방 114
에리히 프롬 지음, 차경아 옮김 / 까치 / 199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소유냐 존재냐의 양자택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눈에는 소유한다는 것이 삶에 포함된 극히 정상적인 행위이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사물을 당연히 소유한다. 그뿐이랴, 사물을 즐기기 위해서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오히려 존재의 본질이 바로 소유하는 것에 있어서,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p.33)

 

그렇다. 우선 우리가 생각하기에 소유의 반대말은 '무소유'이고, 존재와 대비되는 단어는 '비존재'이다. 그러나 작가는 현대 인간에게 있어서 두 가지 개념이 대립각에 있다고 선을 긋는다. 거기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진다는 비판까지.

 

이에 대한 반박을 하기 전에, 자신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본인을 소개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되돌아보자.

 

집은 어디이구요 / 결혼은 언제 했구요 / 아들·딸은 몇명이구요 /

얼마 모았어요 / 그거 되게 신기하다 / 나도 니가 가진거 갖고 싶어

 

이런 게 바로 보통 사람의 자기 소개와 대화 형태 아닐는지. 자기 존재에 대한 특성보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더 드러내고, 자기 삶에 만족하기보다 더 가진 자의 삶을 따라가려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지금 우리 시대 자화상이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고수하려고 전전긍긍하느라 거리끼는 일이 없기 때문에 대화에 활기를 가지고 임한다. 그의 활기가 전염되어 대화의 상대방도 흔히 자기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p.59)

 

자, 다시 물어보자. 당신은 상대방에게, 또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 "인간시장"에 진열된 상품으로서 자신의 인품과 인맥을 활용하여 그것을 돈과 명예로 바꾸고 싶은가? (p.210~212) 아니면 베풀고 나누고 희생하려는 소망을 가지고 좀 더 나은 삶을 함께 누리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가? (p.155) 선택은 자기 몫이지만, 한번쯤은 정말 고민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한편 필자의 견해나 바람과는 어긋나게, 40여년이 지난 지금 현대인은 폐해를 목격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의 실상을 뼈저리 체험하고 있다. 그 누구도 병든 인간을 제물로 하고서 그 건강을 부지하는 오늘날의 경제적 상황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는 지금(p.253), 오히려 경제는 '민주주의'라는 날개를 달고 정치와 엮이며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 누가 세계 경제 위기를 예상했겠는가. 극심한 빈부 격차, 민영화 가속화, 지속적인 FTA체결 등은 결국 '너 죽고 나 살자. 너보다 내가 더 많이 가지자'는 소유욕에 다름 아니다.

 

건전한 인간을 위한 건전한 사회는 그렇게 계속 멀어져만 간다. 그렇다고 계속 우리는 우리 탓만 할 수 없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자. 나서자. 행동하자. 존재를 보여주자. 언론을 장악하고 사찰을 일삼는 정부, 그릇된 이익을 위해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정치인들에게 일침을 가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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