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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벡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 중판
한인섭 지음 / 박영사 / 2010년 3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체사레 벡카리아(1738~1794)는 근대 형법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당시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이 책에 대해 ‘모순적이고 비인간적인 관습의 지배하에 있던 유럽의 대다수 법학자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었다.’격찬했다. 사실 볼테르가 격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이 책의 저술동기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아니라 초판이 나온 이후 너무 감명받아 이 책의 주석을 상세히 달았다는 사실에서도 이해할수 있겠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벡카리아의 대표작 <범죄와 형벌>은 1764년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익명으로 초판이 출판되었는데, 그에게 이 역사적 저작을 저술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와 전유럽을 뒤흔들었던 '칼라스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칼라스는 위그노교도이자 거상이었는데, 종교문제가 심각한 사회에서 둘째아들은 카톨릭이고 큰아들은 변호사가 될려다 개신교신앙이 문제되어 좌절한 뒤 우울증에 빠졌다. 이에 큰아들을 위로해줄 목적으로 그의 친구을 집으로 식사초대했는데, 큰아들이 목을 매어 죽어버린 것이다. 가족중의 누군가가 종교문제로 죽이지 않았나 의심받아 칼라스는 끔직한 고문을 받지만 자백을 거부하고 1762년 사형에 처해졌다. 종교적 광기와 편견, 무자비한 고문에 의한 진실은폐와 사건조작 등으로 결백을 주장한 칼라스는 억울하게 죽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이때 볼테르가 사건의 전말을 우연히 알고,칼라스 부인으로 하여금 대법원에 상고하도록 하면서 수많은 기사와 팜플렛을 통해 지식사회를 자극하여 대법원 상고심에서 마침내 칼라스의 무죄와 복권이 선고된 것이다. 정의의 승리다. 칼라스에 대한 무죄판결은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의 형정(刑政) 전반에 대한 공격이자, 계몽의 승리를 압축하여 보여준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사상은 형벌은 어디까지나 범죄의 경중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그 균형은 법률로써 정해져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사상’과 ‘고문폐지’에 있다.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자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해악을 입힐 가능성을 방지하고, 타인들이 유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형벌 및 그 집행의 수단은, 범죄와 형벌간의 비례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정신에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인상을 만들어내는 에는 동시에, 수형자의 신체에는 가장 적은 고통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49쪽)
[형벌의 가혹성은 그 국가의 상태와 비례한다.
형벌은
- 어떤 경우에도 일개 시민에 대하여 일인 혹은 다수가 저지르는 폭력 행위로 되어서는 안된다.
- 공개적이고, 신속하며,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 주어진 사정하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
- 범죄에 비례해야 한다.
- 성문의 법률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191,192쪽 발췌)
놀라운 저작이다. 무려 250여년전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훌륭한 형법학 서적이 출판되었다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또한 이 책은 벤담의 공리주의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이라는 말이 이 책에 나온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도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산 정약용에 의해 '흠흠신서'라는 뛰어난 형법서가 나오긴 했지만...
불과 50여년 전인 1974년 우리나라에서도 '인혁당 사건'이란게 있었다. 고문과 사건조작을 통해 도예종을 포함한 8명이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판결 18시간만에 사형집행된 ‘사법살인’이었다.( 이 인혁당 사건은 이후 재심을 통해 2007년 8명 전원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야만의 시대... 이젠 지나갔을까? 국가 형벌권의 남용 등 사법 뿐만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우리사회 모든 부문에서 더 이상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반문명적, 비도덕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