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알면 알수록 어렵지만 매력 넘치고 읽은 후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오래도록 마음에 와닿게 되는, 러시아 문학. 그 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어렵고 난해하기로 소문 나 있다. 하지만 노문학 전공자로서, 또 이제 많이 배웠다고 느끼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 방학 동안 결심하고 그의 불후의 명작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도전해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도전은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1700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에 대해 짤막한 줄거리조차 쓰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단지 가장 핵심적인 사건을 말하자면 까라마조프 가에서 일어난 '친부살해 사건'이겠다. 머, 그것은 엄연히 '드미뜨리'가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했다는 전제 하에서만 붙여지게 되는 사건의 이름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사건도 사건이지만 개성 있는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의 등장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있을 것이다. 특히 드미뜨리의 동생인 '이반'과 '알료샤'는 특히 종교의 관점에서 서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면서 작품을 이끈다. 또 초반 '조시마 장로'의 모습이나 두 여인 '그루셴까'&'까쩨리나 이바노브나', '일류샤'&'꼴랴' 두 아이의 모습, 그리고 '라끼찐'과 '스메르쟈꼬프'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 이렇게 여러 인물들이 각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맞물려 나가며 이야기를 이끄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소설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굳이 소설의 장르를 정하라 해도 정하지 못할 정도로, 이 소설은 종교 소설, 추리 소설, 연애 소설, 혹은 비극적인 드라마 등 여러 가지로 불릴 수 있다. 그만큼 모든 장르를 총망라한 이야기가 이 작품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이 작품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 이렇게 이 작품은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읽을 거리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으며 논란의 여지가 될 거리도 많다. 특히 가장 논란의 여지 그 중심에 놓여 있으며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대심문관'편에 대해서는 정말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글로서 표현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경이롭다. 물론 그 글은 쉽지 않아서 나는 그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글을 보면서 떠오른 작품은 『거장과 마르가리따』.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볼란드의 등장을 통해 선과 악에 대해 논하고 있는 이 작품은 특히 '신이 존재한다는 가장 결정적 증거는 악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는 독특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서, 신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가 아닌 '적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죄에서 속박하고 평안하게 해주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오히려 그것이 인간을 더 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대심문관의 입장인 것이다. 글쎄.. 과연 그런가?!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의 대립도 어렴풋 나타낸다.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 의지', 바로 이것 때문에 오히려 인간은 고통받고 행복하지 못하다고 대심문관은 말하면서, 반대로 자유 의지를 구속하고 통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게 배부르게 되고 평안함을 느낄 때에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를 포기하고 복종할 때에만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역설적인 논리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점점 많은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 의지를 갖기를 원하는 것은 행복 추구를 위함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자유 의지'에 대해 더 말하자면,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왜 신ㅡ 특히 하나님은 애초에 인간에게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자유 의지를 주지 말고 인간으로 하여금 평생 하나님 한분만 알고 믿게 창조하지 어째서 자유 의지를 주어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인간이 선택하게끔 했는가'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예전에는 그러한 의문을 가졌고. 거기에 대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자유 의지, 그 자유 의지를 통해서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된 사랑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자유 의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진리는 인간 정신의 자유에 호소한다'.

또한 '신인(神人)' 과 '인신(人神)'의 개념도 매우 주목할 만하다. 신이지만 인간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신인'이라고 할 수 있다면, 반대로 인간이지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인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만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人神.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나아가는 것 자체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아닐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신을 믿든지 간에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워낙 뜨거운 감자에다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아니 끊일 수 없는, 종교와 믿음과 신의 존재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해답은 어딘가 존재는 하겠지만 찾기는 불가능할 게다. 다만 이러한 논란 자체를 인간이 하고 있다는 것뿐.

여하튼, 나는 '조시마 장로'나 '알료샤'의 의견에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며 그들의 모습과 말, 행동 등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게 사실이다. 비록 나는 신앙이 아직 부족하고 신앙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무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이 걸어온 길을 좇아 나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는 느낄 수 있다.

하, 이렇게 내 인생 최대의 분량으로 다가온 작품을 다 읽었다. 역시 러시아 문학의 백미를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비록 방학 동안 이룬 것도 있고 못 이룬 것도 있고, 아쉬움을 없을 순 없겠지만, 이 작품을 접하고 다 읽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이제 분량이나 시간, 난해함 등에 상관없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들이 남긴 훌륭한 작품들을 더욱 많이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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