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씨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어머니는 미싱 일을 하며 가난한 살림을 이어나갔다. 어려서 폐결핵을 앓았는데 요강에 피를 뭉텅이로 쏟아냈어도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했다. 유년의 기억 때문에 청년 시절에 봉사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였고, 결혼하여 고역이 반복되는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20여 년이 넘게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에서 맏며느리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시작하였다. 각종 명절과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친지들 수백 명의 끼니를 책임져야 했다.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고,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고도 이씨의 난청을 탓하였다. 이씨는 결혼 내내 참고 견디다가 결국 황혼 이혼을 결행하였다. 이씨한테 가해자라는 누명이 씌여졌다. 대신에 이씨는 대학생 남매를 데리고 나와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씨는 평생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엄마, 이제 엄마 인생을 시작해 봐.“ 딸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씨는 쉰넷의 나이에 문학을 공부하고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늦은 공부가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솟대문학’에 시를 발표하고, ‘순분할매 바람났네’로 제16회 전국 장애인문학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선천적인 감각신경성 난청으로 인해 청각장애가 있던 이씨는 말보다 글이 더 편했다. 그러나 창작에 전념할 형편이 되지 못해서 호구지책을 먼저 따라야 했다. 전공을 살려서 독서 지도와 상담 치료 쪽으로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였지만 초로의 구직자가 취업하는 과정에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독거 노인의 삶을 선택한 이씨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수건을 접는 단순노동, 건물 청소, 어린이집, 돌봄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이씨는 노년이 되어 경험한 대로 여성 노동 현장의 실상을 글로 썼다. “이글은 내가 62세에서 65세까지 겪은 취업 분투기다.”라고 시작하는 글의 제목은 ‘실버 취준생 분투기‘다. 이 작품으로 2021년 경북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는 수상 한 달 뒤인 2021 년 8 월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 세.
할머니 이씨의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SNS를 통해 퍼져 나갔고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비로소 글쓰기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신인 작가의 수상 소감은 이랬다.
“기초생활이 해결되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중략)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5 월 2 주 신간 뉴페이스 10에 작가인 이순자의 책이 두 권 있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는 유고 산문집이고,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는 유고 시집이다. 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하였다. 작가 이순자를 세상에 널리 알린 글인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포함하여 생전에 썼던 짧은 글 24편과 시 75 편이 산문집으로 그리고 시집으로 엮어졌다. 유가족과 문우들이 나서서 작가 이순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유고 산문집과 유고시집을 펴냈다. 작가에게 시를 가르친 이문재 시인은 이순자 시인의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의 서문에서 ‘자서전‘이라고 칭송했다. 산문집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서문에 실린 딸의 편지에 ˝사랑받지 못했기에 더 사랑할 줄 알았던, 가지지 못했기에 더 채워줄 줄 알았던 이 작은 이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외롭고 허기진 마음을 위로하리라 믿습니다˝라고 적었다.
나는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한번에 읽어내지 못하였다. 원고지 200장 정도인 분량이 부담되기 때문이 아니라 읽는 중간에 가슴이 먹먹해져서다. 글쓰기보다 호구지책이 먼저여서 작가가 환갑의 나이에 취업 전선에 뛰어든 자신의 직업 분투기는 치열했다고 고백하였다. 좋은 보수를 약속 받고 입주해서 돌봄 일을 하던 중에 심한 모욕을 당하고 비참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노을을 바라보며 깊은 잠에 들어 구차한 생을 버리겠다고 실행하지만 결국 실패했던 할머니 이씨가 정작 작가로서 성공과 영예를 누리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음을 알기에 더욱 가슴이 아리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러니가 어렵다고 고백한 적 있다. 그러나 나의 삶이 아이러니다.]
— ‘실버 취준생 분투기’ 중에서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작가의 길에 들어섰지만, 일흔을 소리나는 대로 읽어서 이른 나이로 여기면서 치열하게 살았던 작가는 결핍으로 가득한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히 기록했다.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서 사색하는 글을 남겼다. 글쓰기는 작가에게 마지막 비상구가 되었을까. 작가의 글은 나를 반성하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한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이른 나이에 맞은 죽음이지만 금세 잊히지 않기를. 일흔이 되기까지 굴곡진 생을 견뎌 냈던 여인을, 시인을, 작가를 기리는 마음으로 유작으로 남은 시집과 산문집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다. 작가가 혼신을 다해 치열하게 새겨 놓은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다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