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발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폴 오스터의 팬임을 자처하며 한동안 그의 소설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뉴욕3부작>, <달의 궁전>, <공중곡예사> 등 미국 사실주의와 신비주의 문학의 전통을 잇는 소설들은 주로 우리네 삶에서 우연이 개입해서 인생사가 어떻게 변형, 확대, 증폭되어 가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데 여기에서 그의 소설 전편을 흐르는 주제인 개인의 실존문제(유대인이며 이민자의 후손로서의 정체성을 포함하여)는 나의 취향과 잘 맞는 편이다.

 

이 책은 폴 오스터가 30대 초반에 쓴 에세이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기억의 서()'라는 2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오스터가 자신의 아버지와 가족, 글쓰기, 기억 등에 대해 자유롭게 써내려간 초기작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은 소설 같은 사건 전개로 이 글이 그의 가계에 대해 진실 그대로 쓴 논픽션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특유의 글쓰기 문체, 그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고독이 발명의 대상이 되는지,또는 발명의 주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의 자전적 소설 <빵굽는 타자기>와 비교해 보는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아무튼, 몇몇의 희곡과 최근작품을 제외하고, 그의 책들은 예전에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고독의 발명’> 무슨 이유에서인지 읽지 못했나 보다. 읽었는데도 기억에 없는 건가? ㅎㅎ 어쩌면 그가 글쓰기의 고독속에서 실존을 얘기한다면 나는 기억혼란으로 인한 읽기의 좌절을 통해 독자로서의 실존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읽다보니 읽지 않은 게 확실하다.)

 

, 거창하게 독자로서의 실존운운하기에는 독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지만,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을 당시, 난 꽤나  허투루 살아온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독자로서 책 읽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에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와 주변상황, 인물들을 떠올린다는 점은 역시 작가가 글쓰기를 통해 실존적 자각을 하는 과정과 비슷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우겨보고 싶기도 하다.

 

책속의 인 작가 폴 오스터 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통해 어린 시절에는 돈벌기 위해 일밖에 모르고 돈쓰는 것에 인색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일, 또 결혼해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그냥 예쁜 아이구나. 잘 자라기를 빈다.”라는 아버지의 형식적이고 애정 없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현재, - 세계사적 사건들과 더불어 살아온 한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는 치유대신 상처를 계속 벌려 놓을 지라도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아버지를 묻는 대신 그를 계속 살아 있게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작가가 파리와 뉴욕에서 작가로서의 고독과 생활속에서의 단상, 아버지의 죽음이후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서술한 후반부의 '기억의 서()'편(다소 지루하다 )보다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그와 아들인 작가와의 관계, 정신병에 걸린 여동생 등 가족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구성한 전반부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편에 더 이끌린다.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얘기하고, 먹고, 웃고 울다 어느 날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사라진 존재.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느낀 생각을 서술한 앞부분은 작가의 삶과 죽음, 실존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빛나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의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고인의 유품을 대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건들은 활성이 없어서 이용하는 사람이 살아 움직일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그 삶이 끝나면 물건 또한, 비록 그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바뀐다. 거기에 있으면서도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서랍을 열거나 옷장 안으로 머리를 디밀 때 마다 나는 침입자 같은, 한 남자의 마음이라는 은밀한 장소를 샅샅이 뒤지는 도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어느 때건 걸어 들어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따져 물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24,25쪽 발췌)

 

몇년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색바랜 사진에서 웃고 있는 아버지를 볼 때,아버지의 체취가 남아 있는 옷가지,신발, 일기장과 편지들을 태울 때, 나도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시골에서 늙은 개 누렁이와 함께  쓸쓸히 늙어 가고 계실 어머니.

먼저 전화라도 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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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5-04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스터 좋아합니다 읽으면 깊은 고독과 외로움 같은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의 젊은 시절의 미국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꼭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가끔 빼 읽으면 좋더라구요

sprenown 2018-05-04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래서 오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