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엘리아데 - 종교와 신화 살림지식총서 40
정진홍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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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이다. 사실 우리나라 만큼 다양한 종교가 번성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종교의 본질은 뭘까? 아마도 유한한 인간의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영원한 삶에 대한 염원때문일 테이지만, 난 아직도 뚜렷한 종교가 없다.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니다. 그러면, 신을 믿는가? 가끔씩 있나 싶기고 하다.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침 부처님 오신날(석가탄신일)이 다가오는데 아마도 나의 종교적 지향은 굳이 말한다면 불교에 조금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가끔씩 아내와 함께 등산을 하다가 절이나 아담한 암자가 있으면 들어가 둘러보다 불상이나 기타 상징물에게 운동삼아 절을 하기도 한다. 가끔씩 대웅전에 들어가 복전함에 천원짜리 몇장을 넣고, 아내가 108배를 시작하면  나도 따라서 55배 또는 33배정도를 한다.(무릎 때문에 갈수록 힘들다!) 종교에 대해 나와 비슷한 입장인 아내에게 "절하면서 무엇을 기원했는가" 물으니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라 대답한다. ㅎㅎ 아무 생각없이 절 운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그러게 된다. 그러고 보니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기복신앙에 근거하는 것 같고, 그런 면에서 나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다.

 

내가 절을 좋아하는 이유는 적요감이라 할까? 산에 둘러싸인 절의 고적하면서 안온한 풍경이 좋고,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바람에 따라 가끔씩 울리는 처마의 풍경소리도 기분을 좋게 한다.) 물론, 기독교 못지 않게 불교도 갈수록 상업화 되어가고 있다. 종종 절에 들를 때 마다 기와 불사를 하면 후손이 집없는 설움을 면할 수 있습니다라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후손까지 갈 필요 없이 쉰이 넘은 나이에 난 아직까지 집이 없는데(여기서, ‘집이 없다는 말은 소유의 개념을 말한다. 전셋집은 있다.) 그렇다면, 독실한 불교 신자인(였던) 부모님이 기와불사를 하지 않아서 였을까? 웃기는 얘기다. 비록 난 집이 없어도 그 때문에 설움을 겪은적은 없다. 물론, 집주인이 전세값을 올려 달라해서 이사해 본 적은 있지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요즘은 체념하며 산다.)

 

독후감을 쓰는 자리인데 얘기가 많이 옆으로 샜다. 이 책은 현대 종교학의 대가 엘리아데에 대한 우리나라의 종교학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정진홍 교수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살림 지식 총서 40번째 책으로 엘리아데에 대한, 또 종교학에 대한 얇지만, 아주 효율적인 소개서인 셈이다.(겨우 87쪽 밖에 안된다. 하지만 주제가 주제인 만큼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과 속()>이 엘리아데의 대표작이라 하는데 읽어보진 않았지만 엄청 어려울 것 같다. 맛보기라 할 수 있는 이 소책자도 이 정도니...(엘리아데가 바라보는 종교의 본질문제와 관련하여 상징체계, 신화와 제의 등의 개념들이 언급된다.)

 

 

일단 미르체아 엘리아데(1907~1986)에 대한 기본적 설명이 나와 있는데, 종교학의 비조라고 평가 되는 막스 뮐러(1823~1900)가 종교에 대한 인식을 도모하는 새로운 학문을 처음으로 종교학이라고 부른 이래 엘리아데는 다른 종교학자가 도저히 따라올수 없는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주제와 문제제기, 의미 해석 등 종교인식의 방법론이나 (창조적) 해석학을 통해 현대 종교학의 최고봉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에서 태어나 미국 시카고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인도의 요가에서부터 호주 원주민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신화와 역사, 연금술과 성년의례 등 종교문화 전반에 대한 학술적 저술뿐만 아니라 여러 권의 소설과 희곡까지 쓴 보기드문 천재라고 할 수 있다.(66,67쪽을 보면 엘리아데는 특히 시인을 높이 평가하는 데 시적 창조란 시간의 소거 - 언어안에 응집된 역사의 소거-를 함축하며 시인은 마치 우주창생의 순간에, 곧 창조의 첫날과 동시에 자기가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그러한 세계를 발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엘리아데가 크게 평가받는 이유는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종교를 실재하는 본질로 전제하는 데 반하여 사람들이 무엇을 일컬어 종교라 하는가?’]라는 시점전환. 다시말해, [형이상학적인 전제의 부정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러한 물음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소박한 관찰부터 시작한다.]에서 시작해서 사람들이 무엇을 일컬어 종교라 하는가?’라는 물음을 넘어 [‘종교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을 삶속에서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살이에 대하여 총체적인 관심을 기울려 인간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는 하는 물음에 가 닿는데 여기서 엘리아데는 인간의 삶이 지닌 중층성또는 중첩성을 발견하는 것이다.](17,18쪽 발췌) 라는 점에서 인 것 같다.

 

결국 존재론과 인식론의 문제로 귀결되는 건가? 아리송 하기만 한데 정진홍 교수가 예시하는 [인간은, 예를 들면 한그루의 나무를 봅니다.’ 이때 본다는 사실은 나무에 갇히지 않은, ‘나무를 넘어서는 어떤 이 나무를 통해 내 삶의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것입니다.]라는 말은 선불교에서의 참선 화두같기도 해서 더욱더 헷갈린다.

 

그러면서 나무는 나무이되 나무이지 않고, 나무이지 않되 나무입니다.” 라는 진술은 일상성과 비일상성의 중첩성을 뜻하며 엘리아데는 종교라고 일컬어지는 문화가 바로 이 일상과 비 일상의 틈새에서 빚어진 삶의 경험을 드러내는 현상이라는 건데 이를 두고 정진홍 교수는 이 책에서 ()과 속()의 변증법이라 이름 붙인다. 다시 말해, 엘리아데의 성과 속은 분리되거나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은 인간의 존재양태의 다른 두 측면이라는 것이다.(성만으로 있는 성도 없고, 속만으로 있는 속도 없다.) 어렵다!

 

그리하여 종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나 라는 인간,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상통한다는 점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종교의 이해는 인간의 이해, 세계의 이해, 우주의 이해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근원적인 주제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의 우주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현대 물리학의 빅뱅이론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만) 과학적, 합리주의적인 가치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주의 카오스가 인간의 로고스(이성)를 통해 질서 있는 코스모스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정의 할 수 있을려나. 이게 진정한 우주와 세계 이해인가? 글쎄...

 

게다가 프로이트란 작자는 종교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인간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욕망들을 충족시켜 주는 기제, 또 신이란 것은 인간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맺는 관계(보살피고, 심판하는)에서 아버지라는 개념을 신으로 높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신의 존재증명을 할수 없으니 반박하기도 어렵다.) 했다고 하고, 맑스는 종교가 현실의 불행으로 고뇌하는 민중의 한숨이자 아편이라고 정의한다는데, 이게 인간과 종교에 대한 진실된 이해인가? 모르겠다!

 

신 없는 종교도 가능하냐?는 물음에 당연히 가능하고, 그 예로 불교가 그렇다고 하기도 하던데(지만,불교는 다신론에 가깝다는 반박이 유력하다.), 존재의 근원자로서의 신이라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이 떠오른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과연 하나님은 선하고 정의로운가? 주위에서 착한 사람이 사고를 당하고, 벌 받는 것도 열 받는 일이지만, 악한 놈이 복 받는 꼴을 보면 화가 나 거의 환장할 지경이다. 내세의 심판을 들먹이지 말지어다. 현실의 단순한 정의 관념에 반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게 벌 받는 적도 없고, 복 받은 적도 없어 다행이다.(앞으로는 모르겠다. 부디 하나님의 너그러운 사랑을 소망한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종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나 지력의 한계를 느끼는 이 좌절감은 어찌할거나? 죽기전에 신비체험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종교, 앎의 영역인가? 믿음의 영역인가? 깨달음의 영역인가? 하는 의문은 성과 속의 변증법처럼 분리되어 있는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니라 "알고, 믿으며, 깨달아 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정리해 본다. 나 자신의 무지를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됐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알고,느끼며, 깨닫기 위해 계속 용맹정진할 것을 다짐한다는 각오를 밝히며 이쯤에서 접기로 하자. 이번에 오시는 부처님께서는 제발 관할구역을 따지지 말고, 북한과 시리아를 포함하여 온누리에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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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0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5-2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렇군요...공부해서 깨닫게 되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불교공부를 좀 더 해봐야 겠군요.

짜라투스트라 2018-05-20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체사레 벡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 중판
한인섭 지음 / 박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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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체사레 벡카리아(1738~1794)는 근대 형법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당시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이 책에 대해 모순적이고 비인간적인 관습의 지배하에 있던 유럽의 대다수 법학자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었다.’격찬했다. 사실 볼테르가 격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이 책의 저술동기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아니라 초판이 나온 이후 너무 감명받아 이 책의 주석을 상세히 달았다는 사실에서도 이해할수 있겠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벡카리아의 대표작 <범죄와 형벌>1764년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익명으로 초판이 출판되었는데, 그에게 이 역사적 저작을 저술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와 전유럽을 뒤흔들었던 '칼라스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칼라스는 위그노교도이자 거상이었는데, 종교문제가 심각한 사회에서 둘째아들은 카톨릭이고 큰아들은 변호사가 될려다 개신교신앙이 문제되어 좌절한 뒤 우울증에 빠졌다. 이에 큰아들을 위로해줄 목적으로 그의 친구을 집으로 식사초대했는데, 큰아들이 목을 매어 죽어버린 것이다. 가족중의 누군가가 종교문제로 죽이지 않았나 의심받아 칼라스는 끔직한 고문을 받지만 자백을 거부하고 1762년 사형에 처해졌다. 종교적 광기와 편견, 무자비한 고문에 의한 진실은폐와 사건조작 등으로 결백을 주장한 칼라스는 억울하게 죽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이때 볼테르가 사건의 전말을 우연히 알고,칼라스 부인으로 하여금 대법원에 상고하도록 하면서 수많은 기사와 팜플렛을 통해 지식사회를 자극하여 대법원 상고심에서 마침내 칼라스의 무죄와 복권이 선고된 것이다. 정의의 승리다. 칼라스에 대한 무죄판결은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의 형정(刑政) 전반에 대한 공격이자, 계몽의 승리를 압축하여 보여준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사상은 형벌은 어디까지나 범죄의 경중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그 균형은 법률로써 정해져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사상고문폐지에 있다.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자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해악을 입힐 가능성을 방지하고, 타인들이 유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형벌 및 그 집행의 수단은, 범죄와 형벌간의 비례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정신에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인상을 만들어내는 에는 동시에, 수형자의 신체에는 가장 적은 고통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49)

 

[형벌의 가혹성은 그 국가의 상태와 비례한다.

형벌은

- 어떤 경우에도 일개 시민에 대하여 일인 혹은 다수가 저지르는 폭력 행위로 되어서는 안된다.

- 공개적이고, 신속하며,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 주어진 사정하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

- 범죄에 비례해야 한다.

- 성문의 법률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191,192쪽 발췌)

 

놀라운 저작이다. 무려 250여년전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훌륭한 형법학 서적이 출판되었다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또한 이 책은 벤담의 공리주의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이라는 말이 이 책에 나온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도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산 정약용에 의해 '흠흠신서'라는 뛰어난 형법서가 나오긴 했지만...

 

불과 50여년 전인 1974년 우리나라에서도 '인혁당 사건'이란게 있었다. 고문과 사건조작을 통해 도예종을 포함한 8명이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판결 18시간만에 사형집행된 사법살인이었다.( 이 인혁당 사건은 이후 재심을 통해 2007년 8명 전원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야만의 시대... 이젠 지나갔을까? 국가 형벌권의 남용 등 사법 뿐만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우리사회 모든 부문에서 더 이상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반문명적, 비도덕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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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5-16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법살인 사건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사형제도에 대한 후유증이 너무 깊어요. 그렇다 보니 반인륜 범죄자들의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요. 사형제도 반대론자들은 사형제도가 부활된다면 사법살인 같은 과거의 사례가 반복될까 봐 걱정합니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8
최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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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5.18 이 다가와 최윤의 중편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를 다시 읽었다. 매번 읽기가 고통스럽다. 80년 광주...까까머리 1때 겪었던 5.18. 시들어가던 아카시아 알싸한 꽃향기... 빨리 집에 가라던 담임선생님... 맞춰 놓았던 여름 하복을 찾아가야 되는데...

 

"아야, 너 아즉까정 안 갔냐? 시내 난리 나부렀단다. 니것은 안됏응게 암거나 갖고, 얼릉 집에 가야 쓴다." 도로를 막고서 쭉 깔린 군인아저씨들... 

" 학생, 여기로 가면 안돼. 돌아갓! " 군인아저씨들...  

흰 빤스만 입은채 피흘리고 있는 형들... 체념한 듯 고개숙인 형들을 몽둥이로 또 내리치던 군인아저씨들...

해마다 위문편지를 보내드렸던 국군장병 아저씨들이 왜?

두근 두근 쿵쿵...미칠듯이 뛰는 심장, 피돌이가 빨라진다. 꿈속을 달리듯 떨어지지 않은 다리... 

날은 어두워 지고, 까닭없이 흐르던 코피... 돌아돌아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골목초입.

 

"엄마, 왜 밖에 나와 있는가?"

"아이고, 이눔아! 왜 인자 오냐? 넘들은 폴쎄 다 왔단디...이 에미가 월매나 애간장이 보타졌는지 아냐? 시방 시내에는 공수부대가 눈이 삘게 갖꼬 중학생이고, 여고생이고 무담씨 때리고, 볼바분단디... 왜 인자사 왓냐 . 아이고, 내새끼... "

 

날 보자마자 와락 껴안고, 악을 쓰며 울던 어머니... 가위눌린 듯, 고통스러운 기억들...

 

저기 소리없이 꽃잎은 지고...이렇게 속절없이 봄날은 간다. 

 

[여자애는 바닥에서 깨진 시멘트 조각 하나를 집어들었다. 남자가 말릴 틈도 없이, 설령 남자의 손아귀에 잡혔다 해도 어디서 솟는지 모를 힘으로 그것에서 빠져나오면서, 빠른 동작으로 경련적인 리듬에 사로잡힌 것처럼 집어든 돌 조각으로 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돌 조각의 날카로운 이빨이 허벅지에 뱃가죽에 등허리에 종아리에 마구잡이로 가로 세로 붉은 선들을 긁어내기 시작했다.](213)

      

[우리엄마. 구멍 나버린 엄마. 내가 조금 더 빨리 뛰어나왔다면, 나를 휘어잡는 팔을 빼내는데 걸린 시간이 없었다면.... 모든 일이 바뀔 수 있었을까.~ 우리는 왜 거기 있었을까. 엄마. 허수아비처럼 휘둘려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헉하고 고꾸라지던 엄마. 내가 뛰어나갔을때는 이미 벌어진 눈자위를 되잡을 시간도 없이 상처가 공중으로 몇 변 튀다가 밀어닥치고 밀려가던 사람들 틈에 쓰러지던 엄마. 엄마랑 나는 그날 왜 거기 있었을까.](216)

 

[자면 안돼. 자 꼬집어볼까. 잠을 깨야지. 내 살은 꼬집어도 아프지도 않아. 이렇게 비틀어도 살점하나 부르트지도 않아. 손가락에 힘이 없으니 꼬집어 지지도 않고... 정말 잠이 들면 안 되는데.... 오빠를 찾아야 돼. 오빠 무덤이라도 찾아야 돼. 오빠가 얼마나 놀랄까. 엄마 소식을 물으면...뭐라고 대답해야 될까. 나 혼자만 살아서 먼 길을 왔다고 오빠가 돌아누워버리면 어떡하지.](222)

     

[새벽 빛이 점점 더 푸르게 길 저편에서 부터 퍼져 왔고 나는 몸둘 바를 모르고 그 속을 걸어가기 시작했지. 밤새도록 기다렸던 새벽 빛 인데, 그 빛이 부드럽게 내 몸을 감싸는 것이 죄스럽고 무서웠어. 나는 그때 어디에쯤 있었을까.](233,234)

 

[얼마나 먼 길을 여기까지 왔나. 몇 밤이나 지났나. 그날이 꼭 어제 같은데, 아무리 멀리, 오랫동안 도망쳐도 내 뒤에 꼭 붙어 따라오는 그날, 조금만 뒤돌아 보아도 사방 어디에서나 번쩍 눈앞에 마주서는 그 날.](261)

      

그 날

 

-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 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불더라고. 난 뉘요 했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쫌 갑시다 허잖어. 가잔깨 갔제.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제.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 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 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 건지 나 옷자락 붙은 고놈이 떤 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갖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 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 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얘 갖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 가고, 난 뒤도 안 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제.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 있데. 어린 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 보고야, 라지오도 안 틀었시야. 근디 멧날 메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위 시는 20075.18기념 청소년 백일장에서 장원한 작품으로 여고생이 쓴것으로 알려졌다.

(5.18을 겪은 친척어르신의 회상을 토대로 구성하였다고 하는데, 지켜주지 못한 어린학생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스러운 마음을 사투리를 통해 현장감 있게 전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계절의 여왕이자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은 슬픈 일이 많이 일어난 달이기도 하다. 5.18이 일어났고, 평생 잊지못할 그 이름 인간노무현을 잃었다. 그 생생한 상처를 결코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 우리를 먼저 떠나버린 친구의 누이동생의 흔적은 이미 상실해버린 꿈처럼 우리의 빈곤한 일상의 갈피에서 매 순간 생생한 상처로 되살아 났다.](227)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가? 비도 오고, 막걸리를 한잔해서인지 감상적인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절주절한 이 독후감은 김병익 선생이 해설에 적어 놓은 말로 서둘러 마무리 한다.

 

역사적·현실적 왜곡과 잘못을 반성하며 실제의 참모습을 확인하되 당당하게 그것들과 맞설 수 있을 때 진정한 화해의 심정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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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2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5-12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그렇습니다. 야만의 시대 였습니다!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버트란드 러셀 지음, 김영철 옮김 / 자작나무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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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샀던 모양이다. 아마도 <결혼과 도덕>이라는 원제에 충실한 책이 새로 나오다 보니 중고서점에 흘러들어왔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새 책을 빌려 읽을 수도 있지만, 새로나온 책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싶기도 하고, 묵은내 나는 색바랜 책 특유의 느낌도 좋아 그냥 이걸 읽었다.(‘가정의 달이라는 5, 제목만으로 눈길을 끈다.)

 

역자후기를 보니, 원래는 20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 원저의 내용을 관계있는 장끼리 묶어서의 10개의 장으로 재편성하였다고 하는데, 목차를 훑어 봐도 제1장 성교육은 어디까지 해야 하나제2장 여성해방과 가족, 3장 결혼과 이혼, 4장 가부장제냐 모계사회냐, 5장 기독교윤리와 로맨틱한 사랑 등 흥미진진한 주제들로 가득차 있다.(어쩔수 없이 시대적 한계는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1872~1970. 참 오래도 살았다!). 솔직히 개인적인 독서경험상 그다지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허영심에 들떠 그가 쓴 <서양 철학사>를 큰 맘 먹고 사서 읽다가 좌절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100여쪽을 읽었을까나? 이해되진 않지만 참고 억지로 읽다가 도저히 고대그리스 철학자편도 마저 읽지 못했던 기억...머리 좋고, 잘난 놈이 이 세상 모든 철학()에 대해 지 맘대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듯 한 느낌...집에다 그냥 꽂아놓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것도 쓸데없는 허영심이라는 생각에 그날 바로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다.

 

목차에서 보듯 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러셀이 한창 원숙한 나이인 50대 후반에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청교도적 윤리관이 지배적인 영국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가 보다. 마광수 교수 <즐거운 사라>의 에세이 버전? 러셀은 계약결혼(우애 결혼)을 주장하는가 하면, 결혼 후에도 부부는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할 자유가 있다고 하는 등 특유의 풍자를 곁들여 여성의 참된 해방’, ‘페미니즘등을 거론하며 기존의 성윤리와 결혼제도,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이후 그의 두 번째 아내가 외간남자의 아이를 낳음으로써 그녀로부터 이혼 당했다고 하는 아니러니... 아니러니? 본인의 주장과 사상을 그대로 실천한, 반전운동 등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온 몸으로 산거다. 그냥 쿨 한 것이 아닌가? 지금도 겉으로는 페미니즘을 들먹이다가 숨어서는 나쁜 짓 하고, 점잔빼는 남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대체로 여성이 어린 시절 성지식의 추구를 더 효과적으로 억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25)에서부터 시작해서, [남자든 여자든 문명인은 그 본능에 있어서 일부다처제(혹은 일처다부제)를 선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75)[흑인이 평균적으로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보아 옳은 것 같다](181)라는 주장이나

 

포르노는 규제하는 것 보다 개방하는 것이 좋다’,‘여자에게만 순결과 정조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간통은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없다.’‘가부장제 이후 더 활력이 넘치고 경쟁적인 사회가 되었다.’ ‘가장 음탕한 사회에서 금욕주의가 싹튼다.’‘도덕이 엄격할수록 매음이 성행한다.’‘정신적 결험이 있는 자는 단종되어야한다’,‘성교는 사랑을 목적으로 한 실험이다.’ 등의 소제목을 보더라도 상당히 과격하고, 논쟁적인 내용이다.(출판사에서 임의로 자극적인 제목으로 뽑아낸 듯 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러셀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에게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기혼여성이 경제적 독립을 얻는 데는 두가지 다른 방법이 있다. 하나는 결혼 전에 종사하고 있었던 직업에 계속해서 고용되는 것으로서, 탁아소나 보육원을 크게 확장할 것을 요구하며,~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있는 여성들이 아이들을 돌보는데 전념하는 대가로 국가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는 것이다.](228쪽 발췌)

 

아무튼 기존의 잘못된 성교육과 성윤리, 도덕관념, 인습과 제도를 뒤엎고, 인간의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솔직한 주장이지만 러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도덕관념과 인습 등에서 벗어나더라도 성충동에 의한 본능대로 막 살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발적인 도덕률과 기본적인 자제력을 갖은 상태에서 남녀가 서로의 전인격을 포용하고, 서로를 풍부하게 하고 고양케 하는 융합을 가져올 수 있는 깊고도 진지한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결혼의 본질은 남녀간의 엄숙한 사랑이 모든 인간 경험가운데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게하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이며 영적인, 깊은 친밀감과 결부된 상호간의 인격에 대한 존경이다.](257) 이거, 너무 도덕 군자와 같은 뻔한 소리아닌가?

 

그래도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생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인생을 두려워하는 자는 이미 거의 죽은 것과 같다.](198)라는 말은 그런대로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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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5-08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세기 말~20세기 초 여권신장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이 도덕이었어요. 도덕의 가치를 내세워 남녀 문제를 ‘교화‘로 해결하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나이브해요. 1세대 페미니스트는 결혼과 가족의 가치를 포기하지 못했어요.
 
고독의 발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폴 오스터의 팬임을 자처하며 한동안 그의 소설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뉴욕3부작>, <달의 궁전>, <공중곡예사> 등 미국 사실주의와 신비주의 문학의 전통을 잇는 소설들은 주로 우리네 삶에서 우연이 개입해서 인생사가 어떻게 변형, 확대, 증폭되어 가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데 여기에서 그의 소설 전편을 흐르는 주제인 개인의 실존문제(유대인이며 이민자의 후손로서의 정체성을 포함하여)는 나의 취향과 잘 맞는 편이다.

 

이 책은 폴 오스터가 30대 초반에 쓴 에세이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기억의 서()'라는 2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오스터가 자신의 아버지와 가족, 글쓰기, 기억 등에 대해 자유롭게 써내려간 초기작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은 소설 같은 사건 전개로 이 글이 그의 가계에 대해 진실 그대로 쓴 논픽션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특유의 글쓰기 문체, 그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고독이 발명의 대상이 되는지,또는 발명의 주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의 자전적 소설 <빵굽는 타자기>와 비교해 보는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아무튼, 몇몇의 희곡과 최근작품을 제외하고, 그의 책들은 예전에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고독의 발명’> 무슨 이유에서인지 읽지 못했나 보다. 읽었는데도 기억에 없는 건가? ㅎㅎ 어쩌면 그가 글쓰기의 고독속에서 실존을 얘기한다면 나는 기억혼란으로 인한 읽기의 좌절을 통해 독자로서의 실존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읽다보니 읽지 않은 게 확실하다.)

 

, 거창하게 독자로서의 실존운운하기에는 독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지만,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을 당시, 난 꽤나  허투루 살아온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독자로서 책 읽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에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와 주변상황, 인물들을 떠올린다는 점은 역시 작가가 글쓰기를 통해 실존적 자각을 하는 과정과 비슷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우겨보고 싶기도 하다.

 

책속의 인 작가 폴 오스터 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통해 어린 시절에는 돈벌기 위해 일밖에 모르고 돈쓰는 것에 인색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일, 또 결혼해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그냥 예쁜 아이구나. 잘 자라기를 빈다.”라는 아버지의 형식적이고 애정 없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현재, - 세계사적 사건들과 더불어 살아온 한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는 치유대신 상처를 계속 벌려 놓을 지라도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아버지를 묻는 대신 그를 계속 살아 있게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작가가 파리와 뉴욕에서 작가로서의 고독과 생활속에서의 단상, 아버지의 죽음이후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서술한 후반부의 '기억의 서()'편(다소 지루하다 )보다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그와 아들인 작가와의 관계, 정신병에 걸린 여동생 등 가족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구성한 전반부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편에 더 이끌린다.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얘기하고, 먹고, 웃고 울다 어느 날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사라진 존재.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느낀 생각을 서술한 앞부분은 작가의 삶과 죽음, 실존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빛나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의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고인의 유품을 대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건들은 활성이 없어서 이용하는 사람이 살아 움직일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그 삶이 끝나면 물건 또한, 비록 그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바뀐다. 거기에 있으면서도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서랍을 열거나 옷장 안으로 머리를 디밀 때 마다 나는 침입자 같은, 한 남자의 마음이라는 은밀한 장소를 샅샅이 뒤지는 도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어느 때건 걸어 들어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따져 물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24,25쪽 발췌)

 

몇년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색바랜 사진에서 웃고 있는 아버지를 볼 때,아버지의 체취가 남아 있는 옷가지,신발, 일기장과 편지들을 태울 때, 나도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시골에서 늙은 개 누렁이와 함께  쓸쓸히 늙어 가고 계실 어머니.

먼저 전화라도 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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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5-04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스터 좋아합니다 읽으면 깊은 고독과 외로움 같은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의 젊은 시절의 미국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꼭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가끔 빼 읽으면 좋더라구요

sprenown 2018-05-04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래서 오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