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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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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아테네의 신전들이나 여러 외국의 고대건축물들을 보면 경외감이 쉽게 들곤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견해이며 자국의 문화와 멋을 모르고 그저 문화사대주의에 빠져 내것, 우리것이 아닌 남의 것만 우수하게 바라보는 나만의 편협한 시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심스럽게, 이런 일련의 사고에 대해서도 나름의 여러이유들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우선은 학창시절부터, 제대로 된 한국 건축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조차도 없이 천편일륜적이고 아무 흥미거리 없는 방식을 통해 건축물들을 답사 한다는 것이다. 그 흔한 수학여행 코스인 '경주'같은 경우는 그저 학창시절에나 가봄직한 장소가 되기도 하니깐 말이다. 다음은 미지의 시대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대한 부재로 인한, 호기심 없는 접근과 더불어, (쉽게 노출되어) 짐짓 알고있다는 착각이 한몫 하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그리스 건축물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마츄피츄 처럼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인류자체가 관심갖는 여러 조형, 건축물 들은 한국의 삼국/조선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것들로써, 아직 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써, 그리고 제대로 본 적 없는 미지의 호기심으로써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있는 것들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이, 아니 핑계들이, 피라미드 건설에 관한 여러 풀리지 않은 의문들에는 관심 갖는 반면에, 한국 건축은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 질 수 있는지 큰 관심이 없었다는 고백에 대한 적절한 방어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개인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무시와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은 거기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가.  

우선은, 선사시대를 둘러봄으로써, 이 책에서 언급되는 '한국 건축' 의 발전의 기원을 살펴본다. 그리고는 한국 건축의 구조를 살핌과 동시에 왜 그런 건축물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각각의 건축물들이 갖는 의미를 설명한다. '도리' 와 '보' 를 비롯한 여러가지 기준들을 통해 모르고 보면 '그게 그거인 듯한' 건축물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함과 동시에, 그 건축물들이 세워질 수 있는 초석부터, 기둥, 서까래, 그리고 기타 많은 건물의 조직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비교적 간단할 줄 알았던 초석에서 부터 갖가지 다양한 분류가 가능했다. 나아가 여러 공간구성에서부터 지붕에 이르기까지 여러 구조물들을 요목조목 해체한다. 즉, 현재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구조물들이, 건축방식으로 인해 그럴 수 밖에 없는 기술적 제한과, 그것과는 별개로 자연과 더불어 주거적 용도와 미적 용도를 동시에 갖추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들이 '왜' 사용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알아본다. 그것들은 아주 종종 비슷한 양식을 갖춘 일본이나 중국과의 비교/대조를 통해 설명되기도 한다. 

이 책은 사실 재미와 흥미로 접근하기에 쉽지만은 않다. 일단은 일반독자들이라면 전혀 생소한 단어들을 마주침이 가장 큰 걸림돌이고, 그로인해 사전을 방불케하는 설명을 통한 접근이 그 이유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애쓴 흔적을 발견하긴 어렵진 않다. 여러 전체적인 사진들과 부분적 사진, 설계면, 그림 등을 통해서, 생소한 독자가 텍스트로 접하는 한계를 넘어서게 하게끔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물론 이 책이 모든 일반적인 대중을 상대로 했다고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비교적) 구체적인 목적성을 띈다. 성별/나이불문 하고 읽을 수 있게 겉핥기식의 표면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좀더 한국 건축에 흥미있는 이들을 위한 매우 적절한 해체서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나같은 일반독자들이 약간 아리송할 정도의 구성이라면, 분명 좀더 구체적인 지식을 원하는 독자에겐 충분히 쉽고 흥미있는 이론서가 될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비전문적인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쉬운것은, '좀 더 친절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독자가 동일한 공간지각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공간의 산물인 건축을 설명한 것이라면 자료사진들이 좀더 친절하게 텍스트와 연결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전체적인 사진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부분적인 사진들에는 단어와 연결될 수 있게 좀더 쉬운 표기를 한다던가, 단어와 연결된 사진들에는 각각의 연결성을 갖는 번호표나 표식을 배열했다면 이 책의 이해도와 활용도를 좀 더 극대화 시켰을 것이란 생각은 순전히 내 생각일까. 

다소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인식할만큼 얻은 것은 있다. 완벽한 이해를 선행하진 못한, 겉핥기 식으로 접한것일지는 모를지언정, 이렇게 한번 집고 넘어가는 것은 인식의 변화에 큰 도움이 되었단 점이다. 옛 조상들의 지혜에서 우러나온 여러 과학적, 미학적 관점에서의 건축물들을 다시한번 바라볼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든다.  

언젠가, 다시 우리의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 부분적 명칭을 기억해내거나, 여러 분류에 탁월한 식견을 발휘하진 못할지언정, 예전과 같이 별 흥미없이 그저 미학적으로만 한번 슥- 바라봄은 아닐 것이란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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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팝콘을 먹는동안 일어나는 일>  

  극장에 가면 흔히 우리는 영화만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광고까지 함께 보게된다. 으레 상영시간보다 늦게 시작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될 정도이니, 영화를 봄과 동시에 광고시청자가 되야함은 분명해 보인다. 티비에서의 광고와 영화는 말할것도 없다. 우리에게는, 집보다는 극장에서 먹는게 더 익숙한 팝콘을 먹는순간, 그렇게 눈앞의 시각매체인 광고와 영화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가 '이야기'뿐만 아니라 얼마나 치밀한 계산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얼마나 복잡한 의도를 갖고 노출되는지 조망해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옛 그림보면 옛 생각 난다>

시간너머로 흘러들어가, 휘황찬란한 서양미술들에 가려 쉽게 만날 수 없었던, 그림들이 보인다. 책 제목을 보기만해도, 정말로 지나간 우리의 시간들이 담겨있는 그림들, 화려한 기교가 없더라도 농담조절과 여백의 미, 빛바랜 종이속에 담겨있는 조상들의 모습들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뉘었으며 힘주지 않아 담아냈다는 그의 그림에세이는, 다양한 옛그림속의 다양한 옛 이야기가 절로 들려올 것만 같다.

 

 

 

 

  

 

<아이돌>  

현재의 우리 아이들은, 영광과 비난의 길을 함께 걷는 가장 핫 한 아이콘중에 하나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저연층에서는 옹호하는 분위기에, 고연령층으로 갈수록 그들을 여러 이유로 싸잡아 비판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 그들이 내놓는 갖가지 '상품'들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좋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있을까. 저연령/고연령 나누는 것또한 그런 무지에서 나온것은 아닐까? 내 머릿속에서 '가벼운 문화'라고 치부되는 아이돌, 그들이 어떤이야기를 갖고 있는지, 그들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영향을  발휘하는지 호기심이 인다.

 

 

 

  

 <좋은 그림 좋은 생각> 

 좋은 그림 한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의 기쁨은 얼마나 큰지. 그렇게나 시종일관 움직여대던 눈동자들이 다른곳으로 돌릴 수 없다며 한곳만을 집중하는 것은, 모든 감각기관이 그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이곳엔 좋은 그림들만큼 좋은 생각들이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일단 표지로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니 좋기는 좋을 것 같다. 동양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답게 한국과 일본 등의 여러 좋은 동양화들이 가득 들어차있는듯 보인다. 미약하게 보이던 꽃들이 소복이 담겨 마음가득메운 꽃밥처럼 피듯, 이 책이 그러리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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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명의 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01명의 화가 - 2page로 보는 畵家 이야기 디자인 그림책 3
하야사카 유코 지음, 염혜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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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101명의 화가>는 보통의 일반인이 알고있는 20세기까지의 화가들은 다 실려있음은 물론, 역사에 기록된 주요화가들은 거의 모두 다루고 있다.(다 알지 못하지만 아마 그러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많다.) 무척 얇고 가벼운 책이다. 표지는.. 조금 복잡했다. 표지에 수록된 '피카소' 만화를 읽다가 책을 열었다. 내겐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던것이, 이 책의 모든 구성은 이렇다는 것. 어쨌든, 설명서라는 것과 점점 멀어지는 생활을 해왔던 터라지만, 이 책의 설명서는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101배 재밌게 즐기는 법' 은 다소 겸손한 표현이다. 이 책은 x1배.. 그러니깐 그냥 온전히 본전치기로라도 읽기 위해서는 꼭 집고 넘어가야할 설명서였던 것. 

 그 설명서를 보다가.. 그냥 페이지를 넘겼던 것일까. 솔직히 초반엔 다소 읽기가 힘들었다. 그림은 눈에 들어오니, 먼저 봐야겠는데 사방이 텍스트로 막혀있었다. 설명, 대사, 생각 들이 기본적으로 화가를 기준으로 적혀있었지만, 작가의 분신같은 도우미 캐릭터까지 혼합되있어서 여간 헷갈리는게 아닐 수 없었다. 2페이의 짧은 분량안에 해당 화가의 생의 주요사들을 모두 다루려고 하다보니 텍스트와 그림이 빽빽하고, 컷구성도 되있지 않았기때문에 텍스트와 그림을 잘못 묶으면 약간 헤매게 되는 경우가 생길때도 있었다. 그리고 한장 넘길때마다 등장하는 많은 용어, 인물들은 괜히 앞서 읽었던 화가들을 더 헷갈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런 복잡한 구성으로 말미암아.. 이건 너무 무리한 집대성이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씩 몰랐던 것을 발견하면서, 단순한 그림, 짧은 이야기를 허투루 읽지 않게 되고, 갈수록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새롭게 볼 수 있었다.  

허투루 읽지 않고 좀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는 것은, 이름을 모르고 그림만 알고있던 것들을 누가 그린지 알게되는 것과 더불어, 나름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작가들의 틈에서 보석같은 화가들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왜 이 화가를 여태껏 알지 못했을까 하면서 더해진 집중력은 짧은 이야기속에 꽤 많은 주요 이야기들이 깨알같이 실려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책을 무시하지 않고 읽으면 의외로 화가들의 생애에서 주요한 것들은 대략 훑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2페이지라는 분량상 그것들을 자세히 다룰 순 없겠지만, 개괄적으로 바라보기에는 충분한 이야기들이 실려있었다.  

특히나 이렇게 한 화가의 특정시기에 대해서 긴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부담없이 화가의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사를 간략하게 훑어보는 것은, 나름의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고, 어떤것은 오히려 특정시기에 집중하느라 알지 못했던 유명화가들의 일화들을 알게해주는데 효과적이었다. 또한 생의 어떤 업적들만큼 재밌던 것은 부자화가, 가난한 화가에 대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성격, 관계, 결혼생활 등을 살펴봄으로써 그 화가가 어째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짐작케 할 수 있게되는 점이다. 

다른 책들에 비해 눈에 띄는 점은, 화가들의 생을 어떤 미화나 찬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족하고 결핍된 모습까지 쉽게 알게해준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짧은 만화안에서 우리는 '그림그리는 화가'뿐만이 아니라, 남들과 같이 '치열하게 돈벌며 인생을 살아가야만 했던' 한 남자, 아버지이자, 남편, 자식, 친구, 혹은 아내, 여자.. 그러니깐, 우리가 알고있는 화가의 뒷면에 감춰진 한 인간의 생애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우며, 작품을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짧은 지면에 빡빡한 구성을 통한 개괄적인 화가 바라보기는 일장일단이 있는 셈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반 고흐, 영혼의 편지>가 유독 생각이 났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엮었던 그 책은, 그의 예술적인 고뇌, 위태로웠던 인생의 향이 잔뜩 묻어났었다. 또한 그것은 꾸밈없는 아픔을 보여주었다. 읽는 이들까지 수많은 고뇌에 빠져들게 했을 정도로, 비극적이고 또 희망적이기도 했다. 그가 대체 왜, 귓볼을 잘라내야만 했는지,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충격적이고 안타까웠던 편지들..  

이 <101명의 화가>가 그런 역할을, 그 정도의 이야기를 담아내리라 기대하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수많은 화가들의 파란만한장 인생사의 주요 항목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며, 그것들로 인해 유명화가끼리 얽혔던 관계들을 발견하고, 미쳐 몰랐던 아름다운 그림들과, 화가들을 발견하게 해주며, 주옥같은 이야기(화가의 사상이기도, 때로는 작가의 시선이기도)가 함축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세기의 화가들을 바라보는 하나의 커다란 창문인 셈이다. 이 책을 통해 그 화가들의 풍경을 멀리서 크게 바라봤다면, 이제 우리는 망원경을 들고선, 각자가 흥미를 느낀 화가를, 관점을, 미술사를 개인적으로 더 파고들어갈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 책을 읽을 땐, 시대를 뒤죽박죽 섞어서, 가나다 순으로 배열한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풍이나 시대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머릿속에 하나로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의외로 많은 화가들이 서로 얽혀있는데 그런것들로 인해 서로를 언급했을때 다시 페이지를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구성이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배열이 상징하듯, 이 책은 미술사에 대한 책이 아니라 화가에 대한 책, 그렇기때문에 화가를 찾기에 적절한, 인명사전식의 배열을 취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쉬움을 토로하며 책을 덮으려 할때 만화가 끝나고 뒤에 기록된, 화가들의 연대기적 기록은 이 책의 배열에 불만을 품고있던 마음을 한방에 날려주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생각해보면.. 이것들을 반대로 했어야 하는게 더 맞는것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책은, 화가들이 궁금할때 쉽고, 가볍게 찾을 수 있는, 세기의 화가들의 사전이었다. 그 역할은 충분히 하고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화가의 생에 흥미를 갖게 해주는 초석이 되기도 하니, 예상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도 있겠다. 아무래도 아쉬운 것들은.. 아쉽다는게 문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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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결국, 음악> 왜인지 읽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것.. 그것이 결국 음악이다. 대중음악평론가가 풀어줄 80년대부터 현재의 걸그룹 홍수에 이르기까지의 음악사적 이야기들은 벌써부터 군침이 돌 정도다. 물론 음악이야 말로 누구라도 쉽게 접하고, 그만큼 익숙해진 것만큼 개인의 성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느 한 분야에 충실히 몸담고, 보통의 우리들보다 수많은 음악을 만나고, 생각하는 지은이를 어찌 간과할 수 있겠는가. 나도원 작가가 풀어주는 제대로 된, 한국 근대 음악사에 관한 담론들을 만나고 싶다.,

  

 우리가 실제로 미디어아트와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미디어아트가 상업적으로 변화된 대중문화들은 꽤 접할 수 있다. 캔버스 위의 추상 (혹은 순수) 예술들이, 진보한 (혹은 그 형식을 파괴하여) 기계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미디어 아트들은, 우리가 그 영향을 인지하던 그렇지 않던, 삶의 사유를 확장시켜주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재료도 필요하지만,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재료를 사용함은, 곧 그 시대를 이야기하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할 테니깐 말이다. 철학자가 쓴 미디어아트 비평문이라 하니, 기대와 걱정이 앞서지만, 미디어아트를 통해 철학을 논하고, 거의 모든 예술에 관심을 갖는 필자의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기대가 더 큰 바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가장 최근에 등장한 예술장르임에도, 가장 파급력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은, 철저히 상업성이 고려된 여가생활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란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예술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영화는 가히 가장 영향력있는 매체로 명실상부하게 떠올랐으며, 영화를 만드는 입장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자연히 그것을 예술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며 시작한다. 그러니 어쩌면 영화는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사유의 한 통로가 되기도 해야하는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사유했던 이들을 이렇게 만나는 것으로 시작되어도 좋을 것이다.

 

    

 죽기전에 해야할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죽기전에 해야할 것도 산더미 같은데 봐야할 영화도 산더미 같은가보다. 하지만 그래서 조금은 가이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것보다 중요한것은 무슨 영화를 보느냐가 아닐까. 우리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책을 찾는 일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가이드에 깔리지 않을정도라면 이런책이 함께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서양의 영화들은 고전이든 현대든, 명작들은 널리 알려진 반면에 한국의 숨은 명작들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 외면받은 작품들이 많으니깐 말이다.

 

 시대가 변할수록 표현의 한계는 그 선을 높여 가고 있다. 혹은, 그 선이 높았다는 것을 시대가 변할수록 드러내준다. 모두의 DSLR 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카메라는 이제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이 되었다. 모든 핸드폰에는 이제 카메라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이 '없다'고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우리에게 찍을 권리가 주어지는 동시에 우리는 찍힐 위험까지 수반하며 살아간다.  예술과 포르노그라피는 사진이전에도 항상 존재했지만, 초상권과 저작권의 문제는 사진과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런 일련의 문제들은 우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 논쟁은 사진뿐만이 아니라 사진가에 대한 자질과 도덕적 의무에 까지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거나, 혹은 알고있지 않아는데 의외로 문제가 되었던 여러 사진들이 담겨있는 이 책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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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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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최소사양

- 주요 대표 시사현안에 관한 간단한 내용들을 숙지할 것

- 주요 대표 시사인물들에 대해 이름, 현재의 거취정도는 간단히 숙지할 것.
 

이 책을 읽기 전 권장사양 

- 어지간한 시사현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가질 것 

- 어지간한 시사인물들의 행동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가질 것 

- 남들에게 가끔은 오덕 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만화를 본 적이 있던 경험 

- 좋은 의견일지라도 맹신하지 않을 어느정도의 주관. (진보라고 생각하거나, 좌빨 드립을 들어본 적 있다면 약간 더 좋다)

- 만화라고 무시하지 말고, 집중할 줄 아는 자세
  

 

먹고사는일에 찌든사람들이 쉬이 관심두지 않을만한 정보들과 작가의 주관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 여러 시사이야기들은 그 이유있는 비판, 적절하고 교묘하게 비트는 힘, 촌철살인 같은 표현, 일본만화 속 인물들의 차용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치밀하게 설계된 풍자들을 통해서, 오래간만에 (시사를 주제로 해서) 키득거리게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날아라 수퍼보드'라는 만화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거기 등장하는 손오공은 헬멧을 벗지 못하는 이유로 작은 구멍을 통해 나뭇가지로 머리를 긁어야만 했다. 그러면 얼마나 쌓였을지 짐작도 하기 힘든 비듬들이 아주 만화스럽게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짐작하는만큼 손오공은 그 '시원함'을 즐긴다. 못한다고 죽는건 아니지만, 강제당할 때 매우 답답한 것들. 어떨땐 별 상관없는 것 처럼 보이고, 그래서 간과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간접적인 영향이 결국 직접적인 간섭이 될때도 있는... 그 이름하야 '정치'를 둘러싼 여러 분야들. 그런 정치에 관련한 여러 비판을 손오공의 헬맷처럼 옥죄는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거나 하는 손 들. 하지만 균열난 조그마한 틈을 <본격 시사인 만화>를 통해 긁어내려갈 수 있었다. 요 직사각형 모양의 네모난 책이 어느 효자손 못지 않게 시원하다. 케케묵은 비듬과 때가 잔뜩 쏟아져나오는 느낌이다. 너무 더럽나? 그럼 시원한 박하향 쿨샴푸로 머리를 감았다고 생각하자. 어쨌든.. 그런 느낌이다.   

정치현안에 대해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것이 힘든것은 비단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뭐 가끔 그런것을 생각하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안도감이 몰려오긴 한다. 하지만 남의 나라 정치사는 우리가 가끔 세계뉴스로 몇개 나오는것이 다이기 때문에, 남의 나라의 정치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리 보이는 지는 몰라도, 이곳은 좀 심하긴 심한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인식과 동시에, 그 비판이 항상 문전박대 당하고, 우리 눈이 안보이는 곳에선 종종 의견에 대한 모종의 협박이 들이밀어지기도 한다. 철편피가 넘쳐나고, 음모론이 아니라 진짜 음모로 보이는 것들이 항상 어딘가에 산재하니.. 남의 나라도 비슷해 라는 말을 할 것도 없이 정치에 지치고 만다.  

오랜 일을 하려면 좋은 체력도 필요하지만,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듯.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긴장하는 사람에겐 그 긴장을 풀어주게끔 유도하는게 필요하듯. 매너리즘에 빠지면 가끔 미친척 하고 자신만의 일탈을 즐긴다든지 하는 처방이 필요하듯 이렇게 정치에 지친 사람들에겐 이런 <본격 시사인만화>같은 처방전이 필요한 것 아닐까? 그래야 지치지 않고 공부해서, 비판하고, 관심갖고 참여하는것 아닐까. 정치를 포함한 일련의 시사적인 일들을 '아웃 오브 안중' 으로 추락시키는 것이야 말로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일테니깐 말이다.  

이 책은 진보적 성향을 띄고있음에도 극단적으로 쏠림현상이 일어나는 책은 아니다. 작가의 주관에 따라, 그것이 옳으면 인정하고, 그르면 비판하는 것이다. 적합한 자료를 통해 근거를 비어두지 않으니, 나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인정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소신으로 미루어, 마땅히 비판에 대상에 있어야 할 이들을, 그리고 일들을 다루는 것 이다. 비판할 대상/일들과 비난할 대상/일들에 대한 경계는 엄격히 존재한다. 내가 이 책이 펼치는 일련의 풍자들에 대해 대부분 공감하고, 그것을 통해 시원함을 느꼈을테지만, 이 책이 그저 나와 같은 이들의 의견에 공감하기 위한 책은 아니니깐 말이다.

덧붙여, 굽시니스트의 이런 풍자또한 한 개인의 의견임을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그것이 비록 나의 주장과 일치하고 설득력이 있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울만 하더라도, 한 개인이 모든것을 완벽히 파악하기에는 펼처진 것들이 너무 넓다. 또한 사실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개인의 선입견은 크건 작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우리와 같은 의견이라고 해서 그것이 옳은것은 아니니. 우리와 공감하는 생각들이 완벽한 개그코드로 변신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일은 당연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니깐 우리는 실컷웃고, 실컷 씁쓸해 하고, 생각해보고, 생각을 갖자. 생각을 그대로 이어받지만 말자. 

 

굽시니스트가 정말 원하는 것은, 자신을 시사만화의 고수로 추앙하고 거기에 귀속 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 시사현안에 대한 고수가 되어, 여러 주제들을 갖고 토론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 아닐까.. 
  

솔직히 가볍게 책을 읽기 시작했을땐, 쉽지 않았다. 난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시사현안에 둔감해 있었다. 정신을 바짝차리고 집중해서 읽더니, 그나마 좀 더 많은 것들에 공감하고, 웃을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하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아주 가끔씩은 있었다. 확실한 점은, 시사인이 되는길이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감춰진 수많은 정보/주장들과, 조작된 혹은 조작된 것 같은 수많은 정보/주장들과, 조작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분류는 분명 누군가들에게는 필요할 터이지만, 우리에게 차단된 정보일수록 우리의 안녕을 기원해줄 만한 정보는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수많은 정보와 수많은 견해가 쏟아져나오고, 그것에 파묻히기도 하는 이 시대에, 주관을 세우고, 근거를 갖고, 정당하게 비판하여, 모두가 좀 더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그럼에도 포기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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